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반즈앤노블 창립자,
김예진(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대리)
2024. 11+12.
미국의 유명 서점 반즈앤노블(Barnes & Noble)의 창립자이자 자선가 레너드 리지오(Leonard Riggio)가 지난 8월 27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50개 주 전역에 수백 개의 유통채널과 700개의 이상의 매장은 물론, 기네스 세계 기록에도 오를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인 반즈앤노블을 운영했던 레너드 리지오. 그는 현대 오프라인 서점의 전형을 완성한, 그리고 출판시장에 그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쳤던 사업가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단순한 소매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책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인생을 돌아본다.
레너드 리지오(Leonard Riggio) 일러스트
택시 기사의 아들, 서점을 열다
레너드 리지오는 1941년 2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재봉사 어머니와 택시 운전사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는 한 때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개인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본인도 그를 닮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와 매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존중과 배려를 강조했는데, 이는 리지오가 서점의 왕이 된 이후에도 그의 가장 중요한 경영 철학이 되었다.
학창 시절 2년을 월반한 그는 공립 특수목적고등학교인 브루클린 기술 고등학교(Brooklyn Technical High School)에서 미술과 건축, 그리고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졸업 후 뉴욕 대학교(New Yorik University) 금속공학 야간 과정에 등록하였고, 낮에는 교내 서점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로빈 후드(Robin Hood)』, 대니얼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Robbinson Crusoe)』,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The Tragedy of Hamlet)』, 허먼 멜빌(Herman Melvill)의 『모비 딕(Moby Dick)』 등 만화로 된 고전문학부터 시작하여 이후 토마스 만(Thomas Mann),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등 문학 정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책의 세계, 그리고 서점 운영에 대해 깊이 빠져들었다.
리지오가 대학에서 읽었던 고전문학 만화판. 왼쪽에서부터 『로빈 후드』, 『로빈슨 크루소』, 『모비 딕』
이후 1965년, 24살의 레너드 리지오는 뉴욕 대학교에 다닌 지 2년 만에 중퇴를 결심했고, 그동안 저축했던 5천 달러를 가지고 본인의 첫 서점 스튜던트 북 익스체인지(Student Book Exchange, 이하 SBX)를 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SBX는 리지오가 일했던 뉴욕 대학교의 서점처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재와 도서를 판매했다. SBX에서 리지오는 본인이 뉴욕 대학교 서점에서 근무하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개선했고, 그의 전략은 당시 대학생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반즈앤노블 인수와 출판시장에 던진 도전장
SBX 창업으로 큰 수익을 냈던 레너드 리지오는 이후 뉴욕에 추가로 4개의 지점을 열었다. 그리고 1971년, 그의 사업 경험과 수익을 내세워 1.2만 달러(현재 약 9.3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 반즈앤노블을 인수했다. 당시 반즈앤노블의 경영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1964년, 반즈앤노블의 기초를 다졌던 존 반즈(John Barnes)의 사망 후 도매 실적의 급격한 하락과 무리한 확장 과정에서 열었던 점포 대부분이 폐업하면서 맨해튼 5번가에 플래그십 스토어 하나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2014년에 문을 닫은 맨해튼 5번가에 반즈앤노블 플래그십 스토어
반즈앤노블 인수 후, 리지오는 정가제를 기반으로 한정된 재고만을 쌓아두고 팔았던 서점의 기존 판매 방식과는 다르게, 대형마트와 같은 할인제, 그리고 박리다매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책을) 정가를 주고 사셨다면, 반즈앤노블에서 구매한 것이 아닙니다(If you paid full price, you didn’t get it at Barnes & Noble).”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책에 큰 폭의 할인을 제공했다. 이 외에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베스트셀러 중 신간에 40% 할인을 적용하고, 절판된 책을 복간하여 통신판매로 저렴하게 판매하였으며,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뉴욕타임스 북 리뷰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프로모션과 행사를 기획했다.
인수 후 5년도 지나지 않아, 반즈앤노블의 수익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리지오는 반즈앤노블의 확장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1986년, 그는 네덜란드 유통업계 거물인 안톤 드리스만(Anton Dreesmann)을 설득하여 큰 투자를 받았고, 1987년 당시 미국에서 쇼핑몰을 중심으로 79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던 가장 큰 도서 유통체인인 달튼 북셀러(B. Dalton Bookseller)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스크라이브너스 북스토어(Scribner’s Bookstore), 더블데이 북스토어(Doubleday Book Stores)와 같이 쇼핑몰에 입점한 작은 서점들을 계속 인수해 나갔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출판인들의 반발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금전적, 심리적 부담감을 덜고,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에는 성장하고, 공부하고, 독서를 원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뉴요커들이 자신들이 네브래스카주의 링컨시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지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웃기다고 생각합니다1).”라고 말할 정도로, 더 많은 독자가 책을 읽기를 바랐던 것이다.
서점계의 ‘스타벅스’ 반즈앤노블
그런 리지오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그가 고안한 대형 서점 인프라에서 드러났다. 리지오는 1990년대 반즈앤노블의 대항마로 떠오르던 보더스(Borders) 서점의 규모를 보고,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서점에 머무르며 책을 즐길 수 있는 큰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리지오는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며 쇼핑몰 위주의 작은 서점들을 인수하는 이전의 전략 대신, 사람들이 책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서점마다 푹신한 의자와 따뜻한 조명을 설치했고, 내부에 스타벅스를 입점시키는 등 사람들이 책을 읽고, 커피 한 잔에 간단하게 책에 대한 담소도 나눌 수 있도록 서점을 탈바꿈시켰다.
누구나 환영받는 곳, 어떠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즐길 것이 넘쳐나는 곳, 책뿐만 아니라 독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곳. 리지오가 추구한 서점은 이러했다. 리지오의 반즈앤노블은 서점이 “선민의식이 가득하고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는 곳2)”이라는 인식을 부수었다. 매출 또한 2배 이상 늘었다. 서점이 모두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즐거운 곳이며, 동시에 수익성 있는 사업임을 증명한 것이다.
독립서점의 적, 그리고 아마존의 등장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루어진 반즈앤노블의 폭발적인 성장이 모두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서점이 없는 동네라면 무조건 점포를 낸 반즈앤노블로 인해 지역만의 독특한 독립서점이 자라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몇몇 독립서점 점주들은 반즈앤노블의 획일화된 서점 인테리어와 판매 전략으로 서점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지나치게 큰 할인 폭으로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출판사에 대해 갑질을 한다는 비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1998년 톰 행크스(Tom Hanks)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의 소재가 될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반즈앤노블과 레너드 리지오는 독립서점과 비평가, 그리고 독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Amazon) 또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반즈앤노블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하여 리지오 역시 1997년에 온라인 서점인 반즈앤노블닷컴(BarnesandNoble.com)을 론칭했고, 2002년에는 온라인 사업을 담당하던 자신의 형제 스티븐 리지오(Stephen Riggio)에게 반즈앤노블 CEO의 자리를 맡겼다.
2002년 이후에도 레너드 리지오는 반즈앤노블의 이사로 남아 계속해서 경영에 참여하였지만, 출판시장의 빠른 변화로 인한 어려움은 지속되었다.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Kindle)에 대응하기 위해 출시한 누크(NOOK)의 실적은 부진했고, 다수의 독립서점과 작가들의 소송 또한 이어졌다. 또한 2010년 이후에는 월든북스(Waldenbooks), 크라운북스(Crown Books) 등 오랫동안 미국 출판시장의 큰 축을 담당했던 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반즈앤노블 역시 2014년에는 맨해튼 5번가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영업을 종료했다. 그리고 2019년, 레너드 라지오와 경영 이사진들은 경영 악화에 빠진 반즈앤노블을 헤지펀드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Investment Management)에 매각했고,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워터스톤즈(Waterstones Booksellers)의 전무이사였던 제임스 던트(James Daunt)를 새로운 CEO로 영입하였다.
레너드 리지오의 유산
레너드 리지오는 미국 출판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사람이지만, 동시에 예술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뉴욕시 비컨의 디아 비컨(Dia Beacon) 박물관과 예술 공원 설립을 후원하였으며, 테네시주 클린턴시의 아동보호기금 부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는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 도서관 설립을 위해서도 1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에 더불어 해당 부지의 예배당 건축 기금도 기부하였으며, 설계와 건축에는 아시아계 미국인 건축가인 마야 린(Maya Lin)을 추천하였다.
그는 출판계와 뉴욕의 상류층 중에서도 드물게 직원들의 월급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1993년 반즈앤노블 뉴욕거래소 상장 시에도 모든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등 자신의 사업이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님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리지오는 항상 모두에게 더 많은 책을 소개하고자 했으며, 자신의 최우선 순위는 반즈앤노블의 주주가 아니라 독자임을 말해왔다3). 반즈앤노블의 매각 후 화려한 복귀를 이루어 낸 제임스 던트의 성공 뒤에는 리지오가 말해왔던 서점 의미로의 회귀가 있었다. 낡은 인테리어를 보수하고, 독서와 크게 관련이 없는 상품 판매는 중지하는 등 다시 서점을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독자들이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레너드 리지오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속히 변화하던 시대 속에서 아날로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서점’과 ‘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대에 맞서 싸운 사람이다. 또 그는 이런 시대에 적응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했던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레너드 리지오를 서점 사업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책과 예술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이 문화를 누릴 수 있기를 항상 꿈꿔왔던 인물이었다. 세대를 거듭하여도, 책과 서점에 대한 레너드 리지오의 사랑은 반즈앤노블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될 것이다.
1)
Financial Times, 「Leronard Riggio, bookseller: 1941-2024」, https://www.ft.com/content/0551a3a9-600d-4add-858c-d2986e8dcf5a
2)
Enterpreneur, “Leronard Riggio”, https://www.entrepreneur.com/growing-a-business/leonard-riggio/197686
3)
Washington Post. “Leonard Riggio, who built Barnes & Noble into a juggernaut, dies at 83”(2024.08.28.), https://www.washingtonpost.com/obituaries/2024/08/28/leonard-riggio-dead-barnes-noble/
김예진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대리 대학에서 아시아학을,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스타워즈와 뮤지컬을 좋아하며, 디아스포라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의 에이전트로서 우수한 국내외 문학 작품들을 국내와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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