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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  202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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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함께 읽는 사람들

 

 

 

곽아람(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2020. 07.


 


‘카카오프로젝트100’에 참여 중인 동네 책방들./카카오 제공


‘카카오프로젝트100’에 참여 중인 동네 책방들./카카오 제공

 

역병(疫病)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읽는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는다. 하루 이틀로 그치는 게 아니라 100일간 차근차근 읽는다. 카카오의 사회공헌 재단 카카오임팩트가 ‘100일간의 미션 수행’을 통해 생활의 변화를 만들겠다며 지난 3월 23일부터 6월 30일까지 100일간 진행 중인 ‘카카오프로젝트 100’에 ‘책읽기’를 테마로 참여 중인 동네책방들 이야기다.

 

 

 

톨스토이 함께 읽는 작은 서점

 

경기도 수원의 작은 서점 마그앤그래는 ‘톨스토이 100일 읽기’를 목표로 내걸었다. 매일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기록하는 것이 미션이다. 매일 읽은 부분 중 인상적인 문구를 글이나 사진으로 카카오 프로젝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 ‘인증’한다. 참여 멤버는 40명. 이소영 마그앤그래 대표는 “함께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목표라 혼자 읽을 때는 끝까지 읽기 어려운 작가를 골랐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분들이 가장 많고 『크로이체르 소나타』 처럼 단편으로 시작하는 분도 있다. 보통 한 달 정도 읽으면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마그래그래의 ‘톨스토이 읽기’ 게시판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한 참여자가 올린 인증샷./참여자 제공


마그래그래의 ‘톨스토이 읽기’ 게시판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한 참여자가 올린 인증샷./참여자 제공

 

마그앤그래의 경우 2019년 9월 진행돼 아홉 개 서점이참여해 총 열네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231명이 참여했던 시즌1에도 참여했다. 당시엔 박경리의 『토지』를 읽었다. 이소영 대표는 “100일이란 긴 시간이라 20권 되는 『토지』처럼 긴 작품을 읽지 않으면 금방 다 읽으니 이번에도 작품이 많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작가를 읽고 싶었다”고 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읽으며 참여자들이 자기 몸을 살피고 한의사나 문헌 연구자들이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지난 시즌에 우리나라 작가를 했기 때문에 이번엔 해외로 눈을 돌렸다. 문득 2년 전 서점 소설 낭독 모임에서 첫 책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안나』를 읽었을 때 몇 번이나 읽은 분도 계셨는데, 당시 ‘같이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게 있었어요. 국내 여러 출판사의 판본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었죠.”

 

결과는 대성공. 회원들은 톨스토이에 푹 빠졌다. 회원들이 올린 ‘인증샷’에는 다른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 서로의 ‘읽기’를 응원한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영화화된 작품의 경우 한 회원이 안나의 연인 브론스키 백작의 영화 스틸 컷을 찾아 올리면 다른 회원들이 “내가 생각했던 브론스키와 똑같다” “내가 그렸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실망이다” 등 치열하게 논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한 참여자는 “원래 책 읽기는 지극히 혼자만의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너무 집에만 갇혀 있다 보니 온라인에서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서 연대감이 느껴져 좋다”고 했다.

 

 

 

영어 원서에서 문장 길어 올리기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는 회원이 올린 독서 인증샷./꿈틀책방 제공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는 회원이 올린 독서 인증샷./꿈틀책방 제공

 

경기도 김포의 꿈틀책방은 ‘영어 원서에서 문장 길어 올리기’를 진행 중이다. 매일 그림책 포함 영어 원서를 읽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필사하거나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올린다. 모두 32명이 참여하고 있다. 영어 그림책 강의 수업 모임을 많이 해 온 이숙희 꿈틀책방 대표가 원서 읽기의 즐거움을 같이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꾸린 프로젝트다. 이숙희 대표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로 나온 『원더』 등을 많이 읽는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유명한 동화를 읽거나 앤서니 브라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아이에게 읽어주며 같이 읽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처럼 잘 알려진 청소년 소설 읽기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고 셰익스피어 등의 영미시를 필사하는 이들도 있다.

 

이 대표는 “어떻게 보면 원서의 ‘맛’을 보는 일이다. 하루 한 문장만 인증하면 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매일 한두 페이지씩 필사해 올리곤 하신다. 필사한 페이지에서 특히 좋았던 문장을 나누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지난가을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당시엔 너무 바빠 일일이 회원들의 인증 글에 응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시간이 많아지면서 저도 다른 분들도 훨씬 여유를 많이 갖고 꾸준히 정성 들여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어린 왕자』 영어판을 읽고 있는 회원의 인증샷. /꿈틀책방 제공


『어린 왕자』 영어판을 읽고 있는 회원의 인증샷. /꿈틀책방 제공

 

 

 

코로나 덕에 오히려 성황

 

24개 동네 책방이 25개 주제로 동참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947명이 함께 하고 있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서울 혜화 로타리 인근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은 ‘매일 아침 사전을 뒤적여 오늘의 단어를 찾고 사용하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그림책 전문 서점 서울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은 ‘하루 한 권 그림책 읽기’를 진행 중이다. 참여자들은 게을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실천보증금 1만 원을 낸다. 미션을 완수하면 돈을 돌려받지만, 실패하면 기부하는 방식이다. 카카오 사내 프로젝트로 처음 시작한 일종의 베타 버전인 시즌1 때 10만 원이었던 기부금이 참여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이번엔 1만 원으로 줄었다. 인증하지 않으면 100원이 까인다. 이소영 마그앤그래 대표는 “카카오 가치가치 프로그램에 모금 중인 캠페인에 기부할 수 있다. 기부는 강제 사항은 아닌데, 돌려받겠다고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저절로 기부된다”고 했다. 이슬기 카카오 기업PR 파트장은 “독서나 글쓰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천 습관이라 그런지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동네 책방의 독서 프로젝트가 코로나 장기화 속에서도 특히 반응이 좋다”면서 “코로나 장기화로 작은 오프라인 책방들이 어려운데 이렇게라도 독자, 고객과 만날 수 있고, 동네책방을 알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들이 있다”고 했다.

 

 

 

‘혼자 놀기 끝판왕’을 같이 하는 까닭

 

독서는 사실 혼자 놀기의 ‘끝판왕’이다. 오롯이 혼자서만 할 수 있는 행위. 책 속 세계로 들어가 주변과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책으로 표백된 순백의 존재가 된다. 치유 받고 위로받는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쓴 니나 상코비치는 말한다.

 


내게 독서의 한 해는 요양원에서 보낸 한 해였다. 그것은 내 삶을 채우고 있던 건강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공기에서 격리되어 지낸 1년이었다. 그것은 책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치유력을 가진 미풍 속으로의 도피였다. 나의 독서의 한 해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사이에 끼어든 행동 중지 기간, 나 자신을 위한 유예 기간이었다. 책으로 채워진 1년간의 집행유예 기간 동안 나는 회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회복 단계를 넘어서 다시 생활로 들어가는 방법도 배웠다.

-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혼자 책 읽는 시간』, 웅진지식하우스, 2012.

 

제목은 『혼자 책 읽는 시간』(원제: Tolstoy and the Purple Chair)이지만 사실 이 책은 미국판 ‘카카오 프로젝트 100’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2008년부터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가 미국 전역의 독서광들을 열광시켜 뉴욕타임스에 ‘The 365 Project’로 소개되며 유명해졌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느끼고 얻은 것들을 엮어 낸 것이 이 책이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남을 수 있는 독서라는 ‘혼자 놀이’에 사람들은 종종 남을 참여시키고 싶어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간 단 한 권도 읽지 않을 정도로 독서 인구는 줄어드는데, 각종 독서모임은 넘쳐난다. 인터넷과 모바일 앱의 발달에 힘입어 우후죽순 불어나는 독서모임을 보자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이 사람들은 책을 읽고 싶은 것일까? 사람이 그리운 것일까?’ 한 유명 독서 모임이 결혼정보회사 이름과 결합되어 ‘듀오바리’라는 별명을 얻은 것처럼 독서모임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순수하게 책만 읽으려 모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독서모임에 자주 참여한다는 한 20대 여성은 말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남자 클럽장이 갑이에요. 대부분의 독서 모임이 여초인데, 주로 책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모이기 때문에 지적이고 리더십 있는 남성이 인기가 많거든요.”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 좋고, 그렇게 홀로 하는 독서가 독해력은 물론이고 ‘혼자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럿이 같이 하는 독서에도 분명 ‘책을 좋아하는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라는 로맨틱한 이점 외에도 다른 장점이 있다.

 

모여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대학생 때다. ‘독일 명작의 이해’라는 고전 읽기 수업을 들었는데, 담당 교수는 조를 짜주며 매주 각 조에 헤세, 브레히트, 토마스만 등 그 주에 읽을 독일 작가를 정해줬다. 조원들은 그 작가의 작품이면 아무것이나 자유롭게 읽고 독후감을 쓴다. 그리고 그 독후감을 조원들과 돌려보며 토론한다. 한 학기를 마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엔 모두 함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하다 보면 같은 책을 읽었지만 모두가 다른 세상을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속한 세계, 사고의 깊이만큼 책을 이해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함께 읽기’를 통해 타인을 더 이해하고 나와 다른 시각을 배우게 된다. ‘함께 읽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읽는 이유가 단지 ‘나 혼자서는 도무지 못 읽을 것 같아서’, ‘남이랑 함께 읽어 강제성을 띠어야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에 그치고 만다면 조금은 슬플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이 덮친 지금, 아마도 우리는 사람이 그립고 외로워서 ‘함께 읽기’에 더욱 목매다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는 책을, 누군가도 읽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 나는 혼자가 아니며 동류(同類)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광활한 우주에서 헤매다 생명이 깃들어 반짝이는 별 하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이 언택트의 시대에 따스한 위안이 되는 것이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 참여한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읽기’라는 행위를 집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함께 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찾는 거예요. ‘같이 하는 읽기’를 일종의 ‘놀이’로 즐기고 있는 거죠. ‘남들은 얼마나 읽었지?’ 살펴보기도 하고 댓글을 달며 서로의 읽기를 부추긴다고나 할까, 응원한다고나 할까. 뜻하지 않은 재미가 있어요.”

 

괜찮다. 연애하고 싶어 독서모임에 가건, 혼자 있는 게 진력이 나서 온라인 함께 읽기에 참여하건 뭐 어떤가. 목적이 무엇이든 어쨌든 책을 매개로 한 모임이니 좋든 싫든 글 한 줄이라도 읽게 되지 않겠는가.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로워서 방탕해지는 대신 읽기를 택한 이들이여, 참 아름답구나.

곽아람(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2003년부터 기자로 일하면서 현재 출판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학부 및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2016년 8월부터 1년간 뉴욕대학(NYU)의 미술사 대학원인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 비지팅 스칼라로 있으면서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의 아트 비즈니스 서티피킷 과정을 마쳤다.
그림 에세이 『그림이 그녀에게』(2008), 독서 에세이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2009), 절판 아동도서 수집기 『어릴 적 그 책』(2013), 아티스트를 인터뷰하고 미술 시장과 비엔날레 등을 취재한 기록 『미술출장』(2015), 아메리카 문학 기행 『바람과 함께, 스칼렛』(2018), 뉴욕 체류기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2018)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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