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 2021. 10.
2021 서울국제도서전 참가기 : 책과 독자가 다시 만나다
이종호(청미출판사 대표)
2021. 10.
청미출판사는 지난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긋닛(斷續, 끊어지고 이어짐, Punctuation)’ 주제로 열린 2021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했다. 1인 출판사인 청미는 2018년부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해왔다. 도서전은 출판사의 연간 행사 중 독자들을 직접 만나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사다. 작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많은 아쉬움이 있었고,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다시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큰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5월 중 도서전 참가 신청 공고가 났다. 고민이 되었지만 개최할 때 즈음에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신청했다. 그러나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코로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확진자 수가 연일 2천 명을 넘기며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SNS에 이번 도서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코로나 상황 외에도 입장료의 부담, 제한된 입장 시간, 출판사의 참가율 저조, 사전예매 등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제대로 도서전이 열릴 수 있을지, 관람객들은 얼마나 찾아올지, 이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서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지 않으면 참가비를 포기하고서라도 자체적으로 참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2021 서울국제도서전은 말 그대로 ‘긋닛’했고, 참가기를 청미출판사의 소설 『체리토마토파이』의 주인공 잔할머니처럼 일기 형식으로 써볼까 한다.
9월 5일 일요일, 도서전 개최 3일 전
도서전 주최 측도 첨예한 상황에 고민이 많았으리라. 흥행보다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입장시간 조절, 사전예매 등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수용인원의 밀도를 낮추고 부스 간의 거리를 넓히고 아크릴판을 설치하여 부스 인력과 입장객을 구분 짓는 등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가 출판사는 상주 인력을 부스당 2명으로 제한하고 명단을 사전에 제출하며, ‘코로나 PCR 검사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처음으로 마포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대기 줄이 길었고, 이런 상황에서 도서전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9월 7일 화요일, 도서전 개최 하루 전
추첨하여 배정받은 부스에 사전 설치하는 날이다. 배정받은 부스는 D동 2층 D-1이다.
오전부터 비가 와 내일 일찍 가서 부스를 설치할까 고민을 했으나 미리 가서 전시장 상황도 체크하고 책도 전시해 놓는 것이 어렵게 찾아올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전시용품과 책을 차에 싣고 에스팩토리로 향했다.
도서전 협력사 물류를 이용하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이용하지 않았는데 현장을 가보니 후회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는 차량 화물용만 있고 2층이라지만 중간층이 있어 거의 3층 수준의 계단만 있었다. 도서전 기간 내내 아침마다 계단으로 책을 날랐다. 전시장 주차장은 이용할 수 없어 주차도 불편했다.
부스 매대에 책을 꾸미고 과연 내일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찾아올까, 부스 참가비와 제 비용은 회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돌아왔다.
9월 8일 수요일, 드디어 2021 서울국제도서전이 시작되다
도서전 개막 30분 전 도착하며 들어오는 길에 보니 입장객들의 줄이 상당히 길었다. 마음이 설레고 안심이 되었다. 1층을 거치고 2층을 올라오는 동선이라 10시 입장이어도 10시 반이나 되어야 2층은 술렁거렸다.
드디어 첫 판매가 이루어지는 찰나, 이런! 도서전에서 쓰는 무선 카드 단말기가 먹통이었다. 하지만 첫 판매부터 실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도서전도 다시 이어지니 얼른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단말기를 정상화했다. 관람객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어 ‘긋닛’ 개시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도서전은 코엑스에서 개최하던 때와는 많이 달랐는데, 특히 성수동이라는 위치 특성 때문인지 유독 20대 관람이 많았고, 청미출판사를 잘 모르는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이나 구매율이 높았다. 첫날은 부스에 어떤 분들이 오시고,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관람객들이 책을 고르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SNS에 올릴 생각인지 책과 출판사 간판 촬영만 하고 가는 사람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표지의 책을 먼저 집는 사람, 책의 앞과 뒷날개를 먼저 보는 사람, 뒤표지의 문구를 유심히 읽는 사람, 본문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고 또는 소리 내어 읽어보는 사람, “굿즈는 뭐가 있어요?” 묻는 사람 등 책을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 어떤 모습이든 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고르는 독자들의 모습은 그저 예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1인 출판사 청미가 매년 도서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책을 잘 보았다면서 응원하는 ‘아는 사이’인 관람객이 많다. 같이 온 친구에게 도서전 직전에 신간 표지 이벤트를 했다며 ‘이 표지 내가 선정 한 거야!’라고 뿌듯하게 자랑도 하고, 책을 선물하는 블로그 이웃들이 큰 감동을 주었다. 간혹 다른 관람객에게 ‘이 책은 꼭 보아야 한다’며 책 추천을 하는 독자도 많았다.
첫날 걱정했던 것보다 많은 독자들이 도서전을 찾아 주었다. 책과 독자는 다시 연결되었다.
첫날 입장을 하는 관람객
도서전을 찾은 많은 독자들
9월 9일 목요일, 생존을 확인하며 내년을 기약하다
첫날이 괜찮았기에 기대를 하며 이튿날도 도서전으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이번 도서전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코로나 상황이 더 빨리 안정되어 책 관련 행사 및 도서전이 예전처럼 다시 활성화되기 바란다. 다른 출판사에 첫날 어떠했는지 물었더니 매출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고 한다. 다들 힘들지만 안도하는 표정이다.
몇 년째 도서전에 참여하여 친분을 갖게 된 출판사에 방문해 ‘생존’을 확인했다. “어떻게 버티셨어요?”라고 시작해서 “내년은 나아지겠죠.”로 끝났다. 평소 관심 있는 출판사 부스에도 찾아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출판사의 색깔 있는 도서를 보면서 ‘저 책을 내가 출간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도 하고 ‘독자들이 더 많이 찾는’ 출판사의 비결이 궁금하기도 했다.
출판 생태계에 있는 이들, 도서관 사서와 출판에이전시 담당자, 번역가, 기획자 등도 우리 부스에 찾아와 응원해 주었다. 어느 지역은 도서관과 동네 서점의 연결성이 낮아서 고민이라며 터놓기도 하고, 청미출판사 책들의 주제로 어떤 문화 프로그램이 가능한지 논의하는 자리도 되었다. 성수동이라서 다른 도서전 분위기를 확실히 ‘힙’한 동네라며 같이 공감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같이 엿보았다.
동네 서점 책방지기들이 이날만큼은 독자로, 출판사 손님으로 찾아왔다. 책을 판매해 보니 책방지기들의 체력과 애씀이 대단해 보였다.
9월 10일 금요일,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도서전을 만나다
1인 출판사로 부스를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해서 도서전의 다른 매력인 강연회, 사인회, 대담, 전시회 등 다양한 이벤트 참여는 어렵다. 전날 관람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해시태그로 검색했더니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 반, 책을 보러 온 사람이 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책 문화가 더욱 다양성을 갖고 MZ 세대 독자도 새로 많이 유입되길 바란다.
올해 도서전 참여 출판사는 75개로 예년의 1/4 수준이었고, 장소가 작다 보니 부스도 한 참가사당 최대 2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소형 출판사에는 다소 기회가 되고 도서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모든 출판사가 동등하게 1칸이나 2칸에 책을 전시하고 책의 종류와 양이 한정적이다 보니 예년 같으면 메이저 출판사의 큰 부스에 더 많이 몰리던 관람객들이 소형 출판사의 부스에도 관심이 고르게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여러 소형 출판사들을 모아 책 판매 및 업무를 할 수 있는 상설 공간이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들었다.
이날은 금요일이어서인지 3일 중 가장 손님이 많았다. 이 정도면 일단 참가비와 부대비용까지는 해결된 듯해서 걱정도 덜었다. 내일 토요일은 관람객이 가장 많을 것이다.
강연회 모습
9월 11일 토요일, 출판사가 책이 없어서 못 판다고?
벌써 넷째 날이다. 마지막 날인 내일 하루를 남겨두고 아쉬움부터 앞섰다. 결론적으로 토요일에 가장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고 5일 중 매출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준비한 책이 다 팔려서 책이 없어서 못 파는 일도 생겼다. ‘완판’이라는 것을 해보니 기분이 좋았다.
네이버를 통해 입장권 사전예매를 한다던가, 성수동이라는 위치의 접근성 문제인지 관람객의 대다수가 20, 30대의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양한 연령층이 오는 코엑스와 입장하는 관람객층이 다르니 팔리는 책도 달랐다. 우리 출판사의 경우 ‘나이듦’과 관련된 책에는 관심이 적었다. 표지가 예쁘고 SNS에 많이 소개된 『체리토마토파이』와 신간 소설 『행복은 주름살이 없다』가 가장 많이 팔렸다. 또 ‘나 외로워’하면서 『외로움의 철학』을 구매하는 관람객들이 많았고 의외로 ‘죽음과 상실’ 분야의 책들도 관심이 적지 않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독자가 많아 『나이 들어도 내겐 영원히 아깽이/강아지』도 많이 찾은 책이었다.
토요일이라 멀리 지방에서 찾아온 온라인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이웃도 많았다. SNS 닉네임으로 인사를 하는데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우리 내년에도 만나요’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작은 출판사를 응원해 주시는 이분들 덕분에 내년에도 나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책을.
9월 12일 일요일, 성수동 도서전은 목표 완수!
드디어 도서전 마지막 날이고 시간이 가장 빨리 가는 날이다. 출전하는 아침의 마음가짐도 다르다. 이제 동네 주차도 책 판매도 조금 익숙해졌는데 벌써 끝날 때이다.
관람객이 많이 오기 전에 다른 참가사를 돌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도서전에 관해 물어보기도 했다. 출판계는 출판하는 사람들이 서로 책을 제일 많이 구매한다는 말처럼 다른 출판사의 책을 도서전에서도 서로 많이 구매한다. 다른 출판사들은 처음에는 장소도 생소하고 주최 측의 코로나 방역도 불편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을 만나 다시 힘이 난다는 이야기다.
일요일은 마감이 오후 5시라서 그런지 오전에 특히 사람이 많았다. SNS에서도 마지막 날까지 기운 내라는 분들이 많았다. 마지막 날이 되니, 첫날에 책을 구매해서 벌써 읽고 잘 읽었다며 후기까지 남긴 독자도 있었다. 도서전에 나오는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기존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책을 잘 만들어내고, 또 새로운 독자를 발굴하는 시간들. 그 목적이라면 이번 성수동 도서전은 충분히 목표 완수다.
몇 해 참가해보면서 참가사들을 위한 친목 및 교류의 시간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몇 해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마지막 날 전시장에서 축제처럼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격의 없이 관계자들이 어울리며 교류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오후 5시, 도서전의 마감 시간은 왔고 짐을 정리하면서 내년에는 마스크 없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도서전 주최 측도 새로운 장소 선정과 코로나 4단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민도 많았고 힘든 점도 많았을 것이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를 포함하여 참여하고 주최한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어 조심하고 규정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매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면서 책 판매보다 그 이상의 더 많은 것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