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프랑스 출판 시장의 현재와 미래
강미란(프랑스 고등학교 교사, 프리랜서 번역가, KPIPA 프랑스 수출 코디네이터)
2024. 7+8.
프랑스 출판 시장의 오늘
프랑스 국립도서센터의 〈2023 프랑스독서보고서(Les Français et la lecture en 2023)〉에 따르면 지난 2년간 프랑스에서는 독서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관심이 높아진다고 해서 독서량이 자동적으로 느는 것은 아니다. 또한 출판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특히 작년과 올해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프랑스 출판 시장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잇값은 물론 인쇄 및 제본비의 상승, 임금 비용 상승, 경제 침체로 인한 구매력 감소, 독자들의 중고책 구입 증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 몇 년간 프랑스 출판계는 침체기를 보내고 있다.
〈2023 프랑스독서보고서〉
특히 만 15~24세 사이인 청소년과 청년층의 독서율은 오히려 팬데믹 이전보다 낮아져 출판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의 독서 습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의 독서율이 낮아진 이유로는 대표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을 들 수 있겠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인 이 세대는 스마트폰, 태블릿PC,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를 파편적으로 접하고, 독서보다는 컴퓨터 또는 비디오게임 등을 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25~34세 사이의 독자들은 책을 많이 구매하여 읽고 있으며, 주로 읽는 책은 각종 소설류, 자기계발서, 실용서적 순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으로 독서율 하락세를 보였던 독자층이 2030세대였다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아주 긍정적인 결과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관심이 곧바로 실행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층과 마찬가지로 독서보다는 다른 여가 활동을 선호하기도 하며,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독서 시간을 만들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현상에 맞서 정부, 시민단체, 출판계 등이 손을 잡고 독서 문화 정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10만여 명이 참여하는 파리도서전(Festival du Livre de Paris)을 비롯하여 앙굴렘국제만화축제(Festival de la Bande Dessinée d'Angoulême), 몽트뢰유아동도서전(Salon du livre et la presse jeunesse de Montreuil) 등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도서 이벤트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출판계는 책 마케팅에 관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SNS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SNS 중에서도 최근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플랫폼이 바로 ‘틱톡(TikTok)’이다. 여기에 독자들이 모여 만든 책 관련 커뮤니티가 바로 ‘북톡(BookTok)’인데, 해시태그 #BookTok은 이미 약 600억 개 이상의 동영상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북톡커(BookToker)들의 영향력도 출판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북톡챌린지가 유행하는 것은 SNS와 독서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게 만드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유튜브 플랫폼을 통한 ‘북튜브(BookTube)’가 먼저 인기를 끌었고, 이후 인스타그램 플랫폼을 통한 ‘북스타그램(Bookstagram)’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북톡’도 ‘북튜브’, ‘북스타그램’과 같이 ‘틱톡’ 플랫폼과 ‘책’의 결합으로 생겨났으며, 틱톡 내 문학 중심 커뮤니티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틱톡은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공유 수나 댓글 수가 많은 게시물을 선호하거나 게시 후 초반에 반응 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행할 가능성이 보이지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해시태그에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꼭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영상물만 계속해서 인기를 끌지도 않는다. 또한 게시물을 시간순으로 표시하지 않아 며칠이 지난 영상이 피드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에 일반 사용자 사이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북톡커들도 피드에 나타나고, 짧은 영상 덕분에 시청 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북톡은 독서, 창의성,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합된 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있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어떤 장르가 인기일까?
최근 프랑스에서 인기가 급증한 문학 장르는 바로 ‘만화’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 불어권 만화를 일컫는 방드데시네(Bande Dessinée)부터 일본식 만화인 ‘망가(Manga)’,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등이 포함된다. 일명 ‘망가(Manga)’라 불리는 일본식 만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등이 포함된다. 만화는 2024년 프랑스에서 전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문학 장르 중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국립도서센터의 〈2023 프랑스독서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48%가 만화를 읽은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1년에 비해 무려 14%p 증가한 수치다. 특히 만 25세 이하 연령층에게는 만화책의 인기가 11%p나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기는 만화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화는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예술의 결합으로서 다양한 연령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식 방드데시네는 깊이 있는 스토리와 독특한 예술적 스타일로, 일본식 망가는 다양한 장르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만화가 성장한 이유로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웹툰의 프랑스 시장 진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쉽게 다양한 만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화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프랑스 만화의 인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만화와 마찬가지로 최근 프랑스 출판 시장의 트렌드가 있다면 바로 뉴로맨스(New Romance) 소설이 아닐까 한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에서는 뉴로맨스 시장이 크게 발전하고 있는데, 뉴로맨스 전문 서점의 등장과 다양한 페스티벌 등을 통해 그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E. L. 제임스, 2011)의 출판사 제이씨 라테(JC Lattès)가 오랫동안 뉴로맨스 틈새시장을 장악해왔지만, 2015년부터는 안나 토드(Anna Todd)의 『애프터(After)』(2014) 시리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이를 출판한 위고 출판사(Hugo Publishing)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위고 출판사와 같은 뉴로맨스 전문 출판사는 물론, 대형 출판사들도 뉴로맨스 컬렉션을 통해 프랑스어권인 캐나다 퀘벡 시장까지 진출하여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 『애프터』
뉴로맨스 소설은 주로 만 18~30세 독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20세기 할리퀸 로맨스(Harlequin Romance)가 가족이나 이웃 중심의 플롯을 자주 사용했던 것과 달리 뉴로맨스 소설은 다양한 직업 세계, 학교 이야기, 화려한 대도시의 모습 등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삶을 반영한다. 특히 뉴로맨스는 뻔하고 일률적인 내러티브(Narrative) 공식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뉴로맨스 작가 대부분이 여성이고, 젊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책의 중심에는 항상 여성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자세하고 뚜렷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후로 더욱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다양한 성적 성향이 소개되기도 하며, 이 장르의 발달로 문학에서 성적 묘사에 대한 터부가 줄어들고 에로틱 문학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경향도 있다.
뉴로맨스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데에는 온라인 출판이 큰 기여를 했다. 처음에는 온라인에서만 읽던 책들이 최근 몇 년간 특히 표지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쓴 종이책으로 출판되어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안나 도트의 『애프터』도 ‘왓패드(Wattpad)’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먼저 선보였다가 종이책으로 출판한 것이 한 예이다. 또 독서 커뮤니티도 뉴로맨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SNS, 특히 북톡이 프랑스인들이 다시 책과 친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뉴로맨스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북톡커들의 활약으로 프랑스에서 뉴로맨스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출판의 미래
작년부터 경제 침체가 계속되면서 프랑스의 신간 출판량은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계속해서 일반 판본보다는 문고판이 더 사랑을 받을 것이고, 새 책보다는 중고책이나 대여 시스템에 독자들의 눈이 향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출판사가 소개하는 유명 작가들의 베스트셀러는 계속해서 잘 팔릴 것이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소형 출판사나 신인 작가들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SNS를 통해 개인 홍보도 가능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고, 점점 온라인에서 이름을 알리는 창작자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더 풍부해진다는 비평가들의 예견처럼 새로운 창작자들과 출판 종사자들이 내용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도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제 프랑스의 출판계는 세대교체와 함께 가치관도 바뀌고 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출판계를 주도하게 될 출판 관계자들은 앞서 말한 내용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창작자와 창작 환경에 대한 존중을 주요 가치로 삼고 있다. 이들은 출판계가 더 책임 있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프랑스 출판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강미란 프랑스 고등학교 교사, 프리랜서 번역가, KPIPA 프랑스 수출 코디네이터 프랑수아 마장디 고등학교 교사, 라레유니옹 대학 강사 및 언어교육학 연구원, 번역가. 다수의 한국 만화를 프랑스어로 옮겼고, 프랑스어 소설과 그래픽 노블을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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