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사이드

Vol.58  2025. 3+4.

게시물 상세

 

트윈세대만을 위한 공간, 선유도서관 사이로

 

 

 

김상명(선유도서관 관장)

 

2025. 3+4.


 

선유도서관 ‘사이로’의 탄생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방문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꾸준히 도서관을 이용하길 기대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도서관 방문이 줄어든다.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청소년들은 도서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단절이다. 그들에게 어른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도서관은 왠지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이라 또래가 많은 스터디 카페가 더 편하다. 조용히 앉아 독서를 권하는 도서관은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 활성화 방안이 필요했다.

 

선유도서관에 조성된 트윈세대 전용 공간

선유도서관에 조성된 트윈세대 전용 공간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주관하는 ‘space T’ 프로젝트는 트윈(Tween)세대 청소년이 자유롭게 탐색하고, 새로운 세계를 넓혀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공공도서관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선유도서관은 2022년 space T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약 1년간 콘텐츠 기획학교를 통해 트윈세대의 전용 공간을 조성하고, 그들을 위한 콘텐츠 기획 및 운영 방향 등을 설정하도록 지원받았다. 그 공간이 바로 ‘사이로’이다.

 

사이로는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2층과 3층 사이에서, 너와 나 사이에서, 새로운 시간과 관계를 쌓아가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등포구 트윈세대들과 함께 진행한 네이밍 워크숍(Naming Workshop)을 통해 선정된 이름이다. 선유도서관의 사이로는 space T 프로젝트 중 전국에서 여섯 번째, 서울에서 최초로 조성되었다.

 

트윈세대란 Between(사이)과 Teenager(10대)의 합성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또는 해당 연령대(12~16세)를 지칭한다. 트윈세대는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구체적인 취향을 갖기 시작하며, 또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져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사이로는 이런 트윈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간과 콘텐츠를 구성하였다.

 

사이로 2층 메이킹존(상), 무비존, 평상존, 게임존(하)

 

사이로 2층 메이킹존(상), 무비존, 평상존, 게임존(하)

사이로 2층 메이킹존(상), 무비존, 평상존, 게임존(하)

 

 

공간은 2~3층의 복층 구조에 ‘집’과 ‘틈’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되었다. 2층에는 다양한 작업물을 만드는 메이킹존, 카메라를 만져보고 사진집을 만들 수 있는 사진존, 여러 종류의 게임 즐길 수 있는 게임존, 만화책·웹툰을 자유롭게 읽도록 구성된 평상존, 영화·애니메이션 등 영상 콘텐츠가 가득한 무비존이 조성되어 있다. 3층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스토리존, 다양한 도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드로잉존, 제과 활동을 체험하는 베이킹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음악존이 마련되어 있다.

 

사이로 3층 스토리존

 

사이로 3층 스토리존

사이로 3층 스토리존

 

 

수요를 파악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

 

트윈세대 공간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어야 한다. 사이로가 추구하는 방향은 누군가 정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어른의 시각에서 ‘미래의 나’를 준비하도록 강요하는 학습 중심의 요소나,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이로는 기획 단계부터 트윈세대가 정말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공간과 콘텐츠를 파악하기 위해 지역 내 트윈세대 약 300명을 직접 만나 다이어리 수집, 심층 인터뷰, 정량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다. 먼저 영등포구 트윈세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타 지역의 space T 공간을 이용하는 트윈세대와 특성을 비교·분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사이로의 지향점을 설정하였다.

 

① 미래·목표 지향적 성향, 높은 인정 욕구

 

‘지금’ ‘좋아하는’ ‘해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보는’ 시간과 기회

 

“저는 아직 엄청나게 여러 가지를 잘 하지는 않아서 … 배드민턴, 영상 편집 등 무엇이든지 좀 더 하면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중에는 저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제가 한 것을 많이 봐 주면 성취감을 느끼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줬을 때 기분이 좋아요. 저만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져서요.” (초등학생 6학년, 남)

 

② 다양한 활동에 대한 경험을 보유

 

새롭고 다양한 활동에 열려 있으며 유연하게 시도하기를 기대

 

“그냥 ‘이 주제로 만들어야겠다.’ 하지는 않고 생각나면 녹음하거나 메모해 놓는 식으로 바로 음악을 만들어요. 신나는 것보다 완전 잔잔한 노래를 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왠지 작곡이든 뭐든 창작을 하면 ‘내 것’이라는 희열이 있어서 좋아요.” (중학생 2학년, 여)

 

③ 공간, 콘텐츠,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니즈

 

다양한 경험을 촉진할 수 있는 공간, 세심한 콘텐츠 기획

 

“들어가는 입구는 아치형으로 뚫려 있고, 나머지는 다 투명한 벽이에요. 나무 냄새가 나고 시계도 있고, 책상은 곡선으로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치형 입구는 들어갈 때는 불편한데 들어가고 나면 넓은 공간이 나오니까 신기한 느낌 … 새로운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일 것 같아요. 시계는 여기서 숙제하다가 학원 갈 시간이 되면 나가야 하니까 ….” (초등학생 6, 남)

 

사이로를 표현하고 운영하기 위한 대표 키워드는 ‘지금의 나를 위한’, ‘이래도 되나 싶은’, ‘다양한 발견’으로 선정하였다. 따라서 사이로는 트윈세대가 ‘지금의 나를 위한’ 활동을 하고, 공공도서관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콘텐츠를 이용하며,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양한 발견’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기획했다.

 

설문조사 결과도 참고하여 반영하였다. 트윈세대는 방과 후 학업 활동이 주요 일과이며, 취미나 휴식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호했으며, 창작 및 탐색 활동에 대한 확장된 경험을 원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현재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공간으로는 편의점, 코인노래방, 음식점 등이 꼽혔으나, 경제적 부담 없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푹신한 소파나 바닥에 편히 누워 또래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드라마를 감상하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늑한 공간도 원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취미나 관심 분야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 장비가 갖춰진 공간을 희망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에 따라 사이로 운영자들은 전문가들과 수십 회 이상 논의를 거쳐 각 공간과 세부 요소를 검토 및 조정하였다. 특히 베이킹존은 초기 공간 기획 단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설문 결과에서 제과 활동에 대한 높은 요구가 확인되면서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논의 끝에 트윈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꼭 필요한 공간이라고 판단하여 추가하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반영한 것이다.

 

사이로 공간을 이용 중인 트윈세대

 

사이로 공간을 이용 중인 트윈세대

사이로 공간을 이용 중인 트윈세대

 

 

사이로 콘텐츠와 프로그램 구성

 

사이로에 준비된 콘텐츠는 ‘지금의 나를 위한 다양한 발견’을 위한 모든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는 책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 사이로의 모든 프로그램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보다는 이용자가 스스로 탐색하고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쉼, 만남·소통, 탐색·탐험, 표현·창작이라는 네 가지 핵심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별 콘텐츠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핵심 경험은 해당 존에서 복합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존별 콘텐츠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의 기반이 된다.

 

사이로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했다. ‘P.O.S. 프로그램(Point of Sairo program)’은 인원을 모집하여 시간에 맞춰 진행하는 일반적인 기획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며, ‘좋은 어른’을 초청하여 트윈세대가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같은 주제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이러’가 있다면, ‘또래 작가’가 되어 다른 사이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사이로를 이용하는 트윈세대를 ‘사이러’ 또는 ‘작가’라고 부르는데, 관계적 호칭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라는 호칭도 특별한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적극적인 활동을 장려하고자 사용하고 있다.

 

‘패시브 프로그램(Passive program)’은 별도의 신청 없이 언제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나의 반려동물 자랑하기’, ‘아이패드 드로잉(iPad drawing)’ 등 각 존의 특성에 맞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현재 총 29종의 패시브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단체 견학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및 중학교와 연계하여 교과 시간에 진행되는데, 메이킹존과 스토리존을 경험할 수 있고, 평일 오전에 운영된다. 특수학급과 연계하여 취약계층 청소년들도 편리하게 사이로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사이러가 직접 결정하고 실행하며, 실패하는 과정도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새로운 경험과 함께 익숙한 경험을 다시 새롭게 깨워주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공간을 섬세하게 완성하는 운영자

 

공간 기획과 함께 사이러를 맞이하고 소통하는 운영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본적인 근무 공간, 관찰 및 지원 공간, 수납 공간 등 운영자가 이용자들을 지켜보고 지원할 수 있는 시야와 동선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야 안정적인 소통과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무엇이 더 필요한지, 제거되어야 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요소가 없는지 등 개선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러 활동을 지원하는 매니저들

사이러 활동을 지원하는 매니저들

 

 

사이로를 운영하는 매니저의 역할은 일반적인 사서 직무와 다르다. 매니저는 스스로를 ‘좋은 어른’이라고 여기며, 매일 아침 앞치마를 두르고 명찰을 착용한 후, 사이로에 들어간다. 사이로는 성인이 입장할 수 없는 ‘트윈세대 전용 공간’이기 때문에, 앞치마와 명찰은 매니저가 사이로에서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임을 알려준다. 매니저는 트윈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매일 세심하게 지켜보고 ‘관찰기록’을 작성한다.

 

사이로에서는 도서 대출·반납이 이루어지지 않고 관내 열람만 가능하다. 이에 매니저는 사이러의 입장부터 퇴실까지 모든 활동을 면밀하게 살핀다. 단순히 ‘누가 언제 왔다 갔는지’를 적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어떤 자세로 읽었는지,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포기했는지, 어디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지 등 다양한 요소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사진으로 남긴다. 이렇게 기록된 내용은 월 2회 매니저들이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콘텐츠 개선 방법, 트윈세대의 동선 변경 등 다양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매니저의 통일된 응대 방식이나 세세한 규칙들을 함께 정한다.

 

트윈세대의 다소 엉뚱한 생각과 발언에도 귀를 기울이며, 수집한 기록은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월간 리뷰를 통해 다시 한번 정리된다. 또한, 분기별로 전국 space T 운영자들이 모여 공통의 과제와 문제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기록은 존별 콘텐츠를 조정하거나 변경하는 데에 기반이 된다. 매니저들은 관찰기록에서 발견된 키워드를 기반으로 촘촘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친구랑’,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인트로 삼아 도서관에서 함께 영화 감상, 야식 만들기, 보물찾기, 1박 2일 캠핑 프로그램 ‘놀다 만 거 노는 밤’ 등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공간의 한계가 발견되면 도서관 주변이나 근처 공원으로 트윈세대와 함께 출사를 나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활동도 있었다.

 

드로잉 작업(좌)과 책을 열람하는(우) 사이러의 모습

드로잉 작업(좌)과 책을 열람하는(우) 사이러의 모습

 

 

공간의 변화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변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어쩌면 당연하고 흔한 인사말이지만, 도서관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이 말을 사이러들은 밝게 건넨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도서관을 나갈 때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순간마다 ‘오늘도 왔구나.’, ‘오늘도 재밌게 보내고 가는구나.’ 하고 안심이 된다. 어느 사이러는 “사이로가 만들어진 뒤에 매일 도서관에 와요.”라고 말했다. 트윈세대의 부모들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윈세대 전용 공간에서 안전하고 즐거운 경험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신뢰하며, 사이로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즐겁게 활동하는 사이러들의 모습

즐겁게 활동하는 사이러들의 모습

 

 

2024년 사이로에는 257일 동안 9,919명의 트윈세대가 방문했으며, 학급 견학 74회 동안 1,513명이 참여했다. 또한, 전국 54개 기관의 385명이 사이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다. 사이로 조성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2022년 선유도서관의 트윈세대 신규 가입 수는 80명이었으나, 리모델링 후 재개관한 2024년에는 573명으로 증가하였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참여자 수도 2022년 374명에서 2024년 4,711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선유도서관의 도서 대출 권수도 2022년 4,675권에서 2024년 10,542권으로 증가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소년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시간, 사람 그리고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획 및 실행하고 또 관찰하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록하고 유지하는 것은 사람이다. 안정적이고 만족도 높은 환경을 유지하려면, 운영자의 책임감과 의지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예산 확보도 필수적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웃으며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남연정(드렁큰에디터)

선유도서관 사이로
사이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1216sairo_ydp/?hl=ko
사이로 홍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prLlt4iHwU
선유도서관 홍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XPdY6VErRI

 

 

 

김상명

김상명 선유도서관 관장

2022년 space T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사이로 조성을 마치고, 2024년부터 선유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다.
true0310@ydp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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