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 09.
[해외통신/중국]
김택규(중국어 번역가, 중국 통신원)
2019. 09.
4~5년 전만 해도 중국 오프라인 서점업계의 최대 화두는 인터넷서점과의 경쟁과 임대료 상승이었다.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신간을 50%씩 할인 판매하는 인터넷서점들의 횡포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도시 상가들의 과다한 임대료로 인해 유명한 대형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베이징 최대 서점이었던 디싼지(第3極)서점, 선전 제2의 서점이었던 선전북스토어(深圳購書中心)뿐만 아니라 상하이의 문화적 랜드마크로 불렸던 지펑(季風)서점까지 점포 4곳을 모두 정리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부의 보조를 받고 점포가 자기 소유인 국영 신화서점 체인을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서점이 씨가 마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중국 도서 소매업계 전체에 팽배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통의 유명 서점이 사라진 자리를 ‘새로운 서점’이 대신했고 위기에 몰린 서점 체인들도 속속 ‘새로운 서점’으로 변신해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꼽아보면 전자의 경우는 2011년 창업한 팡숴(方所)서점과 2014년에 창업한 젠터우(建投)서국과 1200북숍, 후자의 경우는 2009년 변신한 시시포(西西佛)서점, 2012년에 변신한 다중(大衆)서국과 중신(中信)서점 그리고 2014년 변신한 옌지유(言几又)서점 등이다.
쓰촨 옌지여우서점의 화려한 공간 디자인
그러면 중국의 이 새로운 서점들의 ‘새로움’은 과연 무엇일까? 정리해보면 공격적 확장, 복합문화공간화, 상품다각화, 이(異)업종결합 등이다. 우선 이들은 모두 서점체인으로서 시내 한복판의 일반 상가, 백화점, 쇼핑센터 등에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신서점의 전국 점포수는 현재 315개이고 향후 5년간 1,000개를 채우는 것이 목표이며, 시시포서점은 점포수가 160개이지만 최근 2년 동안에만 67개가 늘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주로 부동산 개발회사들의 서점 선호 덕분이다. 지난 4~5년 사이 중국에는 매년 수십 곳씩 대형 쇼핑센터가 늘어났다. 신축 쇼핑센터의 성공 여부는 사실 인구 유동량에 의해 결정되며 쇼핑센터는 이를 위해 먼저 음식점과 음료수 가게를 유치하지만 그 다음 ‘귀빈’으로 서점을 떠올린다. 그래서 임대료를 깎아주고 인테리어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서점을 유치하려 한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각 서점체인에 경쟁적으로 가입해 가맹점을 내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서점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서점처럼 최대한 많은 서가에 빽빽이 책을 꽂아놓고 통로조차 좁은 곳이었다면, 아마 쇼핑센터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새로운 서점’들은 제각기 복합문화공간화로 더 많은 고객들의 발을 묶어놓음으로써 쇼핑센터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곳들의 도서 진열 공간은 기껏해야 전체 면적 중 60~70퍼센트 정도이고, 음료수를 마시는 카페 공간이 꼭 배치되어 있다. 의자와 탁자를 갖추고 스타벅스처럼 운영한다. 어떤 곳은 10미터 높이의 독서 공간을, 어떤 곳은 작은 서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영화 상영과 출판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적 유인 요소로 더 많은 고객들이 더 오랜 시간 서점 내에 머물게 함으로써 책 외의 소비를 발생시키고 나아가 그들이 쇼핑센터 내 다른 점포의 상품까지 사게 만든다.
나아가 서점 공간의 다원화는 곧장 서점 상품다각화와 연결되며 이를 위해 새로운 서점들은 이업종결합의 실험도 서슴지 않고 있다. 난징, 상하이 지역의 주요 서점체인이며, 카페 공간과 독서 공간, 문화상품 판매 공간이 특히 넓은 다중서국을 예로 들면 일찌감치 바이신(百新)문구와 천광(晨光)문구에 공간을 임대해 질 높은 문구와 생활용품을 팔게 했고 그것이 성공하자 임대계약 만료 후 직접 경영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더욱이 2014년에는 카페 공간의 경영권까지 협력 업체로부터 넘겨받아 고유 커피브랜드 즈핀(紙品)커피를 론칭했으며, 이 새 브랜드의 지명도가 높아지면 따로 커피전문점 체인을 출범시킬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다중서국이 이처럼 상품다각화에서 이업종결합으로 발전한 예라면, 팡숴서점은 거꾸로 처음부터 이업종결합으로 시작된 예이다. 팡숴서점의 모체가 패션 브랜드 리와이(例外)이고 그로 인해 책 패션, 커피, 잡화를 하나로 묶은 복합형 서점의 형태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투자회사 베이징젠터우(北京建投)가 세운 젠터우서국 역시 유사하게 처음부터 도서, 커피, 문화상품을 하나로 묶은 서점이다.
상하이 젠터우서점의 외관
이처럼 공격적 확장, 복합문화공간화, 상품다각화, 이업종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 중국 오프라인 서점 업계의 추세는 아마 우리 서점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 대형서점체인의 추세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새로운 서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보문고까지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기까지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모델은 역시 일본 츠타야서점(蔦屋書店)과 타이완 청핀(誠品)서점이다.
젠투서점 부사장 장취안(張權)은 최근 인터뷰에서, “서점이 어떻게 돈을 벌지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현실로 만들 좋은 팀과 실행력만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사실 표준 답안은 없어요. 모두가 찾고 있습니다. 꼭 청핀 모델도 아니고, 꼭 츠타야 모델도 아닙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중국 서점 업계의 미래 모색에 끼치는 두 서점의 영향력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것이 콘셉트인 츠타야서점의 출발은 2011년인데 반해, 청핀서점은 한참 전인 1989년에 문을 열었고 동시에 일찍부터 타이완의 필수 관광지로 인식되어 수많은 중국인 방문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 역사가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츠타야서점의 영향력은 청핀서점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러면 ‘청핀 모델’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동아시아 일류 서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을까?(츠타야서점조차 개점 전, 청핀 모델을 적극 참고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24시간 서점인 청핀서점 둔남로점
세계 최초의 24시간 서점으로 유명한 청핀서점 둔난로점(敦南路店)에 가보면 실제로 청핀 모델의 영향력과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청핀서점 48개 체인점의 원형이 된 그 본점은 세련된 매장 공간을 통한 책과 고객 간 상호작용 증진과 책을 중심에 둔 파생 비즈니스의 첨예한 발전상을 보여준다. 우선 청핀서점 둔난로점은 지하 2층, 지상 3층의 ‘청핀 둔난로점’의 일부로서 맨 위층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둬야 한다. 그렇다. 소형 지점들을 제외하고 청핀의 기본 형태는 서점을 포함하는 대형 쇼핑센터다.
식음료점, 화랑, 각종 편집샵, 어린이 과학체험장, 해외 유명 의류점과 식기판매점이 나머지 4층에 꽉 들어차 있고 그 점포들을 선정, 유치, 배치하는 주체는 청핀의 자회사 ‘청핀라이프’이다. 2010년 설립된 청핀라이프는 모회사 청핀이 표방해온 인문, 예술 중시의 경영 철학과 공간 디자인을 바탕으로 청핀의 문화상품, 생활용품, 부동산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업무 분업의 효율성이 면적 1만5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중국 1호점 쑤저우청핀의 개장(2015)과 성공 그리고 올 가을 청핀 도쿄점의 개장뿐만 아니라 ‘청핀호텔’, ‘청핀오피스텔’이라는 신사업 론칭을 가능하게 했다. 중국의 새로운 서점들을 선도해온 청핀 모델은 지금 청핀 브랜드를 활용한 각종 문화 사업으로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9월 27일 개장한 청핀서점 도쿄점 내부
하지만 청핀 모델은 결코 유명 브랜드에 의지한 문어발식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청핀서점 사장 리제슈(李介修)는, “도서는 특별한 특징이 있다. 바로 다원적 내용을 가진 상품이어서 생활과 관련한 많은 의제를 파생시킨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구, 문화상품, 가구, 부동산에 이르는 청핀모델의 각종 수익사업은 그 의제들의 파생 비즈니스이다. 예컨대 청핀호텔을 가보면 로비에 인문, 예술 도서 중심의 독서 공간이 있고 각 층에 전시관과 북카페도 배치하여 고객들에게 ‘청핀의 파생 공간’ 안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밖에도 청핀의 식당은 요리도서의 파생물이고 청핀의 영화관과 화랑은 예술도서의 파생물이다. 물론 이런 효과는 청핀의 섬세한 디자인과 편집의 산물이다. 더욱이 이런 다양한 파생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화로 브랜드의 순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청핀은 인문, 예술 도서 중심의 서점 경영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으며 서점의 도서 진열 면적을 줄이는 일도 없다.
청핀서점 둔난로점의 책은 25만 종이고, 더구나 그중 90퍼센트 이상은 다른 서점의 시각에서 보면 판매 부진 도서이다. 그런데도 청핀서점은 수익을 실현한다. 이에 대해 리제슈는 “도서 종수를 완전하게 갖춰 놓으면 장기간 영업할 경우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베스트셀러 판매에만 매달리면 인터넷서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전략으로 “청핀에 가면 좋은 책을 꼭 찾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유지하는 한편, 불충분한 수익은 이미 공고해진 브랜드를 이용한 파생 상품 판매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청핀 모델의 최종 형태는 외견상 복합문화쇼핑센터를 대표로 하는 다원화 경영인 것 같지만, 이 모델의 효과는 궁극적으로 여전히 책과 서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서와 비(非)도서를 결합시켜 사업의 활로를 찾되, 동시에 어떻게 도서와 비도서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느냐는 것을, 청핀 모델의 학습자들은 꼭 유념해야 한다고 본다.
[해외통신]에서는 웹진 〈출판N〉의 해외통신원들이 현지 최신 동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합니다. 김택규(중국어 번역가, 중국 통신원)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숭실대학교 중문과 겸임교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교 대학원과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중국어 출판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번역가 되는 법 / 유유〉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중톈 중국사 / 글항아리〉, 〈죽은 불 다시 살아나 / 삼인〉, 〈암호해독자 / 글항아리〉 등 5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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