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7  202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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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 유일, 중소 출판사를 위한 로마도서전

 

 

 

김민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정책연구실)

 

2025. 1+2.


 

유럽 내 유일, 중소 출판사를 위한 로마도서전

 

유럽에서 유일한 중소 출판사를 위한 도서전 피우 리브리 피우 리베리(Più libri più liberi, 이하 로마도서전)가 2024년 12월 4일부터 12월 8일까지 5일간 로마의 라 누볼라(La Nuvola)에서 개최되었다. 로마도서전은 2002년 이탈리아출판협회(Associazione Italiana Editori, 이하 AIE)의 주최로 시작되었으며, 중소 출판사의 도서들을 조명하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린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중소 출판사의 부스 운영뿐만 아니라 작가와의 만남, 독서 및 출판 현안에 대한 토론, 독서 활성화를 위한 포럼 등이 진행되었다. 또한, 출판권 판매를 위한 권리센터 운영 등 이탈리아 출판사들과 국제 출판계 관계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제공하였다.

 

로마도서전이 개최된 라 누볼라(La nuvola)(좌), 2024 로마도서전 포스터(우)

로마도서전이 개최된 라 누볼라(La nuvola)(좌), 2024 로마도서전 포스터(우)

 

 

2024년 로마도서전에는 5일간 약 11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인 597개 출판사가 참여했다. 이탈리아의 중소 출판사와 해외 출판사 및 에이전시 간 835건의 회의도 진행되었다. 이틀간 운영된 관리센터에는 유럽을 포함한 28개국에서 방문한 58개의 출판사 및 에이전시가 모였고, 그중 약 90개의 이탈리아 출판사가 출판권을 교류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특히 이번 도서전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과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 등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활기를 더했다.

 

가족과 함께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좌), 그림책 부스를 보고 있는 어린이 관람객(우)

가족과 함께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좌), 그림책 부스를 보고 있는 어린이 관람객(우)

 

 

2024년 로마도서전의 주제는 ‘세계의 척도’였다. 이 주제는 탐험가이자 『동방견문록(Il Milione)』(1298)의 작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사망 700주기를 기념하여 선정되었다. 이번 도서전의 큐레이션을 담당한 키아라 발레리오(Chiara Valerio) 작가는 “책은 우리가 가진 가장 정확한 세계 지도”라며, “우리는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까지 알 수 있으며 책을 통한 ‘상상력’이야말로 세계를 이해하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도서전의 의미를 더했다.

 

연설 중인 키아라 발레리오(출처: Più libri più liberi 공식 유튜브)

연설 중인 키아라 발레리오(출처: Più libri più liberi 공식 유튜브)

 

 

도서 출판에 관한 전문적 논의가 이루어진 포럼 현장

 

로마도서전에서는 5일간 22개의 공간에서 700개 이상의 포럼과 도서 출판 관련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행사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춘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포럼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이후 이탈리아 출판시장 전망’, ‘팟캐스트’,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논의였다.

 

지역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기관 부스 홀(좌)과 출판사 부스 홀(우)

지역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기관 부스 홀(좌)과 출판사 부스 홀(우)

 

 

① 해외 출판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이탈리아의 노력

 

2024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가했던 이탈리아는 포럼을 통해 해당 도서전 이후 판권 판매와 관련된 공공 정책 현황을 공개했다. AIE 연구부의 조반니 페레손(Giovanni Peresson)은 다른 유럽의 주요 출판시장과는 달리 이탈리아는 불어권, 독일어권, 스페인어권 등 광범위한 언어권 시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출판사들이 시장 확장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은 판권 판매, 공동 출판(삽화나 어린이 도서와 같이 제작 비용이 높은 분야에서 해외 출판사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형태), 외국어 직접 출판(이탈리아 출판사가 외국어로 직접 출판하여 해외에 배포하는 새로운 형태)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형 출판사와 중소 출판사 간의 판권 수출 격차는 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통계에 따르면, 연 매출 500만 유로 이상인 대형 출판사는 연평균 34권의 판권을 해외로 판매하고 있고, 이들의 주요 수출 국가는 스페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소 출판사는 연평균 2권의 판권을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과 폴란드 같은 비전통적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소 출판사의 판권 수출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박람회 참가, 에이전트 활용, 번역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외교 및 국제협력부(Ministero degli affari esteri e della cooperazione internazionale, MAECI)는 2021년에 75개의 출판사에 번역 지원을 제공하여 392개의 판권 수출을 도왔으며, 2023년에는 103개의 출판사가 546개의 판권을 수출하도록 지원하는 등 중소 출판사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판시장의 수출 현황을 발표하고 있는 조반니 페레손

이탈리아 출판시장의 수출 현황을 발표하고 있는 조반니 페레손

 

 

아동서적 전문 출판사 일 카스토로(Il Castoro)의 안드레이나 스페셜(Andreina Speciale)은 소규모 출판사의 수출 경험에 대해 발표하며, 비영어권 국가의 소규모 출판사가 영어권 시장에 진입하기는 굉장히 어렵고, 현지 네트워크 구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미국 중심의 대형 출판사들이 우세한 세계 출판시장과 해외 출판사가 자국의 작가 및 삽화가를 발굴하여 현지 콘텐츠에 투자하는 방식은 이탈리아 출판사의 해외 진출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문제로 번역 인력을 꼽았다. 현재 이탈리아는 외교 및 국제협력부와 독서 및 도서센터(CENTRO PER IL LIBRO E LA LETTURA, CEPER)의 번역 자금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보았다. 프랑스 시장의 사례를 설명하며 해외 출판사와의 맞춤형 만남을 주선하는 매칭 프로그램, 각 장르별 시장 분석 및 연결점을 제공하는 시장조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학문적 논픽션 출판사인 코디스(Codice edizioni)의 마르코 보(Marco Bo)는 코디스가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덕분에 저작권 판매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으며, 특히 중국 시장에서 유능한 서브 에이전시와의 협력이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또한, 코디스의 주요 해외 시장인 동아시아(중국, 한국)와 독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어를 이해할 수 있는 편집자와 영어 번역 샘플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이탈리아어 텍스트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가 크기 때문에, 영어 번역본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중소 출판사의 해외 출판시장 진출에 가장 중요한 공적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로마도서전에서 공공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이탈리아 출판시장이 해외 진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 스페인어, 불어 등 주류 언어가 아닌 소수 언어권으로서 이탈리아가 해외 출판시장 진출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한국도 출판시장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국내 출판사의 해외 진출을 위해 찾아가는 도서전과 국내외 출판사를 1대 1 매칭하는 K-book 저작권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출용 출판 홍보자료 지원, 출판 콘텐츠 해외 발간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출판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이러한 공공 지원을 통해 자력으로 해외 진출이 어려운 국내 출판사들이 해외에 많이 소개되고 신뢰를 쌓아 세계 무대라는 새로운 활로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② 이탈리아에서도 뜨거운 ‘AI’

 

로마도서전에서는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았는데, 이와 관련한 포럼도 인기를 끌었다. AI 기술을 보유한 이탈리아 민간업체 알마웨이브(Almawave)의 라니에로 로마놀리(Raniero Romagnoli) 이사와 이탈리아 과학 연구 비영리 조직 시네카(Cineca)의 마테오 투리시니(Matteo Turisini) 교수가 참여한 포럼에서는 전문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포럼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질문은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에 관한 문제였다. 마테오 교수는 “유럽은 AI 규제 면에서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 최초로 2024년 3월 13일에 인공지능 규제법(AI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AI가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럽이 규정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며, AI 개발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포럼 참관객들은 유럽이 AI 규제에서 가장 앞서 있고 명확한 행동 강령을 수립하여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불법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생성형 AI 포럼(좌), 팟캐스트 문화보급 포럼(우)

생성형 AI 포럼(좌), 팟캐스트 문화보급 포럼(우)

 

 

③ 마케팅 채널로서 ‘팟캐스트’에 대한 관심

 

팟캐스트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포럼에서는 도서관과 독서 활성화, 독서 교육의 매체로 팟캐스트를 활용한 사례들이 발표되었다. 로마 넬슨만델라도서관(Library Nelson Mandela)의 사서 알레산드라 랑게로티(Alessandra Langellotti)는 도서관에서 진행된 ‘비쎄 라이브(Viecce Live)’ 프로젝트 사례를 발표했다. 지역 주민들이 팟캐스트에 직접 참여해 대본을 쓰고 지역 변화와 관련된 자신의 추억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부터 청소년,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키워드로 지역 도서관에 모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중심 역할을 되찾도록 만들었으며, 지역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작가 프란체스코 디 마르티노(Francesco Di Martino)는 팟캐스트가 말과 글을 결합한 새로운 서술 형태로 독서의 접근성을 높이고 책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처럼 책을 구매하고 읽는 장소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 ‘도르소(Dorso)’를 소개하며, 팟캐스트가 단순한 책 홍보를 넘어 문화적 공간과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팟캐스트를 통한 도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출판사의 주요 마케팅 채널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팟캐스트 청취자 규모가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팟캐스트 청취자 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2018년 1030만 명에서 2023년 1640만 명으로 해마다 높은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내에 팟캐스트가 새로운 도서 마케팅 채널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뉴어덜트(New Adult) 장르의 강세

 

로마도서전의 출판사들은 부스만 봐도 어떤 책을 다루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꾸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별다른 굿즈 없이 책으로만 부스를 꾸민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로맨스 판타지, SF 소설 등 뉴어덜트 장르의 출판사 부스에는 화려한 일러스트 표지가 돋보였으며,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에이디디 출판사(ADD Editore)의 일라리아 베니니(Ilaria Venini)는 “작년부터 뉴어덜트 분야가 이탈리아 출판시장의 큰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뉴어덜트 장르에 대한 이탈리아 독자들의 관심을 보여주듯 2019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 최고의 아동출판사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일 카스토로 출판사도 2024년부터 ‘카스토로 오프(Castoro Off)’라는 뉴어덜트 장르 전문 출판사를 론칭하여 별도 부스를 설치하고 열띤 홍보를 펼쳤다. 뉴어덜트 도서의 화려한 일러스트 표지를 내세운 부스들 앞에는 젊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AIE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이탈리아 판타지 장르 도서의 매출은 전년 대비 27.1% 증가하여 1766만 6천 유로에 이르렀고, 판매 부수는 26% 증가하여 100만 부를 초과했다. 동기간 내에 소설과 논픽션 도서 전체 매출이 1.1% 감소하고 판매 부수가 2.1%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침체기인 출판시장 속에서도 판타지 장르는 호황 중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작가들의 활약

 

로마도서전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물론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이탈리아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한강 작가의 이탈리아 출판권을 보유한 아델피 출판사(Adelphi Edizioni) 부스는 『작별하지 않는다(Non dico addio)』(2024)를 메인 도서로 전시하며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또한, 배수아, 배명훈, 김보영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에이디디 출판사의 아시아 컬렉션 부스에도 이탈리아의 젊은 독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메인으로 전시한 아델피 출판사(좌), 에이디디 출판사의 한국 작가 작품을 보는 독자들(우)

한강 작가의 작품을 메인으로 전시한 아델피 출판사(좌), 에이디디 출판사의 한국 작가 작품을 보는 독자들(우)

 

 

한국 문학에 대한 이탈리아의 관심을 보여주듯 한국 작가가 직접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Korean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이하 KBBY)와 로마어린이도서관(Casa dei Bimbi)이 협업한 ‘한국의 그림책 세계: 페이지 너머’ 행사가 개최되었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심향분 KBBY 사무처장이 안경미 작가의 『책장 너머 돼지 삼형제』(웅진주니어, 2018)와 윤강미 작가의 『나무가 자라는 빌딩』(창비, 2019)을 소개하였고, 작품의 기획 의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 행사는 이탈리아 번역가, 도서 활동가, 교사, 사서 등 많은 관람객들이 참여하여 이탈리아 내 한국 그림책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왼쪽부터 현지 번역가, 심향분 KBBY 사무처장, 안경미 작가, 윤강미 작가(좌), 행사에 참여한 현지 관람객들(우)

왼쪽부터 현지 번역가, 심향분 KBBY 사무처장, 안경미 작가, 윤강미 작가(좌), 행사에 참여한 현지 관람객들(우)

 

 

관람객의 문턱을 낮춘 풍경들

 

로마도서전의 또 다른 특징은 이탈리아 지역자치단체, 도서관, 경찰청, 신문사 등 출판 외의 기관들이 규모 있는 부스를 운영하며 도서전의 다양성을 더한 점이다. 민간단체 AIE가 주관한 행사였음에도 공공기관과의 협업이 잘 이루어진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각 지역자치단체, 도서관, 신문사가 발행한 간행물들을 부스에 전시하며 공공기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경찰청 월간지를 전시하고 있는 경찰청 부스(좌), 경찰청 부스 내 체험존에 참여하는 관람객(우)

경찰청 월간지를 전시하고 있는 경찰청 부스(좌), 경찰청 부스 내 체험존에 참여하는 관람객(우)

 

 

휠체어와 유모차 접근이 용이하도록 설계된 환경도 눈에 띄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복잡한 행사장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관람객과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모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승강기를 통해 휠체어나 유모차가 모든 공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부스도 턱이 없는 구조였다. 행사장 전 구역에는 빨간색 옷을 입은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관람객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편의성과 접근성을 갖춘 행사 운영은 더 많은 관관객들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오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도서전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유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로마도서전을 둘러싼 논란들

 

로마도서전은 성공적인 행사로 마무리되었지만, 크고 작은 논란들이 있었다. 로마도서전의 포럼 발표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철학가 레오나르도 카포(Leonardo Capo)가 전 연인 학대 및 가중 상해 혐의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레오나르도 카포는 로마도서전 참여를 자진 철회했지만, 로마도서전 조직위원회와 프로그램 관리자 키아라 발레리오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카포의 초대를 유지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특히 이번 도서전이 전 연인에 의해 비극적으로 살해되었던 피해자 줄리아 체체틴(Giulia Cecchettin)에게 헌정되는 의미가 있었기에,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카포를 초대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이에 도서전에 참여하기로 했던 작가들과 일부 출판사가 참여를 철회하는 등 파장이 있었다.

 

앞으로 로마도서전이 극복해야 할 과제

 

로마도서전의 전체 방문자 수는 작년보다 약간 감소했으나 단체 학생들의 참여 증가로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이탈리아 언론사 〈일 폴리오(IL Foglio)〉는 2023년에 10유로였던 입장권 가격이 2024년 13유로로 인상된 점이 손익분기점 달성의 주원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도서전의 수익이 참여 출판사의 매출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로마도서전은 도서전의 성공과 참여 출판사들의 매출 증대가 직결될 수 있도록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 출판사를 위한 도서전이 11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고, 835건의 출판권 교류 회의를 성사시켰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유의미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한국 출판의 인기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에 발맞춰 한국 출판사들이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출판시장에 더 활발히 진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로마도서전에 참여한 중소 출판사의 해외 진출 사례와 같이 한국 출판시장도 공공 지원과 출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해져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민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정책연구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고, 2년간의 교사 생활을 거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정책연구실에서 3년째 근무 중이다. 2024년부터 「출판N」 편집부를 맡아 독자들에게 출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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