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7 2021. 11.
지역서점 불광문고는 무엇을 남겼나?
장수련(전 불광문고 점장)
2021. 11.
ⓒ 최근모
지난 9월 5일 25년 동안 약속된 시간에 문을 열고 닫았던 불광문고가 언제 다시 문을 열겠다는 기약 없이 문을 닫았습니다. 8월 17일 아침 불광문고 입구에는 영업종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고, 불광문고 소셜미디어에는 영업종료를 알리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불광문고에 책을 한 번이라도 주문한 이력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문자로 영업종료를 알렸습니다.
평소에는 인기가 없던 불광문고 소셜미디어에는 영업종료를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서점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공지 이틀 뒤인 19일에는 ‘지역의 문화자산 불광문고 폐업을 막을 방안을 고민해달라’는 청원이 은평구청 열린청원에 등록되었습니다. 30일 안에 500명이 공감하면 구청장이 답변을 하는 청원 제도에 하루 만에 500명이 훌쩍 넘게 공감하면서 구청에서도 불광문고의 영업종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근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영업종료를 막아달라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서명운동이 시작되고 여러 언론사에서 불광문고 영업종료에 대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취재가 이어졌습니다. 영업종료를 결정하고 알리는 과정에서 서점 일꾼으로 일했던 지난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는데 많은 분들이 불광문고의 폐업을 막기 위해 애써주시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댓글과 사연을 보내주셔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애정이 듬뿍 담긴 독자들의 댓글과 사연 속에서, 그리고 서점 살리기 청원과 서명운동에 나선 주민들의 모습에서 불광문고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불광문고는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책으로 노는 놀이터였고, 취업과 인생의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에겐 나침반이자 시원한 샘물 같은 곳이었으며, 늘 독자들과 호흡하며 자리를 지켜온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었습니다.
불광문고는 1996년 11월 150평 규모로 문을 열었으며 두 번의 확장 공사로 영업을 종료할 때는 230평 규모였습니다. 20~50평 남짓한 서점들 밖에 없었고, 지역에 제대로 된 도서관 하나가 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생긴 큰 규모의 서점이었습니다. 마땅하게 갈 곳도 없고 책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던 시절, 동네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학교가 끝나면 참새방앗간처럼 불광문고를 들렀다가 집이나 학원으로 갔으며 친구들과도 “우리 불문(불광문고를 줄여서 부르는 말)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불광문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광역 주변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광문고의 폐업을 막아달라”는 독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불광문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불광문고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매출 하락을 막아보고자 2018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단행했지만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리모델링을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고 불광문고는 영업종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광문고를 25년 동안 운영한 최낙범 대표님은 평소에 “불광문고가 운영될 수 있게 도와준 직원들과 거래처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정리를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극단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스스로 영업종료를 결정한 것에 대해 불광문고 대표님은 “우리는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출판사 대표님은 소셜미디어에 불광문고의 고독사를 애도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불광문고 내부에서도 존엄사, 고독사의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최근모
25년 동안 많은 직원들이 불광문고에서 일했습니다. 문을 닫을 때까지 불광문고와 함께 했던 직원들은 짧게는 13년, 길게는 22년 가까이 일한 사람들입니다. 이 직원들 중 몇몇은 규모를 줄여서라도 불광문고를 어떻게든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책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으로 유지될 수 있는 공간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광문고 대표님은 새로운 서점을 하더라도 책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으니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점은 책을 팔아 운영되는 공간인데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책이 아닌 팔릴 만한 어떤 것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2014년 11월 21일부터 3년마다 개정하는 한시법으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책의 할인율을 현금 10% 할인에 간접 할인 5%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보니, 온전한 도서정가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혹은 부분정가제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전국의 수많은 지역서점들이 쓰러져 갔습니다. 정비되지 않은 법과 제도의 틈을 비집고 편법 할인이 판을 치면서 똑같은 책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반값에 파는데 지역서점에서는 10%만 할인하거나 정가에 팔아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줄 폐업이 이어졌습니다. 책에는 권장소비자가격이 아닌 정가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는 출간한 지 18개월 이상 된 도서와 취미실용·초등학습서로 분류되는 책들은 온라인서점에서 5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온·오프라인서점 간 할인 차이가 크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반값에 파는 책을 왜 여기에서는 비싸게 받느냐?’는 항의를 받거나 ‘도둑놈’ 소리를 듣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도서 유통구조를 열심히 설명해보아도 독자들을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프라인서점은 왜 온라인서점 할인율을 따라갈 수 없었을까요? 불광문고 규모의 서점에서는 책의 수익률을 보통 17% 정도로 잡습니다. 정가 만 원짜리 책을 팔았을 때 1,700원이 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보다 수익률이 낮은 책들도 많습니다. 온라인서점에서 반값 할인을 하던 시기에는 불광문고가 출판사나 도매상으로부터 공급받는 책의 가격보다 온라인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의 가격이 더 낮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도 온라인서점, 대형서점의 도서 매입가보다 일반 오프라인서점들은 기본 10~15% 높은 가격에 책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온라인서점은 책을 아주 싸게 공급받기 때문에 큰 폭의 할인이 가능했고, 지역서점은 책을 비싸게 공급받기 때문에 온라인서점처럼 할인해서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현금 10% 할인과 5% 간접 할인을 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서점은 온라인서점보다 매입률이 높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현금 10% 할인 또는 10% 마일리지만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서점은 기본 할인과 마일리지에 더해 카드사와 통신사 제휴 할인이 있고 만 원 이상 구매 시 배송료가 무료이며 다양한 굿즈들로 독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서점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할인율이 제한된다는 기대감으로 많은 동네서점들이 문을 열었고, 20평 내외의 공간에 책방지기의 취향에 맞게 책을 진열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며 수익을 위해 차나 술을 판매하기도 하는 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동네책방들은 큐레이션으로 진열된 책과 문화행사라는 콘텐츠로 온라인서점·대형서점과 경쟁하고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차별적인 유통구조로 인해 오프라인서점들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생겨나면 그와 관련된 기사가 관심을 끌지만, 끝내 문을 닫고 마는 서점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을 뿐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서점들이 전국 주요 지역으로 지점을 확대했습니다. 지역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오프라인서점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규모와 인테리어, 편의시설을 제공했습니다. 불광문고 인근에도 큰 쇼핑몰이 생기면서 대형서점의 지점들이 입점을 하고 불광문고의 매출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서점을 가기 위해 쇼핑몰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머물던 사람들이 쇼핑몰로 이동하면서 매장 방문객수가 크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서점은 온라인 할인 경쟁에 밀리고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대형서점에 밀려 점점 존재를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독서시장이 성장하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다양한 미디어에 밀려 독서 인구는 점점 더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 최근모
불광문고는 25년 동안 숙련된 일꾼들이 좋은 책을 선별해서 진열, 관리하는 것이 서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며 운영한 서점입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서점에 등장하기 전부터 매달 주제를 정해 책을 진열하고 대다수의 서점들이 출판사 가나다순으로 책을 진열하던 때에도 주제별로 소분류하여 책을 진열했습니다. 수시로 시장 조사와 매출 분석을 통해 매장의 서가 구성을 변경하고 독자들이 서점에 왔을 때 우연히 발견한 책과 인연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편집 진열에 힘썼습니다. 불광문고가 생각한 서점의 경쟁력은 독자들에게는 좋은 서점일 수 있었지만 지속적인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매출이 하락하고 더 이상 반전을 기대할 수 없을 때 보통 회사들은 구조 조정을 합니다. 하지만 불광문고는 숙련된 직원들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매장 유지를 위해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3년 동안 임금을 동결했지만 하락하는 매출과 매년 인상되는 임대료 때문에 갈수록 적자 폭은 커졌습니다. 작년 5월 마포구 망원동에 있던 불광문고의 지점 한강문고가 13년 만에 먼저 문을 닫았고, 작년 9월에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비교적 근무연수가 짧은 5명의 직원들이 일터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불광문고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울적하고 서글펐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서점은 비전이 없으니 마음을 접으라고 했지만 불광문고가 없는 불광동을 떠올리니 더 암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직원들과 이야기하여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건물에 임대 공간을 축소하여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임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불광문고가 사라지고 나서 불광동에는 서점이 없습니다. 불광동뿐 아니라 녹번동, 대조동 인근 지역에도 서점은 없습니다. 영국의 라이프잡지 〈모노클〉에서는 매년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는데 지역의 독립서점 수가 평가 기준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만큼 서점이 사람들의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한다고 여러 지자체에서 독서 장려를 위해 독자에게 책 구매를 위한 도서구매지원비 또는 캐시백을 지원하는 사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독자들은 온라인서점의 반값 할인을 경험한 터라 책이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도서구입지원금으로 책을 할인해서 구매할 수 있는 사업을 시행하는 것은 책이 비싸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증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작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정부의 출판 관련 산하기관에서는 전자책 40만 권과 책 5,000권을 무료 배포하는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책을 할인받아 사고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생기면 독자들은 점점 제값을 지불하고 책을 구매하는 것을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동시에 책이 지닌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독자들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겠다는 의도는 좋은 일이나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전자책 무료 제공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을 때 일반 오프라인서점들은 매출이 50% 이상 감소하고, 다양한 행사로 독자들의 방문을 유도하던 동네책방들은 개점휴업 상태로 서점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스러운 정도로 암울한 나날이었지만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시법으로 3년마다 개정을 앞둔 도서정가제는 2020년 11월 개정을 앞두고 있었는데 예전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보도들이 나왔으며, 2021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온라인서점의 매출 상승을 이유로 소상공인 코로나 지원에서 서점업을 배제시켰습니다. 오프라인서점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서점은 민간 기업입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자력갱생하여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서점이 수행하고 있는 공공성과 문화적 역할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유지될 수 있는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이 책이 아닌 다른 콘텐츠를 고민하지 않고 서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는 현실이 서럽기도 서글프기도 합니다.
불광문고는 25년 된 서점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 25년이 지나는 동안 무수한 바람과 햇볕과 땅과 빗물의 노력이 스며있듯, 불광문고는 오랜 세월 그 안에서 책과 함께 삶의 방향을 찾고 책과 함께 한 시절을 보냈던 독자들과 직원들의 삶이 녹아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 오래된 것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그 안에 녹아있던 사람들의 삶도 함께 휩쓸려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전국 각지에는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서점들이 분투 중입니다. 부디 그 서점들이 독자들 곁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지혜와 지원이 모여들면 좋겠습니다.
장수련(전 불광문고 점장) 불광동에서 나고 자라 불광동에 있는 서점 불광문고에서 스물두 해를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불광동에서 책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며 동네서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인문360 탐구생활 '스물세 살의 불광문고 - 그곳에 가면 서점이 있다' ⓒ 최근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