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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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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과 출판]
독자를 팬으로 만드는 법

 

 

 

조성웅(유유 출판사 대표)

 

2023. 03.


 

‘독자를 팬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청탁을 받았을 때 ‘픽션’ 소재로 ‘논픽션’을 쓰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숙제가 작은 출판사의 당면 과제인 것은 분명하니 부족하더라도 유유가 이 소망을 가지고 해 온 일들을 이 주제로 수렴하여 말해 보겠습니다.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와이어드(WIRED)〉의 창간자이자 초대 편집장입니다. IT 업계에서 ‘구루’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한국에는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케빈 켈리,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2017)이나 『기술의 충격』(케빈 켈리, 이한음 옮김, 민음사, 2011) 같은 책으로 널리 알려졌고요. 이분이 이런 유명한 글을 썼습니다.

 

“성공적인 창작자가 되려면 수백만 달러가 필요하지 않다. 수백만 명의 소비자, 수백만 명의 클라이언트, 수백만 명의 팬도 필요하지 않다. 공예가, 사진작가, 음악가, 디자이너, 작가, 애니메이터, 앱 개발자, 창업가 또는 발명가로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건 단지 수천 명의 진정한 팬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작자는 어떤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겠지만 작은 출판사 사장인 저는 이 글을 보고 몹시 설렜습니다. ‘창작자’ 대신 ‘출판사’를 넣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확한 수치 확인은 어렵지만 유유의 책을 꾸준히 사고 읽는 독자가 얼마간 생겼다는 전제 아래 억지로 짜 맞춘 퍼즐 같은 글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독자를 한정합니다.

 

최근의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되었듯 독자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유유는 한 달에 책 서너 권을 꾸준히 읽는 독자를 상대로 책을 만듭니다. 이런 독자는 자기성장 의지가 뚜렷한 분이죠. 갈수록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지는 지금 타깃 독자를 좁히다니 무슨 망발이냐고 꾸짖으실지 모르나, 외려 이런 때니까 그런 독자가 읽을 만한 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10년 세월이 넘어서도 유유가 아직도 책을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독자를 한정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만드는 자의 입장일 뿐, 책이 저희의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독자의 것이므로 한정했던 독자가 늘어나는 상황은 저희가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책에 따라 더러 그런 경우가 생기기도 했고요.

 

2. 독자의 공부와 연결되는 책을 만듭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카테고리별로 출판사 순위를 매깁니다. 순위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한 분야에서 책을 꾸준히 내서 그 분야의 책을 찾는 독자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유유는 책읽기/글쓰기 카테고리에서 1위입니다. 독자의 공부를 돕는 책을 내려고 보니, 공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 ‘읽기’와 ‘쓰기’였습니다. 이 분야에 집중하여 책을 기획, 출간했더니 어느새 이 분야에서 스테디셀러 여러 종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유유, 2016)을 선두로 『쓰기의 말들』(은유, 유유, 2016), 『우리말 어감 사전』(안상순, 유유, 2021) 등 읽기와 쓰기를 돕는 책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시작할 때는 인문교양 분야의 책만을 펴냈지만 이젠 독자의 공부에 도움이 되고 기존에 출간했던 책과 결이 맞는다면 자기계발, 경제경영, 실용 분야의 책도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가늠하고 있습니다.

 

3. 시리즈 도서를 부지런히 만듭니다.

 

‘땅콩문고’, ‘문장’, ‘하루공부’ 등 유유는 가급적 단권이 아닌 시리즈 기획을 합니다.

 

땅콩문고는 ‘-하는 법’이라는 형식의 제목을 붙이고, 어떤 이슈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가 만 원에 알찬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시리즈인데, 『책 먹는 법』(김이경, 유유, 2015)을 처음 선보인 뒤로 독서, 출판, 편집, 서점, 도서관, 일 등 다양한 주제로 40종을 펴냈습니다. 『시의 문장들』(김이경, 유유, 2019)로 처음 시작한 문장 시리즈는 『태도의 말들』(엄지혜, 유유, 2019), 『습관의 말들』(김은경, 유유, 2020) 등으로 주제를 바꾸며 10종 넘게 냈고요.

 

이런 시리즈 기획의 장점은 단행본 한 권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고를 비교적 덜 쓰면서 후속 기획을 붙여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더불어 시리즈 도서를 읽은 독자가 시리즈에 포함된 다른 도서를 읽어 보고 싶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작은 가능성도 소홀히 할 수 없죠.

 

4. 디자인과 판형, 제작의 일관성을 염두에 둡니다.

 

타깃 독자를 정하자 책의 꼴도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유유와 10년간 꾸준히 작업해 온 이기준 디자이너와는 창업 전에 종이책 디자인의 방향을 놓고 몇 가지 큰 원칙을 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것들입니다.

 

판형을 사륙판(127×188)으로 통일한다.

2023년 2월 현재 200여 종의 책을 낸 유유의 도서 대부분이 이 판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인문교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판형을 고른 것인데, 이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은 이후 유유 책을 꾸준히 구매하여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로 당신 서가에 꽂아 주신 독자들이 SNS에 올려주신 이미지로 확인했습니다.

 

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유유는 화려한 컬러의 표지가 거의 없습니다. 색을 덜 씀으로써 단순하고 직관적인 느낌을 줍니다.

 

사진이나 그림보다는 내용을 반영하는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이미지를 쓴다.

디자이너마다 잘하는 영역이 다릅니다. 이기준 디자이너가 좀 더 잘하는 영역이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이미지 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심플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후가공을 최소화한다.

환경 보호 측면도, 제작비 절감 측면도 있습니다.

 

재생용지를 쓴다.

재생용지가 값이 싸서 쓴다고 생각하는 분도 더러 봤는데, 재생용지가 일반 용지에 비해 더 싸지는 않습니다. 책을 꾸준히 읽고 좋아하는 분이라면 환경에 관심을 가지실 거라 믿었고, 눈 밝은 분은 알아봐 주실 거라 판단했습니다.

 

가벼운 종이를 쓴다.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독자의 손목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저부터도 무거운 책은 질색입니다.

 

책 날개를 없앤다.

제작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하고 나름의 조사도 한 끝에 최근부터 적용하고 있습니다. 영미권에서는 페이퍼백 형태로 흔히 날개 없이 제작합니다. 책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고 용지도 절약됩니다.

 

5. 효율을 극대화한 생산 시스템을 만듭니다.

 

현재 유유는 편집자 세 사람과 마케터 한 사람이 일하고, 달마다 2~3종의 책을 출간합니다. 이 종수를 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정도 책을 펴내려면 미출간 완전 원고를 최소 6종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기획된 도서는 출간 예정 종수의 3배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편집자는 평균 3~4종의 도서를 저글링하듯 만드는데, 한 해 평균 8종의 도서를 만드니 결코 만만한 일정이 아닙니다.

 

편집 기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담당 편집자는 원고가 들어오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인지 먼저 체크합니다. 이 과정에서 초고를 꼼꼼히 읽습니다.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외주 교정자에게 원고를 내보냅니다. 그다음엔 편집 기획안을 씁니다. 어떤 콘셉트의 책으로 만들지 큰 틀을 정하는 과정입니다. 제목을 가제로 잡습니다. 그동안 외주 교정자가 두 차례 교정을 봅니다. 한 번은 파일 교정, 다른 한 번은 종이 교정지 교정입니다. 이렇게 작업한 교정지를 대표도 읽고, 담당 편집자가 마지막으로 교정합니다. 물론 담당자는 1, 2교 과정에서 외주 교정자가 파악한 원고의 장단점, 문제점 등을 소통을 통해 파악한 상태입니다. 마지막 교정을 하면서 제목을 확정하고 독자에게 선보이기 위한 포장을 합니다.

 

확정된 제목을 디자이너에게 건네면 이미 초고와 편집 기획안을 받아본 디자이너는 표지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합니다. 표지 시안이 나오면 담당 편집자가 다른 편집자와 마케터에게 의견을 구하고 협의하여 최종안을 정합니다. 마감이 끝나고 나면 보도 자료와 카드 뉴스를 작성하고, 마케터와 함께 책을 알리고 팔 궁리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한 권의 책이 문제없이 나옵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개선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한 사람이 유유에서 나오는 모든 시각물(도서, 카드 뉴스, 보도 자료, 이벤트 페이지 등)을 책임지니 이미지의 일관성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제작은 제이오라는 제작 대행사에서 책임집니다. 제작은 전체 제작 공정 중 사고가 가장 많은 과정입니다. 마감 후 데이터를 제이오에 넘기고 나면 이후 창고에 도서가 입고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제이오에서 해결해 주므로 유유는 기획, 편집 업무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있기에 책을 단단하게 만들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6.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기술 발전으로 듣도 보도 못했던 것들이 매일같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즐길 만한 콘텐츠도 산처럼 쌓입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OTT 서비스는 자극적이고 재밌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마구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뭘 봐야 할지 몰라 매번 선택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전통 콘텐츠 산업인 출판도 시대의 흐름을 허겁지겁 따라가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몸이 잘 따르지 않습니다. 콘텐츠를 다루는 업계에서 제자리에 머문다는 건 후퇴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렇게 뭘 봐야 할지, 뭘 읽어야 할지, 뭘 들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에 출판사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더불어 책이 지닌 장점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왜 읽는지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발전하는 기술은 독자가 잘 읽도록 돕는 도구로 써야 하겠고요.

 

유유는 두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보름유유’라는 레터 서비스로, 책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책을 쓰는 저자, 책의 언어를 옮기는 번역자, 책을 만드는 편집자, 책을 알리는 마케터, 책을 파는 MD, 책을 읽는 독자 등 책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은 책을 더 좋아하게끔, 책에 관심이 없는 분은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겠다는 바람을 담아서요.

 

다른 한 가지는 ‘유유당’이라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전자책 업계에서는 이미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참 됐고, 여러 동네서점에서도 개성 있고 감각적인 구독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유처럼 작은 출판사에서 하는 구독 서비스가 독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요? 조금만 기다리면 서점에서 얼마든 사서 볼 수 있는데, 달마다 일정액을 내면서 구독하는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유유의 책이 좀 더 잘 전할 수 있는 지식과 교양이 있다고 보고, 이 지식과 교양을 혼자 읽을 때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잘 읽을 수 있게 돕는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해당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진 알파 리더의 레터, 책을 만든 편집자가 책을 만들며 책과 관련하여 보고 듣고 고민했던 이야기를 담은 레터를 동봉한 것인데요. 다른 관점의 독법을 제안받을 수 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도서 표지와 다르게 디자인된 어나더 커버를 받아보는 일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고요.

 

절박한 마음으로 출판사를 차린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의 절박함과는 다르지만 독서 생태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지금은 또 다른 절박함을 느끼며 책을 만듭니다. 독자를 출판사의 팬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정답은 모르지만 유유가 일하는 방식으로 답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출판을 지속하려면 이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야 합니다. 우리 책을 꾸준히 사고 읽는 수천 명의 독자가 있다면 우리는 더 흥미롭고 재밌는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조성웅

조성웅 유유 출판사 대표

생각의나무, 김영사, 돌베개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유유를 차려 꾸리고 있다.
daoy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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