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4 2021. 08.
프랑스 동네서점의 생존 분투기
강미란(KPIPA 수출코디네이터)
2021. 8.
APUR(파리도시계획아틀리에)의 2021년 보고1)에 따르면 현재 파리 시내에는 643개의 서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2003년과 비교했을 때 33%가 줄어든 수치이다. 2007년과 비교하면 27%가 줄어 현재 68개의 서점이 문을 닫은 상황이다. 2017년과 2020년 사이 문을 닫은 서점도 16개나 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라틴지구(카르티에 라탱, Quartier Latin)의 랜드 마크 중 하나인 생미셸의 지베르 서점까지 폐점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소르본 대학, 팡테옹, 생미셸, 다양한 중고서적 가게 등을 아우르며 파리 문화와 교육의 산지로 유명한 라틴지구의 대표 서점 중 하나이기에 지베르 폐점 소식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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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 파리의 예를 들며 글을 시작했지만, 동네서점의 위기는 비단 파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위치가 어디든 중소형 동네서점은 프낙(FNAC) 등 대형체인서점과 아마존 같은 인터넷 플랫폼의 시스템 및 운영 시설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비교적 높은 가격의 임대료를 내야 하는 서점들은 그 부담이 더한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락다운은 동네서점 생존에 치명적인 역할을 했다.
코로나 사태로 큰 어려움에 처한 상인들을 돕기 위해 정부 사업, 거래가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 개설 및 다양한 시스템 구축, 재정적 지원 등 많은 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네서점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대형체인서점과 구입이 편리한 인터넷 플랫폼, 일반 서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등의 대중의 잘못된 선입견과 계속 싸워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금은 팬데믹 상황까지. 현재 프랑스의 동네서점은 다중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렇다면 이들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부 정책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의 발달로 등장한 인터넷 서점과 퓨어 플레이어(pure player)의 대명사인 아마존이 그 지역의 문화 활동을 담당하고 있던 동네서점을 위협해 왔다. 프랑스에서의 동네서점은 무조건 잘 팔리고 쉬운 책을 쉽게 ‘소비’하도록 돕는 대형체인서점이나 인터넷 플랫폼과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깊이가 있는 책, 읽어볼 만한 책, 전문적인 책, 소위 까다롭게 여겨지는 책까지도 소개하고 홍보하며 판매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지역 문화 발전과 소통의 장,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지식을 쌓는 장소인 동네서점 유지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2014년 7월 8일 법2)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도서정가제법인 1981년 8월 10일 81-766법에 따라 각 서점에서 원한다면 5% 할인제 적용을 허용했는데 소위 ‘안티-아마존법’이라고도 불리는 2014년 7월 8일 법을 제정하여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경우 5% 할인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서점을 직접 방문해서 책을 둘러보고, 조언을 듣고, 구입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한 2014년 7월 8일 법에 따르면 인터넷으로 구입한 도서는 무료배송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아마존의 무료배송 서비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서점들을 지켜주기 위한 정부의 제스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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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마존은 유료 서비스인 ‘프라임’ 구독자들에게는 구입 도서를 무료로 배송하고 있으며, 프라임 구독자가 아닌 경우에도 도서를 구입하면 아주 상징적인 가격인 0.01유로를 배송비로 받는다. 결국 아마존은 2014년 법을 요리조리 피해 계속해서 사용자를 늘렸고, 아마존으로부터 일반 서점을 구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 역시 그 효과가 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현 마크롱 정부에서는 2021년 현재 인터넷 도서 구입 시 책의 무게를 약 500g 정도로 측정하여 최소 2유로에서 2유로 30센트를 무조건 배송비로 내도록 하는 법을 검토 중에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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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코로나 사태 이후 세 번의 락다운을 실시했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나 저녁 혹은 밤 시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태다. 봉쇄 기간에는 생활필수품을 파는 가게만 문을 열게 되어 있다. 따라서 1차 봉쇄 당시에는 서점 역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대형체인서점 및 인터넷 플랫폼과 어려운 경쟁 중에 있던 동네서점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조치였다.
하지만 봉쇄 기간 중 독서의 중요성을 더욱 더 실감하게 된 정부는 2차 봉쇄 때부터는 click & collect라는 제도를 도입, 이 시스템 사용이 가능한 일부 서점의 문을 열도록 해주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천만 유로를 투자하여 소상공인들이 인터넷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왔고, 작은 동네서점들 역시 이번 디지털화 사업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문화부 산하기관인 프랑스도서센터 CNL(Centre National du Livre)에서도 동네서점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서 구입, 장소 제공, 공사 보조, 디지털화 등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2월 26일에는 책을 생활필수품으로 분류하여 봉쇄 기간에도 서점 운영을 허용했다.
새로운 콘셉트, 다양한 경험 제공
동네서점이 일반 대형체인서점과 다른 이유는 서점상과 독자, 독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 서로 조언을 해 주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데 최적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네서점은 이런 장점을 살려 서점이 책을 사고파는 장소만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공간, 진정한 만남의 공간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이별 혹은 장르별 독서 클럽을 운영하는가 하면, 책과 관련한 다양한 클래스와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더 많은 사람이 동네서점을 찾도록 하고 있다. ‘직접적인 만남’에 포커스를 두고 작가를 초대해 북토크 시간을 갖는 것은 물론, 출판사 관계자들과도 자리를 주선해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장소가 허락하는 경우 가게 한쪽에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서점도 점점 느는 추세다.
앙제의 리셰 서점(Librairei Richer)은 베스트셀러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그 서점만의 특색에 맞는 책을 선정하여 토론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가진다. 낭트의 쿠아파르 서점(Librairie Coiffard)에서는 자체 후보작을 선정하고 서점을 찾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해 그 해의 문학상을 시상하는 행사를 개최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 독립서점 제1호인 보르도의 몰라 서점(Mollat)의 경우 이미 별관을 따로 마련하여 작가와의 만남, 토론회, 공연, 낭송회 등 다양하면서도 클래식한 책 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부터는 더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트렌드에 맞는 행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점 곳곳에서 열린 ‘방탈출 게임’을 들 수 있겠다. 청소년과 젊은 독자들을 위한 ‘영어덜트 소설’ 홍보를 위해 한 출판사와 손을 잡고 작가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짜서 만든 행사였다. 라발의 엠리르 서점(Librairie M’lire)의 경우, 정기적으로 ‘아페로 퀴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페로는 식사 전에 간단한 음식과 술을 먹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책을 하나 정하고 그 책에 대한 퀴즈를 아페로와 함께 즐기는 행사인 것이다. 파리 11구의 랭프롬튀 서점(Librairie L’impromptu)도 이와 비슷하게 매달 와인 파티를 열어 여러 독자와 동네사람이 서로 어울리며 책에 대한 정보 교환은 물론 사교의 시간을 갖도록 돕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행사를 통한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는 서점도 있는 반면 전문성을 내걸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서점도 늘어나는 추세다. 바욘의 르방데시네 서점(Librairie Le banc dessiné)은 아동용 그림책, 유럽식 만화, 코믹스를 전문으로 하는 만화 서점이다. 보르도의 페가수스 서점(Librairie Pégase)의 경우 ‘웰빙’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 서점에서는 요리, 운동, 치료, 명상 등 건강하게 사는 것과 관련된 모든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역시 보르도에 위치한 제올리브리 서점(Librairie La Géolibri)은 여행, 에콜로지, 사회 문제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책만을 다루고 있는 전문 서점이다.
동네서점 보유 도서 검색 사이트
독자들이 대형체인서점이나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필요한 책을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 필요도,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문의할 필요도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추세에 부합하기 위해 프랑스 일반 서점 1,200곳이 손을 잡았다. librairesindependantes.com 누리집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필요한 책을 검색하면 그 책을 보유하고 있는 서점을 안내해 주는 서비스다. 대형서점이나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되 동네서점을 이용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독서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프랑스 동네서점은 대형체인이나 아마존과 같은 퓨어 플레이어와는 다른 전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듯하다. 비단 책을 사고파는 것에서 그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정보를 나누고, 여가를 즐기고, 색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지역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장소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건투를 기대해 본다.
참고
https://actualitte.com/article/99545/librairie/sept-nouvelles-librairies-renforcent-le-reseau-de-nouvelle-aquitaine
강미란(KPIPA 수출코디네이터) 프랑수아 마장디 고등학교 교사, 라레유니옹 대학 강사 및 언어교육학 연구원, 번역가. 다수의 한국 만화를 프랑스어로 옮겼고, 프랑스어 소설과 그래픽노블을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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