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38  202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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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LIBER), 스페인 국제 도서전 리뷰

 

 

 

김정하(그린북 에이전시 에이전트, 번역가)

 

2022. 11.


 

지난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란 비아(Gran Via)에서 개최된 리베르(LIBER-Feria Internacional del Libro) 도서전은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행사였다. 리베르 도서전은 스페인의 공식 국제 도서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매년 개최 장소를 바꿔가며 열린다. 보통 홀수 해에는 마드리드에서, 짝수 해에는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다. 올해 바르셀로나 도서전의 장소는 새롭게 지어진 그란 비아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크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장소인데, 2013년 프리츠커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가 이토 도요오의 건축물이다. 도서전이 진행된 장소는 밝고 환한 분위기로, 도서전의 활기찬 열기를 담아내기에 충분해 건축과 도서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2022 리베르 도서전 행사장 입구

2022 리베르 도서전 행사장 입구

 

 

올해 도서전이 대내외적으로 표방한 특별한 의미는 올해로 도서전이 40주년을 맞는다는 점이었다. 리베르 도서전은 1983년 마드리드의 크리스털 궁(Palacio De Cristal)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이래 스페인어권 최고의 권위 있는 도서전으로 발전하면서 명실상부한 스페인어 도서 및 출판 산업의 최고 장터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주지하듯이 스페인어는 영어 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유럽의 스페인을 비롯해 대서양 건너편의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의 라티노(latino)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대서양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함께 정치·경제적인 요인으로 두 지역의 출판 산업은 1980년대 이전까지 교류하고 합류하기보다 개별적이고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스페인은 1975년에 프랑코 총통 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까지 완전한 출판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라틴 아메리카 출판 시장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는 지리적 광대함과 교통 인프라 미비로 대륙 내에서 인적·물적으로 자국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프랑코 사후 스페인이 안정적으로 민주화를 이행하고 1982년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받게 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스페인 출판계는 라틴 아메리카 출판계를 아우르는 도서전을 기획하기에 이르렀고, 1983년 처음으로 리베르 도서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리베르 도서전 이전에는 스페인어권을 아우르는 도서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스페인 출판계는 이 도서전을 활용해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저자를 자국의 출판 시장에 소개하는 한편 자국 도서의 라틴 아메리카 진출 통로를 확보했다. 라틴 아메리카 출판계 역시 스페인과 유럽으로 진출하는 동시에 대륙 내 다른 국가의 출판계와 교류하는 기회로 이 도서전을 활용했다. 즉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라틴 아메리카의 주요 출판계가 이 도서전을 통해 교류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자국 내에서만 운영되던 각국의 출판 산업은 리베르 도서전을 통해 자국 시장 규모의 수십 배에 이르는 대규모의 스페인어권 출판 시장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스페인어권 작가와 저자의 지명도와 명성을 스페인어권 영역 밖으로 알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일 언어권 내에서의 공동 시장 운영은 시간이 지나면서 출판사들의 국적성을 약화시켰다. 이제 스페인어권 출판계에서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가 구별되지 않는다.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재정과 편집을 운영하면서 자국의 출판 시장만을 시장으로 삼았던 각국의 출판사들은 이제 7, 8개의 다국적 출판 그룹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독자성은 유지하지만, 거시적으로 거대한 스페인어권 출판 시장의 틀 속에서 운영 방향을 잡고 나아간다.

 

2022 리베르 도서전 행사장 내부 모습

2022 리베르 도서전 행사장 내부 모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작품을 출간했던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에메세 출판사(Emecé Editores)는 이제 플라네타(Planeta) 그룹 내의 출판사로 전환되었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백년의 고독』을 출간했던 아르헨티나의 수다메리카나(Sudamericana) 출판사는 펭귄랜덤하우스 그룹의 계열사가 되었다. 거대 출판 그룹에 속한 출판사의 도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멕시코시티, 콜롬비아의 보고타, 칠레의 산티아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 동시에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스페인어권 전 시장을 동시간대에 커버할 수 있고, 독자 입장에서도 자기 지역에서 다른 지역의 독자와 동시간대로 도서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대 다국적 자본 출판이 지닌 문제점 또한 있을 것이다.

 

리베르 도서전은 처음의 기획 의도대로, 출판인 중심의 전문가 도서전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올해 도서전에는 출판 및 에이전트 관계자가 60여 개 국에서 8,500명이 참가하여 300여 개의 전시관에서 저작권 거래,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다. 도서전 기간 동안 55개의 주제가 다루어진 각종 세미나에서는 130명 이상의 발표자들이 출판계의 새로운 혁신, 지속성, 마케팅, 디지털 사업의 모델 등 출판 산업의 새로운 도전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이끌었다.

 

2022 리베르 도서전 토론장, 행사장 모습

2022 리베르 도서전 토론장, 행사장 모습

 

 

리베르 도서전이 초창기에 성공적으로 안착되면서, 1987년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도서전(Feria Internacional del Libro de Guadalajara)이 출범하였다. 이 도서전은 전문가 중심의 도서전을 표방하는 리베르 도서전과 달리 독자와 대중에게 다가가는 도서 축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시민이 이 도서전에 입장하며 수백 회 규모로 개최되는 출판 기념회, 작가와 저자 행사를 통해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범스페인어권의 대표적인 두 도서전을 간략하게 비교하면, 출판 관계자들과 저작권 담당자들, 도서관 사서들, 작가들, 에이전트들이 중심이 되어 책과 관련된 전문 종사자들이 주로 참가하는 리베르 도서전과, 수백 개의 저자 사인회, 출판기념회 등 작가와 독자들 중심의 행사 위주로 이루어지는 과달라하라 도서전으로 대별된다. 따라서 스페인어권 출판 산업과 관련된 정보를 원한다면 스페인 리베르 도서전으로, 스페인어권 저자의 행사를 보기 위해서는 과달라하라 도서전으로 가면 된다.

 

스페인 출판협회장(Federación de Gremios de Editores de España)이며 도서전 조직위원장인 다니엘 페르난데스(Daniel Fernandez)는 “40년을 이어오면서 리베르 도서전은 계속 활기를 띠고 있고 스페인어권 출판 분야의 만남의 장으로 찬란한 미래를 지니고 있다. 마케팅의 새로운 모델, 지속가능한 영역으로서의 출판 시장 등 다양한 분야의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주빈국으로 도서전을 빛낸 콜롬비아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 산업은 출판 산업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소설, 수필 등 일반적인 서점을 채우고 있는 책들과 교과서, 가판대에서 팔리는 책들, 코믹 그리고 특히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지속적인 성장이야말로 더 밝고 가능성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지표라고 덧붙였다.

 

리베르 도서전도 주빈국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기도 했던 콜롬비아가 주빈국으로 참가하였다. 콜롬비아는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으로서 다양하고 풍부한 문학 자산의 세계화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문학 작품의 수출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행사를 선보였다. 그중 『백년의 고독』으로 우리에게도 사랑받는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40주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눈길을 끈 전시관은 스페인 문학상 중 가장 중요한 문학상인 역대 세르반테스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 전시, 그리고 2021년 최고의 편집상을 받은 작품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좌) 주빈국이었던 콜롬비아 전시관, (우) 2021년 최고의 편집상 수상작 전시관

(좌) 주빈국이었던 콜롬비아 전시관, (우) 2021년 최고의 편집상 수상작 전시관

 

 

또한 이번 도서전에서 관심을 끌었던 행사 중 하나는 리베르상 수상식이었다. 리베르상은 책의 세계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과 단체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상으로, 올해의 수상자는 작가이며 편집자인 페레 힘페레르(Pere Gimferrer), 작가 솔레닷 푸에르톨라스(Soledad Puértolas), 스페인 국영 라디오 기자 이그나시오 엘게로(Ignacio Elguero), 영화 〈양귀비꽃 씨가 들어간 레몬 빵(Pan de limón con semillas de amapola)〉, 발렌시아의 라몬율 서점 그리고 마드리드의 이사벨 여왕 도서관이다. 작가와 출판 편집자, 영화, 서점, 도서관 등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해준 결과로 보인다.

 

수상자 중 특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서점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유럽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기도 하지만, 스페인 역시 서점이 많다. 전국을 커버하는 대형서점인 카사 델 리브로(Casa del libro)와 그 외에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한 대형 서점 라 센트랄(La Central)이 있지만, 각 도시마다 고유의 서점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문을 열고 있다.

 

다음 도서전은 2023년 10월 4일부터 6일까지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폴란드가 주빈국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여러 해 전부터 도서전에 참여해 자국의 도서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스페인 출판계는 2022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위해 2000년 이후 출판된 도서 100권을 선정하여 집중 홍보했다. 또한 리베르 도서전 40주년 기념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 참여가 스페인 출판 문화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기회라고 이야기하면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대한 큰 기대를 표했다.

 

책은 책을 읽는 독자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책을 읽는 시민이 많아야 그 시회가, 더 나아가 국가가 건강할 것이라는 추정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도서전 기간 중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스페인의 저명한 출판사인 칼란드라카(Kalandraka)의 편집장인 호세 바예스테로스(Xosé Ballestero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점이 적은 곳에서 극우의 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통계가 독일에서 나왔고 스페인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극우는 나쁘고 극좌는 좋다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사회가 사고의 균형을 잃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인데, 도서와 독서는 단순히 문화적인 현상뿐 아니라 정치 현상에도 영향을 줌으로써 인간 삶의 모든 면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김정하 그린북 에이전시 에이전트,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공부했다. 스페인어권의 어린이 청소년 문학 기획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운하의 빛』, 『루이스캐럴 읽기 금지』, 『최연소 탐조대원이 되었습니다』 등이 있다.
estela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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