해외동향

Vol.8  202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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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중국]
중국 서점들의 지역 문화공간화 추세

 

 

 

김택규(숭실대 중어중문과 겸임교수)

 

2020. 03.


 

2019년 4월 개장한 베이징시 팡산구(房山區) 문화활동센터는 최근 몇 년 사이 대폭 개선되고 있는 중국 지역 공공문화 서비스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현재 중국 문화 당국은 기존 지역 문화 시설들이 여러 곳에 산재해 지역민들이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웠던 단점에 주목하여, 지역 도서관을 중심으로 각 문화 시설을 한곳에 모은 지역별 복합문화단지 조성을 지향하고 있다.

 

팡산구 문화활동센터 역시 팡산구 도서관을 기초로 도서관인 A동과 문화관인 B동, 두 구역으로 건립되어 도서관, 공연장, 시민 아카데미 등의 기능을 모두 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8층으로 이뤄진 도서관은 성인열람실, 아동열람실, 유아열람실, 전자책제작실, 24시간 무인열람실 등으로 나뉘며 이용자는 베이징 공공도서관 연합 독자카드를 만들어 책을 빌리고 열람할 수 있다. 그리고 5층으로 이뤄진 문화관에서는 무용, 요가, 미술, 악기 등 14가지 취미 과정을 운영하는 동시에 소극장, 헬스클럽, 문예창작실, 민간예술 보호실, 노인대학 등도 설치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한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팡산구 문화활동센터의 최고 수혜자이자 애용자는 역시 아이들이다. 평상시 유아들과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조부모의 손을 잡고 센터를 방문해 열람실에서 책을 보고 과학, 미술 등의 체험학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중‧고등학생들도 연중무휴인 24시간 무인열람실에서 독서와 학습에 집중한다. 그들에게는 ‘제2의 집’이나 다름없는 이 센터는 그야말로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의 여러 도시가 바로 이런 효과에 주목해 팡산구 문화활동센터와 유사한 지역 문화공간의 조성을 앞다퉈 기획하고 있다.

 


팡산구 문화활동센터 A동 로비와 도서대여실


팡산구 문화활동센터 A동 로비와 도서대여실

 

그런데 지역 문화공간의 조성이라는 이 추세는 단지 공공문화 서비스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간 분야에서도 몇몇 선도적인 프랜차이즈 서점이 이를 차세대 서점의 콘셉트로 잡고 수익모델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미 베이징에서만 5곳의 신개념 매장을 운영 중인 겅두서사(更讀書社)이다. 사실 팡산구 문화활동센터의 24시간 무인열람실도 현재 이 겅두서사가 정부의 투자를 받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트래픽 감측시스템 ‘레이투즈윈(雷圖智雲)’을 이용해 24시간 안전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본래 겅두서사의 사업 모델은 ‘겅두스마트시티책방’과 ‘겅두문화여가공간’, 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현재 여러 공공도서관에 빠르게 신설되고 있는 24시간 무인열람실의 위탁 운영은 그중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겅두서사의 주력 분야는 역시 순수 상업 모델인 ‘겅두문화여가공간’으로 이를 실현한 것이 바로 베이징의 대형 상가 5곳에 입점한 매장들이다.

 


겅두서사로고


겅두서사 로고

 

그 매장들의 특성에 관해 겅두서사의 마케팅 담당자 청화(程華)는 “우리 겅두는 스스로를 서점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겅두서사의 가장 큰 기능이 단지 도서를 상품으로 보고 판매하는 것만이 아니라 쾌적한 독서의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책을 판매 대상으로만 보면 서점은 마트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겅두의 영혼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감성과 체험을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겅두서사 매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도서 판매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선 겅두서사는 편안한 분위기의 도서관이고자 한다. 전체 내부 디자인은 밝고 단순하며 원목 색깔의 책꽂이와 책상, 의자를 비치했고 매장별로 1만 권이 넘는 대량의 장서도 갖췄다. 상가 안을 오래 돌아다니느라 지친 사람들이 잠깐 들러 쉬면서 책을 펼치고 싶은 분위기를 연출해놓았다. 그리고 최근 등장한 중국의 다른 독립서점들처럼 간단한 식음료도 판매하므로 책을 읽다가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한 문구, 다기 등의 문화 상품도 전시하여 수시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 아울러 도서 구입과 대여를 비롯한 모든 매장 내 소비는 충전이 가능한 회원 카드를 사용하게 돼 있다. 이용자가 키오스크를 통해 직접 회원 등록 후 100위안의 보증금을 내고 카드를 발급받으면 역시 키오스크로 도서 검색과 대여를 할 수 있으며 매장 내 모든 소비에 대해 일정 비율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매장에서 비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문화 강좌와 이벤트에 대한 참가 우선권도 주어진다.

 

겅두서사는 폭넓은 이용자 확보를 위해 문화 강좌와 이벤트 기획에도 공을 들인다. 보편적인 저자 사인회와 간담회 외에 따로 전문 강사를 섭외해 와인 시음회, 다예와 꽃꽂이 강좌 등의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이밖에 독서 퀴즈대회나 도서 바자회 등을 열어 이용자 간 소통과 커뮤니티 형성을 유도하기도 한다.

 


베이징 둥청구 겅두서사


베이징 둥청구 겅두서사

 

‘중국 최초의 상가 내 도서관’임을 선전하는 겅두서사의 이런 실험은 공공도서관 내 무인열람실 위탁 운영과 함께 그들이 ‘지역 문화공간화’를 미래 서점의 생존 모델로 예견하고 전력투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서점은 단순히 불특정 소비자를 겨냥한 책의 판매점이 아니라,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전달하고 또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복합서비스 현장이라는 것이다.

 

한편 겅두서사보다는 아직 규모가 작지만 지역 문화공간화의 목적은 훨씬 더 뚜렷한 예로 단샹공간(單向空間) 항저우 러디강(樂堤港) 분점의 ‘단샹 청소년클럽’을 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설립 15년이 지난, 베이징의 대표적인 독립서점 체인 단샹공간의 첫 비(非)베이징 분점인 러디강 분점은 2018년 말에 문을 열었고 작년 말, 3층의 80제곱미터 면적을 청소년 전용 공간인 단샹 청소년클럽으로 개조했다. 자습실, 도서열람실, 휴게실로 나뉜 이곳은 오직 아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으로서 단샹공간의 장기적인 사업 전망을 보여준다.

 


단샹공간 항저우 러디강 분점


단샹공간 항저우 러디강 분점

 

단샹 청소년클럽 역시 겅두서사처럼 회원제를 채택해, 기본회원으로 등록하면 자습실과 도서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고 매장 내 5만여 권의 도서를 무제한으로 빌려 볼 수 있으며 개인별 도서추천 서비스와 독서능력 평가 그리고 ‘청소년 점원 체험 프로그램’ 참여권 등도 받을 수 있다. 이 서점의 점장 쩌우둥린(鄒棟林)의 말에 따르면 사실 청소년클럽의 소비자이자 진정한 수요자는 가장들이며 그들의 소비는 꽤 주기적이고 규칙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하길, “우리는 청소년클럽을 수익모델로만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기여도를 더 중시하면서 청소년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서비스를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단샹 청소년클럽은 청소년 전문 아카데미의 운영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금년에 연극 수업을 열 준비를 하고 있으며 청소년 야외 캠프 등의 기타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라고 한다. 단샹공간은 이런 노력을 통해 각 매장이 위치한 지역사회의 청소년 및 그들의 가장이 갖고 있는 문화적 수요를 정확히 가늠하고 만족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지역사회와 더 밀착된 서점으로 변모시킬 계획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서점 업계는 서점의 발전을 위한 키워드를 서비스와 콘텐츠로 보고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해왔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서점 본연의 기능에 편집숍, 식음료점, 호텔 등을 결합한 다원적 서비스 모델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콘텐츠도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페이지원, 시시포(西西弗), 중수거(鐘書閣) 등 대규모 자본을 유치한 새로운 서점 체인들은 대부분 대형 상가나 시내 중심에 매장을 두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분별없이 유치하는 데 주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겅두서사와 단샹공간은 또 하나의 키워드로 ‘지역공동체’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별, 연령별 특정 고객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그들의 문화적 수요를 특정해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도서관 모델’, ‘회원제 모델’을 실험하는, 지역 문화공간화의 추세를 연출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실험이 어떤 성과를 낳을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도 만약 그들의 매장이 실제로 지역의 필수 불가결한 문화공간으로 뿌리내린다면 이는 미래 서점의 한 긍정적인 표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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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에서는 웹진 〈출판N〉의 해외통신원들이 현지 최신 동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합니다.

김택규(숭실대 중어중문과 겸임교수)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숭실대학교 중문과 겸임교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교 대학원과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중국어 출판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번역가 되는 법(유유)〉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중톈 중국사(글항아리)〉, 〈죽은 불 다시 살아나(삼인)〉, 〈암호해독자(글항아리)〉 등 5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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