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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1  202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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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사람들]
책, 사람, 도서관 그리고 사서

 

 

 

송재술(서대문구립도서관 관장)

 

2021. 5.


 

#책과 사서

 

세상에서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여러 직업 가운데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는 그들만의 태생적 특징이 있다. 사서는 상업적인 영역,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 속해 있다. 이용자에게 책을 많이 빌려준다고 월급을 더 받지 않는다.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대외적으로 홍보한다고 해서 어떤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마다 취향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 표현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인 세상에서 적어도 사서가 추천하는 책은 금전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사서 개인, 또는 그들 집단이 순수한 공익적 목적으로 선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고편을 보고 잔뜩 기대했다가 본편을 보고 실망하는 영화처럼, 과장된 미사여구와 자극적인 홍보문구에 혹했다가 실망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사서의 책 소개는 보통 담백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최대한 유지하고,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신중하게 도서에 접근하다 보니, 서평에서 느껴지는 재미나 통통 튀는 맛은 덜한 감이 있다.

 

책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특정 도서나 주제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한 권 한 권이 모여 만들어진 장서의 전체 모습을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도 책을 다루는 다른 직업군과 차별화된 사서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도서관은 단지 책의 수가 많은 도서관이나 몇 권의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 아니다. 서가를 돌아볼 때 신간 도서가 적절히 비치되어 있고, 도서관 공간을 활용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로 추천 도서를 소개하거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면 그래도 직원들이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오래되어 시류에서 벗어난 책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주제 분류번호를 잘못 부여해서 엉뚱한 위치에 꽂혀 있는 책들이 눈에 자주 보인다면 그 도서관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다. 한정된 도서관 건물 안에서 모든 도서에 대한 요구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도서관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의 도서관은 통합데이터 검색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필요하면 강원도 산간 시골 도서관에서도 바다 건너 제주도에 있는 도서관의 책을 빌려볼 수 있다. 도서관 협력망은 사서가 가진 강력한 무기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낱권의 도서를 표현하는 ‘책’이나 ‘도서’라는 용어보다 여러 책이 모여 군집을 이룬 ‘장서’라는 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책을 구입한다’고 하지 않고 ‘장서를 개발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굳이 시작부터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20년 차 사서로서, 모든 분야의 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현란한 말솜씨로 책을 추천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이용자가 원하는 책이 있으면 어떤 책이든지 구해서 전달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억 속 도서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 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도서관은 책을 빌리러 가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다. 도서관 입구에서는 입장료를 받았고, 책을 읽고 싶어도 서가에서 마음대로 꺼내 볼 수 없었다. 1985년 7월 발행된 〈오늘의 도서관〉 잡지에 실린 기사는 당시 공공도서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전략 - 도·시·군립의 공공도서관에서 다음과 같이 잘못된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 절대다수임을 안다면 누구나 크게 놀랄 것이다. ①개관 시간 중에도 서고에 자물쇠를 채워둔다. ②서가에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다. ③열람용 목록 카드가 없다. ④관외 대출을 하지 않는다. ⑤구입 도서의 선택이 제멋대로다. ⑥자료 가치가 없는 낡은 책으로 권수를 채운다. ⑦사서 자격자가 없다. ⑧잡지 구입은 아예 하지 않고 기업 광고책자로 메우고 있다. 이 내용은 필자가 전국의 공공도서관을 방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 후략 - ”

- 엄대섭, 〈오늘의 도서관〉(1985.7.1.) 1면 -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중반 당시 ‘국민학생’ 시절, 가끔 시험공부를 핑계로 몇몇 친구들과 인근 야산 위에 있던 도서관을 찾았다. 당시 그 도서관의 자료실은 반 개가식, 즉 이용자가 직접 읽고 싶은 책을 서가에서 선택할 수는 있으나, 도서관 직원에게 허락을 받은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주로 전집류 도서가 많았는데, 이 책 저 책 마음대로 꺼내 보았다가는 혼날 것만 같은 소심함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서 조심스럽게 꺼내 펼쳐봤던 기억이 난다.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는, 친구와 잡담은 고사하고 마른기침마저 조심스러운, 오로지 책장 넘기는 소리만 허용된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그런 도서관의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때 도서관은 당연히 그런 공간이었다. 친구들과 매점에서 노닥거리다 집에 오는 날이 더 많아도 ‘왠지 오늘은 도서관에서 보람찬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막연한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돈과 명예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면 내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와 도서관

 

코로나19를 빼놓고 지금의 도서관 모습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예년에 비해 평일 낮 시간 이진아기념도서관 종합자료실의 모습은 비교적 한산하다.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6인석 테이블에 한두 명만 앉을 수 있다. 그래도 책을 빌려 가는 이용자 수는 지난 1월 도서관이 재개관한 이후 꾸준히 늘어 예년 대비 90% 수준을 회복했다. 아침저녁으로 직원들이 조를 짜 방역을 하고, 매일매일 반납된 도서를 일일이 소독하는 일도 쉽지 않다. 간혹 마스크 착용이나 음식물 섭취 금지 같은 이용 지침을 따르지 않는 이용자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도서관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진아기념도서관 종합자료실


이진아기념도서관 종합자료실

 


지난해에는 일 년 내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에 따라 도서관도 수시로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해야 했다. 도서관이 휴관 중일 때는 홈페이지에서 필요한 도서를 사전에 신청받아 준비해 두었다가 다음 날 도서관 출입구에서 전달해주는 예약 대출 서비스를 시행했다. 하루에 많게는 500권 이상을 빌려 갔는데, 신청 도서를 서가에서 찾아 순서대로 정리하고, 도서 관리 시스템에서 처리 내역을 등록하고, 반납 도서는 소독을 거쳐 제자리로 이동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도서관이 문을 열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분주하게 돌아갔다. 지난 추운 겨울, 책을 전달하기 위해 하루 종일 도서관 출입구 앞에서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도 곤혹이었다.

 

예약 대출 방식으로 책은 빌려준다 하더라도, 그 외에 도서관 공간에서 진행되는 독서 동아리 모임이나 각종 문화 강좌, 독서 프로그램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큰 과제였다. 처음 몇 달간은 ‘금방 끝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도서관도 ‘비대면 온라인 서비스’라는 것을 시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직원이나 이용자 모두 온라인 소통 방법이 익숙지 않기도 하고, 비대면 프로그램도 처음이다 보니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 특히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 분들의 참여가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신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도서관에 오기 어려웠던 한 이용자는 이제 언제든지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며 독서 동아리 모임을 온라인으로 지속하길 바라기도 했다.

 


동화 서비스 붕붕이 프로그램


동화 서비스 붕붕이 프로그램

 


좀처럼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조만간 예전의 활기찬 도서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오늘도 우리 도서관 직원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서에게 힘을 주세요

 

공공의 예산을 투입하여 운영하는 여러 시설 가운데 도서관만큼 지역 주민들에게 유용한 공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단축 운영을 하고 있긴 하나 주말 휴일과 밤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며, 무료로 책을 빌릴 수 있고, 다양한 편의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평생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문화시설이자, 교육시설이고 복지시설이기도 하다.

 

“- 전략 -‘도서관이 문을 여니 감개무량하다’면서 ‘도서관이 늘 곁에 있어 가치를 잘 못 느꼈는데 도서관의 가치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후략-”

- 〈내일신문〉(2020.5.18.) 기사 중

 

지난해 초 코로나19로 도서관이 갑작스럽게 장기 휴관에 들어갔다가 5월에 잠시 문을 열었을 때 우리 도서관 이용자가 한 신문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서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도서관 로비 한편에 마련한 “이진아기념도서관에 한마디” 코너에도 도서관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진아기념도서관에 한마디” 코너에 붙은 포스트잇


“이진아기념도서관에 한마디” 코너에 붙은 포스트잇

 


물론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항상 좋은 소리만 듣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도 월급 받고 일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곳이다 보니 종종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매일 규정에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도서관 이용을 방해하는 무례한 이용자를 상대해야 한다. 2019년에 서울도서관에서 수행한 「서울지역 공공도서관 위탁 및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열 명 중 일곱 명이 이용자로부터 폭언을 들었고, 14.9%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경험했다. 평균 근속 연수도 4.5년에 불과하고, 급여는 입사 후 몇 년간 최저 시급을 넘기지 못하는 수준이다. 도서관 규모와 보유 장서 수에 따라 법으로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적정 인력 수를 정해 놓긴 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이를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

 

주말 근무 때문에 가족과 함께 주말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도 사서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발을 구르듯,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녹록지 않다. 그래도 사서라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돈과 노력을 들여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취업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거쳐 그토록 바라던 사서가 되었다는 성취감과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개인과 집단의 평생학습, 자율적 의사결정, 그리고 문화적 발전을 위한 기본 조건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바로 그것이다. 가끔 성취감과 사명감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용자가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가 사서에게 큰 힘이 된다. 혹시 도서관 직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일이 있을 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당사자에게 직접 인사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도서관 홈페이지나 시·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명을 명시하여 칭찬의 글을 남긴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송재술(서대문구립도서관 관장)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20년간 도서관 분야에서 일해 왔다. 현재는 서대문구에서 열정 가득한 동료 직원들과 함께 이진아기념도서관을 비롯한 3개 공공도서관과 14개 공립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에 없는 책』과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 프로그램』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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