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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202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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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책 시대]
책이 아닌 나를 파는 1인 1책 시대

 

 

 

김진호(카카오 미디어콘텐츠사업파트 매니저)

 

2020. 09.


 

 

 

『90년생이 온다』로 확인하는 밀레니얼의 출판법?

 

『90년생이 온다』는 작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된 책 중 하나다. 2019년 한 해에만 40만 부가량 팔린 베스트셀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이 책은 태생이 남다르다.『90년대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은 책이 나오기 전까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2년간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소비자팀 VOC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 등을 담당했다. 젊은 세대가 주력하고 열광하는 것에 관심이 생겨 관련 기사나 칼럼 등을 보며 정보를 수집했고 본인의 경험을 더해 글을 한 편 완성했다. 출간을 목표로 쓴 글은 아니긴 했지만, 원고를 투고했던 출판사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다.
원고가 아까워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브런치에 ‘9급 공무원 세대’라는 제목으로 글을 잘라서 올리기 시작했고, 내친김에 〈제5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브런치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공모전으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정식 출간된다. ‘9급 공무원 세대’는 은상을 수상했다.

 

브런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직후 대상 외 수상작을 파트너 출판사 30여 곳에 공유한다. 투고를 대신해 준다고 보면 된다. ‘9급 공무원 세대’ 역시 파트너 출판사에 전달되었고 유일하게 ‘웨일북’에서 관심을 보였다. 표류하던 이 원고는 결국 『90년생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문 작가로 보기 어려운 회사원이 온라인상에 글을 올린 것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임홍택 작가는 브런치에서 ‘편집왕’ 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구독자가 많은 편도 아니다. 유명세가 없어도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90년생이 온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또 다른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역시 작가 유명세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까운 에디터가 아카이빙을 위해 브런치에 본인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고,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했다. 정문정 작가의 브런치 연재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브런치 내에서 특별한 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책으로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도 브런치에서 연재하던 콘텐츠가 책으로 발간되며 크게 인기를 끈 경우이다. 일러스트 위주인 콘텐츠야먈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독자의 반응을 먼저 살피기 좋다. 대중의 평가가 어느 정도 나온 상태에서 책 출간에 들어가는 건 여러모로 리스크가 줄어든다. 기존 출판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이 책들의 출간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들은 기존 시스템으로는 출간에 이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작가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세상에 자신의 글을 능동적으로 알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능동적 행위는 엄청난 묘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잘 자리 잡은 온라인 플랫폼에 이미 완성된 원고를 재편집해서 업로드하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하다. 혹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면 된다. 참신한 이야기,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를 꾸준하게 연재하는 행위가 편집자에게는 작가의 자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트렌드를 반영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책이 나오기까지는 짧아도 수개월이 걸린다. 출판 시장은 당장의 트렌드를 잘 캐치해야 하지만, 지금 시대는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브런치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는 글은 트렌드를 즉시 반영한다.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것 속에서 세대 갈등, 계층 갈등과 같은 글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다음에는 무엇이 또 우리를 열광하게 할지, 괴롭게 할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브런치에서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가 결국 트렌드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플랫폼에 발행된 글은 발행 즉시 생명력을 갖는다. 유저의 우연한 발견이 구독과 공유로 이어지고 댓글로 의견이 모여 새로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꼭 공모전 형식이 아니더라도 브런치에 올린 글이 출판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2015년 브런치 오픈 이래, 현재까지 브런치에 연재된 글이 책으로 출간된 경우가 2,800여 권에 이른다.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다. 브런치 작가 중 출간 작가 수는 1,900여 명이고, 대다수가 브런치 연재가 출간으로 이어진 신인 작가다.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기존의 출판 시스템에서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을까.

 

 

 

다양해지는 취향만큼 다양하게 성장하는 독립출판물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출간 일화는 유명하다. 이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된 출간 프로젝트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목표 금액보다 1369퍼센트 높은 2,000여만 원을 펀딩 받아 독립출판으로 책을 완성했다. 책이 나온 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독립서점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결국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되어 전국적으로 유통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다.

 

브런치에서 ‘yoonash’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정혜윤 작가는 브런치에 ‘나의 퇴사여정기’를 연재 후 크라우드 펀딩 모금으로 『퇴사는 여행』을 독립출판했다. 이후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같은 제목으로 정식 출간까지 했다.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독립출판물이 정식 출간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현상까지 벌어진 것이다. 독립출판은 다양한 소수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독립출판-정식 출간’이 하나의 공식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독립출판은 출판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고 유통망 확보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자유도가 높고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독립출판이 인기를 끌면서 그 과정을 설명하는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관련 서적도 다수 출간되었고, 전문 온/오프라인 클래스까지 등장했다.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꿈만 같던 출판이 가능해진 것이다. 콘텐츠 내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면 돈이 없더라도 출간까지 밀어붙여봐도 좋다. 자금이 부족하면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하면 된다. 크라우드 펀딩이 대중화된 게 불과 3~4년 남짓이다. 이러한 빠른 변화에 허우적거릴 새도 없다. 이해하려 들면 늦는다. 그 흐름에 우선 몸을 던져야 한다.

 

독립출판은 독립잡지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자리 잡은 독립잡지 가운데 「헵 매거진(hep.)」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호 노래 한 곡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주제로 기사를 구성한다. 잡지에 실린 이미지는 모두 필름 사진이다. 6개월에 한 권씩 띄엄띄엄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세 호 모두 품절되었다. 이 잡지는 남필우 발행인이 소수의 외주 인력과 함께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러한 출판물의 등장은 소수라도 팬을 확보하며 지속적으로 출판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헵 매거진

 

세분화된 취향을 각각 만족시키는 것은 큰 출판사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팬에게 금전적 보상을 받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일간 이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독자는 원하는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가 ‘대중’을 공략해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어렵게 독립출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POD 자가출판도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원고를 넘기고 탬플릿 내에서 디자인을 적용하면 책을 만들 수 있으며, 한 권만 찍는 것도 가능하다. POD를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도 아주 다양하다. POD의 경우, 유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소장이나 주변에 나눠주는 정도의 용도라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1인 1책 시대, 나도 작가다

 

출간은 더 이상 손이 닿지 않는 성역이 아니다. 위 사례는 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일 뿐이다. 온라인 생태계는 보다 더 편리하고 간편하게 기회를 열어준다. 독립출판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POD 자가출판도 가능하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고 전달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구태여 어렵게 제도권 시스템에 비집고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 특성에 맞는 플랫폼에 올리면 세상이 알아준다. 누구나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수익을 낼 수 있듯, 누구나 글을 써서 올리고 책을 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 책을 내려는 사람은 넘쳐난다’라는 씁쓸한 농담이 떠오르기도 한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시대 흐름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시대다. 본인을 알리면 여러 활동의 기회와 금전적 보상이 따라온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셀프 브랜딩 혹은 퍼스널 브랜딩이 당연해진 현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브런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고 넘어가겠다.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가 출간 작가를 희망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출간은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하면 따라오는 여러 기회 중 하나일 뿐이다.

 

브런치에 특정 주제의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퍼스널 브랜딩이 가능하다. 콘텐츠의 질이 담보된다면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글 조회 수도 높아질 것이다.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책을 내기도 하고,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아 강연, 방송 출연 등 다른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컨설팅이나 이외 다른 업무를 의뢰받기도 한다. 본인의 브런치 콘텐츠를 엮어서 독립출판한 책이 좋은 반응을 얻어 출판사에서 재출간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전문가다. 전문 ‘작가’가 아닐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줄줄 꿰고 있을 것이다. 푹 빠진 취미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글로 옮길 수 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보다 세분화된 기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승희, 정혜윤 등 현업 브랜드 마케터가 영감을 얻는 방법과 일하는 방식 등을 생생하게 엮어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라는 책이 탄생했다. 최창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자신이 기획할 때의 습관을 잘 정리해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강민선 작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라는 독립출판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부조리를 고발하며 해당 업계, 나아가 부조리가 만연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매일 갑니다, 편의점


 

멋드러진 직업이나 무거운 주제의식이 아니어도 문제없다. 편의점 점주인 봉달호 작가는 6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라는 책으로 풀어냈다. 김경욱 작가는 퇴사 후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창업한 이야기로 〈제6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를 출간했다. 음료에 빠져 사는 ‘음료덕후’ 마시즘 작가는 ‘마시즘’이란 음료 전문 미디어를 운영하며 『마시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냈다.

 

문학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문턱이 높은 편이지만, 비문학 부문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심사가 다양해진 만큼 글과 책으로 발전할 소재는 널렸다. 별 것 아닌 일상이, 공감받지 못하던 취미가, 시답잖은 지식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소소한 노하우가 모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글쓰기 클래스도 널리고 널렸다. 안 하는 건 있어도 못하는 건 없는 시대다.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조용한 혁명

 

책을 내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출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다. 신인 작가에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등단을 위해 수없이 공모전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출판사에 투고한 후에는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권위에 기대어야 했다. 시스템을 거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등단’보단 ‘등장’이란 단어가 신인 작가에게 더 어울린다. 이 시대의 작가는 가만히 앉아 출간 기회를 구걸하지 않는다. 자신의 글이 세상에 퍼지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글 뒤에 숨지 않는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인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본인 콘텐츠에 적합한 플랫폼을 찾아 나선다. 플랫폼도 함께 진화하며 창작자와 속도를 맞춘다. 1인 1책 시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개개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존 시스템에 맞서고 있다. 조용한 혁명이다.

 


교보문고에 전시되었던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교보문고에 전시되었던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기획전 전경. 수상 작가 대부분이 해당 공모전 당선으로 처음 책을 출간한 신인 작가다.

김진호(카카오 미디어콘텐츠사업파트 매니저)

전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JTBC 플러스 디지털 에디터, 현 카카오 미디어콘텐츠사업파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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