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8 2022. 11.
나라 밖 우리 옛 책, 어디에 있을까?
옥영정(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전공 교수)
2022. 11.
나라 밖 우리 옛 책의 조사는 왜 필요한가?
고전적(古典籍), 고서적(古書籍), 고서(古書) 등으로도 불리는 옛 책은 선조가 남긴 지적 자산의 결정체이며, 수많은 세월 동안 기록의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학문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겼던 선현들의 삶의 방식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많은 옛 책을 통해서 실체화된 것이다.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대표적인 유산 중의 하나가 기록문화유산이고 출판 인쇄는 기록문화유산의 보급 확산을 위한 수단이자 결과물로서 인류문명사적인 가치가 있다. 2022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6개의 기록유산 중에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해인사 대장경판〉,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 의궤〉, 〈동의보감〉, 〈유교책판〉 등이 모두 출판 인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옛 책, 즉 고서(古書)에 대한 연구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소장본에 대해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연구 초기에 일부 연구자들에게만 알려졌던 국외 한국 고서의 소장 유무가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실체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막연하게 일본이나 중국, 북미, 유럽 등지에 소장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일련의 한국 고서들은 조사와 목록·해제집을 통해서 정확한 수치와 규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는 한국에서의 유출 경위가 의심되어 환수 대상 목록에 포함해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문화 교류의 산물이거나 혼란기에 외국 수집가들이 수집해 간 것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전적도 상당수다. 국외 소장처에 직접 방문하여 연구하는 인력이 점차 증대되면서 한국에 없는 유일본이거나,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본이 해외에 다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까운 거리의 일본을 비롯하여 북미의 각급 대학도서관이나 문고 등에서 발견된 희귀서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고서의 소장 정보 역시 해당국의 목록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까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추산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소장처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있으며,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국가에서 한국의 고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여 년 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등 몇몇 기관을 중심으로 1차적인 정리와 목록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특히 최근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 활동으로 얻어진 성과는 앞으로의 심층적인 연구를 위한 바탕이 되므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라 밖 우리 옛 책의 현황
1) 일본
일본은 국외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한국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국가다. 그 소장의 경위 또한 근세의 일제강점기에 유출된 전적을 비롯하여 멀리는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고려시대 대장경의 전래까지 소급될 정도로 그 소장 고서의 형성 원인과 수집된 종류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한국의 소장 고서에 대한 목록과 해제를 집중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이렇게 정리된 다수의 도서들이 해방 이후 일본에 소장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일본 각지의 소장처 중에서 46개처 이상이 목록이나 해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각 기관에 있는 한국 고서들은 많은 경우 목록이나 연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한국본을 특별히 분류하지 않고 중국서 한적으로 취급하여 목록에 기재한 경우에는 각각의 항목을 일일이 대조하여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때문에 이러한 목록상의 난점으로 인해 발견되지 않은 다수의 고서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쿄의 사립 도서관인 세이카도문고와 와세다대학교 도서관, 교토의 교토대학교 도서관 등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조사되기도 하였다. 세이카도문고의 경우 이전까지 한국 전적이 약 100종 정도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재단에서 2016~2017년 2년에 걸쳐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639종, 총 3,467책에 이르는 한국의 고전적이 소장되어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동안 세이카도문고의 한국 전적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고서 목록이 간행된 일제강점기에 한국 전적은 일본서로 취급되어 ‘국서(國書, 일본서)’에 포함되거나 중국서인 ‘한적(漢籍)’에 수록되었고, 일부분만 항목으로 구별했을 뿐 별도의 한국본 목록의 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이카도문고에 소장된 한국 전적의 유입 경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고에 포함된 기노우치 쥬시로(木內重四郞, 1866~1925)의 장서가 한국 고서를 다량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교토대학교 부속도서관 가와이문고의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는 1907~1915년 사이 조선에 거주하면서 조선의 고서를 수집한 바 있다. 오사카부립도서관 소장 「한본문고(韓本文庫)」의 원소장자였던 사토 로쿠세키(佐藤六石) 역시 1906~1910년 조선에 체류하면서, 게이오대학교 와타나베문고의 와타나베 킨조우(渡辺金造)도 1906~1908년 조선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조선의 고서를 수집하였다.
2) 북미
북미 지역(미국과 캐나다)에 현재 소장되어 있는 한국 고서의 양은 수치로 비교하였을 때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이다. 현재 확인된 대표적인 소장처는 하버드대학교의 옌칭도서관, U.C.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미국의회도서관,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등이다. 최근에 프린스턴대학, 예일대학, 클레어몬트대학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목록집이 간행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은 한국관을 별도로 설치하여 12만여 권의 단행본과 900여 종의 정기 간행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도서 가운데 귀중본으로 분류된 도서는 4천여 종이며, 대부분 1910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한국에 없거나 희귀한 고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근래에 발간된 예일대학, 클레어몬트대학, 프린스턴대학 도서관 소장 한국 고서 목록
3) 중국
중국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서는 중국의 일부 도서관과 한국의 학자, 조선족 학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발굴되어 소개되었다. 대표적인 소장처로는 북경대학교 도서관, 중국국가도서관, 남경도서관, 중국제2역사당안관, 항주대학교, 절강도서관 등이 있다. 최근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주관으로 상해도서관과 복단대학 도서관의 한국 고서가 발굴되었다. 특히 상해도서관에서 세종 10년(1428)에 간행된 경자자본(庚子字本) 『자치통감강목』 59책 완질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동북 3성의 대학교에도 다수의 한국 고서가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과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인 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향후 더 많은 소장처와 전적이 추가로 발견될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상해도서관, 복단대학 도서관 소장 한국 고서 목록
4) 대만
대만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대표적으로 대만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박현규(1989, 1990, 1991) 교수에 의해 일찍이 소개된 바가 있으며, 2009년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조사를 거쳐 목록이 제작된 바 있다.
5)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의 한국 고서는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이 조사 작업은 별도의 목록으로 출간되었으며, 학계에 보고되었다. 지리적으로 상당한 거리인 데다가 문화적 교류가 적었던 여타의 요소를 고려할 때, 카자흐스탄에 한국 고서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즉 기존에 일반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해외 국가 외에도 한국의 고서가 소장된 국가 및 소장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각 기관 및 국가에 대한 개개의 학술조사도 중요하지만, 각 국가의 주요 도서관 간 정보 공유와 한국학 및 한국어학과와의 연계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더 다양한 제3국에서의 한국 고서가 발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 유럽
프랑스는 유럽에 있는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한국 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1866년 프랑스 선교사와 교인을 탄압한다는 명분하에 강화진을 포격해 국지전을 벌였던 병인양요 때 약탈한 서적이다. 당시에 퇴각하는 프랑스 군대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소장 서적을 본국으로 이송한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왕실의 귀중서 및 유일본들이며 그 소장 경위가 합법적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중 외규장각의 의궤는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두 번째는 프랑스의 박물학자인 에밀 기메(Émile Guimet)에 의해 수집된 한국의 고서들로서 현재 파리에 있는 기메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고서들이 그것이다. 세 번째로는 초대 프랑스 대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에 의해 수집된 한국 고서들로서 그의 수행원이자 학자였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에 의해 『한국서지』라는 이름으로 목록 및 해제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 수집 한국 고서에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일반적으로 ‘직지’라고 불리는 서적 역시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에 있는 자료는 현황 파악이 거의 이루어지고 개별 목록이 작성되기도 하였지만 종합적인 목록 해제집이 작성될 필요가 있다. 일부 자료는 마이크로필름이나 복사본으로 국내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된 각각의 도서들에 대해서는 일찍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어 목록이 제작된 바 있으며 일본이나 미국, 중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에 비해, 특히 유일본과 귀중본이 많으므로 지속적인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현재 런던도서관과 대영도서관, 대영박물관,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도서관과 동방학연구소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조선의 서적과 문화에 대한 연구 전통이 있었던 국가이기에 현재 파악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고서가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국내에서는 최근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현재까지 조사되어 목록화된 바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각 소장처별로 별도의 목록과 해제가 제작되었다. 이 해제서와 소장처에 대한 소개는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자에 의해 학계에 소개된 바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본 고서에 대한 해제서(『Описание письменных памятников корейской традиционной культурыⅡ(한국 전통 문화의 기록유산의 서술Ⅱ)』)의 표지와 본문
그 밖에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지에도 한국 고서가 소장된 것이 확인된다. 독일에 소장된 한국 고서는 괴팅겐대학교 도서관과 함부르크민속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199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별도의 목록을 제작한 바 있으며, 2009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주관하에 괴팅겐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일부 한국 고서에 대한 목록이 제작되었다.
국외에 소장된 한국 고서 중에는 국가 유산적 가치가 높은 조선 전기 이전 간인본(刊印本), 유일본 및 희귀본 등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또한 저명한 인물의 수택본(手澤本)은 전통시대 서적의 유통 및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며, 출판인쇄사, 문학사와 사상사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희귀 간본, 필사본들은 학술적 연구 자료로서 국내소장본과 비교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전체적인 국외의 한국 고서 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각 소장처마다 가치 있는 귀중본에 대한 개별적 검토가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다 깊이 있는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세부적인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국외 한국 고서의 발굴 조사 연구에 더욱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전공 교수 옛 책을 다루는 서지학 연구자로서, 한국 고인쇄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복원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는 데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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