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3 2024. 5+6.
[인터뷰] ‘동네서점지도’ 운영자 남창우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4. 5+6.
“화장대가 좀 밋밋해서, 책 근처에도 안 가는 저지만, 책 좋아하는 척하려고 구매했어요.”, “책의 반값도 안 되는데 진짜 책을 살 이유가 없죠.” 인테리어 모형 책을 구매한 사람들의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책이 비싸다면서 가짜 책을 산다. 하긴 도서관도 가짜 책을 꽂아두는 시대이니! 올해 초 개장한 스타필드 수원의 별마당 도서관 서가에는 모형 책이 가득하다. 어차피 사진만 잘 나오면 되니 가짜 책도 상관없다는 걸까. 개장 일주일 만에 100만여 명이 방문했다는 이곳의 인기가, 도심에 생긴 책 공간이 반가운 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씁쓸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독서인구는 2013년 62.4%에서 2023년 48.5%로, 10년 만에 13.9%p 감소했다. 이런 시대에 동네서점은 계속 늘고 있다. 왜일까. 도대체 동네서점에는 어떤 희망이 있고, 또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걸까. 오랜 시간 동네서점을 지켜보며 지도를 만들어온 남창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5년부터 플랫폼 ‘동네서점지도’를 만들고 계시는데, 정확히 어떤 서비스인가요?
동네서점지도는 ‘내 취향의 독립서점(Independent bookshop) 추천검색 가이드’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50여 개의 취향 및 활동 태그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자기 취향의 책방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자기 위치 기반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여행객이나 독립서점 찾아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또 서점뿐 아니라 도서관, 문화공간도 검색할 수 있어요.
취향은 대략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요?
예술서점(영화, 사진, 음악), 문학서점(시, 소설), 헌책방, 라이프스타일서점(반려동물, 식물생태, 고양이, 시니어), 어린이·청소년서점, 여행서점, 성평등서점, 잡지서점, 만화서점, 커피와 차가 있는 서점, 술이 있는 서점, 전시·공연이 있는 서점, 북스테이서점, 책처방서점, 해외출판물서점, 커뮤니티서점 등 굉장히 다양해요.
독자, 독립서점, 출판계를 연결하는 ‘동네서점지도’
이런 서비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저는 1998년부터 10여 년간 웹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는데요. 우연히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이라는 도서전에 갔는데, 20~30세대 여성들이 독립출판물을 사려고 길게 줄 서 있더라고요. 거기서 독립출판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고, 2012년에 창업해서 출판 앱을 개발했습니다. SNS 사진을 포토북으로 자동 출판해주는 앱이었는데, 성과가 그다지 좋진 않았어요. 제 예상과 달리 독립출판 시장이 아직 대중화된 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다가 스토리지북앤필름의 강영규 대표님이 만든 『독립출판 서점 인덱스』(2015)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죠. 30여 개 서점 목록과 사진이 함께 담겨 있는 소책자였는데, 아무래도 출간과 판매 시점이 좀 다르다 보니 폐점 등 변경된 정보가 많은 거예요. 그걸 보고 독립서점지도를 온라인에 만들어 두면 정보를 업데이트하기도 좋고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재미로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구글 ‘마이 맵(My Maps)’ 기능을 활용하면 아주 간단하거든요. 그렇게 70여 군데 독립서점 정보를 모아 ‘함께 만드는 동네서점지도’를 공개했더니, 예상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독립서점 정보를 모은 ‘함께 만드는 동네서점지도’
현재 지도에 수록된 독립서점은 얼마나 되나요?
2024년 4월 기준으로 독립서점은 890여 곳, 문화공간과 도서관까지 포함하면 1,500여 곳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오신 게 실감 나네요. 새로 생기거나 폐업 등 정보가 변경된 경우는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세요? 일일이 직접 찾아다니며 알아내긴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니 사람들은 제가 동네서점을 굉장히 자주 갈 거라고 오해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직접 가는 건 한계가 있고요. 저는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저희 웹사이트에 ‘제보하기’ 기능을 만들어 두었어요. 이를 통해 누구나 가볼 만한 동네서점을 추천하거나 수정사항을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서점 운영자가 직접 제보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책방지기 입장에서는 자신의 공간을 홍보해주는 거니까 데이터 공유에 적극적입니다.
그렇게 제보된 내용을 바탕으로 저희가 온라인 정보나 뉴스 검색을 통해 간단히 검증한 후, 정보를 수집하고 편집해서 온라인 지도에 반영합니다. 요즈음 독립서점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서 검증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저는 보통 이 작업을 일요일마다 하고 있습니다. 반영된 데이터는 24시간 후에 온라인 지도에 노출돼요. 그래서 월요일 오후 또는 화요일에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부 사정에 따라 온라인 지도의 데이터 반영과 노출 일정은 유동적으로 변경될 수 있어요.
‘동네서점지도’의 남창우 대표
동네서점지도의 등록 기준이 궁금하네요. 독립서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독립서점은 오프라인에서 지역 기반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중·소형 서점을 말합니다. 대규모 자본에 의해 소매점을 여러 곳에 두고 경영하는 대형 체인서점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죠. 서점의 사전적 정의 역시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를 말하는데, 저희 서비스에서는 ‘이용자 제보로 추천받아 등록된 책을 파는 공간’을 지칭해요. 대외적으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독립서점’ 또는 ‘동네서점’을 같은 의미로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을 ‘독립서점’으로 쓰는 것은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 용어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고 보고요.
또 저희 지도에서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는 달리, 학습지와 참고서 판매 여부 또는 ‘서점업’으로 사업자등록, 도서와 기타 매출 비중 여부 등을 세세히 따지진 않습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펴낸 〈서점편람〉을 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학습지와 참고서, 단행본 모두 판매 여부에 따라 지역서점(전통적 서점)과 기타서점(독립서점)으로 구분했어요. 그리고 지역서점을 ‘불특정 다수(최종 소비자)에게 도서(간행물)를 판매하고, 오프라인 방문 매장을 상시로 운영하며, 도서 판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실체적, 물리적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죠. 그러나 2022년부터는 이 분류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그런 구분이 모호해져서 아닐까요?
더불어 독립서점이냐 아니냐는 타인이 아닌 책방지기가 정의한다고 봐요. 운영 주체 스스로가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정신으로 서점을 운영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거죠. 외부에서 정한 물적 기준이 아닌, 책방의 운영 의도와 내용, 최종 목표 등 서점 운영자 스스로 정한 정체성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간단한 검증만 거치면 동네서점지도에 등록해드립니다. 이 정의는 일관성 있는 동네서점지도 서비스 운영을 위한 것으로,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기준은 아닙니다(최근 출판 생태계는 각 주체 간 서점 분류체계를 통일해야 한다거나, ‘독립서점’의 용어 정의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긴 합니다.).
독립서점만의 특징이 따로 있을까요?
대표적인 독립서점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님이 ‘개성’, ‘소통’, ‘다양성’, 이 세 가지를 독립서점의 주요 구성 요소로 꼽은 바 있죠. 저도 같은 생각인데요. 자신만의 개성을 바탕으로 이웃과 소통하고 상생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곳이 독립서점이라고 봅니다.
독립서점 운영자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맞아요. 결국 독립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더라고요. 책방지기가 매력 있어야 해요.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은 그렇지 않잖아요. 독립서점은 개인이 시스템이고 체계인 거예요. 경주 황리단길에 있는 서점 ‘어서어서(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의 대표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분 말씀이 책만 팔아도 매출이 꽤 나온다는 거예요. 한 달에 최대 4000만 원 매출도 달성해보고, 주말에는 500권 이상 팔린다고 하니 동네서점인데 엄청난 거죠. 물론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간판도 없는 그 작은 서점이 왜 인기가 있겠어요. 책방지기가 15평 되는 공간을 직접 꾸미고 자기 취향을 곳곳에 담았대요. 서점 앞에는 옛 정류장에서나 볼법한 의자를 설치하고, 서가는 한옥 미닫이문 문살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빈티지 감성을 살린 거죠. 게다가 책을 사면 마치 약 봉투 같은 ‘책 처방 봉투’에 담아줘요. 그리고 서점에 오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동네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책방지기라고 봅니다. 책방지기가 자기만의 강점을 갖고 운영해야 해요.
저도 예전에 잠시 동네서점을 운영한 적 있는데, 그때보다 동네서점이 훨씬 더 많이 생겨났어요.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인데, 독립서점은 왜 늘고 있을까요?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자기 삶의 가치를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나눔을 실천하는 데 기쁨을 두는 사람들이에요. 지역의 문화예술 공동체에 기여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요. 경제적인 것만 따지지 않는다는 거죠.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했거나, 퇴직 후에 서점을 창업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벌 수 있는 업을 선택한 거죠. 자아실현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서점업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아요. 책은 다른 상품과 비교하면 생산과 유통 부분에서 장점이 많습니다. 공산품에 가까워 품질이 균일하고, 유통기한도 없고, 사후 관리도 거의 필요 없어요. 그래서 커피나 술 등 다른 상품과 함께 취급하기 쉽습니다. 위탁 매입이 가능한 경우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할 수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책 좋아하는 손님 중에는 소위 ‘진상 고객’이 별로 없다는 특별한 장점도 있습니다.(웃음)
또 겸업이 쉽습니다. 자신의 직업이나 주요 관심사를 주제로 전문 서점이나 큐레이션 서점을 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요. 서점 공간을 통해서 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평판도 만들어 낼 수 있고요.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죠. 요새는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 건물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례도 많더라고요.
많이 생겨나는 만큼 폐업률도 높지 않나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1년 이내 폐업률은 37.6%, 3년 이내 폐업률은 61.2%입니다. 2015년부터 지난 7년간 동네서점지도 등록 독립서점의 누적 폐점률은 21.0%입니다. 독립서점의 폐점률은 3년 이내 소상공인 폐업률과 비교해도 약 1/3 수준으로, 생각보다 높은 편은 아니에요. 서점업도 사업이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의지만으로 지속하긴 어려울 테죠. 하지만 공간을 유지할 정도로만 수익이 난다면 서점을 계속 운영할 거라고 말하는 책방지기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동안 꾸준히 독립서점 통계를 내서 공유해주셨는데요. 동네서점 서비스 이용자 검색어 순위도 종종 공개하시더라고요. 평소 도움이 많이 되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더불어 전합니다.
그렇게 수치로 정리해두고 그 데이터가 쌓이면 동네서점 트렌드를 엿볼 수 있어 좋더라고요. 참고로 원래 2016년부터 작년까지는 매년 〈트렌드 보고서〉를 계속 작성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중단해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22년부터 발간하는 〈지역서점 실태조사〉 자료를 살피는 게 더 정확할 거 같아서요.(웃음)
저희 동네서점 〈트렌드 보고서〉 통계로 이야기하자면, 2023년 기준으로 독립서점은 총 884곳으로, 2022년 대비 69곳(8.5%)이 늘었고, 지역별로는 울산(40.0%)과 충남(29.4%), 경북(26.9%) 순으로 증가하였더라고요. 한 주에 1.3곳꼴로 등록해서, 2015년 서비스 시작 이래 가장 적게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이 자료는 동네서점지도에 등록된 서점만 조사한 것이니 한계가 있지만, 꾸준히 업데이트한 정보를 바탕으로 했으니 추이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는 있어요.
계속해서 동네서점 트렌드를 살펴온 대표님이 보시기에, 독립서점은 어떻게 변화해왔고 또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대략 2010년부터 독립출판물 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2015년 정도부터는 독립서점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기사를 보고 젊은 분들이 자주 방문하고 또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도 하면서, 독립서점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경쟁에 밀려 폐점하는 독립서점도 하나둘 생겨나고, 지속가능성에 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생존을 위해서는 한 분야의 책만 취급해 특화하거나, 음료나 잡화 등 여러 종목을 취급하거나, 출판 혹은 디자인 일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다들 고군분투했죠. 그렇게 유휴 공간·시간의 효율적인 활용(복합화)을 꾀해야만 했습니다.
2020년부터 독자는 더 쾌적하고 여유 있는 공간을 요구합니다. 인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언론의 관심도 예전 같지 않죠. 이제 독립서점은 더 이상 ‘힙한 곳’이 아니라 대중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또 서점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대기업 서점의 신규 출점은 연 1개씩 허용), 중소 규모의 서점들이 백화점이나 지역사회에 분점을 확장하는 등 규모를 키우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이후북스’입니다. 서울에 본점이 있고, 2021년 5월에는 제주에 분점을 냈죠.
제주도에 위치한 ‘이후북스’
이제 독립서점은 자신만의 장기를 상품화해야 합니다. 책방지기가 독자 취향에 맞는 책을 선별 배송(큐레이션)하는 등 무형의 서비스를 팔거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독서 모임, 북토크 등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해요. 20평 이하의 소규모 서점은 책 판매 외에 부가 수익을 창출해야 공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제가 요새 눈여겨보는 독립서점 사례는 공동체 서점입니다. 2018년에 제주도에서 문을 연 ‘그리고서점’이 대표적인데요. 이웃들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 책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이 운영하는 책방입니다. 풀뿌리 지역 문화예술 교육의 허브이자 소규모 공동체 공간의 역할로 거듭나고 있다고 봅니다.
독립서점들이 그런 역할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동네서점지도가 쭉 함께하셔야겠네요.(웃음)
저희는 책 읽기를 의무가 아닌, 즐거운 경험으로 인식하길 바라고 있어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저희 동네서점지도를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퇴근길에, 산책길에 독립서점을 가볍게 들를 수 있었으면 해요. 동네서점, 도서관 등 일상 속 책 공간에서 누구나 공평하게 양질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동네서점지도가 그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고,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싶어요.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사람들이 독립서점을 자주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방에 책 한 권씩 넣고 다니는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또 동네서점에서 낭독 모임을 많이 하잖아요. 이전에는 옆집 사람을 이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Z세대는 자기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이웃이라고 생각한다죠. 이웃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닌, 온라인에서 팔로우하는 사람이 이웃이고 친구인 거예요. 그 이웃이 자기 취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그걸 함께 즐기고 싶어 하는 거죠. 그래서 요즈음 독립서점들은 인테리어도 굉장히 잘해놓고, 커피랑 술도 함께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거예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으로요. 방문객도 단순히 책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좀 편하게 쉬면서 즐기기 위해 가는 거고요. 대전의 어느 서점에는 참여자들이 반말로 하는 유료 모임이 있대요. 돈을 내고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꽤 온다고 하더라고요.
제주도에 위치한 독립서점 ‘아베끄’와 ‘라바북스’
반말로 하는 모임이 있다니, 재밌네요.(웃음) 동네서점지도를 만들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 있을까요?
이 일을 한 지 8년 차인데, 생각보다 사람들 피드백이 잘 없어요. 물론 만나면 잘 보고 있다고 해주시지만 일부러 시간 내어 연락하진 않으시거든요. 그런데 초반에 저한테 되게 잘 이용하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이메일을 보낸 분들이 있는데, 바로 일본 분들이었어요. 그분들이 가장 많이 보내요. 여기 와서 관광하면서 저희 지도를 이용한 거죠. 사실 대단한 서비스를 한 것도 아니에요. 처음에 서비스 만들면서 외국인도 동네서점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 싶어서, 서점 이름과 영업시간 정도만 영어로 적었거든요. 일본인들이 유료 서비스에 익숙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더라고요.
국민 연간 독서량도 많고 우리가 책 문화를 가장 많이 벤치마킹하는 나라가 일본이잖아요. 그런데 일본도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대요. 2000년대만 해도 일본 전역에 서점이 2만 곳이 넘었는데 20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거죠. 그래도 일본은 정부에서 서점을 살리기 위해 지원 정책을 열심히 펼치는데, 저희는 최근에 관련 예산도 많이 줄어서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희도 작년부터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정부 용역이 주 수익인데 말이죠. 서점 지원 사업도 많이 줄어서 서점과 협업하기도 쉽지 않고요.
‘동네서점지도’의 남창우 대표
동네서점지도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긴 쉽지 않으시죠?
원래는 유료 멤버십 제도가 있었는데, 새로운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 올해 폐지했고요. 지금은 주로 온라인 광고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동네서점 뉴스레터 구독자 약 3,400명과 인스타그램 팔로우 2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신간 등을 홍보해드리는 겁니다. 주요 구독자가 독립서점 책방지기들과 가치 소비와 공유에 적극적인 MZ세대이고, 또 동네서점 즐기시는 분들은 문화 헤비 유저(Heavy User)입니다.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홍보가 필요한 경우 저희 매체를 활용하는 거 같아요.
최근에는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에서 연락이 와서 독립서점 콘텐츠를 협업 제작하기로 했는데, 이런 게 다 수익을 내는 방법이죠. 또 동네서점 쿠폰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어요. 50여 개 가맹점이 모집된 상태이고, 곧 테스트해볼 계획이에요. 어쨌든 더 많은 사람이 동네서점을 찾을 수 있도록 서비스하면서 수익을 창출해내는 게 목표입니다.
저도 뉴스레터 받아보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거 같더라고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새로운 지도 정보나 공지 글 등을 자동으로 발송되게끔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어요. 동네서점 책방지기들도 많이 구독하고 있으니, 출판사도 저희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해도 좋을 거 같아요. 혹시 전국 독립서점의 독자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가 2022년에 조사했을 때 기준으로 독립서점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 수는 250만여 명이었고, 동네서점지도에 등록된 독립서점 중 약 70%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당시 500여 곳의 전국 독립서점이 66만여 개의 사진을 공유하고, 총 약 250만 개의 공감을 받았더라고요. 이는 대형 서점 페이스북 구독자 수의 약 4배에 달합니다.
독립서점 대부분이 개점 전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합니다. 독립서점을 즐겨 찾는 주요 고객은 앞서 말했듯 가치 소비와 공유에 적극적인 MZ세대이다 보니, 자신의 취향에 맞는 활동이나 상품을 찾으면 SNS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합니다. 만약 전국 독립서점이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를 공유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소 전국의 100만여 명 이상의 독자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엄청난 파급력이죠.
가끔 출판도 하고 계시죠?
네, 2016년에 땡스북스와 함께 만든 『어서 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알바, 2016)을 시작으로 책방지기들과 함께 독립서점 안내서와 지도 포스터 매거진을 꾸준히 제작해왔는데요. 〈인문360 접이지도〉와 가이드북 〈인문지도〉, 인천의 동네서점과 도서관을 수록한 온·오프 지도와 가이드북 〈인천책지도〉, 서울국제도서전과 공동 기획한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 ‘책도시산책’, 제주도의 가볼 만한 독립서점 34곳을 수록한 〈동네서점지도제주〉 등 여러 출판 프로젝트를 해왔어요. 정부나 단체의 지원이 있었고, 또 수많은 독립서점 운영자들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동네서점지도제주〉
독립서점 운영자들이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저희 콘텐츠는 대부분 독립서점 운영자들이 기고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채널에 연재하고, 이를 종이책으로 엮어내는 거죠. 종이 매체는 상황에 따라 지도 포스터와 단행본, 가이드북 형태로 펼쳐 냅니다. 그렇게 제작한 출판물은 전국 240여 개 동네서점에서 무료로 배포됩니다. 저희와 함께해주신 여러 독립서점 운영자님들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동네서점의 허브 역할을 단단히 하고 계신 거네요. 마지막으로 〈출판N〉 웹진 독자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Z세대에게 인스타(그램) 매거진과 디지털 디톡스, 낭독회가 유행이라고 해요. 요즘 20대를 이해해보려고 시간 날 때마다 온라인 기사를 검색해 봐요. 앞서 말했듯, 이제 이웃은 옆집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 내 취향과 비슷한 사람이고, 그들을 팔로우하는 시대가 됐어요. 이웃의 개념이 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에 익숙한 Z세대에게 읽는 매체로서 책의 개념도 달라진 거죠. 디지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과잉에 지쳐서 역설적이게도, 고전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소통이나 매체를 ‘새롭다.’, ‘힙하다.’라고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신경 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 대중교통에서 효율적인 전자책보다 비효율적인 종이책을 읽는 젊은 친구들이 부쩍 많이 보여요. 또래 성공한 아이돌이 손에 책을 들고 공항에 가거나, 가방에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선망하기도 하고요. 효율이 너무 지나쳐서 비효율을 즐기는 시대가 된 거죠.
왜 그런지 몰라도 비효율적인 게 의외로 편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웹서비스 기획자라는 제 직업에 반하는 세 가지 습관이 있어요. 첫 번째, 가방에 항상 전자책보다는 종이책 한 권은 꼭 넣어 다녀요. 비밀인데요, 사실 이동할 때 책을 잘 읽진 않아요. 기본적으로 많이 돌아다니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 아니에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가 하는 일 때문에 책방을 자주 찾게 되었고, 책방에 가면 책을 사게 되었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었어요. 두 번째, 제 스마트폰에는 배달 앱이 없어요. 가능한 한 이웃 가게에서 먹거나 필요할 때만 직접 방문해서 포장해 와요. 세 번째는 택시 앱이 없어요. 되도록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멀리 갈 때는 택시가 안 잡혀서 불편하긴 하지만 택시 앱이 있는 친구도 택시가 안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아주 다르지 않은 거죠. 이렇게 사는 게 불편한데 어떤 면에서 의외로 편해요. 그냥 단순하니까요.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삶이 효율적인 듯하지만, 왠지 생각이 복잡해져요. 왜 그럴까요?
‘동네서점지도’ 남창우 대표
마지막으로 제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방지기를 팔로우하고, 이웃으로 만드세요.’입니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인스타 매거진이든 무엇이든 읽으세요. 이왕이면 감동을 주는 글을 읽고, 그 감동을 친구와 나누세요. 감동을 주는 글을 어떻게 찾고 친구와 나누느냐고요? 우선 좋은 이웃을 팔로우하세요. 동네서점지도로 내 취향의 책방을 찾아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세요. 매일매일 피드에 올라오는 책방지기의 추천 책 피드 중에서,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퇴근길에 그 책방을 방문하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친구에게 선물해보세요. 내 취향과 비슷한 친구가 없다고요? 책방에서 여는 독서 모임이나 낭독 모임에서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어요.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우리 삶에서 동네서점을 방문하고 책을 읽는 건, 어쩌면 그의 말처럼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삶의 여백을 주는 행위리라.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고, 빠르게 얻은 것은 빠르게 잃는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얻어낼수록 우리 삶에 오래 남지 않을까. 이 진실을 아는 자만이 동네 구석구석 숨어 있는 책방을 찾아다니리라. 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공간들이 오래 살아남길 바라며, 동네서점과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가 부디 지치지 않고 이 보물지도를 오래오래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남창우(‘동네서점지도’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를 운영하면서 출판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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