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3  202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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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의 아버지, 하늘의 별이 되다

 

 

 

김수연(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

 

2024. 5+6.


 

일본 만화계의 거장,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닥터 슬럼프(Dr.スランプ)』(슈에이샤(集英社), 1980),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슈에이샤, 1984)의 작가로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3월 1일,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향년 68세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올해는 『드래곤볼』 연재 40주년이 되는 해로, 다양한 이벤트와 기념 작품의 발표가 예정되었을 터라 많은 이들이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그는 올해 가을에 후지 TV에서 방송 예정이었던 기념 시리즈 〈드래곤 다이마(ドラゴンボールDAIMA)〉의 스토리부터 캐릭터 디자인, 제작까지 깊이 관여하는 등 아직 일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지만, 갑자기 닥쳐온 병마에 미처 작품의 공개를 보지 못한 채 유작을 남기고 떠났다.

 

2024년 『드래곤볼』의 신작 애니메이션 <드래곤 다이마>(출처: 토에이 애니메이션 공식 유튜브)

2024년 『드래곤볼』의 신작 애니메이션 〈드래곤 다이마〉(출처: 토에이 애니메이션 공식 유튜브)

 

 

토리야마 아키라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그림체와 기존의 일본 만화계의 뒤집는 작법을 구사했다. 특히 그림의 의태어나 효과음 등에 통상적으로 많이 사용하였던 가타카나(일본의 외래어와 외국어를 표현하는 문자)가 아닌 알파벳 그대로 표현했던 방식이나 등장인물들을 여러 가지 구도를 사용해서 그려낸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화되었다. 그러한 그의 재능을 간파했던 당시 『주간 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슈에이샤, 1968)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鳥嶋和彦)의 선구안 덕분에 토리야마 작가는 차세대 만화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출처: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인스타그램)

 

 

당시 『주간 소년 점프』는 신입 만화 작가 발굴을 위해 매월 만화 상을 개최했는데, 토리야마 작가는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토리시마 편집자의 눈에 띄어 1년간 500페이지 이상의 원고를 폐기당하는 등의 고된 트레이닝을 거쳐 1978년 단편 만화 「원더 아일랜드(ワンダーアイランド)」로 데뷔했다. 당시에 데뷔작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닥터 슬럼프』와 일본의 만화의 정점인 『드래곤볼』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일본 만화를 전 세계로 발신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만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토리야마 작가의 가장 대단한 점은 만화가로 활동했던 40년간 단 한 번도 마감 기한을 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유명 작가가 되고 나서도 도쿄가 아닌 본인의 고향인 나고야(名古屋)에서 만화를 계속 연재해왔는데, 자신의 원고가 늦어지면 업무적으로 얽혀 있는 사람들과 독자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하여 원고를 항공편을 통해 하네다(羽田)로 보내는 등 철두철미하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근면 성실한 노력파 만화가로서 재능뿐만 아니라 본인의 사람들도 살뜰하게 살필 줄 아는 이 시대의 리더였던 것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이 시대의 큰 별을 잃은 세계의 독자들과 일본 국민의 상실감이 이해되는 대목으로, 본 글에서 그의 삶의 족적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전 세계에 일본의 만화(まんが, MANGA)를 알린 장본인

 

토리야마 작가의 대표작을 뽑으라면 단연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닥터 슬럼프』는 누계 발행 부수 3000만 부를 기록했으며, 『드래곤볼』은 2억 6000만 부, 그가 원화가로 참가한 게임 『드래곤 퀘스트(ドラゴンクエスト)』(스퀘어 에닉스, 1986) 시리즈는 8800만 부를 기록했다. 『닥터 슬럼프』는 토리야마 작가의 첫 장편 연재만화로 최초의 히트작이다. 귀여운 외모를 가졌으나 괴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로봇 노리마키 아라레(則巻アラレ)와 아라레를 만든 괴짜 박사 노리마키 센베(則巻千兵衛), 노리마키 가지라(갓짱, 則巻ガジラ), 키미도리 아카네(木緑あかね)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매회 주제가 바뀌는 옴니버스 만화의 흡입력 있는 스토리가 인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닥터 슬럼프』는 연재 다음 해부터 〈닥터 슬럼프 아라레짱(Dr.スランプアラレちゃん)〉(후지TV, 1981~1986)이라는 타이틀로 애니메이션화되었으며, 캐릭터 아라레가 사용하는 가공의 언어가 크게 유행하며 1981년도 유행어로 뽑히기도 했다.

 

『닥터 슬럼프』 완전판 1~4권

『닥터 슬럼프』 완전판 1~4권

 

 

1984년 5월 『닥터 슬럼프』 연재를 종료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드래곤볼』의 연재를 시작하였다. 『드래곤볼』은 잘 알려져 있듯이 소년 손오공이 7개의 드래곤볼을 모으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이후에는 성장한 손오공과 동료들과의 우정, 다툼 등을 그려내며 단단한 스토리 구성, 화려한 그림체를 통하여 많은 캐릭터로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드래곤볼』은 전 세계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누계 발행 부수 2억 60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전작인 『닥터 슬럼프』를 뛰어넘는 히트를 기록했으며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미디어믹스 작업을 통하여 전 세계에 일본의 콘텐츠를 인식시키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닥터 슬럼프』 완전판 1~4권

『드래곤볼』의 캐릭터(출처: 『드래곤볼』 공식 사이트)

 

 

토리야마 작가의 별세 후 내각 관방장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는 3월 8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그의 부고를 언급하며 “(토리야마의 작품에 의해) 일본의 콘텐츠가 폭넓게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일본의 소프트파워 발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라고 그를 죽음을 애도했다. 그만큼 그가 일본 만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아리가토(ありがとう) 토리야마 아키라”, 그를 추모하는 일본 현지

 

토리야마 작가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정계는 물론이거니와 만화계, 연예계, 스포츠계의 많은 공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영원한 콤비이며 그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토리시마 편집자에게 많은 시선이 쏠렸는데, 작법이 채 다듬어지지 않았던 초기 토리야마 작가를 키워내 지금의 작화 기초를 완성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닥터 슬럼프』의 원래 주인공은 슬럼프 박사이며 아라레는 단 1화만 등장하는 캐릭터였다고 한다. 토리야마 작가는 슬럼프 박사를 주인공으로 고집했으나, 당시 남자 주인공 일색이던 만화판에 여자 주인공 캐릭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토리시마는 아레라를 주인공으로 낙점했고 이 둘은 쉽사리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각각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만화를 그린 후에 독자 앙케트를 통해 아라레가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토리야마 작가는 이후 인터뷰에서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토리시마 씨가 옳았다.”라며 『닥터 슬럼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도 했다.

 

『드래곤볼』의 극적인 상황을 만든 것 또한 토리시마의 아이디어였다. 『드래곤볼』은 연재 초기에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토리시마는 주인공인 손오공의 매력이 적은 것을 요인으로 보고 토리야마 작가와 스토리 구성을 철저하게 다시 진행하였다고 한다. 수행을 통해 강해진 주인공 손오공의 등장과 함께 천하제일 무도회의 설정이 생기면서 『드래곤볼』의 인기가 브이곡선을 그리며 급상승했고, 독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토리야마 작가의 사후 토리시마 편집장은 코멘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그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작년에 낸 책 『닥터 마시리토의 최강만화술(Dr.マシリト最強漫画術)』(슈에이샤, 2023)에서 함께 일한 것이 마지막 일이 되었습니다. (생략) 45년에 걸쳐 감사했습니다. 토리야마 씨, 당신은 최고의 만화가였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나고야에서 열린 토리야마 작가의 캐릭터 코스프레 행사

나고야에서 열린 토리야마 작가의 캐릭터 코스프레 행사(출처: 〈중일신문(中日新聞)〉)

 

 

그 외에도 그의 고향인 나고야에서는 작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코스프레 대회가 열렸다. 토리야마 작가도 자주 방문했다고 하는 나고야시 나카구(中区)의 오스 상점가(大須商店街)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서 코스프레 복장을 한 참가자들이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인기 캐릭터로 분장하여 포즈를 취하자 몰려든 관객들은 큰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가장 일본다운 추모 방식으로 작가의 죽음을 슬픔이 아닌 축제 형식으로 풀어내는 유쾌한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일본 만화의 거장을 기리는 일본 만화계

 

일본의 만화계는 큰 인물을 떠나보낸 만큼 가장 상실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그의 부고를 홈페이지에 알렸던 출판사 슈에이샤 편집부는 “갑작스러운 부고에, 슈에이샤·편집부 일동 큰 슬픔에 싸여 있습니다.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샌드랜드(サンドランド)』(슈에이샤, 2000) 등 선생님이 그린 만화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읽히고 사랑받아 왔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만들어 낸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과 그 압도적인 디자인 센스는 수많은 만화가·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선생님의 위대한 공적을 찬양하고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며 그를 추모했다.

 

『원피스(ワンピース)』(슈에이샤, 1997)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尾田栄一郎)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옵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동경해서 처음 저의 이름을 불러준 날도 기억하고 있어요. (생략) 토리야마 선생님의 창의성이 풍부한 세계에 경의와 감사를 담아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가 선생님이 생각하신 대로 유쾌한 세계이길 바랍니다.”라며 그를 기렸다.

 

『나루토(ナルト)』(슈에이샤, 1999)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岸本斉史)는 “갑작스러운 일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생략) 싫은 일이 있어도 매주 ‘드래곤볼’이 그것을 잊게 해줬어요. 아무것도 없던 시골 소년이었던 나에게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생략)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 45년 동안 많은 즐거운 작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겨진 가족 여러분께 있어서는 지금은 아직 깊은 상심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몸조심하십시오.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라고 그를 추모했다.

 

나고야에서 열린 토리야마 작가의 캐릭터 코스프레 행사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 추모 팬아트(출처: 일러스트 커뮤니티, 픽시브(pixiv)에 게재된 특집 글)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그와의 교류를 회고하며 일본 만화계를 한 단계 성장하게 해준 그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그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현했다. 또한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 팬들도 그를 추모하는 글과 팬아트를 웹상에 공유하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팬아트에 등장하는 토리야마 작가는 하나같이 본인이 창작해낸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하는데, 캐릭터들의 특징이나 매력들이 각기 다르고, 생동감 있는 모습에 그의 40년간의 만화 인생을 마치 함축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토리야마 아키라 캐릭터 일러스트(출처: 슈에이샤)

토리야마 아키라 캐릭터 일러스트(출처: 슈에이샤)

 

 

위 그림은 그가 생전에 본인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이다. 본인을 마치 『닥터 슬럼프』의 아라레 캐릭터처럼 로봇화하여 표현했다는 점이 재미있으며,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토리야마 작가를 추모하는 모습에 필자 또한 아라레를 보면 자란 세대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마음과 마음들이 모아져 하늘의 그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 또한 평온함에 닿길 바란다.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그의 만화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만화 한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토리야마 작가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만화 인생이 마침표가 아닌 쉼표이기 바라며, 편안하게 영면하길. 감사했습니다. 토리야마 선생님.(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鳥山先生。)

 

김수연

김수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

일본 생활 9년 차에 들어선 보통의 회사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센터를 거쳐 현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무역센터에서 도쿄무역관으로 한국콘텐츠 기업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suyoun1433@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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