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타 출판물 ‘인용’에 대한 저작권 이슈 탐구
정지우(문화평론가, 변호사, 작가)
2024. 7+8.
저작권의 중요성과 기본 정의
요즘 ‘저작권’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불법다운로드, 각종 문제집 및 대학서적 불법복제 등의 저작권 문제는 여전히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다. 저작권 침해는 엄연한 불법이고,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 정확히 저작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 정의부터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저작권’이 정의하는 범위와 침해 여부 기준이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의 ‘저작물’ 정의를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해당 조항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창작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이 ‘저작권’이다. 짧고 단순해 보이는 규정이지만, 저작권법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일례로, “인간의” 부분은 최근 생성형 AI와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창작물이 아닌 “AI의” 창작물에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가 전 세계적인 뜨거운 감자다. “사상 또는 감정” 부분도 역시 중요하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아닌 단순한 “사실”을 기술한 경우에는 저작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 역시 중요해서 아이디어가 표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면, 역시 저작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창작”이라는 부분 또한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소한의 창작성(독창성)이 없다면, 저작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작권은 그 정의에서부터 중요한 논의들이 담겨 있는데, 통상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표절한 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단행본에는 저작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창작했고,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고, 최소한의 창작성도 없이 누가 쓰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표현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판물 ‘인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대상에 되는 책들이 대부분 저작권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를 둘 수 있다. 이하에서는 이처럼 저작권을 가진 단행본 도서(출판물)를 인용한다는 것이 법적으로 어떠한 의미와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저작권을 제한하는 ‘인용’
저작권법 제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해당 규정은 다양한 저작물(작품)을 비평, 교육, 연구 등에 활용하는 연구자, 비평가, 교육자, 작가 등에게 저작권법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규정으로 인하여,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물론, 출처 표기 등 성명 표시는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해당 규정의 문구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보도·비평·교육·연구 등” 부분이다. 해당 부분은 인용을 위한 ‘목적’을 규정한 부분이다. 공포된 저작물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의 목적을 위해 ‘인용’할 수 있는데, 이때의 보도, 비평, 교육, 연구는 인용 가능한 경우의 ‘예시’이다. 네 가지 경우 뒤에 “등”이 오는 것만 보더라도, 보도, 비평, 교육, 연구에만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도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꼭 해당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밖에 예증, 해설, 보충, 소개, 강조를 위한 이용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고1), 홍보, 광고, 영리 목적 등으로도 인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2도10786 판결]을 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즉, 영리적인 목적의 인용도 그 범위가 상당히 줄어들지라도, 가능은 하다고 보는 것이다.
생각건대, 현대사회에서 ‘영리적 목적’과 ‘비영리적 목적’을 딱 잘라 말하긴 쉽지 않다.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비영리적 목적을 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있겠지만, 영리성을 완전히 제거한 ‘순수한 비영리적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공익적 목적의 보도라 할지라도, 그러한 보도를 통해 얻는 구독료 등의 이익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연구 목적으로 쓰인 논문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수익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기타의 경우에도 영리성과 비영리성은 엄격하게 나누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종합해 보면, 결국 ‘목적’ 자체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건 어렵고, 더군다나 법 규정에서 명시한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목적이라면 일단 ‘인용’이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이다. 이때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라는 것은 “정당한 범위 안”인지 여부와 함께 판단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인용의 목적에 제한이 없다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상 정당한 범위 안이라면 어떠한 목적으로도 인용이 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면 아무리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목적이라도 인용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시 앞의 대법원 판례를 참고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가의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한 [대법원 1990. 10. 23. 선고 90다카8845 판결]은 “정당한 범위” 요건과 관련하여, “보도, 비평 등을 위한 인용의 요건 중 하나인 ‘정당한 범위’에 들기 위하여서는 그 표현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보족, 부연, 예증, 참고 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를 간단하게 판단하여 보면, ① 인용의 목적과 관련해서는, 비영리적인 목적의 경우라면 영리적 목적인 경우에 비해 인용으로 인정되는 범위가 상당히 넓어질 것이다. ② 인용된 내용과 분량이 너무 많지 않을 것 또한 요구된다. ③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하는 방법과 형태에 있어서는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가 중요할 것이다. ④ 원저작물을 인용하여 원저작물의 수요가 대체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결론적으로 보면,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의 목적은 물론이고, 그밖에 목적을 불문하고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기만 한다면, 누구나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반대나 동의가 없다고 할지라도 인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용 조항이 중요한 것은 이처럼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특별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계 인용 관행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필자는 2014년부터 20여 권의 책을 출간해 온 경험으로, 출판계에서의 인용 관행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들을 일들이 많았다. 특히, 한 책을 출간할 때는 출판사가 다른 도서의 인용을 위해서는 타 출판사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하고, 그 출판사가 요구할 경우 상당한 비용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한 경험이 있다. 보통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한 단행본 한 권으로 출판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몇십만 원씩 하는 ‘인용 비용’을 부담하는 게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저작권법의 인용 조항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법 자체의 특성상 그 범위가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법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법 전문가라 할지라도, 해당 규정과 판례만 믿고 개별 사안에서 인용의 범위를 마음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특히 대형 출판사 등에서 인용 비용을 요구할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출판사나 개인인 작가 등은 추후에 혹시 모를 법적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인용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그 비용에 대한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이에 대해서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까지 만들지 않더라도, 유권해석에 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가이드라인만으로도 출판계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가령, 피인용저작물이 전체 저작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하라든지, 한 번에 허용되는 인용물의 분량이 200자 이하라든지, 그러한 인용된 피인용저작물에 대한 해설, 비평, 연구 등의 분량이 피인용저작물의 3배 이상이라면 ‘허용되는 인용’의 범위에 속할 수 있다는 식의 가이드라인 정도만 존재해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출판계 인용 관행이 상당 부분 정상화될 것이라 판단된다.
현재의 인용 비용은 일정한 기준 없이 ‘부르는 게 값’이기도 하고, 피인용저작물의 출판사의 별도 허락이나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음악 저작물의 경우 신탁협회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면서 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데 반해, 출판계에서는 그러한 명료한 관행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이처럼 불공정하다고 볼 여지도 있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필자는 인용 조항이 저작권법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이 법이 지닌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저작권법 제1조는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이 법이 ‘권리 보호’만이 아니라 ‘공정한 이용’ 및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회의 문화에서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창작자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인용, 패러디, 리뷰, 연구, 비평, 평론 등을 봉쇄해버린다면, 문화의 발전이나 문화생태계의 선순환 등은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의 문화생태계가 융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평, 서로의 저작물을 인용하고 때론 비판하고 또 부연하면서 발전해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법상 ‘인용 조항’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러한 인용 조항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어느 정도 명료한 가이드라인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관계 부처나 출판 단체, 학계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1)
박성호, 『저작권법』(제3판), 박영사, 2023, 546면
정지우 문화평론가, 변호사, 작가 본명은 정찬우로,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이다. 저서로는 『분노사회』(이경, 2014),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한겨레출판사, 2020),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문예출판사, 2021),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마름모, 2023), 『그럼에도 육아』(한겨레출판, 2024) 등이 있고,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운영한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및 IP 로펌에 재직하였고, 현재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인, 한국문화정보원 공공저작물 전문강사,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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