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5 2024. 9+10.
[인터뷰] 문학살롱 초고 김연지 대표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4. 9+10.
몇 년 전만 해도 ‘어떻게 술 마시면서 책을 읽지?’라며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즈음 젊은 세대에게 음주 독서 문화는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추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술과 책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간도 꽤 많이 생겨났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흔한 공지 글 하나도 어쩜 그렇게 사랑스럽게 쓰던지, 대표가 출판 편집자 출신이 아닐까 싶은 감성이 인스타그램 게시물 곳곳에 묻어 있었던 그곳. 심지어 공간 이름도 ‘초고’란다. 글 쓰고 책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그 공간은,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는 걸까. 여우비 내리는 여름날, 합정동 고즈넉한 골목, 지하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문학살롱 초고로 김연지 대표를 만나러 가보았다.
문학살롱 초고 외관
문학살롱 초고가 2019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당시 저는 신문방송학과 대학생이었는데, 휴학하고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하는 틈틈이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고,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냈죠. 그러다가 대학에서 ‘여행과 글쓰기’라는 교양 수업의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수업을 듣던 나이 지긋한 학생분이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뭐 하고 싶은지 묻는 거예요. “술 마시는 책방 만들고 싶어요.” 하고 가볍게 대답했는데, 나중에 진짜 투자를 해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분이 늦깎이 학생이었는데, 기업가였던 거죠.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그런데 계속 연락이 와서 사업계획서 보내 보라고 설득하시기에 회사에 한번 갔는데, 진짜 번듯한 중견기업인 거예요. 그래서 엔젤 투자자처럼 투자받고 수익 일부를 나누는 식으로 하자고 계약을 맺었죠.
문학살롱 초고 김연지 대표
그래서 겨울 내내 성수, 을지로, 합정 등을 찾아다녔고, 이 공간을 만났어요. 임대차 계약도 하고 인테리어 업체도 다섯 군데나 견적을 받아보고 계약까지 한 상태였는데, 투자자의 사업이 갑자기 망해버린 거예요. 투자금을 절반 정도밖에 못 받은 상황이었는데 이미 계약은 다 해버렸고, 그 돈은 여기 보증금으로 써버렸으니까 이걸 취소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청년 대출을 받고 부모님께 조금 빌려서 시작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25살이었는데, 자영업이 이렇게 힘든지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웃음)
학교 다니다가 취업이 아닌, 바로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우여곡절이 많았군요.
다행히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해서 그게 좀 도움이 되긴 했어요. 카페, 디저트 가게뿐 아니라 칵테일 바에서도 오래 일했거든요. 뮤지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칵테일 이름이 다 노래 제목이었죠. 저희 메뉴 중 ‘문학 칵테일’ 아이디어도 그런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거예요.
‘문학 칵테일’은 어떤 메뉴인가요?
책을 모티브로 개발한 시그니처 칵테일이에요. 예를 들어 ‘한여름 손잡기’의 경우 레시피를 개발한 직원분이 ‘한여름 버드나무 아래에서 마시면 좋을 맛’이라고 표현해줬는데, 권누리 시인의 시집 『한여름 손잡기』(봄날의책, 2022)가 떠올라 이름 붙이게 되었습니다.
‘캣콜링’은 칵테일을 먼저 개발하고 친구한테 맛보여줬는데,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민음사, 2018)이 생각난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칵테일이 먼저 개발되고 그에 어울리는 시집명이 붙는 경우가 있고, ‘완벽한 날들’처럼 그 책이 너무 좋아서 책에 어울리는 칵테일을 개발한 경우도 있어요. 문학 칵테일을 즐길 때는 이 책과 이 맛이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혼자 생각하면서 즐기는 재미도 있을 거 같아요.
문학살롱 초고의 문학 칵테일 메뉴
문학 칵테일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제가 칵테일 만드는 걸 너무 좋아하고, 한국 문학 작품들 중에 저는 특히 시를 좋아하는데, 시가 좀 더 사람들한테 편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구상했습니다.
초고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손님으로서 이 공간에 와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싶은지, 또 이 공간에서 손님 스스로가 어떻게 그려질지를 고려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공간이었으면 했고, 혼자 방문했을 때도 부담스럽지 않고, 퇴근 후 혹은 쉬는 날에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휴일과 여가를 잘 보내고 있는 기분이길 바랐어요. 스스로 자존감이 올라가는 그런 경험들 있잖아요.
문학살롱 초고 입구 통로와 간판
시각적으로는 인테리어 업체와 미팅하면서 늘 한결같이 요청한 게 있어요.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들어오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영감을 받아,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갔는데, 뭔가 탁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경험이 이 공간에도 있었으면 했거든요. 여러 업체에서 대부분 이 공간에서 얼마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보고 다들 복층 구조의 시안을 보내주셨는데, 한 군데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이렇게 층고가 높은 지하는 드물어서 이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입구를 최대한 좁고 비밀스러운 통로를 만들어서 들어왔을 때 탁 트이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이 말에 마음이 동해서 바로 계약했죠.
문학살롱 초고 내부 모습
오늘 저희도 들어오면서 여기 되게 비밀스러운 공간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바라던 걸 잘 구현해낸 거 같습니다. 공간 이름은 왜 ‘초고’인가요?
초고에서는 실수해도 돌이킬 수 있으니 괜찮고 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잖아요. 손님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고, 여기에서 열리는 행사들도 실패해도 괜찮으니 재밌는 것들을 시도하고 싶어서 ‘초고’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글 쓰는 분들이 주로 ‘초고’라는 용어를 많이 쓰잖아요. 창작자를 끌어당기는 이름 같아요. (웃음) 초고처럼 이 공간에서만큼은 실수해도 괜찮고,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만 같아서 은근히 위로가 좀 된다고나 할까요. 초고가 문을 열었던 해가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잖아요.
그때 이슬아 작가 북토크가 있었는데, 딱 한 분이 마스크를 끼고 오셨어요. 저분은 조심성이 많은 분이구나 싶었는데, 마스크가 일상이 되는 날들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죠. 그래서 초창기에 정말 힘들었어요. 정부 지침도 계속 바뀌고, 오프라인 행사도 변수가 많았잖아요.
초고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면 차분한 분위기를 원하는 거 같으면서도, 절대 조용하지만은 않더라고요. 하나의 분위기로 규정되지 않았어요. 문학살롱 초고는 어떤 분위기를 지향하나요?
초반에는 좀 조용한 분위기를 추구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각자 테이블에 서로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낮은 목소리로 대화했는데, 사실 분위기라는 게 통제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아예 그냥 요일을 나누기로 했어요. 평일에는 조용한 클래식이나 재즈, 혹은 빗소리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저도 중저음으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손님들도 함께 목소리를 낮추시더라고요.
문학살롱 초고 가이드와 문학 칵테일 도서 『이방인(L’Étranger)』(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42)
한편 주말은 완전히 달라요. 아예 음악부터 좀 크게 틀고, 저희도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해요. 주말에는 독서모임을 하러 오는 분들도 많고 그래서 메뉴판에 아예 적어뒀어요. 평일에는 ‘몰입’을, 주말에는 ‘교류’를 지향한다고요. 요일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해 달라는 말과 함께. (웃음)
저는 사람들이 초고에서 책이나 문학 작품에 대해서 말해주기를 바랐어요. 서평도, 책 추천도, 요즈음 사람들의 발화가 대부분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잖아요. 활발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오프라인 장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좀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사를 기획할 때도 일방적인 듣기와 말하기가 있는 행사보다는, 관객이 최대한 많이 참여해서 서로 ‘티키타카’할 수 있는 방식을 떠올려요.
손님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술을 마시는 문학살롱 초고의 좌석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이곳에서 책을 매개로 교류하는 경우도 꽤 있나요?
가끔 있어요. 외향적인 분들은 “저도 이 책 너무 좋아해요.” 하면서 서로 인스타그램 주소를 교환하시기도 해요. 사실 초고는 약간 내향인 ‘인프피(INFP)’들의 공간이라 그런 분들이 드물긴 하죠.
‘인프피’들이 친구랑 여행가게 되면 엄청 가기 싫어하는데, 막상 여행지 도착하면 가장 재밌게 노는 유형이래요. 막상 판을 깔아주면 잘 논다는 거죠. 초고가 딱 그런 거 같아요. (웃음)
차분하게 미쳐 있는 사람들이죠. (웃음)
그동안 차분하게 미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거 같은데요. ‘초고 코믹쇼’가 떠오르네요.
초고 코믹쇼는 스탠드업 코미디(Stand-up comedy) 오픈 마이크(Open Mike) 공연이에요. 실은 그전에 ‘초고 디너쇼’가 있었어요. 북토크가 왜 이렇게 다 얌전할까, 좀 까불어도 되지 않을까, 쇼 프로그램처럼 재밌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게임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디너쇼’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셔서 진입장벽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디너쇼는 10회까지만 하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해본 거예요.
스탠드업 코미디도 주류가 남성인데, ‘블러디퍼니(Bloodyfunny)’라는 국내 첫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 멋진 분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분들이 활약하는 무대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죠. 코미디언이 꼭 아니어도 일반인 참여자들이 무대에 서서 농담으로 5~10분 정도 그냥 마이크 잡고 하는 걸 ‘오픈 마이크’라고 하더라고요. 초고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그래서 블러디퍼니 크루와 함께 코미디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도전해보게 했죠. 처음에는 코미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참가하는 일반인이 있을까 싶었는데, 세상에나! 저는 웃긴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어요.
참 신선한 시도네요. 문학살롱에서 코믹쇼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10분 동안 말하는 퍼포먼스가 굉장히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창작이고요. 웃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초고’라는 이름처럼 농담해서 못 웃겨도 이건 오픈 마이크니까, 우린 다 연습하러 온 거니까 괜찮다 싶었죠. 편견을 깨고 싶기도 했고요.
5주년 기념행사도 반응이 뜨거웠던 걸로 기억해요.
5주년 기념행사는 저희 이웃인 ‘색다른 한잔’이라는 수제 맥줏집과 함께 기획했어요. 이날만큼은 우리도 책만 읽는 너드(Nerd)가 아니라, 마이크와 노래방 기계만 있다면 놀 줄 안다는 걸 보여주자 싶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노(No) 문학존’을 공표하고 노래방을 콘셉트로 클럽을 열었어요. 역시나 차분하게 미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문학살롱 초고 내부 도서와 인터뷰 중인 김연지 대표
최근에는 참여형 북토크 ‘초고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를 한창 진행하셨는데요. 초고의 북토크는 일반적인 북토크와는 좀 달라 보여요. ‘이게 북토크라고?’ 하는 지점들이 있다고나 할까요.
‘초고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독자 열 분 정도만 모시고 작가가 상상한 북토크를 실현해주는 콘셉트예요. 예를 들어 이훤 작가님은 『아무튼, 당근마켓』(위고, 2023)을 출간하면서 실제로 여기서 당근마켓을 열었고, 오신 분들이 서로의 물건을 경매하듯 자기 이야기와 함께 물건을 나누었어요. 김승일 작가님의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아침달, 2024) 북토크는 구마(驅魔) 의식이 함께 진행되었어요.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있잖아요. 베란다에서 썩어가는 화분, 전 애인이 선물한 물건 등 마(魔)가 낀 물건을 퇴마소로 가져오면 탁월한 이야기꾼 김승일 작가님이 물건의 사연을 듣고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어 구마 의식을 해주는 거였어요. 이 물건에는 악마가 들어 있는 거 같다면서 다 함께 소금을 뿌리기도 하고, 하여튼 재밌었어요.
이유운 작가의 『유리유화』(아침달, 2024) 사주팔자 북토크도 북토크인 듯 아닌 듯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유운 작가님이 동양 철학을 전공하시고 또 주역점을 볼 줄 아셔서 참여자들의 하반기 미래를 점쳐주고, 「유리유화」 낭독으로 점사비를 받았죠. 초고는 살짝 경계에 있다는 감각이 중요한 정체성 같아요. 초고가 서점과 칵테일 바의 경계에서,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 경계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게 스트레스였는데, 저희가 경계에 있으니까 이쪽도 저쪽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경계가 가장자리이기도 하잖아요. 소외된, 퀴어적인 느낌도 있어요. 어떤 판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모두가 어디에든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이 초고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특색이 될 수 있음을 이런저런 기획을 하면서 배운 거 같아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북토크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요즘은 집에 초대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콘셉트가 트렌드더라고요. 저희도 소파에서 마이크 없이 그냥 각자 쿠션 하나씩 들고 수다 떨 듯 편하게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가제로는 ‘비수기 작가들’이라고 일단 정해두고, 신간을 내는 작가들보다는 지금 작품 준비를 하고 있거나 쉬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너무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문학살롱 초고 김연지 대표
일명 ‘방구석 북토크(가제: 비수기 작가들)’는 따뜻한 기획 같아요. 인생이 비수기에 접어들면 사람이 고립되고, 왠지 세상에서 영영 잊힌 것만 같고, 뭔가 빨리 성과를 내놓아야만 다시 등판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울하잖아요. 그런 작가분들에게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나 아직 죽지 않았다.’ 힘도 좀 실어주면 큰 힘이 되겠네요. 초고도, 김연지 대표님도, 이 공간이라면 이 사람이라면 날 편견 없이 봐주고 응원해줄 거라고 믿게 만드는 거 같아요.
초고가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은 원래 그걸 운영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거니까, 초고가 지금처럼 그런 공간으로 쭉 남을 거예요.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길 주저하지 않는 대표님을 닮아서 말이죠. 최근에 『기대어 버티기』(위즈덤하우스, 2024)라는 책도 출간하셨는데요. 정신병동에서의 경험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하기 쉽지 않았을 테지만, 누군가에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 거예요.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보호 병동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고, 폐쇄 병동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길 바랐어요. 거기가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많이 다쳐서 잠시 쉬다 가는 곳으로 말이죠. 두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초고 운영자임을 밝혀도 될지는 망설여졌어요. 개인 김연지는 다 까발려줘도 상관없지만, 문학살롱 초고 이미지에 누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프고 또 회복해가는 이야기들이 초고를 떼고는 다룰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밝혔어요.
원래 저는 기획자보다 창작자로서의 자아가 더 강해요. 시 등단을 목표로 습작하면서 지내고 있고, 무명이긴 하지만 에세이스트로도 계속 활동해왔죠. 조금 추상적으로 보면, 창작은 자기 스스로 맥을 짓는 일 같아요. 허구든 사실이든 결국 자기가 추구하고 진실이라고 믿는 무언가를 작품으로 써내는 거잖아요. 무의식 속의 가치관, 내가 바라는 세계가 텍스트라는 형태로 구현되고, 물성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 잠시 기대어 있을 수 있죠. 이 텍스트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창작자의 세계관이 내 이상과 맞아떨어질 때 안심하게 되고, 묘한 공감과 유대감이 생기거든요.
『기대어 버티기』
초고 혹은 김연지 대표님의 요즘 고민은 뭐예요?
저는 그동안 잘 쌓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시도, 초고도 유지는 되지만 뭔가 ‘한 끗’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잠시 쉬어야 하나, 타성에 너무 젖어 있진 않나 싶어요. 초고를 웹사이트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일단 5년 만에 복학합니다. 실은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는 무언가 시도를 하기보다는 지금을 잘 유지하면서 돈을 잘 모아야겠다 싶기도 해요. 초고는 정말 유지만 되는 정도거든요. (웃음)
문학살롱 초고 김연지 대표
마지막으로 초고에 찾아와주는 독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존재만으로 감사해요. 여기 초고에 있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바라는 게 아니라 정말 그냥 좋아해서 큰 거 바라지 않고 계셔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너무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이걸 소비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해요.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 나누면서 즐거웠어요. 오늘은 인터뷰하러 왔지만, 다음에는 술꾼 독자로 찾아올게요. (웃음) 고맙습니다.
『기대어 버티기』의 또 다른 제목 후보는 ‘가능성의 벌새’였다고 한다. 벌새는 지구상 가장 작은 새지만, 가장 뛰어난 비행 능력을 지녔다. 1초에 90번이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갯짓을 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자유롭게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중에 정지한 상태로 꿀을 빨아 먹을 수 있다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부단한 날갯짓을 하며 자기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버텨야지. 최선은 무엇일까. 버티는 건 무엇일까. 그건 피하지 않는 것이지. 아픔을 직면하는 것이지. 그런데 또 최선이라니. 또 버티다니. 그건 너무 오래 해왔잖아. 최선을 다하지 말자. 버티지 말자. 여기는 오두막이야. 임시 거처야.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치면 그냥 무너지자. 구조대가 가까이 있어. 그들은 내가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보수공사를 해줄 거야. 몇 번이고 다시 세워지는 오두막이야. 몇 번이고 허물어져도 괜찮아.” - 『기대어 버티기』 중에서
벌새처럼 그도, 문학살롱 초고도, 기대어 버틸 무언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그렇게 여전히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김연지(문학살롱 초고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를 운영하면서 출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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