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글로벌 출판 동향]
박소진(KPIPA 독일 수출 코디네이터)
2024. 11+12.
1. 202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세 가지 키워드
인공지능(AI), 학술 출판사, 그리고 오디오북. 2024년 제76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 Bookfair 2024, 이하 도서전)을 담은 세 가지 키워드이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를 확인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의 출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모두 AI 관련 연구자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번 도서전의 핫 이슈이자 혁신도 역시나 인공지능과 관련이 있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야심찬 학술 출판사들이 출판계에서 인공지능 혁신을 활발히 주도하고 있으며, 오디오북 분야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독자와 청취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2.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2024년 10월 15일(화)부터 10월 20일(일)까지 6일간 개최되었던 올해 도서전에는 새롭게 한국 만화 부스와 코믹 비즈니스 센터가 설치되었고,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사일런트 디스코(Silent Disco) 콘셉트의 오디오북 청취 공간이 마련되었다. 더 아트 비즈니스 라운지(The Art Business Lounge)와 게임 비즈니스 센터(Game Business Center)에서는 게임, 영화, 가상현실 프로젝트의 저작권을 거래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주빈국관은 이탈리아의 건축 양식을 살린 공간에서 자국의 문화, 문학, 출판을 멋지게 소개하였다. 다양한 이탈리아 작가들을 조명하며 고전과 현대 문학 작품을 함께 선보였고, 낭독회, 패널 토론, 프레젠테이션 등을 진행하였다. 프랑크푸르트와 이탈리아 문학의 접점에 있는 작가인 괴테(Goethe)와 관련된 체험형 행사가 괴테 하우스(Frankfurter Goethe-Haus)와 협력하여 진행되었으며, 로마에서 괴테가 머물렀던 공간을 20분 동안 체험하면서 퀴즈와 미션을 풀 수 있었다.
한편, 도서전의 개최 전주에 진행되었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Masterclasses)’에서는 흥미로운 스타트업의 서비스들이 소개되었다. 디멘드센스(DemandSens)는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출판사가 어떤 타이틀을 몇 부 인쇄해야 할지, 예산을 얼마큼 배분해야 할지, 어떻게 마케팅할지, 언제 신간을 출시할지에 대해 효율적인 결정을 돕는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크레알로(Crealo)는 창작 분야의 저작권 및 로열티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한국 스타트업인 신티아(Synthya)는 오디오북 제작 비용을 현저히 낮출 수 있는 제품을 소개했다.
3. 인공지능을 통한 학술 출판의 혁신
이제 도서전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했던 ‘대담과 발표’를 중심으로 올해 도서전의 주요 이슈들을 살펴보자.
(1)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설정하는 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
약 10년 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 온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는 저널 추천, 표절 검사, 기사 자동 생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연구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스프링거 네이처의 콘텐츠혁신부 부사장 헤닝 쇼넨베르거(Henning Schoenenberger)는 “모든 연구자가 프롬프트 엔지니어(Prompt Engineer)이자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책 너머 -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위한 과정 설정〉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전했다.
2023년에 스프링거 네이처의 자회사 스프링거 가블러(Springer Gabler)가 출간한 『재무, 규정 준수 및 감사 분야에서의 GPT 적용 가능성(Einsatzmöglichkeiten von GPT in Finance, Compliance und Audit)』(알렉산더 휘쉬(Alexander Hüsch) 외 공저)은 이 책의 저자, 편집자, 전문가들이 함께 개발한 결과물로, GPT의 도움을 받아 출간에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프링거 네이처는 이를 통해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가 원고 작성 시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높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도서의 출간을 통해 GPT와 같은 인공지능 도구가 학술서 저술의 장벽을 낮출 수 있었지만, 고품질 콘텐츠를 위해서는 여전히 저자의 전문성과 출판사의 편집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스프링거 네이처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도서 제작자(AI Book Designer)’를 소개하였다. 이 도구는 책을 기획하고, 목차와 각 장의 내용을 구상하고, 참고 문헌 및 자료를 확인하고, 초안 작성과 원고 수정 등 원고를 완성하는 단계에 인공지능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가 검토 및 확인하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높은 수준의 정보와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에는 잘못된 글, 표절, 조작된 이미지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내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정보에 대한 검증 및 확인이 잘 수행된다면, ‘인공지능 도서 제작자’와 같은 도구는 연구자와 출판사가 더 많은 연구 결과를 출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스프링거 네이처는 인공지능 도구의 개발 및 적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잘못된 정보, 결과 도출 과정의 불투명성, 추후 닥칠 법적 문제의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저자 및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GPT 사용 가이드나 이미지용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등이 담긴 이 가이드라인은 위험한 장비를 처음 사용할 때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용 설명서와 같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인공지능 도구의 사용법과 장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스프링거 네이처는 시놉시스 및 도서 요약, 소셜 미디어 콘텐츠 생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실험, 데이터, 코드 작성, 수치 분석, 논문 작성 등에도 적극적으로 인공지능을 도입할 예정이다. 오디오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도구를 시험 중이지만, 이미지 생성은 저작권 침해, 가짜 이미지, 잘못된 이미지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현재는 사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스프링거 네이처는 “저희는 인공지능의 단점을 유의하며 사용하는 시작점에 있습니다. 세계의 연구자들과 함께 학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을 정의하고자 합니다.”라는 말을 통해, 안전하게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문화를 선도적으로 학술 분야에서 설립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2) 스마트한 출판을 위한 출판사 ‘와일리’의 인공지능 활용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7대 가족 기업인 다국적 학술 출판사 와일리(John Wiley & Sons)는 인공지능이 현재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파악했다. 먼저 와일리는 저자, 학회, 대학교, 도서관, 기업 등 파트너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전 세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연구자들과 직접 면담했고, 그 결과 많은 연구자들이 인공지능을 활발하게 사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와일리는 자사의 전문가 팀과 함께 43가지 ‘인공지능 활용 사례(Use Cases)’를 개발했다. 와일리의 접근 방식은 무언가 대단하고 엄청난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일상에서 쉽게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바로 도움을 받을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인공지능 도구 사용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연구자들을 설득하고, 인공지능 사용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와일리는 이 43가지 활용 사례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조사에는 158개국의 60개 분야에서 5천 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활용 사례는 ① 연구 주제 선정, ② 연구 진행, ③ 연구 결과 출간을 위한 준비, ④ 동료의 검토, ⑤ 논문의 홍보 및 공유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중 1) 연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고, 인공지능이 가장 잘 작동하는 활용 사례, 2)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인공지능이 잘 작동하는 활용 사례, 3)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싶지만, 인공지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활용 사례, 4) 인간의 능력이 필요한 활용 사례를 구분하였다.
이 조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알게 되었다.
①
69%의 연구자들은 2년 후 인공지능 도구 사용 능력이 필수 기술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②
연구자의 66%는 인공지능을 사용할 의향이 있지만,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법적 문제를 피하면서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70%의 연구자는 출판사가 이에 대한 정보와 가이드를 제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③
어떤 작업은 항상 사람의 판단력이 필요하다.
④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교육과 윤리적인 기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와일리는 위의 ②번 사항에 따라 윤리적이며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사용 가이드라인을 공유하여 연구자들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투명한 정보는 인공지능 모델이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예: 레딧 포럼, 위키피디아 데이터 등), 사용된 데이터셋의 업데이트 시기, 트레이닝에 사용된 자료의 저작권 처리와 보상 방안 등에 대한 정보 유무를 가리킨다.
또한, 연구를 위한 인공지능 도구 개발도 와일리의 목표이다. 하지만 연구자 커뮤니티와 출판생태계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사의 노력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와일리는 ‘와일리 인공지능 파트너십(Wiley AI Partnership)’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 혁신 기업 등과 협력하여 앞서 소개한 활용 사례를 현실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와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현재 목표 중 하나이다.
4. 인공지능과 저작권
(1) 인공지능으로 저작권을 거래하는 플랫폼 ‘크리에이티드 바이 휴먼’
크리에이티드 바이 휴먼(Created by Human, 인간 제작)은 저자와 출판사를 위한 인공지능 라이선스 플랫폼으로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 사용을 허가하는 ‘인공지능 저작권(AI Rights)’ 모델과 저작물의 참조만 가능하게 하는 ‘참조 저작권(Reference Rights)’이라는 두 가지 저작권 모델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원하는 옵션을 선택하고 두 모델의 승인 조건을 설정하면, 플랫폼이 생성한 계약서를 바로 승인할 수 있다. 각 저작권 이용 요청은 자동 혹은 수동으로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수수료는 저작권 거래 금액의 20%이다. 저작권 보상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글뿐만 아니라 사진, 비디오, 음악, 의료 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로 라이센싱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데이터 관련 파트너십은 초대형 기업에만 기회가 있고, 개인 창작자나 소규모 기업, 스타트업, 대학은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렵다. 또한 저작권 거래 없이 수집된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모델은 심히 편향된 데이터셋 때문에 허위 정보와 부정확한 결과를 생성해 낸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저작권 거래’로,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데이터셋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도구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드 바이 휴먼의 대표 트립 아들러(Trip Adler)는 이번 도서전에서 “사람이 만든 책은 앞으로도 번창할 것이며, 영어가 지배하는 데이터와 인공지능 도구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출판계가 대형 언어 모델에 크게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데이터 저작권 라이선싱이 책임감 있는 인공지능 사용의 열쇠
이번 도서전에서는 데이터 저작권과 관련해 여러 패널들이 “무엇이 여러분의 밤잠을 설치게 하나요?”, “여러분의 악몽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의 우려를 공유하며 토론을 진행했다. 참여자는 트레이시 암스트롱(Tracey Armstrong, 미국저작권허가센터(CCC) 대표), 조쉬 자렛(Josh Jarrett, 와일리 AI 성장 부문 수석 부사장), 아렌드 쿠스터(Arend Kuester,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퍼블리싱 전무 이사), 루이 심슨(Lui Simpson, 미국출판협회(AAP) 수석 부사장), 사라 테겐(Sarah Tegen, 미국화학협회(ACS) 수석 부사장 겸 최고 퍼블리싱 책임자)이였다. 주요 논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저작물이 지닌 저작권의 중요성
저자(창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관리하고 공정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데이터(셋)의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인공지능 및 저작권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형 언어 모델 제작사들이 저작권을 취득하지 않은 자료를 언어 모델의 트레이닝에 사용해 고소당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제는 사용 데이터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루이 심슨은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권에 대해 협상하지 않으면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기회를 잃는 것은 물론, 저작권 허가 혹은 불허에 대한 선택권 자체를 잃는다.”고 강조했다.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인공지능에 대한 저작권 제한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펭귄랜덤하우스는 자사의 책이 AI 시스템 훈련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작권 페이지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기업에 라이선스 이용을 무료로 허용하는 다른 주요 출판사 및 독일과는 다른 입장으로, 유럽과 미국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제한은 인공지능 개발 업체가 고품질 콘텐츠를 구매토록 촉진할 수 있다.
② 올바르게 구축된 알고리즘과 프레임워크의 필요성
인공지능은 연구 속도를 극적으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대형 언어 모델이 올바른 정보로 훈련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가령, 알파벳(Alphabet) 자회사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폴드2(AlphaFold2)는 대규모 데이터셋을 사용하지 않고, 큐레이션된 콘텐츠로 훈련되어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본 프레임워크는 무분별하게 수집된 데이터(소위 더러운 대형 데이터셋)을 이용하여 훈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도 직접 만들지 않았다면 자사의 인공지능 도구가 깨끗하다고 장담(혹은 광고)할 수 없다. 자사의 인공지능 도구가 저작권을 습득한 데이터로 올바르게 구축(Fairly Trained)되었는지 질문해 보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라는 문장에 저작권과 데이터 이슈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지저분한 데이터를 치우려고 깨끗한 데이터를 쓰곤 하는데, 처음부터 저작권을 취득한, 양질의 데이터를 사용하면 데이터 클렌징에 비용과 시간을 들일 필요 없이 데이터의 질이 높아지며, 클렌징 이슈에 대한 염려가 사라질 수 있다.
③ 데이터셋의 업데이트 주기와 정보 접근 권리
다양한 맥락에서 생성된 여러 언어 모델이 각기 다른 진실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참여자는 “사용자는 어떤 내용의 데이터가 인공지능 도구에 사용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출판사는 사용자가 이 정보를 확인하도록 하여, 올바른 인공지능 개발 및 사용 문화와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
④ 품질, 신뢰도, 투명성의 중요성
현재는 고위험 시대에 인공지능 도구의 도입 속도를 높이면서 품질과 신뢰도,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시점이다. 실험하고, 실수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책임감 있는 인공지능 사용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5. 오디오북 시장의 찬란한 미래
소수의 대형 학술 출판사들이 출판계의 인공지능 적용 사례를 혁신하며 경쟁하고 있다면, 향후 10년간 출판계에서 가장 큰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바로 오디오북이다. 마켓어스(Market.us)의 2024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2023년 53억 달러에서 2032년 약 391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2024년부터 2033년까지 매년 25.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전망 덕분에 올해 도서전의 전문가 프로그램 중 오디오북을 주제로 한 프레젠테이션과 패널 토크의 비율이 높았고, 도서전의 대형 광고도 대부분 오디오북과 연관되어 있었다.
올해 도서전 행사장 입구에 있는 메세투름(Messeturm) 건물 앞에는 경쾌한 색의 스포티파이(Spotify)의 오디오북스(AUDIOBOOKS) 광고 기둥이 도서전 깃발보다 먼저 눈길을 끌었다. 4.1홀의 넓은 복도에는 큰 광고판에 경쾌한 색의 삽화로 광고하는 스포티파이의 오디오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3홀 앞 야외에는 약 6미터 높이의 오더블(Audible) 헤드폰이 설치되어 있어, 방문객이 설치물 중심에서 몇 권의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2025년 후반에 새롭게 출시될 『해리포터(Harry Potter)』(J. K. 롤링(J. K. Rowling), 블룸즈버리 퍼블리싱(Bloomsbury Publishing), 1997) 시리즈 오디오북 광고도 볼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야외 입구(좌),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는 오더블의 야외 헤드폰 설치물(우)
(1) 최고의 오디오북을 제작하려는 오더블
오디오북 출판의 핵심은 내레이션이다. 53개국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최대의 오디오북 제작 및 소매업체인 오더블이 진행한 패널 토크 〈오더블 풍경: 오디오의 미래, 청취자층 구축, 그리고 틀을 깨는 저자 만들기(Audible Landscape: What’s next for audio, building audience and creating breakout authors)〉에서는 오디오북 제작 과정 중 내레이터가 어떻게 연기하며, 청취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주의하는지 등의 대화를 통해 인간이 내레이션한 오디오북의 가치를 명확히 전달했다. “스토리텔링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며, 인간의 장점과 실수 모두를 그대로 듣는 것 자체가 가치”라는 한 연사의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이 패널 토크에는 작가 겸 내레이터인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ELC 프로덕션 설립자 에린 콕스(Erin Cox), 로맨틱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 리앤 슬레이드(Leeanne Slade), 그리고 오더블의 유럽 콘텐츠 책임자인 오렐리 드 트로이예(Aurelie de Troyer)가 참여했다. 이들은 연기자이자 내레이터가 “책을 공연의 장으로 바꾸고,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이를 통하여 환상적인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고 전하면서 더 많은 오디오북을 듣고 싶어 하는 청취자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수요가 크고 성장 전망이 밝지만, 현재 고품질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높은 비용과 시간,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스타트업 신티아는 오디오북 제작 비용을 약 1/50로 낮추며, 10분 만에 원고를 오디오북으로 전환하는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신티아는 마스터클래스에서 자사의 서비스를 소개하였고, 도서전에서 출판사들의 많은 문의를 받았다고 한다. 신티아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출간된 약 400만 권의 도서 중 오디오북으로 제작된 도서는 고작 2%에 불과했다.
(2) 전 세계에 판매하는 한 권의 오디오북
한편 펭귄랜덤하우스 오디오(Penguin Random House Audio)의 대표 아만다 다시에르노(Amanda D'Acierno)와 오더블의 글로벌 출판사 및 파트너 책임자 리 재릿(Lee A. Jarit)은 각자 자사의 오디오북을 전 세계에 판매하기 위한 국제화 및 현지화 전략을 공유하며, 오디오북만의 독특한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새로운 오디오북 독자층을 유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한 번도 오디오북을 듣지 않았던 이들을 오디오북 청취로 이끌었고, 이후 아동 오디오북의 판매가 활발해졌다. 특히, 18세~24세를 타깃으로 하는 오디오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 독자층은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앱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훌륭한 내레이션과 퍼포먼스는 오디오북을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콘텐츠와 내레이션의 수준이 높으면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든 이야기를 듣고 즐길 수 있다. 특히 ‘오디오북 오리지널’은 종이책이 없고 오디오북으로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새로운 청취자가 유입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학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더욱 활발하게 적용될 오디오북 분야에서는 내레이션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발견과 추천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며, 이 기능은 방대한 양의 오디오북 중에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도록 돕는다.
한편, 항공편 문제로 본 토크에 참석하지 못한 보니에르 북스 영국(Bonnier Books UK)의 오디오 무역 및 비즈니스 개발부 이사인 존 와트(Jon Watt)는 메모를 통해 다음의 말을 전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오디오 퍼블리셔스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오디오북 내레이션에 적용된 다양한 인공지능’을 사용자에게 알리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는 인공지능 목소리와 관련된 두 가지 라벨의 표기에 대한 제안인데, 첫 번째는 ‘인공지능 목소리(AI Voice)’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다수의 목소리에서 생성된 목소리이다. 두 번째는 ‘공인 음성 복제본(Authorized Voice Replica)’으로, 목소리 사용을 허가받은 사람의 목소리를 인공지능에게 샘플로 제공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목소리이다. 참고로 한국 업체인 신티아도 후자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앞서 언급한 마스터클래스 온라인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한 권의 오디오북을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두 오디오북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오디오와 오더블은 오디오북 플랫폼과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하기 때문에 플랫폼이 있는 곳이면 전 세계 어디서나 오디오북을 판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때 출판사는 오디오북이 판매되기 적절한 지역을 선택하거나 현지화할 수 있다. 이 경우 한 지역의 방언으로 녹음하거나 현지의 유명 내레이터가 연기할 수 있는데, 전문 내레이터는 그야말로 ‘책을 살려내는 것’이라며 이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가 직접 녹음한 그녀의 오디오북 자서전은 그녀가 청취자 앞에서 직접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전한다는 것이다. 종이책이나 전자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오디오북만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오더블은 오디오북이 확산되지 않은 지역을 위해 ‘올 유캔 리슨(All You Can Listen) 모델’이라는 새로운 구독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는 유통되는 전체 오디오북의 수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마음껏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사용자들이 콘텐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반면, 오디오북 출간 권수가 많은 지역에서는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 한 달에 들을 수 있는 권수가 제한된 서비스, 낱권 구매 서비스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역의 특성에 맞는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 데이터가 기획하는 오디오북 마케팅
이 패널 토크는 북비트(BookBeta), 하퍼콜린스(HarperCollins), 비트 테크놀로지(Beat Technology), 제브랄루션(Zebralution), 빌란디아(Bilandia)가 참여하였다. 연사들은 한 콘텐츠가 어떤 플랫폼에서 인기가 높거나 낮은지, 이벤트가 진행될 때 사용자들이 어떻게 앱을 이용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각 사용자에게 맞춤형 콘텐츠 추천을 위해 측정 데이터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 데이터가 자사의 사용자를 이해하는 최고의 도구라고 강조했다. 또한, 하나의 오디오북이 평균 오디오북에 비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도 적극적으로 분석하는데, 이들은 모두 활발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오디오북은 드라마 몰아보기처럼 ‘몰아듣기(Binge Listening)’ 경험이 가능한데, 숏폼, 오디오북, 오리지널 오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듣기 콘텐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레이터, 타깃 연령 등에 맞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오디오 콘텐츠는 기존의 도서 구매자나 청취자 외의 사용자에 도달할 수 있게 돕는데, 이는 특히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이 긴 젊은 사용자들의 더욱 흥미를 끈다.
6. 성황리에 막을 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번 도서전은 153개국에서 약 11만 5,000명의 전문가 방문객과 약 11만 5,000명의 일반 방문객을 유치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23년에 130개국에서 10만 5,000여 명의 전문가와 11만여 명의 일반 방문객을 유치했던 것과 비교하면 작년보다 평균 약 7% 증가한 수치이다. 이번 도서전은 인공지능, 오디오북, 탄소 저감, 뉴어덜트(New Adult) 분야 등 새로운 주제의 논의를 통해 글로벌 출판산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변화하는 출판산업의 모습을 빠르게 포착하고,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한국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한 이 시기를 잘 활용하여 국내 출판 저작권 시장에도 훈풍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등 1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KPIPA 수출 코디네이터’의 [글로벌 출판 동향] 보고서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바로가기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박소진 KPIPA 독일 수출 코디네이터 평등, 편집 디자인, 사람, 책을 마음에 담은 그래픽·UX 디자이너이다. 책, 글쓰기, 트렌드에 관한 독일 출판계 동향 보고서를 쓰고 있으며, 책에 관한 팟캐스트를 준비 중이다. 디자인, 책, 기술 사이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정보, 권리,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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