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19  202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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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이야기]
자기 진화에 기댈 것
- 내가 생각하는 출판 편집자의 역할과 현실

 

 

 

이은혜(글항아리 편집장)

 

2021. 3.

 

미국 동부의 역사를 판구조론과 빙하지질학에 따라 살펴보는 학자들의 견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암석들을 찾아 분석하는 애니타 해리스는 중년의 지질학자다. 어린 시절 그녀는, 지질학자가 되면 산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돈을 번다는 데 충격을 받고 대단히 기뻐하며 그것을 전공으로 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미국 지질조사국에서 월급을 받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산을 돌아다니고 있다.

 

15년 전 출판계에 입문하면서 나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원고를 읽는데 돈을 준다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행위는 생산에 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원고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볼 때는 남의 창작물을 즐기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는 부류가 바로 편집자라고 생각한 것이다(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편집이란 책을 ‘만들어야’ 하고 끊임없이 ‘기획해서 팔아야’ 하는 매우 능동적인 영역임을 알게 됐다).

 

‘편집자란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말은 너무 자주 언급돼 이제 진부할 정도다. 책 만드는 과정을 독자가 세세히 알지 못하고, 책이 나오면 저자가 빛나야 하니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편집자라도 자기 정립을 할 때는 다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편집자로서의 자기완성은 편집자를 지탱하는 힘이자, 편집이라는 영역 전체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독서량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원고를 읽는 것도 독서에 포함되지만, 그건 자율적인 독서와는 차이가 크다. 최근 『아이들이 사회를 만날 때』를 편집하면서 나는 원고를 총 네 번 읽으며 교정을 봤다. 여덟 명의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의사들이 집필한 이 책은 그 자신이 아이의 양육자이면서 치료자이기도 한 관점에서 부모로부터 ‘불안’을 대물림 받는 아이나, 친구들 무리에서 배척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저자들의 오랜 경험과 전문적인 마음 씀씀이에 이끌려 부모의 입장이 되거나 어린아이의 입장이 돼보기도 하면서 편집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는 한편 각 글의 근원적 방법론이 되는 뇌과학, 정신분석학, 놀이치료 등에 관해서는 더 깊이 파고들어 레퍼런스를 늘리지 못했다. 이 책의 실용적인 면들을 어떻게 부각시킬까에 초점을 맞추는 데 그친 것이다. 즉 이 책에 있어 나는 드넓은 세계를 탐험하기보다는 구조와 짜임새에 치중해 원고를 손질하는 사람이었다.

 

한편 이 책을 편집할 때 집에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었다. 머리말, 시 네 편, 아주 상세한 주석, 그리고 색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압권은 주석이며, 책의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한다. 주석자는 앞에 실린 시 작품의 저자와는 다른 사람인데, 그는 시인을 존경하며 그 자구들에 주목하다가도 걸핏하면 샛길로 빠져 독자를 상상도 못한 세계로 끌고 다닌다. 문제는 주석자의 캐릭터나 서술에 괴상하기 짝이 없는 과대망상적인 설정이 끼어들어 있어 독자가 중간에 한두 번쯤 책읽기를 중단할까 고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이 책의 매력이며 반전이다.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잠자고 일어나면 자연스레 이 책을 쥐고 있고, 퇴근하면 곧장 이 책으로 직행한다. 거기서 나는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치고 메모를 했는데, 그 메모는 나의 과거, 현재와 맞닿아 마침내 내 미래의 모습까지 얼마간 빚어놓았다. 예컨대 “내 사적 우주의 운율이 제대로 맞는다면”이란 구절에서는 20대와 40대의 나를 비교하는 메모를 했고, 앞으로의 날들을 자괴감에 빠져 점치기도 했다. 즉 나보코프의 책을 읽으면서는 실용의 세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공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와중에 문학의 절정을 맛보며 상상력과 사고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편집자가 집에 돌아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루 여덟 시간 원고를 읽는다 해도 자기발전은 잘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둘째로는 교정 실력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편집자의 능력은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가와 문장의 구조를 아름답게 다듬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유럽과 서러시아에서의 대량 살육을 다룬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에는 ‘굴라크’와 ‘쿨라크’라는 단어가 나온다. 굴라크는 널리 알려진 대로 소련에 있었던 강제수용소다. 그에 비해 덜 알려진 쿨라크는 폴란드의 ‘부농’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굴라크’는 책의 핵심 소재인 만큼 여러 번 나오지만 ‘쿨라크’는 몇 번 나오지 않는다. 편집자는 무심코 ‘쿨라크’가 ‘굴라크’의 오타이겠거니 판단하고 수정해버릴 수 있다. 세계사와 언어를 꿰고 있지 않는 한 이런 실수는 불가피하다. 결국 문맥을 장악하는 힘과 검색의 미덕을 발휘하며 실수를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편집자는 웬만한 실수는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뛰어난 교양 지식인인 존 맥피조차 다른 분야 학자에게 질문을 속사포처럼 던지다가 이런 무안을 당했다. “이런 수준에서 가르쳐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네요.”

 

편집자들은 출판사를 꽤 자주 옮겨 다닌다. 이때 그들은 함께 작업했던 저자들도 고이 품고 데리고 떠난다. 새 장소에 둥지를 틀 때 가장 기댈 수 있는 것은 전에 함께 작업했던 A급 저자(특히 판매 면에서)이기 때문이다. 먼젓번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얄미울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저자와 편집자의 인연은 그만큼 각별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니 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요소는 인적 관계다. 김연수 작가의 『시절일기』,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가 바로 그런 사례다. 저자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담당 편집자를 따라 출판사를 옮겨서 함께한 작업이다. 즉 시스템 속에서 빛을 발하고 끝까지 남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인간관계다.

 

편집자로서 다른 편집자들을 바라볼 때 내가 경외감을 가지는 이들은 ‘작가 편집자’다. 난다출판사의 K 시인이 대표적인데, 그녀는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자기 이름으로 꾸준히 시와 산문을 발표한다. 편집자 Y도 지난해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이란 책을 펴냈는데 나는 그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어쩌면 어떤 작가들은 편집자라는 직업을 우회해 마침내 작가라는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이면서 편집자인 사람들의 뛰어난 점으로는 뭐가 있을까?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소설 『시간은 밤』의 주인공이 힌트를 조금 준다. 주인공은 시를 쓰는 시인이면서 생계를 위해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담당 업무는 투고자나 독자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인데, 그녀는 시를 쓰듯 편지를 적어 내려간다. 그 편지의 수신인이 답장에 얼마나 감동했는가의 여부는 소설 속에 나오지 않지만, 아마 그녀는 여느 편집자와는 달리 뼛속까지 내려간 글쓰기를 보여줬을 것이다. 이처럼 편집자에게 필요한 네 번째 요소는 ‘글쓰기 실력’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독자들이 인터넷 서점이나 SNS에 리뷰를 쓸 때조차 그 독자가 실력 있고 좋은 문체를 갖고 있길 바란다. ‘책이 너무 좋았어요’라는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 단순해서 좀 더 표현력이 풍부한 독자를 기대하게 되는 것처럼 편집자에게도 마찬가지의 역량이 요구된다. 더욱이 글쓰기는 사고의 전진과 개발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은 사고는 편집자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편집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이든 글이든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개인의 역량을 힘껏 늘리고 발휘하고자 해도 출판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많은 편집자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즉 출판계라는 구조의 일부로 편집자를 바라보면 성장의 제약점이 많다. 몰아치는 업무량, 내고 싶은 책과 내야 하는 책의 격차 등등. 그래도 편집자는 발전해야 한다. 편집자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면 어떨까. 어떤 생명체든 성장과 진화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힘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 생각에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덩어리 시간이다. 예컨대 나는 주 업무가 편집인데도 평일에는 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끊임없이 주어지는 자잘한 수정 작업들, 기획 논의, 문서 작성 및 잡무 등으로 인해 교정 볼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출근을 두세 시간 일찍 하고 주말에 집중해서 원고를 보는 게 나의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대개의 편집자는 네다섯 시간, 일고여덟 시간의 끊김 없는 정독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덩어리로 움직인다. 흐름이 끊기면 깊은 수원에서 갑자기 냇가로 이동해 물은 수력을 만들지 못한 채 졸졸 흐르기만 할 뿐이다. 편집자는 원고의 앞부분을 기억력으로 지탱하면서 리듬과 감정을 실어 원고의 후반부까지 읽어야 하기 때문에 물샐틈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을 예로 들어보자. 1933년에서 1945년까지 12년간 1,400만 명이 학살됐는데, 초반의 우크라이나 기근 학살에서 시작해 폴란드 부농과 엘리트 계급의 절멸 정책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호흡 속에서 숫자가 증폭되는 것을 유심히 봐야 스탈린의 전체상이 그려진다. 만약 시간이 쪼개져 우크라이나 따로 폴란드 따로 읽게 된다면 스탈린의 잔혹 행위는 파편적 그림들로 남게 된다. 원고는 또 러시아 영토와 독일 영토를 넘나들며 두 국가의 잔혹 행위가 경쟁적 구도 속에서 서로 부추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것을 한 번에 읽지 않는다면 마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를 몇 번 끊어서 보는 것과 같다.

 

독일어권 세계문학전집 편집을 맡았던 한 편집자는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더디고 진이 빠지는 작업인지, 원작과 번역본 사이에서 수정과 되돌림, 재수정 작업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를 토로한 적이 있다. 편집자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외부 환경을 들라 한다면, 바로 저자와 번역자들의 원고 질이 균일하게 평균 이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연구와 취재가 탄탄한 저서나 흠잡을 데 없는 번역 원고들이 들어오는 반면(최근 작업으로는 함규진, 김정은, 서정아 번역가의 원고가 뛰어났다), 주술 구조를 하나도 맞추지 않고 자기 연구의 메시지만 대략 추려서 보내오는 원고는 함께 일하는 사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편집자는 이런 원고들의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이럴 때 아주 가끔 하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300쪽짜리 한 권에 중견 편집자의 넉 달 치 월급이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출판사가 소수의 인원으로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어, 책 몇 권을 만들고 나면 일부 편집자들은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인문 번역서 한 권 작업하는 데 반년씩 걸리면 편집자의 삶이 원고 뒤치다꺼리에 다 소모돼버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척박한 풍토 속에서 슬럼프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이는 편집자에 대한 폄하 때문이었다. 저자도 독자도 이따금 편집자를 홀대하지만, 많은 출판사의 경영자들이 고연봉 시니어 편집자들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의 재능이나 성향이 더 인문학적일수록 매출 달성과는 더 멀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40대의 나이에 뒤에서 붙잡는 사람 하나 없이 혈혈단신 출판계를 떠난 편집자가 꽤 많다. 그들은 외주 편집의 세계로 옮겨가지만, 장인정신으로 외주 편집의 세계에서 살아가기란 또 얼마나 고달픈가.

 

나는 실력 있는 베테랑 편집자들이 출판계를 떠나기 전에 그들의 경험을 자료화하고, 그들을 교육자 삼아 선후배가 함께 강독하며 ‘편집자의 비밀스런 교정 노트’가 공유될 수 있는 경험을 늘려나갔으면 좋겠다. 글이 좋아지고 교정 실력이 느는 방법은 단 하나,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좋은 글을 많이 만들어보는 것이다. 선배들은 이미 그런 수준에 올라서서 A라는 문장을 가장 좋은 문장으로 바꿀 만한 많은 용례를 수집해두고 있다. 오래된 편집자들을 트렌드에 뒤처졌다고 볼 게 아니라 그들 한 명 한 명을 텍스트 연마의 장인으로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교정의 과정을 핵심적인 내용만 추려 자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제3자에게 교정의 흔적을 노출시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교정을 ‘내부화’하지 않고 부단히 ‘외부화’하며 ‘언어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편집자의 실력을 한 단계 높여주고, 편집 문화의 저력을 쌓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오늘도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베테랑 선배들의 교정 원고다.

 

집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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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글항아리 편집장)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3년 6개월간 학술 기자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전 2권),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전 2권), 『한국의 美를 다시 읽는다』 등을 기획했다. 글항아리 창립 멤버로 인문학·사회과학·과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며 15년여간 규장각 교양총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21세기 자본』, 『불평등을 넘어』, 『부산은 넓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등을 기획·편집했다.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을 받았고, 〈서울신문〉과 〈한겨레21〉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자들의 탄생, 발전, 만개, 죽음을 모두 지켜본 최초의 목격자이자 조력자이다. 앞으로도 책을 써 나갈 그들을 더 잘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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