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7  202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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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랜덤하우스,
도서에 ‘AI 학습 금지’ 문구를 추가한 이유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2025. 1+2.


 

인공지능(AI)을 견제하는 세계 출판시장의 움직임

 

세계 출판시장의 핫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인공지능(이하 AI)이다. 오늘 접한 AI 관련 뉴스가 내일에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닌 과거의 정보로 기록될 만큼 AI 기술의 변화는 빠르다. 이제는 AI가 시와 소설을 쓰고, 번역도 한다. 단행본 표지와 본문 일러스트 작업 능력도 놀랍지 않다. 이미 인간 고유의 창작과 번역 영역 중심으로 진입한 AI가 인간과 협업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독으로 그 역할들을 수행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듯 AI의 범용화와 그 역할의 유용성은 다양한 업무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유용성 이면에는 또 다른 한계와 불편함이 공존한다. AI의 역할과 기능이 인간이 생산한 창작물 보호 생태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며,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 처한 세계 출판시장에서 AI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팽귄랜덤하우스 로고

팽귄랜덤하우스 로고

 

 

영미권을 대표하는 출판그룹 중 하나인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가 자사 출판저작물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전 세계 모든 시장에서 ‘AI 기술 학습 목적’으로 자사 도서의 어떤 부분도 복제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는 ‘경고성’ 안내에 나섰다. 2024년 10월, 영국의 유명 출판전문지 〈더 북셀러(THE BOOKSELLER)〉는 “세계 최대 규모 출판사가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이하 LLM) 및 기타 AI 도구 학습에 사용되는 저자의 지적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권 페이지의 문구를 변경했다.”라며 펭귄랜덤하우스의 안내 메시지를 독점적으로 보도하였다.

 

펭귄랜덤하우스는 전 세계 모든 임프린트(Imprints)에서 발행되는 도서 판권면(Copyright page)에 들어가는 문구를 수정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것은 “이 책의 어떤 부분도 AI 기술이나 시스템을 교육할 목적으로는 어떤 방식으로도 사용하거나 복제할 수 없다.”라는 문구이며, 이것은 앞으로 발행되는 모든 신간은 물론 향후 재인쇄되는 모든 도서에도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문과 번역본은 아래와 같다.

 

원문

Penguin Random House values and supports copyright. Copyright fuels creativity, encourages diverse voices, promotes freedom of expression and supports a vibrant culture. Thank you for purchasing an authorised edition of this book and for respecting intellectual property laws by not reproducing, scanning or distributing any part of it by any means without permission. You are supporting authors and enabling Penguin Random House to continue to publish books for everyone. No part of this book may be used or reproduced in any manner for the purpose of training 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ies or systems. In accordance with Article 4(3) of the Digital Single Market Directive 2019/790, Penguin Random House expressly reserves this work from the text and data mining exception.

번역문

펭귄랜덤하우스는 저작권을 가치 있게 여기고 이를 지원합니다. 저작권은 창작을 촉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며,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활기찬 문화를 지원합니다. 이 책의 정식 판본을 구매해 주시고, 무단 복제, 스캔 또는 배포하지 않음으로써 지적재산권법을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는 저자를 지원하고 있으며, 펭귄랜덤하우스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을 계속 출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어떤 부분도 AI 기술이나 시스템을 교육할 목적으로는 어떤 방식으로도 사용하거나 복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디지털 단일 시장 지침 2019/790의 제4조(3항)에 따라, 펭귄랜덤하우스는 본 저작물을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 예외로부터 명시적으로 보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북셀러〉는 펭귄랜덤하우스 이외에 영미권의 또 다른 주요 대형 출판그룹에서도 AI와 관련하여 자사에서 발행하는 도서 판권면에 들어가는 내용 중 일부라도 변경했거나 수정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출판사 팬맥밀란(Pan Macmillan), 아셰트(Hachette), 사이먼앤슈스터(Simon & Schuster)는 질문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출판사 파버(Faber)는 답변하지 않았으나 최근 “편집, 확인, 발췌, 혹은 기타 목적”으로 자사의 책을 작업하는 프리랜서가 AI 프로그램의 정보를 복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AI 정책(AI Policy)’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펭귄랜덤하우스는 영미권 출판그룹 중 최초로 AI 기능과 역할로부터 자사 도서에 대한 저작권 보호·강화를 위해 도서 판권면 내용을 수정·변경한 출판사로 기록되었다.

 

AI 견제, 실효성이 있을까?

 

출판계는 이와 같은 펭귄랜덤하우스의 발표를 이례적이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로 보는 시선보다 현 상황에서 그들의 판단과 실행이 향후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지에 관심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짐작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번 조치가 어떤 구체적인 배경에서 나오게 됐는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더 북셀러〉는 “챗봇(Chatbot) 및 기타 디지털 도구 개발을 위한 AI 기업의 도서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에서 저작권 침해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이미 기술 기업(Tech Companies)이 AI 도구를 훈련하는 데 대규모 불법 복제 도서를 사용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테일러앤프란시스(Taylor & Francis), 와일리(Wiley), 세이지(Sage) 등의 학술 전문 출판사들은 2024년 AI 기업에 콘텐츠 라이선스를 제공하기 위한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펭귄랜덤하우스와는 다른 입장이어서 AI를 중심에 두고 견제냐 협업이냐,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두 견해가 양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수정·변경된 판권면 내용에는 앞에 인용한 펭귄랜덤하우스의 공지 원문의 마지막 문장과 같이, 디지털 단일 시장 지침(Digital Single Market Directive) 조항에 따라 펭귄랜덤하우스는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ext and Data Mining, 이하 TDM)’ 예외 조항에서 이 작업을 명시적으로 유보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즉, 펭귄랜덤하우스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AI 데이터 기술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실효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출판사가 자사 도서 텍스트에 대한 AI 사용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수많은 해적판 도서로 AI가 학습되고 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영미권의 유명 출판사들이 AI 기업에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일정 부분의 대가를 받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번 조치의 실효성을 악화시키는 부정적 요인이다.

 

미국의 복스미디어(Vox Media) 소유의 IT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2024년 10월 19일 자에 올린 펭귄랜덤하우스의 이번 이슈 관련 글에서 “와일리,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 테일러앤프랜시스와 같은 학술 출판사들이 이미 AI 교육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모든 출판사들이 AI에 대해 신중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펭귄랜덤하우스의 이번 조치와 결을 달리하는 출판사들의 입장과 더불어 시대적 흐름과 산업적 가치의 의미를 우회적으로 상기시킨다. 중요한 것은 출판 콘텐츠를 AI 학습 목적을 위해 무단 사용하는 것과 관련한 논쟁 및 법적 공방과 AI 대응을 둘러싼 출판업계의 양분된 입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영국 로펌 폭스윌리엄스LLP(Fox Williams LLP)의 선임 변호사 치엔웨이 루이(Chien-Wei Lui)는 〈더 북셀러〉와의 인터뷰에서 “AI 플랫폼이 작가의 작품을 복제하거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결과물을 제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하면서도 LLM의 교육 자체가 저작권 침해 행위이므로 “출판사는 자사와 저자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행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좀 더 현실적인 우려는 출판 콘텐츠가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무분별하게 학습에 사용될 경우, 출판사와 저자 모두 수익을 상실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러스트 이미지

 

 

국내 출판계가 취해야 할 AI 규제에 대한 자세

 

2024년 1월 〈동아일보〉는 “해외 대형 출판사들, ‘AI 번역금지’ 국내 출판사에 계약 요구”라는 제목으로 AI 번역기 사용 관련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룬 바 있다. 펭귄랜덤하우스를 비롯한 해외 대형 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사들과 번역 판권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에 ‘AI 번역기 사용 금지’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이호재 기자는 번역 시 오류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I 번역기 사용이 필요하다는 국내 일부 번역가들의 의견도 함께 전하면서, AI 활용을 둘러싼 논란이 테크업계를 넘어 출판계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AI 번역기가 제공하는 유용성보다 그것이 지닌 한계를 우려해 내려진 조치로 보이지만, 필자는 그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보고 있다. 번역 작업 시 출발어(원문)를 번역기에 입력하여 도착어(번역어)를 생성하는 작업 또한 AI 학습 행위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번역 작업을 하는 번역가들의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므로 실효성 면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도서 번역 시 AI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과 “도서의 어떤 부분도 AI 기술 학습을 목적으로 복제하거나나 무단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의 원칙은 저작권자의 창작물 권익 보호 및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규칙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고 실천하기 위해 관계자 모두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나 제한도 필요하지만, 당사자 간 산업적 이익을 공유하고 확대하기 위한 협력과 조율도 있어야 한다. 나아가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려는 학계와 산업계 간의 긴밀한 연구,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함께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Matilda Battersby, “Penguin Random House underscores copyright protection in AI rebuff”, 〈The Bookseller〉, 2024.10.18., https://www.thebookseller.com/news/penguin-random-house-underscores-copyright-protection-in-ai-rebuff(최종 방문일: 2024.12.13.)
Emma Roth, “Penguin Random House books now explicitly say ‘no’ to AI training”, 〈The Verge〉, 2024.10.19., https://www.theverge.com/2024/10/18/24273895/penguin-random-house-books-copyright-ai(최종 방문일: 2024.12.26.)
이호재, “해외 대형 출판사들, “AI 번역금지” 국내 출판사에 계약 요구”,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40121/123159869/1(최종 방문일: 2024.12.26.)

이구용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

1995년부터 출판에이전트에서 일해오고 있으며, 그간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사계절, 2000),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창비, 2008), 『아몬드』(손원평, 다즐링, 2017) 등을 포함한 수많은 한국 문학을 수출했다. 저서로는 『소설 파는 남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0), 『인공지능과 문학의 미래』(공저,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23) 등이 있다.
josephlee7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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