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0 2023. 12.
피오르 바닷가 마을이 세계적 문학이 되다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23. 12.
2023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현대극의 대가’ 욘 포세
2023년 노벨 문학상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Jon Fosse)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학술원(Swedish Academy)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의 작품은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여백, 아무리 애써도 해명 불가능한 미지, 사람들 사이에서 몹시 부대껴도 절대 해소되지 않는 고독 등을 다룬다.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문학동네 제공, ⓒTom A. Kolstad)
포세는 말한다. “‘사이’라는 말이 내 극 작품에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이때의 사이는 그의 희곡에서 대사 도중에 또는 대사와 대사 중간에 걸려 있는 긴 침묵을 뜻하지만, 우리 안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말더듬, 즉 설명할 길 없는 기이한 감정에 부닥쳐 언어의 길이 끊어지는 순간을 뜻하는 듯도 하다.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포세는 드러난 언어를 통해 말하지 않고, 문장 사이 여백을 통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가 겉으로 다루는 것은 노르웨이 소시민들이 겪는 사랑과 이별, 상실과 죽음, 가족 간 갈등과 번민 같은 일상의 사건들이다. 그러나 포세가 진정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그 흔하디흔한 사건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존재의 비의(秘義),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 초월적 의미를 불어넣는 경건함과 숭고함 등이다. “저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경청입니다.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듣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포세는 우리 실존의 깊은 비밀을 극도로 절제되고 압축된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
포세는 흔히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 등을 잇는 현대극의 대가로 불린다. 그는 노르웨이 특유의 연극 전통인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심리극을 계승하는 한편, 이를 베케트의 부조리극과 결합한 미니멀리즘 연극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해 왔다. 『어느 여름날』(1999), 『이름』(1995), 『가을날의 꿈』(1999) 등 그의 희곡은 5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곳곳의 극장에서 매년 수백 회 공연되고 있다. 또한 그는 특정 단어나 문장을 반복하는 리듬 넘치는 산문 문체를 통해서 덧없고 연약한 인간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소시민의 삶을 통해 그려낸 문학의 언어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서부 해안의 소도시 헤우게순의 퀘이커교도 집안에서 출생했다. 한 인터뷰에서 포세는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한적하고 고요한 바닷가, 외따로 떨어진 오래된 집은 포세 작품 전체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풍경이다. 작품 속 인물들처럼 그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공연을 위해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던 시기를 제외하면 그곳에서 평생 글을 써 왔다. 자기가 온전히 속한 세계, 즉 원형의 고유한 풍경이 있는 작가는 행복하다. 세상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언제든 그곳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시인의 언어가 자라나는 이러한 장소를 ‘혼의 풍경’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좋은 작가가 되려면 자기 몸과 마음의 고향을 혼의 풍경으로 가꾸어 내야만 한다. 장소에 관한 내적 탐구 없이 문학이 위대함을 얻는 건 너무나 어렵다.
포세는 언뜻 무국적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이름도, 직업도, 전기적 배경도 없이 인물들은 대부분 ‘그 남자’ 또는 ‘그 여자’로 표기되고, 남성 중심인물엔 흔히 ‘아슬레’란 이름이 붙어 있다. 언뜻 보면, 포세는 인물의 디테일을 중요시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대부분 포세가 나고 자란 노르웨이 서부 지역의 소도시와 해안가 마을에서 살아간다. 국경 없이 세계를 떠도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 아니라 지역 풍경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아침 그리고 저녁』(2000)에 나오는 주인공 ‘요하네스’처럼 그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피오르 해안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침 그리고 저녁』
포세는 말한다. “해변의 바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을의 어둠, 좁은 마을길을 걸어 내려가는 열두 살 소년, 바람, 피오르를 울리는 장대비,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둠 속의 외딴집, 어쩌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 등이 내 작품의 토대다.” 고립감과 외로움이 짙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러나 포세는 노르웨이 해안 마을 어디서나 흔히 보일 법한 외로움의 풍경을 인간 전체의 내적 고독을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포세 작품의 장소나 인물은 지역적이나, 그 안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사유와 감각은 보편적이다.
그의 작품은 인생의 이면에서 역동하는 근원적 불안에 집중한다. 불안은 구체적 삶에서 오지 않고, 인간 실존의 조건에서 생겨난다. 낯선 이 세상에 홀로 던져져 무의미의 나락 속에서 헤매다 스러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이 삶이 공허하다는 건 알겠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내적 불안 말이다. 이러한 불안 탓에 포세 작품의 인물들은 심지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을 때조차도 ‘홀로’라고 느낀다. “고립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 조용한 삶을, 특별한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없으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고향의 풍경과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구현한다. 또 이러한 고유 언어가 있을 때 문학의 영토에 이름을 남기고, 세계적 주목을 얻을 수 있다. 포세의 작품은 광대한 바다가 불러일으키는 눈부신 경이, 그 숭고한 감정 속에서 자각하는 인간의 미소함, 외따로 떨어진 오두막이 가져오는 고립감, 떠들썩한 교류 없이 묵묵히 운명을 견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등으로 이루어진 혼의 풍경을 담고 있다. 지구의 변방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현대인의 보편적 내면 풍경으로 승화하면서 그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포세는 오슬로 지역의 표준 노르웨이어가 아니라 고향의 언어, 즉 서부 노르웨이어 지역에서 쓰는 신노르웨이어로 글을 쓴다. 약 55만 명만 사용하는 이 소수 언어로 글을 쓰는 최초의 작가이기도 하다. 포세는 산문시에 가까울 정도로 단어와 문장의 배치, 즉 소리, 리듬, 흐름 등에 극도로 신경을 기울인다. 그는 신노르웨이어 특유의 ‘언어적 울림’을 활용해서 고유한 예술 언어를 구축한다. 달리 말하면, 그는 신노르웨이어의 단테(Dante)와 같다. 포세는 신노르웨이어를 문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 신학의 언어로 승화했다.
포세는 단어의 위치, 각 단어를 발음하는 방식 등을 예민하게 조정함으로써 일상의 흔한 경험이나 공허한 대화를 독특하고 고유한 형태로 바꾼다. 그는 말하지 않고도 깊은 뜻을 주고받는 침묵의 화법, 단어와 문장의 반복으로 문장에 리듬을 일으키는 수법 등 우리에게 언어를 사용해서 일상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그에게 이러한 화법의 원형을 보여준 것도 고향 사람들이다. 포세는 말한다. “내 고향은 무척 조용하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말할 때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성장했다는 것이 나의 언어와 많은 관련이 있다.” 다른 위대한 작가들처럼, 그 역시 모어를 깊게 탐구해 거기에 세련과 풍요를 더했을 뿐이다.
그의 문장에 음악성을 불어넣은 것은 록 음악에 빠져들었던 10대 초반의 경험과 고향의 파도들이다. 끝없이 밀려들었다가 멀어지는 파도로부터 그는 똑같거나 비슷한 단어나 문장의 반복을 통해 리듬을 이룩하는 법을 배웠다. “일고여덟 살 때 나는 혼자 배를 타러 나갈 수 있었다. 어두워질 때 배를 타고 본 이 풍경, 이 해안가 경험이 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이때의 풍경, 이 이미지는 포세의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남성 화자 아슬레의 원형 경험을 이룬다. 여러 작품에서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 채 틈만 나면 조각배를 띄워서 바다로 나간다. 포세의 대표작 『어느 여름날』에서 그는 폭풍우 치는 바다로 배를 몰아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포세의 문장들은 아슬레가 듣는 바다의 목소리, 존재의 근원에서 들여오는 기이한 소리를 변주한 것이다. 도중에 자주 끊어지면서 침묵으로 돌아가는 특이한 대화, 마침표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문장, 단어의 의미 전달보다 단어와 단어의 관계를 보여 주는 데 치중하는 화법 등은 파도 소리를 모방하기 위해 생겨난 결과다.
“아 아 저기 저기 아 아 아 저기 아 그리고 아 우 그렇게 아 에 아 에 아 쏴쏴 아 윙윙 아 오래된 강 굽이굽이 이 아 에 아 이에 아 에 물이 에 아 그리고 에 우 아 모든 것은 그래 자 자 아 자 고르게 자 목소리 그리고 저 끔찍한 소리와 압박 에 아 에 그처럼 차가운 단절 아 아 매듭 돌 돌아가 아 그리고 아 앞으로 그렇게 모든 일은 일어난다.”
이처럼 포세는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그 순간 들려오는 우주의 소리를 응집해 표현하는 데, ‘이야기와 언어를 음악처럼 다루는 데’, ‘언어를 통해 음악에 존재하는 여러 분위기와 역동성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는 데 더 신경 쓴다. 포세는 말한다. “텍스트는 존재해야 하며, 의미하지 않아야 한다.”
세계의 진짜 목소리, 우리가 정녕 인생에서 알고픈 것은 드러난 단어 속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 너머에 희미하게 반짝인다. 이 때문에 포세는 알 수 없는 것 속에 존재해야 한다고, 아직 알지 못하는 사물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 편의 시로 들릴 만큼 독특한 포세의 산문은 그 기울어진 귀의 고투(苦鬪)가 빚어낸 산물, 즉 끊김과 이어짐, 정지와 반복을 통해서 단어의 간격을 벌려서 거기에 존재의 의미가 깃들도록 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따라서 포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인물들과 함께 이러한 사물의 음악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처럼, 소리에 겹쳐 있는 미지의 느낌, 정서, 사유 등을 그 자체로 즐기려 할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포세의 문장 곳곳에 깃든 공백은 삶의 의미에 성찰로 채워진 충만한 여백, 언어로 연주하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에 담긴 인간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타인이 함께 겪을 수 없고, 언어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공백, 즉 부조리가 있음을 포세에게 알려준 것은 ‘죽음’이다.
일곱 살 때 주스를 가지러 지하실 창고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포세는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때 포세는 깨진 병 조각에 동맥을 찔려 거의 죽을 뻔했다. 아주 이른 시기에 죽음과 마주쳤던 경험은 포세의 문학적 행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외부에서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죽음에 가까이 가 있었다. 이런 관점, 이런 거리,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그때부터 이미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포세는 이 부조리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와 소설에 빠져들고, 기타와 바이올린 등 악기를 연주했다.
청소년기에 했던 연주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 소설 『보트하우스』(1989)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서른이 넘은 한 히키코모리(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장기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 남자다. 어머니의 집 다락방에 얹혀사는 그는 외출도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함께 밴드를 했던 ‘크누텐’을 지난여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그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휘말려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작품은 주요 사건 없이 화자가 자신의 불안과 그로 인한 고통을 기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누텐과 어릴 적 보트하우스에서 함께 보낸 시간, 밴드에서 함께 연주한 시절 등 화자의 내적 독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음악 교사로 자리 잡은 크누텐과 허송세월하는 화자의 삶이 빛과 어두움처럼 대비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끝내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둘러싼 이유 모를 불안을 파헤치기 위해 세계와 접촉을 끊은 채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자아, 불안에 저항하고 죽음을 유예하면서 한없이 문장을 토해내는 글쓰기의 독특한 운동을 만날 수 있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야기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글로 써야 한다.” 글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구원한다.
『보트하우스』
거장이 되기까지의 여정
포세는 1983년 소설 『빨강, 까망』으로 데뷔했다. 마침표 없이 쉼표로만 전체가 이어지는 특유의 문장, 단어와 문장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사유 등을 통해 인간 삶의 공백과 여백을 탐구하는 포세 작품의 주요 특징은 이미 초기 작품부터 선연히 드러난다. 포세는 말했다. “나는 구전 전통에서 파생된 화자가 되면 안 되고,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한 작가는 글쓰기의 육체, 즉 글쓰기의 물질성을 뜻했다.”
데뷔 이후 10년간 소설가로 활약하던 포세는 돈을 벌기 위해 1992년 첫 번째 희곡 『누군가 온다』를 집필한다. “1992년 늦가을, 나는 처음으로 ‘그’와 ‘그녀’가 나오는, 그리고 그사이 연출 지문이 들어가는 형식의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연극의 규칙에 대한 지식도 없이 그 작품을 거의 단숨에 써 내려갔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시와 산문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것, 말과 침묵을 이용해 인간관계를 본질적으로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희곡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1994년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가 베르겐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면서 포세는 본격적으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를 헨리크 입센 이후 가장 많이 공연되는 노르웨이 극작가로 만든 ‘극적 황홀경’의 출발이었다. 이후, 그는 연극 무대에서 작가로 활약하면서 때때로 『멜랑콜리아 Ⅰ-Ⅱ』(1995~1996), 『아침 그리고 저녁』, 『저 사람은 알레스』(2003)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 작업을 병행해 간다.
『멜랑콜리아 Ⅰ-Ⅱ』, 『저 사람은 알레스』
1998년 포세의 첫 번째 희곡 『누군가 온다』가 프랑스 낭트에서 무대에 오른 후, 갑자기 그는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1999년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 3부작’를 발표해서 단숨에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무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은 북유럽 연극상을, 후속작 『이름』은 유럽에서 희곡 작가에게 주는 최고의 상에 속하는 네스트로이 상(Nestroy Prize)을 받았다. 이 작품들에서 인물에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은 채, 여러 작품에 반복해서 쓰는 포세 작품의 특징이 선연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날』에서 바닷가의 낡은 집에서 남편 아슬레가 바다에서 실종된 날을 회상하는 여자는 『가을날의 꿈』에서 나오는 여자와 거의 같은 인물이다. 『가을날의 꿈』에서 여자는 오래된 집을 얻어서 남자와 함께 살다 남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포세는 비인칭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 직업, 나이 등이 모두 명시되어 있지 않고, 인물의 과거 또한 독백이나 대화를 통해서 슬쩍 드러날 뿐 특별히 설명되지 않는다. 포세는 말한다. “나는 노동자 또는 회사원으로서 그들의 삶에 관해 쓰지 않는다. 나는 인물에게 이름과 직업, 그리고 전기적 배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나는 그 남자 또는 그 여자로서의 인물을 원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한 사람이 인생에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의 의미가 아니다. 그는 인간 전체가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공백을 탐구한다. 그것은 이름과 지위와 사건을 지워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아슬레는 사랑하는 연인과 살림을 꾸려 행복하게 살면서도, 때때로 바다의 목소리를 들으려 쪽배를 타고 물결에 몸을 싣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은 홀로 남은 아내가 창밖의 바다를 내다보면서 떠나간 남편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도무지 들을 수 없었던 아슬레의 속말, 홀연히 사라진 그의 삶이 남긴 의미를 한없이 되씹는다. “내 평생/하나의 질문과도 같았어/하나의 외침과도 같았어/우린 서로를 발견했고/우리가 서로를 발견한 것처럼/그렇게 갑자기/우리 서로를 떠나야 했어/하지만 그게 인생이지.” 만남과 이별, 사랑과 죽음, 상실과 그리움, 공허와 외로움 등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슬레처럼, 또 그의 아내처럼 우리는 누구나 불현듯 이러한 질문,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외침과 마주친다. 근원의 질문과 외침은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고, 우리의 삶은 그로부터 뿌리째 흔들린다.
남편이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 그 의미를 거듭해서 성찰하는 여자의 존재는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삶은 떠들썩한 세간의 사건이나 시끄러운 수다 속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날 존재를 찾아든 근원적 불안을 질문 삼는 내적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다. 포세는 이를 “밝게 빛나는 어둠”이란 역설의 언어로 압축한다. 성찰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어둠을 무의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지 않고 진실의 빛으로 변화시킨다.
한 줄기 빛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
2012년 포세는 갑자기 희곡 작업을 멈추고, 소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오랫동안 취해 있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서 술을 끊고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퀘이커교도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영성 체험이 다시 그를 사로잡는다. 포세는 말한다. “글을 잘 쓸 수 있을 때 두 번째 침묵의 언어가 생겨난다. 이 침묵의 언어가 모든 걸 말해준다.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 있는 무언가, 즉 조용한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조용한 목소리가 처음 실체를 드러낸 작품이 『3부작』(2014)이다. 「잠 못 드는 사람들」(2007), 「올라브의 꿈」(2012), 「해 질 무렵」(2014)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 작품은 오래전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바이올린 연주자 아슬레와 아내 알리다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어느 여름날』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포세는 알리다의 회상이라는 형태를 통해 존재와 부재의 이중주를 시도한다.
이 작품은 비 오는 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가운데, 아슬레와 알리다가 아이를 낳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수십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면서 사랑의 영원성, 예술의 신비 등을 그려낸다. 알리다를 두고 도시로 나갔던 아슬레는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 어이없이 살해당하지만, 그의 목소리, 연주 소리 등은 영원히 알리다 곁에 남아 있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오직 바다가 가볍게 철썩이며 뱃전에 출렁이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출렁임 그리고 철썩임 그리고 거의 다 탄 장작에서 나는 타닥거림, 그리고 알리다는 그녀를 감싸 안는 아슬레의 팔을 느낀다 그는 속삭임으로 내 소중한 사람, 내 유일한 사람, 그건 당신이야, 영원히 당신이야,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꼭 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러자 그녀가 당신은 영원히 내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의 귀에 아기 시그발의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오고 아슬레의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온기가 그녀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와 그는 평온하게 숨을 쉰다 모든 것은 잔잔하고 잔잔한 움직임이 있다 그녀와 아슬레는 똑같이 잔잔하게 움직인다 모든 것이 고요하며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다.”
알리다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마다 신비하게도 아슬레의 숨소리, 목소리를 듣는다.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삶에서 소중한 가치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부재의 형식으로만 존재하며, 우리는 그 침묵의 언어에 귀 기울이려고 부단히 애쓸 때 비로소 거기에 다가갈 수 있다. 포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이를 잘 알려준다.
『3부작』
욘 포세의 대표작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7부 1,400쪽에 이르는 『셉톨로지』(2019)이다. 이 작품은 아슬레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두 화가의 일생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도플갱어처럼 쏙 닮은 두 사람은 모두 예술을 꿈꾸지만, 그 인생은 빛과 어둠, 성공과 실패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삶과 죽음, 패배와 성취, 절망과 희망, 좌절과 일어섬 등 실존적 질문과 씨름하는 두 화가를 통해서 포세는 인생이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바라볼 때, 즉 모든 모순된 관계를 하나로 묶는 영적 온전함을 지향할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이란 냉대와 배신으로 얼룩진 오욕의 연속이고, 누추하고 추악한 고통의 악순환이다. 게다가 우리는 아슬레처럼 항상 존재의 결핍, 근원적 고독에 시달린다. 이러한 삶에서 포세는 만연한 어둠에 지지 않는 한 줄기 빛을, 영혼의 평화를 탐구한다. 한 문학 비평가는 말한다. “포세가 소설을 말할 때 사용하는 핵심 단어가 평화다. 일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고, 이혼하나, 그 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깃들어 있다.” 『셉톨로지』와 함께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 마을에서 언어의 어부가 건져 올린 존재의 평화를 맛볼 날을 기대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오르트, 2016), 『같이 읽고 함께 살다』(느티나무책방, 2018) 등이 있으며, 『기억 전달자』(로이스 로리(Lois Lowry), 비룡소, 2007), 『고릴라』(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 비룡소, 2008)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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