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8 2021. 12.
2021 해외 출판 문학상 결산
안성학(KPIPA 미국 코디네이터, 미국 파피펍 대표)
2021. 12.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도서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해였다. 올 초부터 들려온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When You Trap a Tiger)』의 작가 태 켈러(Tae Keller)의 뉴베리상(John Newbery Medal) 수상 소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책이 유명 도서전의 상을 받았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 작가들의 저서는 그 인기와 함께 해외 여러 시장에서 출간되고 있다.
전미도서상
전미도서재단(National Book Foundation)이 지난 11월 올해의 전미도서상 최우수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계 시인 겸 번역가인 돈 미 최(Don Mee Choi)가 시 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번 도서상에는 모두 415권의 소설 작품과, 679권의 비소설 작품, 시 290 작품, 번역 문학 164 작품, 그리고 청소년 문학 344 작품이 출품되었다.
2021년 전미도서상 최우수 작품들
최우수 소설로는 제이슨 모트(Jason Mott)의 『지옥 같은 책(Hell of a Book)』이 선정되었다. 첫 번째 소설 『더 리턴드(The Returned)』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저자는 이번 수상작 『지옥 같은 책』을 통해 흑인 작가가 전국을 다니며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홍보하면서 겪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뤘다. 흑인을 향한 경찰 총격 사건이 반복되지만 미미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국가의 모습, 그리고 이러한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비소설 부문에는 티야 마일스(Tiya Miles)의 『그녀가 들고 온 모든 것: 흑인 가족 유품, 애슐리의 자루의 여정(All That She Carried: The Journey of Ashley’s Sack, a Black Family Keepsake)』이 선정되었다. 역사 교수이자 하버드 대학교 찰스 워렌(Charles Warren) 미국사 연구 센터 소장인 저자는 1850년대 흑인 노예 매매로 어린 딸이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흑인 여성과 그 후손들의 아픈 역사를 들려준다.
시 부문에는 퓰리처상 결선 진출작 『시의 공화국(Republic of Poetry)』의 저자인 마틴 에스파다(Martín Espada)의 『플로터스(Floaters)』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플로터스(떠있는 사람들)”는 미국의 일부 국경수비대가 국경을 건너려다 익사하는 남미 이민자를 일컫는 말로, 인종차별과 성장 과정에서 겪는 애절한 개인사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번역 문학 수상작으로는 번역가 아니사 아바스 히긴스(Aneesa Abbas Higgins)가 영어로 번역한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의 프랑스어 원작 『속초에서의 겨울(Winter in Sokcho)』이 차지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와 서울, 스위스에서 자란 저자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첫 작품 『속초에서의 겨울』로 로베르 발저상(Prix Robert Walser)과 데포르주상(Prix Régine Desforges)을 받았으며 6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아니사 아바스 히긴스(Aneesa Abbas Higgins)는 PEN 번역상을 수상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남과 북의 경계에 있는 관광지 속초의 황량한 겨울을 바탕으로 문화와 국가의 정체성에 균열이 생긴 고독한 이방인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덧없는 혈연관계를 그렸다.
청년 문학 수상작으로는 말린다 로(Malinda Lo)의 『텔레그래프 클럽에서의 마지막 밤(Last Night at the Telegraph Club)』이 선정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맥카시즘(McCarthyism)이 한창이던 1950년대 중국계 미국인 소녀 릴리(Lily Hu)와 백인 소녀 캐스(Kathleen Miller)의 러브 스토리를 그렸다.
올해 수상작의 공통점은 비백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소설과 비소설 당선작은 흑인들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 역사를 그렸다. 시 부문 당선작은 남미 이민자의 모습을 다루었다. 번역 문학 당선작은 한국계의 다국적자이자 다인종자의 정체성 문제를 그렸으며, 청년 문학 당선작은 아시안과 성 소수자를 이야기했다. 작년과 올해 미국에서 화두에 올랐던 주제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년 5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있었던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으로 인해 #흑인생명은소중하다(#BlackLivesMatter) 운동이 격렬하게 일었다. 이 영향으로 출판계에서는 ‘다양한 목소리(Diversity)를 담은 책’을 출판하려는 노력이 강해졌다. 편집자는 다양한 인종과 주제, 소재를 찾아 나섰고, 백인이 아닌 작가들의 작품이 전보다 많이 출간되었다.
“흑인 인권도 소중하다”는 슬로건이 걸린 출판사 웹페이지
또한 팬데믹으로 아시안 증오 범죄가 크게 증가하며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아시안 증오 반대 운동(#StopAsianHate)이 확산되었다. 이 외에도 성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존중도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와 같이 미국 내의 큰 사건들을 주제로 한 도서가 올해 전미도서상을 휩쓸었다.
국제 부커상
올해의 국제 부커상은 프랑스 작가 데이비드 디옵(David Diop)의 2018년도 작품 『소울 브라더(Frère d'âme)』의 영국 번역 출판작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At Night All Blood Is Black)』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바로 10개의 주요 도서상 후보로 올랐으며,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상(Prix Goncourt des Lycéens)’을 받았다. 또한,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여름 독서 목록’에 올랐으며, LA타임스 도서 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작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의 영국과 미국판 표지
저자는 이 작품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중 서부 전선에서 세네갈의 프랑스 식민지 부대인 티라예르(Tirailleur)군 소속으로 프랑스를 위해 싸운 세네갈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멀리 고향을 떠난 청년이 자신과 관계없는 전쟁에 나가 죽음을 목격하고 광기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세네갈계인 저자의 증조할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한 것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 아카데미 도서상
지난 10월에 발표된 올해의 영국 아카데미 도서상 글로벌 문화 이해상은 수짓 시바순다람(Sujit Sivasundaram)의 『남쪽을 가로지르는 파도: 혁명과 제국의 새로운 역사(Waves Across the South: A New History of Revolution and Empire)』가 수상했다.
수상작 『남쪽을 가로지르는 파도』의 영국과 미국판 표지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지금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세계사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유럽과 대서양이 아닌 남쪽을 중심으로 대영제국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심사위원들은 ‘과거 대영제국의 역사가 인도양과 태평양의 토착민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지배자 입장에서 쓴 역사가 아닌 피지배자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에 대한 평가인 것이다.
노벨문학상
지난 10월 발표된 2021년 노벨문학상은 영국에서 활동한 탄자니아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에게 돌아갔다. 1948년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1964년 잔지바르 혁명 때 18세 난민으로 영국에 온 저자는 대학에서 영어와 탈식민주의 문학을 가르쳤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식민주의와 난민의 운명을 타협하지 않고 동정심 있게 그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수상자의 출간작들
의회도서관 미국 소설상
『해로우(Harrow)』 등 다수의 단편소설과 5편의 소설을 집필한 작가 조이 윌리엄스(Joy Williams)가 지난 9월에 열린 전국도서전(National Book Festival)에서 의회도서관의 미국 소설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과 리 단편소설상(Rea Award),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의 슈트라우스 리빙상(Strauss Living Award)을 수상하기도 했고,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전미도서평론가협회상의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수상자 조이 윌리엄스의 출간작들
미국 문학 번역가 협회상
지난 10월에 발표된 미국 문학 번역가 협회의 2021년 루시엔 스트라이크 아시안 번역상(Lucien Stryk Asian Translation Prize)은 아르카나 벤카테산(Archana Venkatesan)이 번역한 인도 타밀의 작가 남마바르(Nammāḻvār)의 『끝없는 노래(Endless Song)』가 차지했다.
『끝없는 노래』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 중 하나인 9세기 타밀 시인 남마바르(Nammāḻvār)의 시를 번역가 아르카나 벤카테산이 30년 넘게 작업해 출간된 작품이다.
수상작 『끝없는 노래』와 『선물 금지』
또한 한국계 번역가 안톤 허(Anton Hur)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올해의 전국 번역상 산문 부문(National Translation Award)의 수상작은 테자스니 니란자나(Tejaswini Niranjana)가 번역한 자얀트 카이키니(Jayant Kaikini)의 『선물 금지: 뭄바이 스토리(No Presents Please: Mumbai Stories)』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랑을 물려받은 겸손한 가게 주인부터 방송에 나가려고 하는 발리우드 스턴트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인도 뭄바이의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제타상
11월에 발표된 올해의 SF 및 판타지 로제타상(Science Fiction and Fantasy Rosetta Awards)에서 ‘최고의 SFF 번역 작품 장편 부문’에 『어둠 속의 딸(Daughter From the Dark)』이 수상했다. 이 부문의 후보작으로는 리지 뷸러(Lizzie Buehler)가 번역한 한국 작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이 올랐다.
수상작 『어둠 속의 딸』과 후보작 『재해 관광객』
또한, ‘최고의 SFF 번역 작품 단편 부문’에 우 구안(Wu Guan)의 「로진(Roesin)」이 수상했으며 소피 보맨(Sophie Bowman)이 번역한 한국 작가 김보영의 「고래 눈이 내리다(Whale Snows Down)」가 후보에 올랐다.
지금까지 소개한 올해의 여러 도서상 수상작들은 대체로 백인 위주의 시선이 아닌 흑인과 남미인, 아시아인, 난민, 식민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 위주를 이뤘다. 팬데믹과 흑인 인권 운동, 아시아인 인권 운동의 영향으로 소수자들의 인권과 삶이 많이 부각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미국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의 경향과도 같다. 이러한 현상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또 어떠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이게 될지 기대가 된다.
안성학(KPIPA 미국 코디네이터, 미국 파피펍 대표) 미국 아마존의 자회사인 오더블과 킨들 코믹솔로지에서 디지털 오디오북과 코믹북의 글로벌 콘텐츠 제작팀을 이끌었고, 지금은 한국의 도서와 웹툰, 웹소설을 미국 시장에 번역 출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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