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8  202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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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글로벌 출판시장의 새로운 모델

 

 

 

신인실(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25. 3+4.


 

네덜란드 출판 그룹의 인수 합병

 

올해 1월, 세계적 출판 그룹 중 하나인 하퍼콜린스(HarperCollins)에서 네덜란드를 담당하는 출판사 하퍼콜린스 홀란드(HarperCollins Holland)가 2025년 3월 1일부터 네덜란드 고트머 출판 그룹(Gottmer Uitgevers Groep, 이하 ‘고트머’)의 논픽션 임프린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고트머는 1938년 설립 및 운영되어 온 중견 출판사로, 아동·청소년을 위한 고트머(Gottmer), 빅 벌룬(Big Balloon) 등 여러 임프린트를 통해 간행물을 출간하고 있다. 고트머는 네덜란드 출판시장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이번 인수 합병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도서전이 개최된 라 누볼라(La nuvola)(좌), 2024 로마도서전 포스터(우)

하퍼콜린스 홀란드 로고

 

 

하퍼콜린스 홀란드가 인수하는 고트머의 임프린트는 요리 및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베흐트(Becht), 건강, 심리학, 영성 분야의 알타미라(Altamira), 여행 도서를 전문으로 하는 도미니쿠스(Dominicus), 수상 스포츠 관련 도서를 담당하는 홀란디아(Hollandia)로 총 네 분야이다. 이번 합병의 일환으로 고트머가 운영하는 네덜란드 최대 보트 면허 교육 플랫폼인 바버바이즈 아카데미(Vaarbewijs Academy)도 하퍼콜린스 홀란드의 포트폴리오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트머의 임프린트(베흐트, 알타미라, 도미니쿠스, 홀란디아) 로고

고트머의 임프린트(베흐트, 알타미라, 도미니쿠스, 홀란디아) 로고

 

 

이로써 하퍼콜린스 홀란드는 네덜란드 출판시장의 각 분야에서 선두를 이끄는 동시에, 고트머의 강력한 콘텐츠와 브랜드 인지도를 흡수하고 출간 도서의 다양성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합병은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가장 ‘핫’한 출판사로 떠오르는 하퍼콜린스 홀란드가 네덜란드 출판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오랜 기간 운영해 온 주요 사업부를 매각한 고트머는 향후 주력 분야인 아동 도서 시장에 온전히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인수 합병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 네덜란드 출판시장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네덜란드 출판시장의 현황 및 특징

 

2025년 네덜란드의 출판시장 규모는 약 18억 유로로 추산된다. 이는 독일(약 94억 유로), 프랑스(약 74억 유로), 이탈리아(약 29억 유로), 스페인(약 27억 유로), 러시아(약 19억 유로)에 이어 유럽 내 여섯 번째 수준으로 작지 않은 규모이다. 유럽 출판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지속되는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네덜란드는 2023년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합산 약 4300만 권의 도서가 판매되어 2012년 이후 가장 많은 판매 수치를 기록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전자책·오디오북 구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소비되는 도서 또한 수백만 권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 주요 출판 국가의 도서 판매율이 모두 감소한 점을 비교하면, 네덜란드 출판시장은 비교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네덜란드 내 소설 분야 도서는 15% 이상 판매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학 분야에 주력해 오던 하퍼콜린스 홀란드의 이번 인수 합병은 논픽션 도서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네덜란드 출판시장에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네덜란드 출판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과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시장을 향한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서가 영어로 출간되고 있다. 2023년 네덜란드에서 자국 언어로 출간된 도서 판매율은 1% 이상 감소했지만, 영어 도서의 판매는 크게 늘어 전체 도서 판매율은 3% 상승했다.

 

네덜란드 출판시장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

 

지난해 네덜란드 출판 업계의 가장 큰 사건은 네덜란드 최대 출판사 빈보쉬앤쾨닝(Veen Bosch & Keuning)이 미국의 대형 출판 그룹 사이먼앤슈스터(Simon & Schuster)에 인수된 것이었다. 사이먼앤슈스터가 비영어권 출판사를 인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예상치 못했던 인수 합병은 글로벌한 네덜란드 출판시장의 특성을 반영한다. 두 출판사는 세계 시장 진출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사이먼앤슈스터는 자사의 출판시장을 확대하고자 영어 도서의 비중이 큰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시장까지 접근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빈보쉬앤쾨닝도 이번 국경을 뛰어넘은 거래를 통해 세계 시장 진출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빈보쉬앤쾨닝은 그동안 영미권 주요 저작권 에이전시와 협력하여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의 『휴먼카인드(De meeste mensen deugen)』(드코레스폰던트, 2019)와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Marjolijn Van Heemstra)의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In lichtjaren heeft niemand haast)』(드코레스폰던트, 2021) 등 젊은 네덜란드 작가의 저작물들을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킨 사례가 있다. 그만큼 이번 합병으로 전 세계 서점 곳곳에서 네덜란드 도서를 더욱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휴먼카인드』,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네덜란드판 표지

『휴먼카인드』,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네덜란드판 표지

 

 

네덜란드 출판시장은 우리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도서는 영미권과 기타 유럽 국가와는 다른 신선한 사상과 감수성을 담고 있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특히 네덜란드는 선진화된 유럽 국가 중 하나인 만큼 인문학, 정치, 사회, 과학, 실용, 자기 계발 분야에서 세련된 양서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으며 탁월한 예술성으로 아동 그림책 시장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제2외국어 언어권이지만 네덜란드어는 영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영어로 출간되는 도서도 많고 인공지능(AI) 번역 등을 통한 영어 중역도 비교적 용이하여 해외 출판 관계자들과 독자들의 접근 가능성도 높다.

 

이런 매력 있는 네덜란드 도서들은 한국으로도 번역·출간되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국내외 저작권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통해 네덜란드 도서 수출입 기획 및 협상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헤르만 코흐(Herman Koch)의 『더 디너(Het diner)』(민음사, 2024), 하나 베르부츠(Hanna Bervoets)의 『우리가 본 것(Wat wij zagen)』(북하우스, 2024), 이사 니마이어 브라운(Issa Niemeijer Brown)의 『빵도 익어야 맛있습니다(Een boek over brood)』(구르는재주, 2021) 등이 그 예이다. 아동 도서는 릭 페터르스(Rik Peters)의 『립 앤 로우(Rip en Rouw)』(바둑이하우스, 2024, 전 3권) 시리즈, 헤이스 판 데르 하먼(Heijs van der Herman)의 『작고 똑똑한 늑대의 좀 어리석은 여행기(Kleine wijze Wolf)』(바둑이하우스, 2019)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 밖에도 네덜란드 양극화 연구소 인사이드 폴라리제이션(Inside Polarisation), 독립출판사 브란트(Uitgeverij Brandt), 아동 그림책 전문 출판사 후글란드앤클라베렌(Hoogland & Van Klaveren) 등이 한국과의 판권 계약을 맺고 번역·출간하였다.

 

『더 디너』, 『우리가 본 것』, 『빵도 익어야 맛있습니다』 한국어판 표지

『더 디너』, 『우리가 본 것』, 『빵도 익어야 맛있습니다』 한국어판 표지

 

 

한국 문학이 나아갈 또 하나의 장

 

네덜란드는 한국 도서가 진출할 새로운 출판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도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도서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Ik zeg geen vaarwel)』(나이그앤반디트마르, 2023), 편혜영 작가의 『홀(Het gat)』(아르베이더스페르, 2024), 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Maak me eendimensionaal)』(다스마흐, 2023) 등 한국 문학이 네덜란드어로 번역·출간되었다. 올해는 김의경 작가의 SF소설 『헬로 베이비』(플루임, 2025)가 10월 출간 예정이며,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황금가지, 2003, 전 4권) 시리즈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왼쪽부터 『작별하지 않는다』, 『홀』, 『1차원이 되고 싶어』, 『헬로 베이비』 네덜란드판 표지

왼쪽부터 『작별하지 않는다』, 『홀』, 『1차원이 되고 싶어』, 『헬로 베이비』 네덜란드판 표지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은 대부분 소수 아시아권이나 영미권에 국한된 경우가 많은데, 네덜란드와 같이 유럽 내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한국어라는 특수성을 뛰어넘어 더욱 활발히 진출할 수 있다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네덜란드 출판계 주요 뉴스뿐만 아니라 이번 대형 인수 합병과 같은 세계 출판시장의 주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걸맞은 노력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

 

신인실

신인실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였으며, 2016년부터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미 지역과 유럽권의 다양한 작품들을 발굴하여 한국 출판계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기획하고 있다.
insilshin@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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