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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202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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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독서 예능의 신기원인가, 학원식 인문학의 함정인가?

 

 

 

이명석(문화비평가)

 

2020. 04.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홈페이지 화면 (출처: http://program.tving.com/tvn/thepage-turners)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홈페이지 화면 (출처: http://program.tving.com/tvn/thepage-turners)

 

 

 

〈요즘 책방〉, 책 읽어주는 방송이 뜨겁다

 

‘어려운 책은 쉽게, 두꺼운 책은 가볍게, 지루한 책은 재밌게.’ 말하기는 쉽지만 붙잡기는 어려운 희망이다. 지난해 9월, 이와 같은 모토로 시작한 tvN의 독서예능 프로그램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이하 〈요즘 책방〉)가 출판계 안팎에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책 관련 프로그램은 이제 안 된다.’는 상식을 뒤집으며 교양 예능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가벼운 에세이들이 재빨리 교체되던 독서 시장에 묵직한 스테디셀러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방송가의 지표인 시청률부터 또렷하다. 방영 초기에는 1%대였지만 점점 시청자 층을 넓혀 22회 〈삼국지〉 편에 이르러서는 평균 3.5%, 최고 5%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제공/케이블·IPTV·위성 통합 유료플랫폼 가구) 유튜브에서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징비록〉 편이 조회수 300만을 넘어섰고, 〈총, 균, 쇠〉, 〈사피엔스〉 편 등은 100만을 돌파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튼튼한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인문학 교양 예능의 최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시장에서도 〈요즘 책방〉의 흥행이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책들 대부분이 상당한 두께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세이나 얇은 소설과 같은 최근 독자들의 취향을 벗어나, ‘읽기 어렵고 부담스러워 책꽂이에만 꽂혀 있던 스테디셀러 책’을 주제로 삼은 제작진의 정공법이 통하고 있다. 『코스모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팩트풀니스』 등이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여러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자리 잡았다.

 

독서를 테마로 삼은 프로그램 중에서 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희귀하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위기에 빠진 인문학에 심폐소생술을 성공시키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이 커지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찬반 의견 역시 교차하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댓글을 통해 “학원 강의처럼 귀에 쏙쏙 들어와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요약식의 책 읽기가 독서가 지닌 사색의 힘을 뺏어갈 수 있어요.”라는 반응도 있다. “힘겨운 독서 시장에 한줄기 빛이 아닐까요? 여러 분야의 명저를 찾는 손길이 늘었어요.”라는 서점가의 말에는 이런 반론도 나온다. “또다시 외국 유명 저자의 미디어셀러로만 기울어지는 출판 시장. 국내 저자의 신간은 외면받겠죠?”

 

〈요즘 책방〉은 어떻게 이런 인기를 얻어냈을까? 그리고 그로 인해 쏟아지는 여러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제작진과 출연자만이 아니라, 우리 출판계 전체에게 던져진 중요한 화두다.

 

 

 

책과 TV의 만남, 〈요즘 책방〉을 만들어낸 계보

 

2천 년대 초반, MBC의 〈느낌표〉는 예능이 교양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선구적인 히트작이었다. 특히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시리즈는 출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예능인 MC와 독서 전문가가 등장해 매회 추천도서를 소개하고 그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는 포맷이었는데, 『괭이부리말 아이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소개하는 책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을 선구적으로 증명했다. 방영 후반부에는 ‘기적의 도서관’ 시리즈를 통해 지역에 도서관을 건립하고, 독서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호평을 받았다. 한국 방송사에서 독서 예능은 물론 교양 예능 전체의 가장 굵은 뿌리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2010년대 이후 스마트폰과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독서 시장의 침체와 인문 교양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여러 방송사가 책이라는 주제에 여러 예능적인 요소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KBS1은 〈TV 책을 말하다〉, 〈TV 책을 보다〉를 통해 조금씩 변신을 꾀하다가 〈TV 책-김창완과 책읽기〉를 통해 예능적인 요소를 과감히 결합시켰다. 가수 최백호, 배우 정진영, 고아성 등 연예계의 스타들이 등장해 책을 추천하면서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썼다. 〈TV 책〉 시즌 2에서는 ‘독립 서점’과 ‘독서 살롱’이라는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기도 했다. 독립 서점에 일반인 독자들을 초대해 책을 읽고 수다를 나누는 포맷이었는데, 독서 행위를 차별성 있는 라이프 스타일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이었다.

 

OtvN의 〈비밀독서단〉은 케이블, 종편에서 다각도로 시도해온 교양 예능의 틀에 책을 결합시켰다. 초기에는 어떤 문제에 처방전을 전하듯이 명예단원들이 책을 추천하는 시도를 했다. 이어 ‘OOO이 읽는 책 TOP 100’ 같은 차트 형식으로 관심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예능인과 지식인 패널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형태도 적용되었다. 〈비밀독서단〉은 그래도 어느 정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여타의 책 관련 프로그램이 거두어낸 성적은 비참하기까지 했다. 2018년 서평 대결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 〈비블리오 배틀〉은 한 회 만에 조용히 종영했다.

 

이처럼 서로 손잡기 어려웠던 TV와 책을 연결시켜준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 번째는 ‘쉬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사회적 화두가 되는 상황에서 이를 쉽게 해설해주는 팟캐스트, 유튜브가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책과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가벼운 형식으로 자투리 시간에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받기를 바랐다. 두 번째는 ‘스타 강사’다.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벌어지는 강연이 인기를 모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지식인 셀러브리티들이 등장했다. 이런 과정에서 TV 방송 환경에 적합한 출연자 군단이 형성되고, 이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포맷의 교양 예능이 등장하게 된다. tvN은 이런 흐름을 주도해 〈어쩌다 어른〉, 〈알쓸신잡〉 등의 히트작을 내놓는다. 〈어쩌다 어른〉은 한국형 강연 콘서트 예능, 〈알쓸신잡〉은 나영석식의 지식인 셀러브리티 여행 수다 예능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여러 책이 소개되어 어느 정도 독서 예능의 기능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격 독서 예능 〈요즘 책방〉이 등장해 뜻밖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기에는 ‘쉬운 인문학’과 ‘스타 강사’ 양쪽 영역에 걸쳐 있는 설민석의 특강 능력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동네서점을 통한 소규모 독서 모임, ‘트레바리’로 대표되는 독서 살롱 같은 트렌드가 결합되었다. 또한 유튜브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북튜버’를 지명도 높은 출연자와 세련된 연출로 재생산한 점도 성공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죽음의 경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홀든 콜필드



성장소설


〈요즘 책방〉의 방송 화면(출처: http://program.tving.com/tvn/thepage-turners)

 

 

 

한국식 학원 강의와 독서 살롱의 결합

 

〈요즘 책방〉의 포맷은 설민석이 책의 핵심을 요약해서 소개하는 특강, 이어 패널들과 함께 앉아 대화하는 토크로 구성되어 있다. 여타의 독서 프로그램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자, 성공의 핵심 비결은 설민석의 특강이다. 기존의 책 소개 강의는 저자 혹은 해당 부문의 전문가가 진행하는 게 상식이었다. 설민석은 역사 분야의 강사로 명성을 이어왔지만,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먼저 읽은 사람’ 이상의 위치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책이든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부분을 족집게처럼 뽑아내고, 그 궁금증을 중심으로 책의 전반을 명쾌하게 요약해낸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아 온 학원 강의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입, 취업, 승진을 위한 학원이 전국을 뒤덮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어찌 보면 ‘일타 강사’의 방식이 가장 대중적인 강의 방법일 수도 있다.

 

설민석식 강의의 특장점은 짧은 시간에 책의 전반을 요약해서 이해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고도 마치 핵심은 다 아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식의 강의에 대한 적절한 반응체가 전현무다. 설민석은 보통 전현무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가 답하는 상식적인 반응에서 출발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간다. 전현무는 출연자 중에 유일하게 책을 읽지 않고 나오는 사람이다. 제작진이 먼저 ‘책을 읽지 말고 오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이런 불성실한 자세에 대한 비판들이 올라오곤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캐릭터가 〈요즘 책방〉이 대중성을 얻어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책을 안 읽은 전현무가 재미를 느낄 정도면, 역시 책을 안 읽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도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요즘 책방〉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 역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최근의 많은 북튜버들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설하는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소개 콘텐츠처럼 진짜 작품을 읽기 전에 맛보기로써 정보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이 콘텐츠의 종착역이 되기도 한다. ‘635페이지! 천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단 한 시간 만에 읽어드립니다!’라는 유튜브 방송의 문구를 보면 이런 속셈이 확연히 드러난다. 책 살 돈도, 책 읽을 시간도, 책에 바칠 정신적 여유도 없다. 그렇지만 책은 읽어야 할 것 같다. 〈요즘 책방〉은 이런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책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민석의 강의 중간에 보이는 “이 책을 딱 정리하면~” 같은 표현들도 이러한 혐의를 더한다. 〈요즘 책방〉은 가성비 시대의 다이소식 독서법일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소재를 통해 책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는지도 유심히 보아야 한다. 가령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공포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시도는 아주 적절했다. 하지만 ‘페스트가 일본이라면’식의 민족주의 감성에 기반한 흥미 돋우기는 너무 노골적이다. 〈무한도전〉, 〈1박 2일〉 등 여러 예능에서 오랫동안 성공을 거두어온 애국주의 마케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서 끝없이 제기되는 패널의 성비 문제 역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떤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국내의 독서 시장은 여성 독자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대화를 나눌 때의 좌석 배치 또한 묘하다. 남성 강사와 패널이 양쪽으로 3명씩, 그리고 가운데 여성 패널이 1명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자리엔 문가영, 윤소희 같은 젊은 여배우가 앉아 있다. 제작진은 ‘젊은 세대의 시각을 대변하는 패널’이라고 하지만, 독서 예능조차 〈무한도전〉, 〈아는 형님〉, 〈문제적 남자〉류의 남자 예능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책방〉이라는 모델을 넘어서

 

어떤 문화이든 영향력 있는 모델이 등장하면, 그것을 모방하거나 비판하면서 성장한다. 〈요즘 책방〉의 시청자들은 학원식의 지식 섭취에 머물지 않고 진지한 독서로 나아갈 수 있을까? 따분하고 관성적인 개인의 독서는 풍성한 대화가 함께하는 살롱형 독서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 프로그램을 볼 다양한 직업군을 통해 전망해보자.

 

저자, 강사, 전문가들은 설민석식 강의법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짧은 시간에 강한 자극을 기대하는 세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강의법을 진짜 전문가가 터득하게 되면, 단순한 요약 이상의 해설이 가능할 것이다. 〈요즘 책방〉의 〈이기적 유전자〉 편에서 진화학자 장대익은 리차드 도킨스가 쓴 책의 전반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이론을 정리한 것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이어 ‘밈’ 이론을 확장시킨 수전 블랙모어의 『밈』을 소개하며 진전된 독서로 안내한다.

 

독자들은 〈요즘 책방〉에 나오는 독서 살롱을 모방할 수 있다. 다루는 책을 멋진 북커버로 덮고,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하는 방법을 따라할 수도 있다. 『페스트』의 등장인물을 하나씩 ‘픽’해서 자신의 감정을 대입시켜보는 것과 같은 방법도 따라할 수 있다. 매주 〈요즘 책방〉의 북 살롱을 따라가는 모임을 해도 좋다.

 

방송국 제작진은 독서 관련 프로그램에 적극 도전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유튜브는 TV의 큰 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벌이는 프로그램에겐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제한된 편성표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시청자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시청률에만 조급하게 매달리지 않게 해준다.

 

출판가에서는 유튜브/영상 매체와 책/인쇄 매체를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갈 모델들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책 속의 콘텐츠를 한입 크기(Bite-size)의 영상으로 소개하며 본격적인 독서로 이끌어내는 방식. 독서 살롱을 활성화하여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과 만나도록 하는 사교의 방식 등이 가능할 것이다.

 

〈요즘 책방〉은 시청자들 모두를 전현무로 만들 수도 있다. 읽지 않았지만 읽은 척 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분명히 그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설민석의 장점을 취하면서 설민석이 할 수 없는 일을 더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이명석(문화비평가)

민음사 편집자, 잡지 〈이매진〉 수석기자, 웹진 〈스폰지〉 편집장을 거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모든 요일의 카페』, 『논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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