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사이드

Vol.58  202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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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출판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
서점 영업처럼 독자 마케팅하기

 

 

 

박중혁(흐름출판 마케팅팀 과장)

 

2025. 3+4.


 

난 이제 지쳤어요. 영업! 영업!

 

신간이 나오면 출판 영업 담당자는 1차 시험대에 오른다. 바로 서점 MD와의 미팅이다. 영업자는 그곳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나는 신간 두 권과 편집자가 정성스레 쓴 보도자료, 중요 도서의 경우는 필살기인 ‘도서 소개서’까지 만들어 오프라인 서점의 본사로 향했다. 미팅 장소에 들어서자 삭막한 소음이 감돌았다. 수도 없이 왔던 곳이지만 매번 입꼬리가 고장이 났다.

 

내 차례에 열심히 준비한 신간을 소개했다. 담당 MD는 신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네.”만 내뱉었다. 담당 MD도 10~15분 단위로 쉼 없이 이어지는 미팅에 지칠 것이다. 출판사 미팅에 개별 업무, 그리고 잔뜩 쌓인 홍보용 책들을 읽어야 하는 그의 고충을 알기 때문에 “배본 좀 많이 받아 달라, 무료 구좌에 노출 좀 해 달라.” 하고 부탁하기에 미안함이 앞섰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10여 분간의 미팅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나서는 찰나, 다음 순서인 타 출판사 담당자가 MD를 보며 인사했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해당 MD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땐 잘 들어갔냐?” ‘형님’이라는 단어에 담긴 시간과 관계. 그날 이후 나는 영업 대신 온라인 마케팅만 하겠다고 회사에 보고했다.

 

출판 영업은 출판 시장과 함께 이미 많은 변화를 거쳤다. 오프라인 서점이 중심이었던 과거에는 영업의 영역이 컸지만, 현재는 온라인 중심의 도서 판매가 커지며 마케터의 업무가 확장되었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출판사의 경우 한 사람이 마케팅과 영업을 같이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영업의 축소와 마케팅의 확장이라는 흐름과 비슷하게 나는 영업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낀 뒤 독자에게 직접 영업하는 마케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에서는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출판 영업에서 온라인 브랜드 마케팅으로

 

출판계 구조상 출판사는 서점과 관계를 끊을 수 없다. 도서의 핵심 유통망인 서점을 거치지 않고는 책을 판매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많은 출판사들이 자사몰, 스마트 스토어를 만들기도 했지만,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가격에, 접근성도 좋고, 다양한 도서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서점을 마다하고 출판사 자사몰에서 구입할 독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형 출판사들도 이뤄내지 못한 일을 일개 과장이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점 유통 구조는 그대로 두고 바꿀 방법은 무엇일까.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서점에서 유통하고, 독자들이 주문해 받아보는 ‘출판사–서점–독자’ 시스템에서 서점을 뺀다면? 남는 것은 독자다. 책의 생명을 결정짓는 최종결정권자. 내 인생을 바꾸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독자.

 

‘출판사–서점–독자’ 시스템 이미지

 

 

예전부터 독자 영업은 ‘온라인 홍보’라는 개념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왜? 무엇을 해도 책이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대다수 출판사가 SNS에 업로드하는 콘텐츠는 5~7년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인스타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책의 내용을 담은 카드뉴스에 신간 소개, 작가 소식, 댓글 이벤트 등을 담아 매년 똑같은 포맷의 콘텐츠를 올리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출판사 대표는 책이 안 팔려서 답답하고, 직원들은 번아웃(Burnout)을 겪고 사직서를 쓴다. 독자 영업을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 보기로 했다. 영업 대상을 서점에서 독자로 바꾸고 나면 두 가지 질문지가 펼쳐진다.

 

①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

 

2025년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단행본의 경우 20~40대 여성 구매 비율은 평균 약 67%로,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서점에서 매년 발간하는 연간 자료 결과와 유사하다. 독자가 많이 모이는 곳을 찾으려면 이 분포표에 따라 해당 타깃 연령층이 많이 활동하는 곳을 찾으면 된다.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의 연령대별 사용자 자료를 살펴보면 주 이용자층은 20~40대다. 도서 구매 독자층과 맞아떨어진다. 2024년 8월 기준 대한민국 인스타그램 이용자 수는 약 2564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인구를 약 5000만 명이라고 산정했을 때, 인구 절반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절대적인 이용자 수에 따라 출판사는 마케팅 채널로 인스타그램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연령별 독자 통계(2025년 1월 기준)(출처: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연령별 독자 통계(2025년 2월 기준)(출처: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인스타그램 앱 연령대별 사용자 변화(2024년 2월 기준)(출처: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인스타그램 앱 연령대별 사용자 변화(2024년 2월 기준)(출처: 와이즈앱·리테일·굿즈)

 

 

②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제 도서 구매로 이어지도록 독자를 설득할 차례다. 지금까지 출판사가 만든 대다수의 온라인 콘텐츠는 주입식이다. ‘○○타임스 베스트셀러!’, ‘○○○ 추천사’, ‘최고의 책!’ 등 출판사가 고르고 고른 홍보 문구를 넣지만, 독자들이 이를 보고 구매까지 하는 것은 별개다. 출판사와 출간 종수는 매년 증가한다. 그에 따라 출판사 SNS 콘텐츠도 하루에 수십, 수백 개가 올라온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엄지손가락 터치 한 번에 다양한 정보가 들어오는 세상에서 자사의 콘텐츠만 돋보이게 각인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 달에 광고비로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쓰는 대형 출판사와 견주었을 때 경제 규모에서도 뒤처진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팔리지도 않은 행동을 왜 계속할까?’와 같은 원론적인 생각을 해야 할 시기다. 문제는 트렌드가 바뀌었는데, 방식을 바꾸지 않은 출판사에 있다. 도서 한 권에 회사 명운이 달린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SNS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바로 ‘브랜딩’이다. 타 업계를 보면 하나의 제품을 강조하기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고 수년간 노력한다. 기업의 가치, 철학, 일하는 모습을 노출하고 팬을 만든다. 충성 고객이 된 팬들은 자발적으로 제품을 찾는다. 이처럼 잘 완성한 브랜딩은 고객을 능동적으로 바꾼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Patagonia), 무신사, 젠틀몬스터와 같은 패션업과 제조업에서 브랜드 마케팅 성공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브랜드 마케팅은 타 업계에서 공들이는 마케팅 방법임에도 출판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유튜브 채널을 통한 민음사 브랜드 마케팅이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다.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 출판사 이름은 많아야 대형 출판사 2~3개일 것이다. 대부분 출판사들은 아직 브랜드가 아닌 제품(책)을 중심으로 홍보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원하는 브랜드 이야기가 아닌, 주입식 정보를 나열한다. 도서에 집중된 콘텐츠 마케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성과를 보지 못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 마케팅 기본 공식 이미지

 

 

브랜드 마케팅은 방향성이 달라야 한다. 먼저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독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즉 브랜드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그렇게 독자들이 브랜드에 관심을 갖도록 모은 뒤 쌍방향 소통을 통해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후 자발적으로 팬들이 자사 SNS 콘텐츠에 좋아요, 댓글, 공유 버튼을 누르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구매 전환은 그다음 순서다. 즉, 독자가 관심 있어 할 이야기를 풀어 계정으로 유입시킨 다음에 출판사가 독자에게 주고 싶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출판 마케팅의 필수가 되어버린 숏폼

 

나는 인스타그램 릴스로 출판사 브랜딩을 시작했다. 콘텐츠 방식을 릴스로 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스타그램 최고경영자 아담 모세리(Adam Mosseri)는 2023년부터 릴스를 강조해 왔다. SNS 분석 사이트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이미지 콘텐츠보다 릴스 도달량이 2배나 높다. 2022년 기준으로 7배 차이다.

 

콘텐츠 타입별 도달량 자료

콘텐츠 타입별 도달량 자료(출처: https://metricool.com/)

 

 

릴스 브랜딩을 시작하기 전, 몇 가지 시도들로 검증 과정을 거쳤다. 2023년 말에 ‘출판사 직원들의 인생 책’ 시리즈를, 2024년 중순에 ‘국제도서전 부스 미리보기’ 시리즈를 제작했다. 릴스의 파급력을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이 총 3개 시리즈를 기획·제작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해당 사례가 절대적인 기준일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독자에게 비교적 직접적으로 다가간 브랜드 마케팅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① ‘메이드인(Made-in) 출판사’ 릴스 시리즈: 우리는 이렇게 일합니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독자 그리고 팬으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핵심 타깃층을 ‘독서하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도서가 아닌 ‘출판’을 주제로 한 릴스 콘텐츠를 제작하여 올렸다. 시리즈 제목처럼 대본 없이 출판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담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계정으로 모였다. 해당 릴스 콘텐츠는 2024년 4월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연속성을 두고 업로드하고 있다. 특히 출판사 계정의 경우 북스타그래머들이 팔로우하는 경우가 많아 알고리즘을 이용하기 더 수월했다. 앞서 말한 브랜드 마케팅의 기본 공식 중 ‘발견되기’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메이트인 출판사’ 릴스 시리즈 캡처

‘메이트인 출판사’ 릴스 시리즈 캡처(출처: https://www.instagram.com/parkdaerii/reels/)

 

 

② ‘출판 일타 강사’ 릴스 시리즈: 다 놀았니? 이제 책을 팔자

 

‘메이드인 출판사’ 릴스 시리즈는 약 6개월 동안 업로드하면서 어느 정도 팬을 확보했다. 최종 목적지인 독자의 구매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지를 시험할 시점이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출판 일타 강사’ 시리즈를 기획했다. 출판 마케터의 시선으로 한 권의 책에 가장 재밌는 부분을 선별해 1분 동안 소개하는 것이다. ‘기승전-도서’ 구성이라 예전 콘텐츠 광고처럼 반감을 사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미지와 영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독자들은 책 광고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판 일타 강사’ 릴스 시리즈 캡처

‘출판 일타 강사’ 릴스 시리즈 캡처(출처: https://www.instagram.com/parkdaerii/reels/)

 

SNS 릴스 시리즈를 본 독자 후기

SNS 릴스 시리즈를 본 독자 후기

 

 

③ ‘도서전 제작기’ 릴스 시리즈: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마케팅을 공부한 사람들은 안다. 마케팅의 끝은 고객 경험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독자에게 출판사와 책을 경험하게 하는 기회는 서울국제도서전이다. 내가 마케팅을 담당하는 흐름출판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도서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반대로 브랜드 마케팅을 시험해 볼 기초가 되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서울국제도서전 참가 과정을 영상으로 풀어내기로 하고, 부스 신청부터 선정, 콘셉트 기획, 디자인, 도서 목록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독자에게 공유했다. 이런 과정이 쌓여 독자에게 공유된다면 브랜드 유대감은 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온라인의 간접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게 만들 기회인 것이다.

 

‘도서전 제작기’ 릴스 시리즈 캡처

‘도서전 제작기’ 릴스 시리즈 캡처(출처: https://www.instagram.com/parkdaerii/reels/)

 

 

잘나가는 넷플릭스도 콘텐츠 오픈 두 달 전부터 첫 예고편을 내놓는 세상이다. 고객이 자연스레 제품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는 시대는 진즉에 지났다. 더군다나 책은 쉽게 눈에 띄는 물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같이 앉아서 홍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11년 동안 내가 바라본 출판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트렌드 도서를 만들면서 유행에 뒤처지고, 경영서를 만들면서 자금난에 허덕인다. 폐습도 많다. 무엇보다 보수적이기 때문에 변화와 새로운 도전이 어렵다. 출판 영업이 위축되어 가고 온라인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그 구조를 바꾸거나 대응하는 것이 부족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안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나처럼 전통적인 영업 방식에 소질이 없다고 느끼거나 출판 영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온라인을 바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라인에서는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무료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 막대한 자본이 없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독자 반응을 직접적으로 맞이하는 기쁨도 있다. 다만, 온라인 마케터를 하기로 했다면 영업자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추우나 더우나 서점에 나가서 도서를 확인하고, 사람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디선가 매출을 끌어오는 영업자들에게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온라인 브랜드 마케팅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대표님 미감 살리기 요청 금지, “이거 한다고 책 팔리냐?” 발언 금지, “어디서 봤는데 이거 해봐라.” 금지, “챗GPT 써봐라.” 금지, 편집자 컨펌 금지, 직원 초상권 문제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건 팀장, 부장급들이 해결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성과를 바란다면 젊은 온라인 마케터들이 자신의 뛰어난 감각을 발현하도록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이 최선이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직업은 흔치 않다. 이런 자부심이 박봉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다. 수많은 콘텐츠가 오가는 바쁜 세상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독자를 느린 호흡의 독서로 유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같은 가치를 향해 가는 사람끼리 최선의 성과를 내는 그날을 기다리며, 숏폼에서 출판 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박중혁

박중혁 흐름출판 마케팅팀 과장

11년 차 출판 마케터이다. 『도파민네이션(Dopamine Nation)』(애나 렘키(Anna Lembke), 흐름출판, 2022), 『라틴어 수업』(한동일, 흐름출판, 2023), 『룬샷(Loonshot)』(사피 바칼(Safi Bhacall), 흐름출판, 2020), 『파이 이야기(Life of Pi)』(얀 마텔(Yann Martel), 작가정신, 2013) 등을 마케팅했다. 클래스101 ‘요즘 것들의 출판 마케팅 A-Z’, 한겨레교육 ‘실전 출판 마케팅’,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 디지털북센터 ‘중소 출판사 마케팅 전략’, SBI 재직자 실무 ‘콘텐츠 제휴 마케팅’ 등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leejagu@naver.com
instagram.com/parkdae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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