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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8  202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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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상상]
한글 문해력과 공공언어

 

 

 

강성곤(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2023. 1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현대인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흔히 ‘4C’를 꼽는다. 첫째는 ‘Communication’, 의사소통이다. 타인의 글과 말을 접하고 뜻한 바를 파악하며 자신의 글과 말을 통해 제대로 쓰거나 말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Collaboration’, 협업 능력을 든다. 사람들과 일을 함에 있어 무리 없이 원만하게 지내며, 협력과 협동을 통해 최선의 성과물을 도출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 ‘Critical Thinking’이 세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사안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현안을 파악해 문제의 맥을 짚어 모순을 찾아내고 개선 효과를 도출하는 역량이다. 마지막으로 ‘Creativity’, 창의력을 빼놓을 수 없다. 뛰어난 아이디어는 새로운 관점, 혁신적 접근과 통한다. 그러나 그 생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존재도 언어라는 집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언어의 힘일 터다.

 

‘읽기 문해력’과 ‘듣기 문해력’의 중요성

 

문해력(文解力)이 화두요, 뜨거운 감자다. 연전에 서울의 한 카페가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라고 쓴 사과 안내문을 두고 젊은 네티즌들의 반응이 촉발했다. 매우 깊고 간절하게 사과한다는 뜻의 ‘심심(甚深)한 사과’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하는 사과로 해석해 카페 측을 비난한 것이다. 거개(擧皆)의 여론은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단어를 모를 수 있느냐며 황당하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일각에선 “‘진심 어린 사과’나 ‘깊은 사과’ 등 다른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써야 하느냐”라는 반발도 나왔다.

 

문해력 논란과 관련해 어느 언론도 어느 전문가도 언급이 없었던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논란이 생긴 ‘심심한 사과’에 국한해 보자. 예컨대 이 문장을 텍스트의 형태가 아니고 만약 카페 주인이 음성을 넣거나 동영상으로 감정 이입과 진정성을 보태 [심:심한 사:과]라고 발화(發話)했어도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까 미루어보면, 발생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파괴력은 낮았으리란 추측이다. 즉, 발음과 음성의 힘이다. 우리가 글, 문서, 텍스트의 영역으로만 알고 있던 문해력의 새뜻하고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지평을 아래에서 펼쳐보고자 한다.

 

‘심심하다’는 뜻이 4개다. 먼저 심심(甚深)하다. 이번에 불거진 논란의 중심인 단어다. 심할 심, 깊을 심이 겹쳤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뜻이다. 주로 ‘심심한 사과, 심심한 사의(謝意), 심심한 감사(感謝)’ 등 ‘심심한’의 수식(修飾) 형태를 띤다. 다음은 심심(深深)하다. 말 그대로 ‘깊고 깊다.’는 뜻이다. [심ː심산천](深深山川)은 깊고 깊은 산천, [심:심산곡](深深山谷)은 깊은 산의 골짜기다. [심:산유곡](深山幽谷)도 유사한 단어다.

 

셋째와 넷째는 한자어인 앞과 달리 고유어다. 심심하다[심심하다]는 주지하다시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짧은 발음이다. ‘슴슴하다’로 많은 경우 잘못 쓰는 ‘심심하다’도 있다. 음식 맛이 조금 싱겁거나 음식의 간을 적게 한 상태는 ‘슴슴하다’가 아니라 ‘심심하다’이다. 따라서 곧잘 쓰이는 ‘슴슴한 물냉면’은 잘못이다. ‘슴슴하다’는 표준어가 아니기에 그렇다. 느낌으로도 심(甚)하거나 깊거나(深) 하는 건 낮고 깊고 길게 발음해야 어울리지 않던가. 지루하거나 싱겁거나 하는 토박이말은 길게 발음하면 외려 어색하다. 바로 이런 감각을 키우는 발음과 읽기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사전 이미지

 

 

문해력을 낱말이나 어휘력, 한자어라는 박제된 틀 안에서 해석하는 건 단견(短見)이다. 언어 능력은 입체적으로 교육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이 대목을 너무 소홀히 다루어 왔다는 생각이다. ‘읽기’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문 읽고 이해하기(Reading Comprehension)’로 이해한다. 지필 시험 문제의 한 장르로만 여기는 것이다.

 

허파, 성대, 혀, 입술을 놀려 소리를 밖으로 내는 본연의 읽기(Reading)를 망각하고 있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아름답게 읽기가 낭독(朗読)이다. 낭독을 위해서는 텍스트의 구조를 파악하고 단모음과 이중모음의 콘트라스트, 어조, 호흡, 휴지, 억양의 기술을 구사하며 연결, 분절, 강조의 테크닉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의 청각을 멋들어지게 울릴 수 있다. 텍스트가 음성에 실리는 것을 전제로 이해, 파악하는 힘. 문해력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곧 ‘읽기 문해력’인 것이다. 요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말하기는 또 어떠한가. 무슨 말을 머리에 두고 본론은 어떻게 펼치며 끝을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할까. 어떤 대목으로 인상적인 내용을 넣어 상대를 휘어잡을까. 어디서 설득의 기법을 쓰고 감동을 주는 포인트는 어디에 둘까. 보디랭귀지는 어느 정도로 어느 시점에서 구사할까, 이런 다방면의 고려가 곧 말하기 문해 능력이다.

 

듣기는 더 절실하다. 소통의 출발이 듣기여야 함은 불문가지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가 이해, 파악하고 어떤 응대를 해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이야말로 ‘듣기 문해력’이 추구해야 할 핵심적 지평이라 하겠다.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언어를 개선해야

 

공공언어를 쉽고 편리하고 정확하게 개선하는 게 문해력을 높이는 데 관건이다. 공공언어란 좁은 의미에서 공공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모든 언어로 확장된다.

 

공공부문의 문어(文語)로는 정부 문서, 민원서류 양식, 보도자료, 법령, 판결문, 게시문, 안내문, 설명문, 홍보문 등이, 구어(口語)로는 정책 브리핑, 대국민 담화, 전화 안내 등이 해당된다. 민간 쪽의 문어는 신문, 인터넷 등의 기사문, 은행·보험·증권 등의 약관, 해설서, 사용 설명서, 홍보 포스터, 광고문, 거리 간판, 현수막, 공연물 대본, 자막 등이, 구어에는 방송 언어, 약관이나 사용 설명 안내, 공연물의 대사 등이 속한다.

 

공공기관이 쉬운 공공언어를 취한 가장 극적인 경우는 2017년 헌법재판소 사례를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한글날을 맞아 창립 후 30년간 쓰던 휘장의 한자를 한글로 변경했다. 한자 ‘憲(헌)’이 새겨진 휘장을 1988년부터 사용해 왔으나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각계에서 제기되자 과감히 ‘헌법’으로 바꾼 것이다. 변경된 휘장은 헌법재판소기(旗)와 심판정 등 헌법재판소를 상징하는 각종 제작물 등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변경 전과 변경 후 헌법재판소 휘장

변경 전과 변경 후 헌법재판소 휘장

 

 

공공언어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은 대개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요약된다.

 

① 낯선 한자어 등 어려운 단어 ② 외국어 및 외래어 ③ 복잡하고 길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④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표현 ⑤ 맞춤법 등 어문 규범에 맞지 않는 표기 ⑥ 기타(순우리말, 전문용어, 신조어 등)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유도(誘導)하다’, ‘이송(移送)하다’, ‘제고(提高)’, ‘착수(着手)’ 등의 용어는 ‘이끌다’, ‘보내다’, ‘높이기’, ‘시작’ 등 더욱 알기 쉬운 우리말로 순화할 수 있다. 아쉽게도 ‘개소(開所)하다’, ‘계류(稽留)’, ‘동기(同期)’, ‘명소화(名所化)하다’ 등은 그대로 쓰이고 있으며 ‘불승인자(不承認者)’와 ‘회피우려자(回避憂慮者)’ 등의 단어들도 순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제고(提高)를 위해’는 ‘높이기 위해’, ‘사양(仕樣) 조건을 나열하고’는 ‘품목 조건을 나열하고’, ‘디스크 팽윤(膨潤)의 경우’는 ‘디스크가 부을 경우’, ‘물건을 편취(騙取)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물건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로 고칠 수 있다.

 

잘 정비된 사례도 있다. ‘금번(今番)’은 ‘이번’, ‘금주(今週)’는 ‘이번 주’로 많이 개선되었고 ‘지참(持參)하고’를 ‘가지고’, ‘은닉(隱匿)한’을 ‘감춘’, ‘면탈(免脫)’을 ‘회피’ 등으로 바꾼 경우도 적지 않다. ‘당(當)해’가 ‘그 해’로 ‘감소(減少)되다’ 대신에 ‘줄다’, ‘소폭(小幅)’이 ‘조금’으로 정착되어가는 분위기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첨두(尖頭) 시(時)/비첨두(非尖頭) 시(時)’ 대신 ‘가장 붐빌 때/붐비지 않을 때’, ‘저작(咀嚼)·연하(嚥下) 용이(容易)’ 대신 ‘씹거나 삼키는 데 쉬움’, ‘가일층(加一層)’ 대신 ‘한층 더’ 등의 표현을 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불우(不遇) 이웃’ 대신 ‘어려운 이웃’, ‘편부(偏父)·편모(偏母)’를 ‘한부모’ 등으로, ‘오픈’은 ‘개장한’, ‘캘린더’는 ‘달력’, ‘관광 투어’는 ‘관광 여행’, ‘미스 매치’는 ‘잘못된 배정’ 등으로 개선 필요성을 권고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외국어 및 외래어로는 ‘문화바우처’(→문화복지상품권), ‘테마’(→주제), ‘슬로건’(→표어 또는 구호), ‘시너지 효과’(→상승효과), ‘글로벌’(→국제), ‘인프라 구축’(→기반시설 구축), ‘클러스터’(→연합), ‘코스’(→경로), ‘패턴’(→유형), ‘이슈’(→쟁점), ‘리플릿’(→광고 또는 쪽지/광고지), ‘인센티브’(→성과급), ‘이벤트’(→행사), ‘퍼포먼스’(→공연), ‘컨설팅’(→자문 혹은 상담) 등으로 확실한 개선이 필요하다.

 

국어문화원연합회의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조사 연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공공언어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72% 남짓 ‘그렇다’라고 답했다. 어려운 순서로는 정책 용어/민원서류·안내문·법령/약관·계약서 등이 차지했는데 특히 갑을, 피고인, 피의자, 여신거래 등의 단어가 어렵거나 부정적 느낌을 준다고 답했다. 스트리머, 힐링, 욜로 등 신조어 또한 개선이 필요한 대목으로 지적되었으며 LTV, DTI 등 영어 약자로 표기되는 단어도 거북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참고로 LTV(Loan to Value)는 주택담보대출비율, DTI(Debt to Income)는 총부채상환비율을 뜻한다.

 

공공언어를 쉽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개선해야 할 필요성과 그 효과는 자명하다.

 

첫째, 정확한 정보 제공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지역·세대·계층 간 정보 습득의 차이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행정 업무 처리 시간 감소 등 정부 업무의 효율성 향상이 기대된다. 넷째로는 공공기관이 언어 사용의 모범을 보이는 홍보 효과 및 정부 업무의 투명성이 향상된다는 이점이 있다. 마지막이 대단히 중요한데, 국민들로 하여금 어려운 용어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는 답답함, 불편함, 당혹스러움, 위축됨, 피로감을 느낌, 불안하고 상실감을 느낌,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음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공공언어의 남은 과제가 있다. 둘로 압축하면 배려 언어의 반영과 수용자 중심의 언어 탑재라고 하겠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기초한 여성·어린이·노인 관련 용어에 더욱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여성만 놓고 보면, 여(女)를 접두사로 두거나 여류(女流)를 단어 앞에 붙이는 것은 성평등에 어긋난다. ‘여고생·여대생·여직원·여행원·여류 작가·여류 기사’ 등이 그렇다. 남성이 ‘기준·정상·보편’의 가치를 띠고 여성은 ‘특이·이상·예외’라는 잠재적 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수용자·수신자 중심의 언어란 것은 발신자·공급자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관공서의 공무원들은 부지불식간에 실수를 하게 된다. 쓰레기 ‘분리 수거’ 대신 ‘분리 배출’이 정착됐듯이 임대료→임차료, 경력단절여성→경력보유여성, 접수→신청으로 바꿀 일이다. 항상 소수자·다양성·비주류를 품는 의식의 전환이 언어에 투영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강성곤

강성곤 KBS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KBS아나운서로 37년 동안 활동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 KBS한국어능력시험 출제 및 검수위원, 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bonn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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