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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7  202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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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누스(Manus) 대표 정가영
오늘도 한 명의 팬을 획득하였습니다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5. 1+2.


 

몇 년 전부터 출판 마케팅에 ‘팬덤’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출판사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도서를 알리고 호감을 사는 것보다 소수의 확실한 ‘찐팬’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찐팬들이 생기면 안정적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고, 또 입소문을 통해 홍보 문제를 해결해주니 웬만한 마케터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팬덤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출판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마누스(Manus)를 대구에서 에세이를 전문으로 만드는 출판사로만 전해 들었다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깜짝 놀랐다. ‘신생 출판사에 웬 찐팬들이 벌써 이렇게나 많이 생겼어?’ 마누스 출판사,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현재 대구에서 출판사 마누스를 운영하는데, 서울에도 자주 올라오신다고 들었어요. 원래 방송 작가 일을 하셨다고요.

 

인쇄소에 들르거나 서점 MD들을 만나러 자주 오는 편이에요. 편집자님과 디자이너님이 서울에 계시기도 하고요. 저희 편집자님은 방송 작가 동기예요. 제가 처음 시사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입사했을 때, 저는 그 팀에서 가장 어렸고 편집자님은 나이가 가장 많았는데, 겪는 어려움은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엄청나게 친해졌죠. 편집자님이 글을 너무 잘 써서 제가 좀 치근덕댔는데, 그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웃음) 디자이너님은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한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지민채, 2021)의 저자로 만나서, 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고요.

 

 

방송 작가 일을 하다가 왜 갑자기 출판사를 창업하셨나요?

 

방송 작가도 프리랜서이다 보니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돼서 처음에는 학업과 일을 병행했어요. 거의 7년 정도 같이 했는데, 중간에 1년 정도 잠깐 독일에 있다가 다시 와서 일을 하니 방송 작가가 저와 정말 안 맞는 것 같았어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만두었죠. 그러다 뭔가에 홀린 듯이 출판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책은 꾸준히 좋아했어요. 어느 날 우연히 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출판사 창업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제가 출판업 신고를 하고 있더라고요. 소소하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그때는 출판을 시작하는 건 쉬운데 그만두긴 참 어렵다는 걸 몰랐어요.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다고 여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웃음) 그런데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깨달았어요. 방송 작가를 그만둘 때, ‘단지 핑계가 필요했구나.’ 하고요. 책을 만드는 것도 방송 작가 일만큼이나 똑같이 일과 삶이 분리가 안 되는데, 이 일은 적성에 참 잘 맞는 것 같거든요.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출판업,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영업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출판사 이름을 이야기하면 “어디라고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아요. 그분들은 진짜 잘 몰라서 묻는 거지만, 괜히 자격지심이 생기는 거예요. 사실 영업을 다니면서 별 이야기를 다 들어봤거든요. 초도 물량을 협의할 때 서점 담당자가 요청한 입고량이 너무 적어서, 책을 조금만 더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어느 정도 수량이 있어야 매대에 깔리잖아요. 그런데 그분이 한숨을 푹 쉬면서 “아니, 그래서 어떻게 홍보하시겠다는 건데요? 출판사 인지도도 없고 저자도 유명인이 아닌데 뭘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하고 쏘아붙이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책이 3주 만에 2쇄를 찍었을 때 진짜 통쾌했어요. 완성도를 높여서 잘 만들면 눈이 밝은 독자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알아봐 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그 담당자님과 아주 잘 지냅니다.(웃음)

 

 

출판사 이름 ‘마누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라틴어로 ‘손’이라는 뜻이에요. 처음 출판사 이름을 지을 때, ‘글’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글은 엉덩이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전 글은 손에서 나온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손’이라는 단어를 각국의 언어로 찾아봤는데, 라틴어가 가장 예쁘더라고요.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가 첫 책이죠? 원래 신생 출판사는 저자 섭외도 쉽지 않잖아요. 첫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제가 출판계 인맥도, 이력도 없었잖아요. 그렇다고 투고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어요. 알음알음 묻고 여기저기 들여다보면서 만난 사람이 지민채 작가예요. 처음 만났는데 ‘티키타카’가 너무 잘 되고, 글도 한두 꼭지 받아봤는데 너무 재밌게 잘 쓰는 거예요. 그림도 아기자기하게 잘 그리고요.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는데, 저희 출판사 규모 치고 주목을 많이 받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10억을 팝니다』

『명함도 없이 일합니다』, 『10억을 팝니다』

 

 

치과기공사 이야기는 흔한 소재가 아니잖아요. 그걸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한다.’라는 콘셉트로 잘 풀어냈던 것 같아요. 저는 『10억을 팝니다』(정환근, 최승인, 2021)도 인상 깊었어요. 로또와 20년을 함께한 복권 판매점주의 이야기라니! 약간 〈인간극장〉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마누스에서 직접 기획해서 저자에게 제안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동네에 로또 판매점이 있는데,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다 “1등 7번, 2등 18번, 3등 셀 수 없음.” 현수막을 보고 문득 의문이 생겼어요. 그 가게가 버스정류장도, 상점도, 심지어 차를 댈 데도 없는 아주 외진 곳에 있는데,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요. 허허벌판 같은 이곳에 왜 로또 판매점을 열었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리고 사장님이 매일 대빗자루로 가게 앞을 쓰는데, 너무 정감 있어 보였어요. 여기 오는 손님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오는 사람일지언정 저 사장님은 그냥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삶이 궁금했어요.

 

 

저자가 글을 잘 쓰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담되진 않으셨어요?

 

사장님이 글을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맞춤법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투박하게 내보고 싶었어요. 저는 심지어 그 자체가 매력적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 흥미로운 아이템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이 가게를 물밑 조사해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블로그까지 찾아냈어요.

 

복권 판매점이라고 하면 그저 사람들이 꼬깃꼬깃한 현금을 갖고 들어와 복권만 사가고 돈 냄새만 가득 날 것 같았는데, 블로그 속 사장님의 글에서는 푸근한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책도 쓰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편지를 써서 가게 문틈에 밀어놓고 왔어요. 다행히 연락이 왔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사모님이 ‘혹시 이런 게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써오셨는데, 저는 그때 제가 로또 맞은 줄 알았어요. 13평 남짓한 가게 안에서 사장님 내외분이 손님들과 만나는 시간은 단 10초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다채로운 삶이 녹아 있더군요. 인간적인 에피소드들이 가득했습니다.

 

 

마누스에서 나오는 책들을 보면, 항상 사람이 먼저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낸다고나 할까요. 마누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지점 같아요. 마누스의 정체성,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에세이를 만드는 출판사로, 삶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삶의 가치를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의 삶과 진솔한 시선으로 쓰인 글을 책으로 담고, 또 그 책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삶에서 나온 책이 삶에서 또 함께하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이야기여야 하는 거예요.

 

2025년 2월에 출간 예정인 『아빠가 태어나는 중』도 그렇게 탄생한 책이에요. 저희 출판사에서 『선생님의 목소리』(2023), 『쓸모없는 수학』(2024)을 낸 김동진 작가님의 신간이에요. 김동진 작가님 내외가 대구에 오셔서 저와 식사하게 되었는데, 아내분이 갑자기 임신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속이 안 좋다고 하셨는데, 임신이었던 거죠. 며칠 전에 아셨고, 아직 병원도 안 가본 상태였는데 이야기 나누다가 “그럼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다 책으로 써보실래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책이 딱 끝나는 거예요.”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제안했어요.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안했고 집필을 시작하신 거죠. 저한테 정말 큰 도전 같은 책이에요.

 

『아빠가 태어나는 중』

『아빠가 태어나는 중』

 

 

특색 있는 콘셉트이네요. 엄마가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는 꽤 있는데, 아빠가 되는 과정을 담은, 그러니까 아빠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는 잘 없잖아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에세이이다 보니, 나중에 제목부터 기획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건데, 정말 용기 있는 시도였네요. 참, 김동진 작가님의 『쓸모없는 수학』은 전자책으로만 출간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쓸모없는 수학』은 작가님이 다른 출판사에서 냈다가 절판된 책인데, 어쩌다 제가 그 책을 우연히 읽어 봤더니 내용이 참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팀원들과 상의했죠. 그런데 이미 한 번 출간된 책이라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희가 워낙 영세하다 보니 출간 목록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 욕심으로는 종이책으로도 만들고 싶었지만,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고, 작가님도 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전자책만 내게 됐어요. 지금도 아쉬움이 남아서, 나중에 국제도서전 등에서 특별 한정판으로 종이책을 내는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책을 만들 때 뭘 가장 고민하시나요?

 

항상 ‘나라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봐요. ‘나라면 이런 책을 볼까?’, ‘나라면 이런 디자인을 좋아할까?’, ‘나라면 이 가격에 이 책을 살까?’ 하고 끊임없이 묻는 거죠.

 

 

독자 입장에서 계속 생각해 보는 거군요. 마누스의 독자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섬세한 시선을 가진 분들 같아요. 저희 책을 보면 즐거운 이야기도 있지만 저자의 어떤 결핍을 잘 녹여낸 경우가 많거든요. 독자들이 그걸 보고 자신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평을 써주시더라고요. 저자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나아가 자기 내면도 스스로 잘 들여다보시는 거죠. 사실 그런 분들이기에 저희 책을 좋아하시는 건지, 아니면 저희 책을 보고 그렇게 되신 건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고 독자로서 본인의 삶도 잘 들여다보려고 하는 분들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실제로 만나 뵌 분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 분들을 그리면서 뉴스레터 서비스도 하시는군요. 팬덤을 만들기 위해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는 출판사 대부분이 메일을 활용해요. 그런데 마누스는 종이 소식지를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내고 있어요.

 

독자들이 책 특유의 감성과 종이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희도 처음에는 메일로 보냈는데, 휘발되는 느낌이더라고요. 수신 확인해보면 아예 안 읽는 분들도 계세요. 우리는 정성스럽게 썼는데 상처받더라고요. ‘뭐라도 손에 직접 닿으면 우리를 좀 더 기억해주지 않을까.’ 해서 우편으로 보내기 시작했죠.

 

마누스 뉴스레터

마누스 뉴스레터

 

 

규모가 있는 출판사들은 홍보 마케팅 비용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럴 돈은 없고, 가진 건 노동력뿐이더라고요. 편집자님이 글을 잘 쓰시고, 디자이너님도 능력자이고, 저는 이래 봬도 손재주가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저희 출판사만의 가내수공업이 시작됐죠. 이걸 받아보신 분들이 SNS에 흔적을 남기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외형도 엄청 신경 썼어요. 일부러 시즌에 맞는 우표까지 사서 붙이고 말이죠. 리뉴얼을 위해 지금은 잠시 중단했지만, 재개해도 실물 우편 정체성은 그대로 가지고 갈 예정입니다.

 

 

진짜 손재주가 뛰어나신 것 같아요. 홍보용 책 사진을 직접 찍으시잖아요. 촬영할 때 노하우가 있나요?

 

표지와 배경색이 잘 어울려야 해요. 이건 디자이너님이 알려준 팁인데, 배경색을 어떻게 둘지 좀 애매할 때는 일상을 좀 많이 들여다보라고 하더라고요. 일상에서 봤을 때 예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리는 거예요. 그리고 소품을 잘 활용하면 효과적이에요. 인터넷에 ‘인스타 소품’ 또는 ‘촬영 소품’이라고 검색하면 정말 많은 상품이 나오거든요. 책 분위기와 어울리는 소품을 함께 배치해서 찍으면 좀 더 감성적인 사진이 나와요.

 

홍보용 책 이미지 촬영 중인 마누스의 정가영 대표

홍보용 책 이미지 촬영 중인 마누스의 정가영 대표

 

 

유튜브 영상도 직접 편집하고, 출판 일기도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하는 걸 보고 굉장히 부지런하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출판사가 살아남으려면 ‘뭐든 다 시도해보자.’라는 마음이었죠. 처음에는 홍보 목적이 강했어요. 그런데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하나둘 생기니까 언젠가부터 이 기록 자체를 즐기게 된 거예요.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2022)에서 이런 글이 나와요. “혼자 먹자고는 음식을 안 하게 된다. 곧,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요리 실력이 는다. 나는 잽싸게 끼어들었다. ‘글쓰기도 똑같아.’”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홍보 목적이 아니라 블로그에 비공개로 쓰는 출판 일기도 꽤 많거든요.

 

 

비공개로는 주로 어떤 글을 쓰시나요?

 

영업할 때 서러운 일을 당하면 그에 대한 글을 비공개로 남겨요. 저희 작가님들이 본인 책을 영업하다가 이런 일 당한 줄 알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그래서 공개적으로는 차마 남기지 못하고 혼자 쓰고 캡처해서 팀원들한테만 공유해요.

 

 

그 출판 일기를 바탕으로 『집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2023) 책이 나온 거죠?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구해서 읽고 싶었는데 텀블벅으로만 판매돼서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네, 『집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은 3년간 블로그에 써온 출판 일기에다가 새로 쓴 글들을 추가한, 저희 마누스 팀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대형서점에 유통하지 않고, 굳이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만 판매한 이유가 있어요. 작가님들은 하나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출판사 수십, 수백 곳에 투고하잖아요. 그 노고를 잘 아는 저희로서는,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책을 내니까 마음이 좀 불편하더라고요. 또 책 한 종 내는 데 어쨌든 제작비가 들잖아요. 이익은 못 남기더라도 손해는 보지 말자고 해서 딱 주문 수량만큼만 제작했어요.

 

『집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

『집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준비하면서 마누스 독자들이 쓴 글도 살펴봤는데, ‘찐팬’이 진짜 많으시더라고요. 2개월에 한 번씩 열리고, 오직 단 한 분만 선정되는 ‘땡땡땡 백일장’도 저는 소통의 일환으로 봤어요.

 

마누스 뉴스레터 지면을 다채롭게 꾸미고 싶었어요. 원고료를 드리고 필자에게 청탁할 수도 있었지만, 이 지면만큼은 우리 정체성을 잘 살려 독자들과 좀 더 교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에세이를 만드는 출판사니까 매회 주제를 정해서 짧은 에세이 공모전을 열었죠.(제1회 ‘사물 관찰’, 제2회 ‘여름’, 제3회 ‘3행시’, 제4회 ‘한글날’)

 

마누스 땡땡이 백일장 포스터

마누스 땡땡이 백일장 포스터

 

 

그 덕분에 독자들한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여름’을 주제로 백일장을 열었을 때, 당선자에게 전화해서 당선 소식을 알려드리는데 그분이 갑자기 “대표님 저 모니카(닉네임)예요.” 하는 거예요. 저희 블로그에 댓글도 재밌게 자주 남겨주시고 소통하는 분이셨는데, 정말 반갑더라고요.

 

 

마누스는 팀원, 저자, 독자 등 사람들이 어떤 경계 없이 마누스를,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한 번 맺은 인연이 계속 다른 인연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랄까요. 독자를 팬으로 만드는 마케팅이 따로 필요 없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마누스 첫 컬래버 굿즈, 삼베로 만든 책갈피도 반응이 뜨거웠죠?

 

온정 작가님의 『너를 돌보며 어른이 된다』(2024) 출간을 준비하는 단계였는데, 차별성 있는 굿즈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날 맥주를 마시면서 TV를 보는데 ‘백패커’라는 프로그램에서 안동 대마 농장이 나온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대마를 재배하는지도, 대마가 삼베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지도 처음 알았어요. 농장주가 인터뷰에서 최근 삼베 수요가 줄어들면서 농장 규모가 작아지고 수익도 줄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삼베로 책갈피를 만들면 구김도 덜하면서 얇고 바람이 잘 통하니 빳빳한 책 사이에 끼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바로 저희 뉴스레터 인터뷰이가 되어주신 글쓰니혜진 작가님께 굿즈 제작을 의뢰했어요. 재봉틀 공예를 하는 분이었거든요.

 

삼베로 만든 마누스 책갈피

삼베로 만든 마누스 책갈피

 

 

도서정가제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굿즈를 제작해야 했는데, 다행히 삼베 천이 아주 비싸진 않더라고요. 독자들이 안동 금소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천, 출판사가 손수 만든 책갈피라는 데 의미를 두고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너를 돌보며 어른이 된다』가 대구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니 대구 교보문고와 직거래하는 동네서점에만 제공했는데, 수도권에도 보내달라고 문의가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또 그렇게 하면 희소성이 사라지잖아요. “안 됩니다. 내려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웃음)

 

 

대구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온정 작가님과는 이전에 『방황의 조각들』(2022)이라는 책도 함께 작업했어요. 그 책도 문학나눔도서로 선정됐어요.

 

 

작은 출판사에 그런 지원은 한 줄기의 빛이죠.

 

그 빛을 작가님이 보게 해줬다고, 감사하다고 온정 작가님 앞에서 그때 많이 울었어요. 출판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기였거든요. 일이 너무 힘든데, 스스로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안 드니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계속하고 싶은데 세상이 자꾸 그만두라고 등 떠미는 느낌. 이제야 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나를 봐주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만 출판 일을 너무 짝사랑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방황의 조각들』이 문학나눔도서로 선정됐을 때 처음으로 일이 나를 봐준 것 같았죠. “작가님 덕분에 제가 용기 내서 한 번 더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또 성과를 내면 그건 다 작가님 덕분”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또 다음 책이 대구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면서 큰 힘이 되었네요.

 

 

올해 이은 작가님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날들』(2024)도 교보문고에서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으로 선정돼서 특별 코너에 진열됐었잖아요. 마누스를 점점 알아봐 주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작은 출판사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독자가 헷갈리지 않게 출판사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작은 출판사니까 저렇지.”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저희도 편집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해요. 큰 출판사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교보문고의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에 선정된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날들』

교보문고의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에 선정된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날들』

 

 

출판팀의 단합도 중요하겠군요. 팀원들이 월급제 같은 일반적인 고용 형태는 아닌 것 같은데….

 

저희는 수익이 나면 일부는 회사 자본금으로 귀속시키고, 나머지는 각자 비율은 다르지만 셋이 나눠 가진다고 보면 돼요.

 

 

팀원들과 협업을 잘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나요?

 

일단 저희는 소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본격적인 작업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더 걸려도 충분히 의견을 나눠요. 흔히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소통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어요. 그렇게 해야 누구의 불평불만 없고, 일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일적인 측면에서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계속 연구해요. 최근에는 구글 드라이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마다 폴더를 지정하고, 본인 책 폴더 외 다른 폴더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 폴더에서 일정도 관리하고, 원고도 업로드하고, 피드백도 자유롭게 남깁니다. ‘글 목록’ 스프레드시트에 업로드한 꼭지를 목록으로 작성하고, 편집 작업에 착수하면 현재 어떤 작업이 진행 중인지, 이 작업의 담당자는 누구인지를 전부 표시해요. 그러면 좀 더 투명하게 편집 과정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작가님들은 자신의 원고가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 늘 궁금해 하거든요. 모든 과정을 공유하니 저희 내부에서도 한 번 더 꼼꼼히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메일로 소통할 때마다 “○○ 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어쩌고… 다름이 아니라…”라고 해야 하는데,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로 이런 형식적인 과정이 사라지니 서로 더 편하더라고요.

 

 

저자와 신뢰를 더 탄탄하게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이군요. 출판사 로고에 “To be Honest”가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웃음) 투고 관련 공지만 봐도, 마누스는 저자를 배려하여 오해가 없도록 의사소통에 진심인 것 같아요. 2026년 여름까지 출간 일정이 차 있는 상태임을 알리고, 조만간 출판을 희망하는 경우는 다른 곳의 문을 두드려달라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셨더라고요. 한 번에 한 작업만 하신다는 것도 인상 깊었고요. 규모를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으셨을 텐데 말이죠.

 

초창기에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어요. 근데 놓친 게 있을까 늘 불안했어요. 저라고 매출 욕심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저는 출판사의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명예롭게 위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작은 출판사의 장점이기도 해요. 규모가 크면 무조건 다수의 독자를 확보해야 하고, 인건비나 관리비 등 지출도 많잖아요. 하지만 저희처럼 규모가 작으면 진짜 ‘요만큼만’ 가져와도 저희는 재벌이거든요.(웃음) 요만큼만 확실한 팬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 대전 계룡문고가 폐업한 것이 조금 속상했어요. 대전을 대표하는 지역 서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아쉬움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어요. 저희 부모님이 계룡문고의 단골손님이셨어요. 서점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알아볼 정도로 자주 가셨는데, 그곳에 저희 출판사 책이 한 번도 산처럼 쌓여 있는 걸 보신 적이 없어요. 딸이 출판사를 한다고 말하겠다는 것을 제가 말렸어요. 제 힘으로 떳떳하게 성장해서 마누스 책이 서점 매대에 쫙 진열되면 그때 제가 말하겠다고요. 저한테는 나름대로 숙원 사업이었거든요. 부모님께 영광의 순간을 안겨드릴 날을 꼭 만들어 보려고요.

 

 

지역 서점이 그 지역민들에게 주는 의미가 있죠.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누군가의 추억들이 켜켜이 쌓인 곳이니까요. 요즈음 고민은 뭔가요?

 

매출입니다.(웃음) 어쨌든 출판사도 사업체잖아요. 좋은 책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매출이 있어야 만들 수 있으니까요. 투고를 통해 인연을 맺어 책을 낸 작가님들께 “이번엔 이런 책 쓰셨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해서 다들 다음 책을 열심히 쓰고 계세요. 그럼 저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지원 사업도 열심히 잘 들여다보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해보려고요.

 

집에서 책 만드는 정가영 대표의 사무실

집에서 책 만드는 정가영 대표의 사무실

 

 

마지막으로, 소규모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동종업계 분들께 어떤 말을 전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워요. 저희 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집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에 편집자님이 이런 글을 썼어요. “나는 책을 만들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책 속에 답은 없다. 세상 어느 책도 인간의 삶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다. 책 속에는 예시만 있다. ‘다음 예시 중 맞는 것을 고르시오.’처럼.” 저는 일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일하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저 저에게, 그리고 저희 출판사에 잘 맞을 뿐이에요.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딱 한 가지는 조금 힘주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책은 어디서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출판이라는 것이 다른 업종처럼 특정 상권에 점포가 있고, 거기에서만 고객을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디에 계시든, 예를 들어 지방에 있든, 작은 방에서 일을 하든, 이 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같이 힘내서 좋은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라틴어 ‘마누스’라는 단어에는 ‘용기’라는 뜻도 있다. 정가영 대표는 인맥도, 경험도 없이 시작해서 출판을 잘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가 좀 더 용기를 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누스를 통해 작은 출판사가 어떻게 팬을 만들어 가는지 정석을 보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마누스는 오늘도 한 명의 팬을 획득하였다.

 

진실하고 투명한 소통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진정성을 느낀 이들이 단순 독자를 넘어 마누스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이 되었으리라. 어느 서점 매대에 산처럼 쌓인 마누스의 책을 그의 부모님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 그 따듯한 풍경이 머지않아 그려지는 이유다.

 

 

마누스 로고

정가영(마누스(Manus)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 방송 작가로 일하다 2020년, 에세이 전문 출판사 ‘마누스’를 설립한 뒤로 책을 만들고 있다.
manus2020@naver.com
https://blog.naver.com/manus2020
https://www.instagram.com/manus_book/

 

 

 

김세나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를 운영하면서 출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booksseny@gmail.com
https://cafe.naver.com/publil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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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publil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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