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한강 이후의 한국 문학과 출판
이광호(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
2024. 11+1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24년 10월 10일은 한국 문학사와 출판 문화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서구=중심=보편’이라는 ‘타자’의 인준을 목말라하는 것이었고, 한국 문학이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속해 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중심의 ‘보편’이란 그 자체로 제국주의적 허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문학과 지식 시장에 일종의 위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세계 문학’이 영어·불어·독어로 창작된다는 것도 허위이지만, 그 허위가 오랫동안 세계 문학 시장을 지배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2024년 10월 10일의 전혀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이 위계에 급격한 충격을 가했다. 한국인이 ‘번역되지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처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한국 문학과 지식 산업은 ‘보편’으로부터 먼 곳에 위치하여 ‘중심’의 인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조바심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한국의 문화사와 지성사 전체에도 적지 않은 의미로 작동할 것이다.
문학의 역사는 많은 누적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특정한 상황을 계기로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적 지식의 진보가 누적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연속적’으로 다른 단계에 진입한다는 가설은 토머스 쿤(Thomas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에서의 ‘패러다임(Paradigm)’ 이론으로 알려진 바가 있다. 이 오래된 이론에 기대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그동안의 한국 문학과 한국 문화가 쌓아온 저력의 결과이겠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 예외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 문학의 패러다임이 바뀐 상황, 그리고 한국 문학의 급격한 ‘시간 이동’이다. 우리는 이제 그 돌연한 시간대에 적응해야만 한다.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의 간극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한국 문학의 주변부 의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한국 문학은 ‘한국어 문학’일 수밖에 없고 그 시장은 너무나 협소하다. 인구 숫자의 한계에 더해서 독서 인구 비율 역시 상대적으로 적어서, 한국 문학 시장은 구조적으로 주변부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문학 시장에서 ‘1만 부’ 작가가 된다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협소함은 한국 문학 내부의 양극화를 만들고 다양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비좁은 한국 문학 시장은 대중추수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이 독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중 독자를 갖지 못한 개성적인 문학은 ‘한국어 문학 시장’이라는 주변부 안에서도 이중적인 주변부에 위치하게 된다.
한국 문학이 거대한 세계 문학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번역’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기간 역시 짧지 않다. 이를테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창비, 2007)가 세계 문학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6년으로부터 1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에 적어도 ‘10년’의 시차가 존재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시차는 한국 문학이 보편적인 세계 문학의 장에서 떨어져 있는 공간적·시간적 거리에 속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시차와 거리 감각에 엄청난 파열을 만들었다. 이제 한국 문학의 시간은 세계 문학의 시간과 거의 동 시간대에서 흐르게 되었다. 이를테면 한강 작가의 신작이나 매력적인 한국 작가의 작품은 시차 없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세계 문학이 한강을 주목하게 된 이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세계와 한국 문학장에 가하는 충격은 작지 않다. 『채식주의자』가 부커상(International Booker Prize) 수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익숙한 문법의 대중적인 작품도 아니었다. 한강 작가의 문학은 독특하고 어쩌면 ‘비주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한국 문학이 근대의 출발 이후 ‘남성-이성애자’를 문학의 주체로 상정해 온 역사는 오래되었다. 한국 문학의 재래적인 정전들은 대부분 남성 작가의 것이다. 한국의 여성 문학은 1980년대 이후 가부장적 상징과 질서를 돌파하는, 보다 파괴적인 언어들을 생산해 왔고,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는 한국 문학과 문학사 전체를 근원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문학의 흐름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세계 문학은 아시아의 여성 언어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 여성은 지역적으로나 젠더적으로나 이중으로 주변화되어 있어서, 세계 문학에서 아직 평가받지 못했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언어와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계기들이 한국 문학의 중심에서 약간 비껴나 있었던 한강 작가를 세계 문학의 중심 무대에 세워주었고, 이것은 다시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예외적인 에너지가 되었다.
한강의 작품세계
‘한강 문학’이 가진 독창성의 가장 큰 부분은 ‘성숙한 남성의 서사’로 상징되는 재래적인 소설 장르의 규범을 완전히 넘어선다는 것이다. 시와 소설의 제도적 구분과 장르 규범은 서구 근대 장르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고, 이것은 본래 진리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적인 글쓰기라는 차원에서 이런 장르 개념은 사실 무의미하다. 노벨문학상 발표에서 많이 언급된 표현은 “혁신적인 시적 산문”이다. 이 논평은 문학에 대한 모든 논평이 그런 것처럼 완전하지 않다.
한강 작가는 1993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24호에 「얼음꽃」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4년에는 〈서울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었다. 활동 초기에 한강 작가는 단편소설 집필에 집중했는데, 그 작품들은 소설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5)에 수록되었다. 그의 시들은 등단 이후 20년 동안 5권의 장편소설과 중편소설이 출간된 뒤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2013)에 묶여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문학적 여정은 ‘시’를 뒤로하고 ‘소설’의 세계에 집중하는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한강 작가는 계속해서 시적인 글쓰기를 진행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유럽에 아직 한강 작가의 시집이 번역되지 못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덜 알려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어쩌면 “혁신적인 시적 산문”이라는 논평의 ‘불완전함’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문학과사회〉 24호, 『여수의 사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작가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시적인 은유와 도약과 환상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시 「어느 저녁 나는」에서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으로 보고”, “무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문득 알게 되는, 이 기습적인 상실감과 애도의 순간은 소설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수의 사랑』의 도입부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에 등장하는 ‘여수’라는 이미지는 상실의 근원지이며, 귀향의 충동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애도 행위이다. 『채식주의자』에서 가부장적 폭력을 채식이라는 방식으로 거부하는 여성의 존재가 식물로 변신하는 환상이나,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서 죽은 소년의 목소리가 문장으로 발화되는 것은 재래적인 소설의 규범 안에서 설명될 수 없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의 또 다른 절정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에서 시작과 끝,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억의 탐색에는 우주의 신비와 생의 기원을 둘러싼 압도적인 물리학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
그의 소설들은 이야기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이미지의 동력으로 움직인다. 한강 작가의 독창성을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목소리의 리듬 자체이다. 소설이 있을 법한 현실의 사건들을 인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라면, 한강 작가의 문학에는 그런 소설의 규범 자체를 넘어서는 강렬한 이미지와 시적인 목소리가 흘러넘친다. 한강 작가는 『바람이 분다, 가라』를 출간할 즈음 한 인터뷰에서 “소설의 방식을 부수면서, 동시에 소설의 육체를 가진 소설을 쓰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문학들은 ‘소설의 육체’를 관통하는 시적 글쓰기의 여정이다. 한강 작가의 문학은 사건의 인과적인 전개보다는 이미지와 목소리가 밀고 나가는 언어의 파동이 된다.
한강 작가의 문학은 인간의 참혹함과 연약함 안에서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언어들로 구성되며, 인물들의 기이한 행위는 사라진 대상에 대한 ‘애도’의 형식에 가깝다. 애도는 대상의 상실과 부재 앞에서 그 기억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남은 자’의 중요한 문제이다. 한강 작가의 많은 작품들은 ‘다른 애도’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을 갖고 있다. 애도 행위는 삶의 인과관계를 배치하는 소설의 형식이 아니라, 시적인 목소리와 도약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될 수 있다.
가령 작가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영혼의 안쪽’을 보았다고 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 앞에서 대면하는 것은 모든 서사가 응축되어 ‘영혼의 피 냄새’를 맡은 듯한 충격이다. 거기에는 모든 이야기가 폭발할 것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응집되어 있다. 악몽 같은 참혹함과 얼음 같은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이미지들과 이탤릭체로 등장하는 환청과 신음 같은 목소리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한 무거운 애도를 끝낼 수 없다면, 시적 애도의 언어들은 저 죽음들을 삶의 안쪽으로 끝없이 불러낸다. 마치 ‘초혼’의 의례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것들을 마침내 나타나게 하는 목소리이다. 세계 문학은 지금 그 목소리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이후’를 이어갈 또 다른 시작
동시대 세계인의 주목 속에서 한국 문학은 그 창의적 다양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한국 문학장 안에 새로운 운동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한강 작가처럼 ‘괴상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변칙적인 작가들이 끝없이 탄생해야 한다. 그들이 기이하고 독창적인 글쓰기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는 물론 독자의 인식 변화와 문학 교육의 혁신 같은 것들이 당연히 필요하다. 한국 문학이 지금 치르고 있는 시간 이동의 경험은 일회적인 소동과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시간 이동이 동시대의 세계 문학에 지속적인 창의성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한국 문학 내부에 다른 이질적인 시간들이 태어나고 흘러넘쳐야 한다. 문학 시장의 ‘다른 시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다른 시작’이 문학을 넘어서 출판계 전체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능성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한국 문학과 마찬가지로 한국 출판은 ‘한국적인 것’으로 균질화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단행본 시장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바다이다. 한국처럼 독서 인구는 적고 작은 출판사가 많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좁은 독서 시장은 양극화를 불러오고 최소한의 판매 부수가 보장되지 않은 악순환을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하고 의미 있는 단행본들이 최소한의 판매가 보장되어 더 좋은 책을 계속 기획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한국의 단행본에 대한 세계 출판 시장의 주목은 한국어 단행본의 세계 번역 시장 진출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이것이 다시 국내의 단행본 시장의 활성화라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주류’의 도서가 아닌, ‘비대중적인’ 도서의 문학적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이것은 당장은 또 다른 양극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한국 출판의 다양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베스트셀러’ 목록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다양한 자신만의 독서를 추구하는 ‘텍스트힙(Text-Hip)’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출판과 독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내세우는 거대 플랫폼이 아닌 다양한 큐레이션이 가능한 지역서점에 대한 지원 역시 중요하다. 한강 작가가 작은 지역서점 ‘책방오늘,’을 운영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이 우리가 맞이할 ‘한강 이후의 시간’일 수 있다면. 한국 출판은 비로소 ‘한강 이후’의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 현재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 원장과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장소의 연인들』(문학과지성사, 2023), 『작별의 리듬』(문학과지성사, 2024)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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