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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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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몰려온다

 

 

 

김향수(그림책향, 향출판사 대표)

 

2019. 11.


 

 

 

20년 전쯤,

 

‘어린이 전문 서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방이 전국에 100곳이 넘었다. 대표라 할 만한 책방은 일산에 있던 ‘동화나라’였다. 이곳 책방지기는 1997년부터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이끌며 동화를 ‘어른도’ 보는 책으로 끌어올렸다. ‘어린이 도서 연구회’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좋은 책은 권하고, 그렇지 않은 책은 과감히 비판했다. 동화가 잘 팔린다 하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출판사들도 이 모임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했다. 사람들은 드라마인 줄만 알았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가 동화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팀 버튼 감독의 영화화 덕에 더 잘 나갔다. 바야흐로 동화 전성 시대였다.

 

오래 가지 못한 시대.

 

10년쯤 지난 2007년 즈음에는 문을 연 책방보다 닫는 책방이 훨씬 많았다. 그 당시 동화나라 정병규 대표의 어느 인터뷰에 따르면, 그리 많던 책방이 40여 곳만 남았고, 어린이 책만 다루는 곳은 5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다루려는 글은 아니기에 깊이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책을 정가에 팔지 않던 대형 서점의 할인 공세가 가장 큰 적이 아니었나 싶다. 굵직한 문학 출판사들도 뛰어들 만큼 대세였던 동화는 2019년 오늘, 우습게도 몇몇 굵직한 문학 출판사의 동화를 빼고는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다시 20년 전쯤,

 

어린이 전문 서점의 주인은 동화였다. 그림책은 영유아나 보는 책이었다. 그나마 있던 매대는 유럽과 미국, 일본 번역서들 차지였다. 1987년 세계 저작권 협약 체약국이 된 한국이었지만, 1993년 말 시공주니어, 1995년 비룡소가 미국과 유럽 그림책을 정식 수입하기 전까지 한국은 일본 그림책을 베끼거나 해적판을 자유롭게 내던 참이었다. 그림책이라는 명칭도 ‘그림동화책’이었다. 다분히 동화의 성격이 짙었다. 2001년 웅진주니어가 수입 창작 그림책 시장에 가세했다. 보림 출판사는 1994년부터 연필과 크레용이라는 그림책 창작 시리즈를 내며, 단행본 그림책 창작 시장을 열었다. 길벗어린이도 우리 민화를 따와 새로운 그림책 창작에 도전했다. 이 시도는 1997년, 이 시리즈 편집에 참여한 이호백 작가가 새로 만든 재미마주 출판사로 이어졌다. 초방책방은 2000년 초반부터 창작 그림책을 펴내는 한편, 우리나라에는 없던 창작 그림책 워크숍을 열어 신인 작가들을 발굴했다. 창작 그림책 태동기를 넘어 이제 막 출산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나는 신경숙 대표의 그 열정에 빚을 졌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림책 시계는 빠르게 돌았다.

 

2004년, 일이 터졌다. 볼로냐 어린이 도서전에서 신동준의 《지하철은 달려온다》(초방책방,2003)와 조호상 윤미숙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웅진닷컴,2003)가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고경숙의 《마법에 걸린 병》(재미마주)이 수상함으로써 그림책 1세대 출판사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한 번 트인 물꼬는 걷잡을 수 없는 법.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한두 권씩 수상, 2015년 6개 전 부문 라가치상 수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까지 세웠다. 2013년부터 창작 그림책을 펴낸 신생 출판사 반달은 모두 4권(2015년 1권, 2018년 2권, 2019년 1권)의 라가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그림책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24권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 라가치상 수상의 역사(2004~2019>


〈한국 라가치상 수상의 역사(2004~2019〉

 

 

 

상을 받는 건 틀림없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

 

이 라가치상은 우리 그림책의 위상과 방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영유아나 보는 학습과 교양 중심의 초기 창작 방향에서 벗어나 순수 창작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라가치상이 대량으로 쏟아졌다는 것은 이제 우리 창작 그림책이 곁가지에서 벗어나 본류로 진입했다는 얘기나 다름 아니다. 또 하나, 우리 창작 그림책은 2013년부터 상을 받을 때마다 한 차례도 빠짐없이 ‘오페라프리마’ 부문을 수상했다. 신인상이다. 무슨 말일까? 그림책을 처음 낸 작가에게 주는 상. 한국에서 신인 작가들이 많이 나온다는 뜻이다. 갑자기? 어째서?

 

 

 

그림책 창작 워크숍 전성시대,

 

우리나라 그림책 창작 시장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2005년부터 그림책을 만들면서 든 생각이었다. ‘창작 그림책 작가 층이 너무 얇다.’ 그래서 SI그림책학교 조선경 작가를 찾아가 그로부터 8년 동안 작가들과 숨을 나눴고, 2013년부터 〈그림책향〉이라는 워크숍을 열었다. 13권, 65권. 이 두 워크숍의 결과물이다. 2013년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하던 그림책 창작 워크숍은 이제 10여 개에 이른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신인 홍수가 났다. 이곳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림책만 해도 한 해에 수십 권은 된다.

 

창작 워크숍이 많다는 것은 곧 창작 그림책 출판사가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실험성 있는 작은 출판사는 물론 큰 출판사도 신인 작가들의 책을 앞다투어 낸다. 신인에 혈안이 된 느낌. 격세지감이다, 잘 나가는 작가 잡기에 붉은 눈을 껌뻑이던 큰 출판사를 익히 보아온 내게는. 부디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신인 작가의 몫이 출판사에 견주어 적지 않기만을 뭇 출판사 대표에게 바란다.

 

 

 

창작 그림책 작가들이 있기 전,

 

시공주니어와 비룡소, 웅진주니어로 쏟아져 들어온 해외 그림책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이 있었다. 아이들로 치면 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고, 부모들로 치면 1960~70년대 생들이다. 이 부모들은 단행본 시장에 쏟아지는 그림책들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동화 읽는 어른 모임도 동화에서, 그림동화에서, 그림책으로 영역을 옮겨갔다. 사립 작은 도서관들의 약진도 이어졌다. 그림책 읽는 모임이 수없이 생겨났다. 라가치상이 뭔지도 모르던 독자들은 이제 미국 시장에 깔린 그림책에만 주는 칼데콧상과 함께 라가치상이 어린이계의 노벨상이라며 추켜세운다. 뱀꼬리를 좀 달자면, 사실 내 기준에서 진짜 노벨상은 7억 원의 상금이 걸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이다. 노벨상처럼 이 상은 책이 아닌 작가에게 준다. 그림책 작가 중에는 숀 탠이 이 상을 받았다.

 

 

 

30년으로 달려간다.

 

역사가 깊다고 수준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창작 그림책을 보면 분명 짧은 역사에 견주어 수준이 놀랍도록 달라졌을 뿐만 아이라 그림책 출간 종수와 향유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던 인식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이상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국제 도서전에서 상을 받고, 작가층이 늘었다고 해서 향유층이 는 것은 아닐 테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찍은 지 오래인 나라에서 그림책 시장이 커졌다는 건 그림책의 역사성과 함께 사회성, 내용의 다양성이 큰 몫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

 

 

 

먼저 역사성.

 

30년이 되어 간다. 90년대 생이 30대가 되어가고, 80년대 생이 아이를 키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대와, 옛날과는 다른 창작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보는 세대가 한 시대에 존재한다. 90년대 이후 세대는 그림책을 보던 어릴 적 기억이, 아이만 보는 책이라는 이분법을 걸러낸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을 손에 쥐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다. 마치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의 무게를 헤아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듯. 80년대 이후 세대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함께 배우고,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림책을 산다. 유럽과 미국과 일본이 그렇다. 그들의 그림책 역사는 이제 곧 100년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스스로 그림책을 보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함께 본다. 웃고 눈물을 흘리고 춤을 춘다.

 

 

 

사회성.

 

이렇게 그림책을 향유한 이들이 많아지면 또 한 가지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책을 만들지 않아도, 책을 짓지 않아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책 전문가가 된다. 자신이 원래 하던 일과 그림책을 엮어 스스로 새로운 전문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그림책을 나눈 경험을 책으로 엮는가 하면, 심리학이나 철학과 연결해 여러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을 펴낸다. 이렇게 책을 펴내면 도서관, 학교, 기업체에서 강연을 요청한다. 자연스럽게 그림책 문화가 사회 속으로 스며든다.
책을 읽지 않는 현상도 그림책한테는 긍정성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림동화책은 읽는 책이었지만, 그림책은 읽지만 보는 책이고, 보지만 읽는 책이다. 이 순기능의 작용이 매우 술술 돌아간다. 짧기 때문에 졸리지도 않고, 쉽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그림책 속에 투영하는 일도 쉽다.

 

 

 

내용의 다양성.

 

내용의 다양성은 사회성을 만들어 냈다. 그림책은 동화의 짜임새 있는 플롯에 비해 열린 장르다. 글이 많은 그림책도 있고, 적은 그림책도 있고, 아예 글이 없는 책도 있다. 장르 속에 또 수많은 장르가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아무리 쉬운 책도 어른 책이고, 어려운 책도 어린이 책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책 속에는 겨우 글과 그림이 들었을 뿐인데, 이 둘이 어울려 수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 아이와 청소년과 여자와 남자와 중성과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향유할 수 있다. 향유. 누구나 그림책을 지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여 송정 그림책 마을 어르신들이 지은 그림책을 보면 너무너무 솔직담백해 가슴이 찡하다.

 

‘글이나 그림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자식과 손주들에게나 해당되는 거라고 여겼던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회관에 모였다.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시작은 반이었다. 책이 나오자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마을이 바빠졌다. 그림책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로,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정화수가 되어 소박하고 따뜻하고 뭉클하여서 웃다가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목구멍에 알 수 없는 아릿한 슬픔이 걸리기도 한다.’

 

2019년 11월 10일자 오마이뉴스 ‘부여 송정 그림책 마을 방문기’ 한미숙 기자의 글이다.

 

 

 

오래 갈 것 같다.

 

30년 역사로 이렇게 넓고 깊게 자리하는 문화라면, 아무리 출산율이 떨어져도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 이제 그림책 시장은 우리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유럽은 자존심이 높지만 긴장하며 우리 작가와 그림책을 눈여겨본다. 일본은 정치의 후진성과 엮어 역사에 비해 뒤떨어진 지 십 년도 더 지난 듯하다. 중국도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상하이 도서전이 볼로냐 도서전과 손잡은 일은 예사롭지 않다. 베트남도 뭔 일인가 하고 눈을 비빌 것이다. 미국의 견고한 성도 무너질 테다. 그게 현상이다. 현상이 현재가 되게 하려면 나도 눈 부릅뜨고 허벅지 심줄을 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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