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인터뷰] 이후북스 대표 황부농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4. 11+12.
최근 MZ세대에게 책과 독서만큼 트렌디한 문화가 또 있을까. 이들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아닌 철저히 자기 취향인 책을 구입하거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근사하게 필사한다.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오히려 활자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 덕분에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독자는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내책내낸(내 책 내가 낸)’으로까지 나아갔다. “책을 내면 기분이 조크든요.”
저자가 집필부터 편집, 디자인, 제작, 유통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독립출판은 이제 하나의 놀이 문화로까지 자리 잡은 듯하다. 이렇듯 독립출판 전성시대, 개인이 직접 만든 책을 독자와 잇기 위해 애쓰는 곳이 있다. 서울에 이어 제주도에까지 2호점을 낸 독립서점, 이후북스! ‘이 맛에 책방 하지’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매일 매일이 너무 좋아서”라고 말하는 이, 이후북스 황부농 대표의 ‘매일 매일’이 궁금해 찾아갔다.
이후북스 망원점 입구
이후북스는 2016년 창업 이후 ‘독립서점’을 표방해 왔는데, 독립서점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손님들도 “독립서점이 뭐예요?” 하고 많이 물으시는데, 사실 딱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긴 어려워요. 기본적으로는 ‘독립출판물을 파는 곳’이라는 뜻이지만, 어쨌든 ‘무언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기도 하거든요. 그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일 수도 있고, 기성 출판물로부터의 독립일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에게는 독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무튼 책방 운영자의 철학에 따라 독립책방의 독립이라는 정의는 다양할 겁니다.
저희가 처음 신촌에서 문을 열었을 땐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작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형태’라는 의미의 독립서점에 가까웠을 거고, 독립출판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립서점에 어울리겠죠. 어떤 점에서는 책방을 운영하는 제가 좋아하는 대로 하니까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독립에 가까울 수도 있죠. 근데 독자들도 일부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기에 소규모의 연대가 형성되는 듯합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에 그런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는 게 또 나름 긍정적이죠. 저는 그런 긍정적인 점 때문에 작은 독립서점, 동네서점이 계속 생겨나는 거 같아요. ‘독립서점이 뭐냐?’는 질문보다 ‘그래서 독립서점이 뭐가 좋은데?’를 묻는 게 더 의미 있어 보여요.
독립출판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책에 대한 어떤 경계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이 한 장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고, 독자의 니즈보다 창작자의 의도와 취향이 더 우선될 수도 있고요. 세상에 단 한 명에게만 팔고 싶다면, 정말 한 권만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상식과 편견의 틀을 깰 수 있는 게 독립출판물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후북스 망원점 도서들
독립출판 작가들이 기성 출판사에서 내지 못하는 책을 눈치 보지 않고 과감히 낸다는 점에서 출판시장의 저변을 넓혀주기도 하네요. 이후북스는 주로 어떤 책들을 입고하나요?
특정 장르만 고집하고 있진 않아요. 페미니즘이나 반려동물 관련 책이 꽤 있는 편이에요. 그리고 웬만하면 기존의 책들과 좀 다른 결을 가진, 일반적인 책의 형태에 벗어난 독립출판물들은 들여놓는 편이고요. 물론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표준도서번호)을 달고 나온 기성 출판물도 꽤 있지만요. 입고 문의는 주로 메일로 받고 있어요. 서점 운영을 8년 이상 해서 그런지 입고 문의가 꽤 많은데요. 많을 때는 하루에 10건 이상 문의가 들어올 때도 있어요. 그래서 신간을 검토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일단은 먼저 문의받은 책들 위주로 살펴보고 서점에 들여놓아요. 어떤 책은 표지가 끌려서 받기도 하고, 어떤 책은 주제가 좋아서 받기도 하고요. 입고 받을 때 너무 까다롭게 굴지는 않으려고 하는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다 다르니까요.
이후북스 망원점 도서들
공동 운영자가 있으시던데, 신간은 두 분이 함께 검토하시나요?
상냥이(공동 운영자)와는 2016년 3월, 처음 문을 열던 시절부터 함께해 왔어요. 운영 초창기에는 두 명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싶어서 상냥이가 2년 정도 다른 일을 겸업한 적도 있긴 합니다만, 저희가 직접 출판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책방 일을 함께하고 있어요. 신간 검토를 비롯한 책방 관련 업무는 대부분 제가 맡아서 하고 있고, 상냥이는 편집자 출신이다 보니 출판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필요한 업무도 상냥이가 해요. 책방에서는 웹 포스터를 만들 일이 많으니까요. 블로그나 SNS 홍보는 제가 대부분 하는 편입니다. 자연스럽게 누가 더 하고 덜 하고 할 거 없이 담당 분야가 나뉜 거 같아요.
작은 서점은 대부분 혼자 운영하는데, 두 명이 함께 운영하는 게 좀 신기했어요.
저는 누가 주변에서 동업한다고 하면 말리거든요. (웃음) 제가 상냥이와 일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동업이 정말 쉽지 않아서 말이죠. 한두 가지 면만 보고 동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을 정말 잘 알고 있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결혼과도 약간 비슷합니다. 그 사람에 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아도 막상 결혼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의견이 달라 다투듯이 동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실력이나 능력이 좀 고만고만하게 비슷해서, 못하는 부분을 서로 채워주다 보니 그나마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맞춰나가고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책방에 손님이 와도 응대를 잘 못 하는데, 상냥이는 아주 친절하게 잘하거든요.
상냥하셔서 ‘상냥이’이신 거군요! 그렇다면 대표님의 활동명은 왜 ‘부농’인가요?
특별한 뜻은 없어요. ‘분홍’ 색상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건데, 제가 분홍색 모자를 자주 쓰고 있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어요. (웃음)
부농님과 상냥이 님의 케미스트리(Chemistry)는 이후북스 SNS 소식들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웃음) 서점 이름에 얽힌 사연도 궁금하네요. ‘〇〇 이후(After)’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거 같은데 말이죠.
네, 맞아요. 책을 읽은 이후에는 우리 삶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 슬로건처럼 이름을 지었어요.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 경우도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책에서 무언가를 좀 얻어서 그 이후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이후에는 좀 불편해지라는 거죠. 그런데 막상 저에게 ‘그래서 너는 책을 읽은 이후 뭐가 달라졌냐?’라고 물으면 책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해 오던 것이기에 답하기 쉽진 않네요. (웃음)
이후북스 망원점 내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책방을 열고 난 ‘이후’ 뭐가 달라졌을까요?
서점 운영이 생업이 되고 나니까 책이 가진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내용만 살펴봤다면, 지금은 책을 둘러싼 세계를 더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이 팔릴지 안 팔릴지 시장성을 따져본다든지, 이 책을 누가 좋아할지 독자도 그려보고, 또 이 책은 누가 편집하고 디자인했는지 그 사람을 떠올리기도 해요. 또 종이가 무엇인지, 어떤 인쇄소에서 나온 건지도 보게 되었죠.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많은 사람이 공을 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책이 더 좋아졌죠. 그러면서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어졌고요.
2019년 12월에 신촌에서 망원동으로 책방을 이전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신촌에 있을 때는 서점이 9평 정도였는데, 공간이 협소해서 책을 많이 갖춰놓질 못하는 게 늘 아쉬웠어요. 모임도 소규모로만 할 수 있어서 넓은 곳으로 이전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은유 작가님이 지금 이 자리를 한번 봐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페미니즘 모임을 하던 공간인데 마음에 딱 들었어요. 망원동은 신촌과도 멀지 않아서 기존 고객들도 찾아오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또 원래 제가 좋아하는 동네이기도 하고요. 책도 더 많이 가져다 놓을 수 있고, 모임도 이전보다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어서 잘한 선택 같아요.
이후북스 망원점 내부
동선 등을 고려하여 공간 분리도 잘 되어 있고, 책도 소량씩 가져다 놓아서인지 꽤 다양하게 보유하고 계신 거 같아요. 책을 배치할 때 특히 신경 쓰는 점이 있으신가요?
저는 책 배치가 진짜 어렵더라고요. 기성 출판물은 분야별로 꽂아놓는 편이고, 독립출판물은 평대에 표지가 잘 보이게 배치하려고 해요. 가끔 작가님들이 책을 보낼 때 저희에게 써주시는 편지나 메모들이 있는데, 그걸 함께 붙여놓기도 하고요. 책방은 늘 그 모습 같아 보이지만 위치가 계속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없던 책장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책장이 없어지기도 하고, 그때마다 책 위치도 달라지고요. 가능한 많은 책이 잘 보이도록 신경 쓰는데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도서에 붙여놓은 메모들
서점 운영하면서 뭐가 가장 힘드세요?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별로 없고, 정신적으로도 대체로 만족하는 편인데, 다만 책 판매가 마음처럼 안 되면 좀 속상해요. 그래서 매일 어떻게 하면 책을 더 팔 수 있을까 고민해요. (웃음) 이후북스를 찾아가야 할 이유를 만드는 거죠. 그래서 모임이나 이벤트도 계속 만드는 거고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온라인에서도 책을 판매하시는데, 포장부터 배송, 정산, CS(Customer Satisfaction) 업무까지 지나치게 품이 많이 들진 않나요?
처음에는 저희 서점이 아무래도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손님이 많지 않은 날이 있어서 온라인에서도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에서도 독립출판물 위주로 판매하는데, 어떤 날에는 이유는 몰라도 특정 책이 눈에 띄게 잘 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오프라인 서점은 하루에 방문하는 손님 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판매는 독자 확장의 가능성이 있으니 품이 많이 들어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절에는 온라인 판매가 잘되어서 힘든 시기를 그나마 버틸 수 있었어요. 다만 너무 많은 책을 다루면 관리가 힘드니, 온라인에서는 일주일에 입고 건수를 5부 내외로 정해놓고 있어요. 참고로 온라인에 책을 등록하는 게 제가 책방 일 중 가장 싫어하는 업무이긴 합니다. (웃음)
4만 원 이상 무료 배송 정책을 해놓으셨더라고요.
4만 원 정도는 구입해 주셔야 저희도 무료로 배송했을 때 수익이 있어서요. 여러 권 구입하시면 저희도 고맙고요. 간혹 반품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우리 기준에는 파본이 아닌데 종이가 아주 미세하게 구겨져 있다고 반품해달라고 하면, 안 해주기도 그렇죠. 눈으로 직접 보고 사는 게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잣대를 들이대면 좀 속상하기는 해요. 판매자 귀책 사유로 왕복 배송비를 부담하면 팔수록 적자가 돼버리죠.
책 팔아서 먹고살기 진짜 어렵죠. 그런데도 올해 정부가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어요. 도서정가제 완화를 위한 움직임이 보이는데, 현행 도서정가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출판사와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10% 할인되고 5% 포인트 적립도 해주는데, 저는 그마저도 없어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유통사나 출판사도 도서 공급률(서점이 받는 금액의 단가 비율)이 천차만별이에요.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출판사에서 대형서점과 동네서점 공급률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도 문제예요. 물론 출판사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상생을 생각한다면 출판사도 동네서점 공급률을 높일 필요가 없거든요. 저희 출판사는 작은 책방보다 대형서점 공급률이 더 높아요.
이후북스 황부농 대표
출판사 ‘이후진프레스’를 통해 책도 직접 만들고 있으시던데, 동네서점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공급률을 더 낮춰주시는군요. 더불어 출판사명에서 독립출판물에 관한 애정이 느껴져요. 인쇄부터 제본까지 직접 하는, 책등이 없는 얇은 책자를 ‘진(Zine)’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이후‘진’프레스인가요?
저희가 막상 ‘진’을 많이 만들진 않지만, ‘진’은 가볍게 만들어볼 수 있고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독립출판의 장점이 담겨 있잖아요. 나름대로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차원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점을 하시다 출판까지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희 서점에 출판 관련한 분이 손님으로 많이 오셨어요. 그때 서귤 작가님도 만났는데, 『고양이의 크기』(이후진프레스, 2018)라는 책을 만들어 오셨어요. 고양이가 3m로 커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그림책인데, 제가 주변에 추천할 정도로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에요. 서귤 작가님이 그 책을 500부 정도 찍고 모두 판매했는데, 회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책을 유통하기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절판되면 독자는 이 책을 더는 만나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출판사를 만들어서 유통하면 안 되겠느냐?’ 하게 된 거죠. 책방을 운영하면서 출판사를 하면 장점이 많아요. 책방은 작가님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니 저자 섭외에 경쟁력이 있어요. 독자에게 책을 유통하기 좋은 환경이니까요.
『고양이의 크기』
이후북스는 다양한 시도를 뚝딱 해내는 거 같아요. ‘책을 찢다’라는 전시도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시도로 알고 있어요.
‘책을 찢다’는 2021년 8월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는 전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한쪽을 뜯어 붙이거나 책의 여백에 감상을 적어 붙입니다. 메모도 덧붙이고 그림도 그려가면서 말이죠. 책을 꼭 하나의 형태로만 대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책을 찢고 밑줄을 긋고 감상을 남길 정도로는 읽어야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물론 출판사와 작가님과 협의해서 이 전시를 열고 있고, 작가님의 메시지를 받아서 해당 도서는 예쁘게 포장해서 판매했어요.
지금까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 위즈덤하우스, 2021), 『슬픈 세상의 기쁜 말』(정혜윤, 위고, 2021), 『새 마음으로』(이슬아, 헤엄, 2021),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유, 창비, 2021), 『다정소감』(김혼비, 안온북스, 2021), 『우연히, 웨스 앤더슨』(월리 코발, 웅진지식하우스, 2021),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정여울, 이야기장수, 2022), 『관계의 말들』(홍승은, 유유, 2022),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임경선, 마음산책, 2023), 『시인들』(박참새, 세미콜론, 2024) 등 여러 도서를 진행했는데, 독자들도 흥미로워했어요.
이후북스의 ‘책을 찢다’ 전시(출처: 이후북스)
책을 해체함으로써 콘텐츠를 새롭게 확장해서 재탄생시키는 시도였네요. 이후북스에서는 북토크나 모임도 활발하게 열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모임이 열리나요?
글쓰기 모임을 주로 많이 하고 있고, 독립출판 제작이나 책방 창업 워크숍 ‘나도 책방 해볼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도 책방 해볼까’는 벌써 22기가 진행 중인데, 책방 창업 시 준비하면 좋을 점과 운영의 장단점, 고민 등을 나누고 있습니다. 북토크는 예전에는 주로 저희가 작가님께 직접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대관비를 받아 무료로 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참가비를 받기도 해요. 참가비를 받는 경우, 독자가 참석하면 3,000원 쿠폰을 제공하는데, 이건 당일 책 구매에 사용할 수 있고요.
이후북스 북토크(출처: 이후북스)
독서 모임은 현재는 온라인으로 하나 진행되고 있는데, ‘책 읽는 페미니스트’님이 리더입니다. 한 달 주기로 『어머니를 돌보다』(린 틸먼, 돌베개, 2023),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김원영, 문학동네, 2024),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돌베개, 2023) 같은 페미니즘 도서를 함께 읽어 오고 있어요.
여기 피아노가 있던데 연주회도 열리나요?
아, 그건 모임용은 아니고 제가 치는 피아노입니다. 피아노를 작년에 배우기 시작해서 1년 좀 넘게 쳤는데, 올해 이걸 사고 상냥이한테 욕을 많이 먹었어요. 책방에 있는 기물 중에서 가장 비싸거든요. (웃음) 하지만 저는 책방에 피아노를 두어서 제가 책방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또 모르죠. 연주회를 할 수도 있죠. 물론 그게 저는 아니겠지만….
이후북스 채용 공고에 “황부농보다 피아노 못 쳐야 한다.”라고 돼 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웃음) 이후북스 손님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실까요?
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너무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데요. 책방에 오시는 분 중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가 많은데요. 오셔서 이야기하다 보면 작가님인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거의 친구가 된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서귤 님이나 진고로호 님, 인디가수인 이내 님. 다 책방에서 손님으로 만났죠. 아기 때 엄마랑 같이 와서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주원이도 생각나네요. 올해 주원이 어머님이 책을 만들어서 이후북스에 입고했는데요. 주원이도 오랜만에 봤거든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주원이를 보며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나?’ 했다니까요.
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무르익어 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저까지 흐뭇하네요. 그런 성원에 힘입어 2021년에는 이후북스 제주점까지 냈단 말이죠.
사실 망원점으로 돈을 잘 벌지 못하는데,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확장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웃음) 4년 전 여러 책방 운영자님들과 연말 모임을 한 적 있었어요. 그때 제가 지나가는 말로 제주도에도 책방 하나 내고 싶다고 했는데, 미래책방 대표님이 이 말을 기억해 두셨다가 얼마 뒤 연락을 주신 거예요. 지금 자신이 운영하는 이곳에 이어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본인은 정리하고 떠나려는데, 책방은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임대료를 알려주시는데, 너무 싼 거예요. ‘월세가 이 정도면 놀러 가서 책방만 열어도 월세는 내겠네’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열었습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몇 군데 이제 막 생겨나는 동네였는데, 위치가 공항에서 버스로 10여 분 정도라 거리로 가깝고, 자리가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공간이 작고 허름한데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걸 좋아하시더라고요. 동네 주민들도 자주 오고 관광객도 꽤 많이 찾아오는 거 같아요.
이후북스 제주점 외부와 내부(출처: 이후북스)
제주점을 내고 보니 어떤 점이 좋던가요?
독자층이 다르다 보니 ‘여기서 안 팔리면 저기서 팔아볼까?’ 하고 가지고 가요. 실제로 제주점에서 잘 팔리는 책이 있고, 망원점에서 잘 팔리는 책이 따로 있어요. 제주점은 아무래도 여행객들이 많다 보니 좀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 시집이 인기가 있고, 베스트셀러는 잘 안 나가요. 그리고 손님들이 기성 출판보다는 독립출판물을 더 관심 있게 보시더라고요. 그렇다고 제주점을 열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섬이라는 지역 특성상 날씨가 안 좋으면 비행기가 안 떠서 제주도에 갇히거나,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질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책방 하나 운영하는 것도 힘든데, 두 곳을 함께 운영하려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제주점 근처에 집도 구해서 거기에서 머물며 일했어요. 지금도 상냥이와 제가 번갈아 제주점을 왔다 갔다 하고 있긴 한데, 저희가 둘 다 서울에 있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땐 ‘일일 책방지기’의 도움을 받기도 해요. 일일 책방지기는 제주도에도 가고 싶고 책방에서도 일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입니다. 한 달에 4~5명 정도 모집하고 있는데, 일일 책방지기는 간단한 교육을 받고 12~18시까지 책방을 운영해요. 책 정리와 손님 응대 및 판매가 주 업무입니다.
대신 저희는 그분들께 책방 바로 옆 숙소를 제공해드려요. 이를테면 2일 근무 시 2박, 3일 근무 시 3박 숙소를 제공하고 있죠.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정착해서 주중에는 저희가 책방을 지키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일일 책방지기의 예약을 받아 저희가 제주점에 안 내려가는 주도 있어요. 저희 숙소가 아주 쾌적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웃음)
일일 책방지기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지원하는 이유가 뭘까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책방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제주도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쌓고 싶은 거 같기도 하고요. 근데 진짜 많이 지원하세요. 심지어 그분들이 책 소개를 저보다 더 잘 적어놓기도 하고, 본인이 이벤트를 만들어 진행하기도 하죠. 저보다 그분들이 책방을 해야 하는데, 제가 하고 있네요. (웃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점이 단순히 책 파는 공간을 넘어선 무엇 같아요. 서점의 미래는 무엇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의 취향과 니즈에 따라 복합문화공간으로 계속 변하고 있거든요. 그 변화 속에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계속 찾아올 거라고 봐요. 그렇다고 서점이 그 변화를 일부러 무리해서 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다 보면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제자리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보이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가장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책이 가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잘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상욱 경희대학교 교수님이 한 칼럼(「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에서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다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너무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 말고, 오히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공감되더라고요.
이후북스 망원점 내부
책방 운영하시는 분들끼리 “동네서점의 생존 주기는 2년”이라는 자조적 농담을 많이 하죠. 그만큼 책방 현실이 녹록지 않은데, 이후북스를 8년 동안 지속해온 힘은 무엇일까요?
8년이 길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보다 더 오래, 더 잘하고 있는 책방도 많잖아요. 그분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돼요. 아직 잘하는 건 없으니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죠. 지금도 어제 막 책방을 연 사람처럼 책을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한 일은 사실 별로 없고, 앞서 말했듯 상냥이와 함께라서 가능했어요. 지금은 도와주시는 스태프분들도 계시거든요. 더불어 저희 책방을 좋아해주는 몇 안 되는 독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책방 다음은 그냥 없다고 생각해요. 책방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아직 책방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요. 책방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죠. 만약 제가 ‘책방 안 되면 다른 거 해야지’ 같은 마음으로 운영하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꾸 다른 걸 보게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지금 이후북스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합니다.
이후책방(북스)은 있어도 책방 이후(After)는 없는 거군요. (웃음)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게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도 그만큼 우직하게 할 수 있는 힘처럼 보이네요. 마지막으로 서점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책방을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열면 힘든 일도 많지만 재미있는 공간이니까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오래 운영할 수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오래된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구에는 짐을 잠시 올려둘 수 있는 자리가 슬쩍 마련돼 있었는데, 그런 소소한 배려 덕분에 덩달아 내 마음도 1℃ 올랐다. 스피커에서는 인디 가수 ‘프롬(Fromm)’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오래도록 천천히 책들을 들여다봤다. 소수의 취향들이 그곳에선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서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살뜰히 고른 한 권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가서 책방지기와 손님으로 다시 그와 마주했다. 그의 사소한 질문에 나는 무언가 홀린 듯 답했는데,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어떤 이야기가 왜 그 순간 튀어나왔을까.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독립서점을 왜 일부러 찾아오는지 조금은 알 듯도 했다. 그 경험이 주는 일상의 풍요로움. 이후북스를 방문한 이전과 이후가 어쩐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황부농(이후북스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를 운영하면서 출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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