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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8  202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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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 이야기, 서점은 항상 열려있다]
작은 서점이 골목길에 있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노명우(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2021. 12.


 

보들레르(Baudelaire)는 파리를 서정적 산문으로 바꾸어 놓고 싶은 유혹에 휩싸였다. 그의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는 “째지는 듯한 유리 장수의 소리가 거리의 가장 높은 안개를 가로질러 다락방에까지 보내는” 파리의 모든 서글픈 암시가 서정적 산문으로 바뀌어 담겨 있다.

 

보들레르의 충동을 이어받아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책 풍경을 서정적 산문으로 변환해보고 싶지만 그 변환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곧 깨닫는다. 서울의 책 풍경을 서정적 산문으로 변환하려면 책 읽는 사람이 도시 풍경의 일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책 읽는 사람과 서점은 이 도시에서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길거리에 카페는 두 집 건너 한 집일 정도로 흔해졌고, 도시의 점심시간 풍경은 모두 손에 쥔 커피 한 잔으로 묘사될 수 있고, 퇴근길 지하철의 시민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출판 관련 모든 지표는 서글픈 암시가 꽉 차 있는 잿빛의 이미지이다. 조지 오웰은 책이 금지 되는 사회를 두려워했다. 1980년대의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지 오웰이 필요했는데, 2021년 지금의 서울에선 책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 헉슬리의 예언처럼 책을 금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이 사라진 도시를 살고 있다.

 

‘어울린다’라는 단어를 “치장하지 않고 대상을 사실 그대로 잘 보여준다”는 뜻으로 사용할 경우 서울이라는 도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꼽으라면 레이 브래드버리(Ray Douglas Bradbury)의 공상과학 소설 『화씨 451』을 들고 싶다. 『화씨 451』의 배경이 되는 미래 도시의 파이어맨(Fireman)은 불을 끄는 소방관(Firefighter)이 아니라 책을 태우는 사람이다. 미래의 도시에서 파이어맨은 금지된 책을 여전히 읽고 있는 사람을 찾아낸다. 파이어맨은 책 읽는 사람을 색출하고, 그들이 숨기고 있던 책은 책이 불타는 온도인 화씨 451도를 통과하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서울은, 아니 전국의 모든 도시는 이미 파이어맨이 대활약을 한 미래의 도시를 닮았다. 책이라는 미디어를 제외한 모든 미디어는 브래드버리 소설 속 미래 도시의 파이어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스마트폰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미디어를 화형시키는 파이어맨이다.

 

파이어맨이 휩쓸고 지나간 지하철을 나와 그에 못지않게 파이어맨이 대활약을 한 듯한 쇼핑센터를 지나가 골목길로 접어든다. 빠른 이동을 갈망하는 현대적 템포가 지하철을 지배하고, 쇼핑센터는 이윤과 비즈니스의 욕구로 넘쳐흐른다. 그 도시의 에너지는 골목길에 접어드는 순간 그 특유의 템포와 방향을 상실한다. 도시는 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덩달아 행인도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대로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작은 길이 대로를 서로 이어준다. 작은 길이 큰 길과 연결되어 있기에 큰 길의 자동차는 속도를 낼 수 있다.

 


골목길 서점 ‘니은서점’의 외관


골목길 서점 ‘니은서점’의 외관


골목길 서점 ‘니은서점’의 내부


골목길 서점 ‘니은서점’의 내부

 

‘니은서점’이 있는 은평구 연신내도 이와 비슷하다. 연신내는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이다. 게다가 꿈의 속도를 지향하는 GTX도 교차할 예정이다. 인근 은평 신도시에는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쇼핑몰이 있다. 연신내역 사거리는 도시의 역동성과 그 미래 지향의 전시장이다. GTX 개통 이후의 특수를 노리는 듯, 낡은 건물은 놀라운 속도로 파괴되고 그 자리에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연신내역 주변의 길거리는 대자본의 치열한 경합장이다. 연신내 사거리는 대자본과 연결되어 있는 브랜드의 수집가이다. 연신내 사거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브랜드’의 상점이 있다.

 

연신내 사거리의 대로는 골목길과 연결되어 있다.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거리 풍경이 바뀐다. 대자본의 브랜드가 사라진다. 갑자기 가족 경영이 대다수인 영세자영업자의 생활 밀착형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동산 옆에 과일 가게가 있고, 그 주변에 배달 전문 중국집이, 그리고 편의점과 그 골목길에만 있는 세탁소와 식당이 있다. ‘니은서점’도 그런 골목길에 있는 작은 서점이다.

 

골목길 ‘니은서점’에서 골목길의 시인 이언진을 생각한다. 이언진의 『골목길 나의 집』을 읽어본다. 이언진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박지원과 동시대인이지만, 박지원만큼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후 명성을 얻는 천재도 많다지만 사후 명성이라는 뒤늦은 평가가 유독 이언진을 비껴간 것은 죽기 전 자신이 쓴 초고를 불태웠는데 아내가 불구덩이에서 건져 낸 원고만 남아 전해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역관이다. 신분으로 말하자면 양반이 아닌 중인이다. 그는 골목길에 있는 집에 산다. 골목길엔 삶이 있다. 이언진은 삶이 있는 골목길에서 삶을 관찰하여 그 삶을 시로 남겼다. 잠시 책을 덮고 서점 밖 창문으로 골목길을 오고 가는 사람을 쳐다본다. 그리고 이 서점이 어쩌면 골목길에 살던 이언진을 닮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서점이 하필이면 골목길에 있을 이유를 생각해본다.

 

장사는 목이다. 목이 좋으면 비즈니스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책을 상품으로만 여긴다면 책을 파는 가게, 즉 서점도 목이 좋은 곳에 있으면 좋다. 주말에 수만 명이 오고가는 쇼핑몰에 있는 서점은 아무리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 하더라도 장사로 승부를 걸 수 있다. 시장의 논리를 따져볼 때 골목길은 서점이 있기에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가상의 공간 속 온라인 서점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언진은 골목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골목길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가 골목길을 사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목이 좋은 큰 길을 지배하는 논리가 골목길에서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목이 좋은 대로에서 권력과 돈을 탐하는 무리의 논리에 굴복하는 사람을 이언진은 노예라고 했다. 그는 말한다. “콧구멍 치들고 주인 뒤를 졸졸 따르니 종이라 불리고 하인이라 불리지. 천한 이름 뒤집어쓰고도 고치려 않으니 정말 노예군 정말 노예야” 서점이 있는 골목길은 분주하다. 그런데 그 분주함은 대로의 분주함과 다르다. 대로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이다. 오가는 행인으로 꽉 차 있던 복잡한 대로는 밤이 되면 적막해진다. 모두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로를 떠난 행인은 골목길을 통과한다. 골목길에서 사람들은 직업적 노동의 윤리와 의무를 강요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옷을 벗고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골목에 있는 서점은 상거래 풍경이 아니라 삶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사람들은 서점 앞을 터전에서 일터로 오가며 지나친다. 물론 들어오는 사람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하지만 서점은 골목길 어귀에 있음으로써 그들에게 말을 건다. 여기 책이 있는 공간이 있다고. 대형서점은 쾌적하지만 삶의 터전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골목길 서점은 대형서점만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우리 삶터의 일부분으로 존재하며 골목의 분위기를 만든다. 자본주의적 영업장소로 채워진 골목과 그 지배적인 분위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서점이 있는 골목의 분위기는 다르다. 그 차이를 골목길을 오고가는 동네 사람이라면 단박에 눈치 챈다.

 

‘니은서점’은 골목 동네서점이다. 서점 손님의 절반 이상이 동네분이다. 동네분들은 ‘니은서점’을 칭찬한다. 심지어 동네에 서점이 생겨서 기쁘다는 분도 계시고 친구에게 자랑도 한다고 한다. 어떤 지역 주민은 우리 동네에 서점을 차려주셔서 고맙다는 인사까지도 했다. 책을 사든 사지 않든, 책을 읽든 읽지 않든 간에 여전히 사람들은 책과 관련된 장소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비즈니스 모델로써 동네 서점은 자본주의의 낙제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주민이 서점을 오가며 형성되는 게 있다. 바로 사람 간의 연결망이다. ‘니은서점’은 책만 팔았다. 책만 팔았을 뿐인데 서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 사이에 연결망이 생겼다. 서점은 상점이지만, 서점에서 일어나는 일은 경제적 행위로 환원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손님과 서점의 관계가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선 적립금으로 표현된다. 적립금의 크기는 손님과 대형서점/온라인 서점과의 관계의 빈번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적립금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골목의 서점에선 그 관계의 빈번함이 인간의 얼굴로 표현된다. 사라진 줄 알았던 ‘단골’이라는 단어는 골목길 서점에서 여전히 통용된다. 서점은 ‘단골’을 회원 아이디 같은 식별 기호가 아니라 얼굴로 알아본다. 적립금은 쌓이지 않을 수 있어도 관계를 중심으로 한 삶은 두터워진다. 사회학자만 외로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외로운 사람이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으로 고독을 달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혼자 책 읽기로도 달래지지 않는 고독이 있음을 ‘니은서점’의 골목길에서 깨달았다. 책을 상품의 속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면,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서점이 있는 골목길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 행위를 추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행위 또한 추구한다는 것을.

 

골목길 서점은 오늘도 열려 있다. 삶의 터전과 돈벌이 현장을 오고가던 사람들은 퇴근길에 서점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 곳은 고객님이라는 일반명사가 구체적 얼굴을 지닌 고유명사로 바뀌는 곳이다. 그래서 ‘니은서점’은 골목길에 있다.

노명우(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서울시 은평구 연신내에 있는 골목서점 니은서점의 마스터 북텐더이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캠퍼스에 갇혀 있는 교수보다는 평범한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대리하는 헤르메스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니은서점이라는 골목길 독립서점에서 마스터 북텐더 자격으로 사람들에게 책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nhomyungw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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