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
강양구(기자, 지식 큐레이터)
2024. 11+12.
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발표될 때 나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 강연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복잡한 고속 열차 안에서 원고 주제인 ‘도서관 경제학’에 대한 여러 메모를 끄적이던 참이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북 토크 팟캐스트 프로그램 ‘YG와 JYP의 책걸상’의 채팅방에 한 분이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수상!”이라는 속보를 전했다. 2022년 2월 해당 프로그램에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를 중심으로 『채식주의자』(창비, 2022), 『소년이 온다』(창비, 2014) 등을 소개하는 특집 방송을 세 차례 진행했었다. 그때 내가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온다면 그 주인공은 한강 작가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모양인데, 그 예언(?)이 불과 2년 만에 성사되었으니 청취자는 신기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팬이었던, 그래서 한강 작가가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주인공이 되길 바랐던 사람으로서 그의 수상이 기뻤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고민하던 ‘도서관 경제학’을 둘러싼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우선, 나는 도서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밝혀둔다. 도서관을 놓고서 할 이야기가 있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시민의 단상이다.
도서관이 만든 밥벌이
한강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 덕분에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책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한강 작가보다 7년 정도 늦게 태어났고, 그가 태어나서 9년을 살았던 광주와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 나는 그처럼 책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그런 나에게 해방구가 되어준 곳은 뜻밖에도 조악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도서관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실 구석에 ‘학급 문고’가 있었다. 그 학급 문고에는 헤진 책이 두서없이 꽂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내 눈을 사로잡은 책이 바로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1950)과 『캐스피언 왕자(Prince Caspian)』(1951)였다.
C. S. 루이스의 판타지 고전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시리즈의 첫째, 둘째 책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만난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재미있는 책이 그렇게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란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책에 빠져 금세 학급 문고의 책들을 섭렵해 갔다. 그다음 나를 사로잡은 공간도 역시 초등학교 도서실이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던 그곳에는 1970년대, 1980년대에 나왔던 어린이판 세계 문학, 추리 소설, SF 전집이 이 빠진 채 쌓여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소설을 대부분 그 도서관에서 접했다.
광주의 기숙사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도서실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학교에는 체계적으로 마련한 장서가 갖춰진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을 담당하던 역사 선생님의 안목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을 고등학교 3년 동안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본기를 다졌던 딱 한 장소를 꼽으라면 바로 그 고등학교 도서관을 선택할 테다. 그러니까, 도서관 인프라가 열악했던 20세기에도 도서관은 한 사람의 경제인을 만들었다.
도서관 인프라와 독서량
이렇게 개인적인 추억을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도서관 인프라는 20세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도서관협회의 〈2023 한국도서관 연감〉을 보면, 우리나라 전체 도서관 예산은 2011년 약 1조 918억 원에서 2023년 1조 9826억 원으로 약 13년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국가 도서관, 공공도서관, 대학 도서관, 학교 도서관을 합친 예산). 물가 상승 속도에 비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서관에 대한 투자는 이렇게 조금씩 늘었다. 도서관 숫자도 극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2010년 1만 3,246곳에서 2022년 1만 3,527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23 한국도서관 연감〉(출처: 한국도서관협회)
공공도서관을 기준으로 좀 더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도서관협회와 함께 발표한 〈2024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조사(2023년 실적 기준)〉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공공도서관을 방문한 이용자는 2억 200만 명, 독서·문화 프로그램 참가자는 27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4.5%p 증가했다. 현재까지 공공도서관도 총 1,271개로 전년 대비 2.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출 도서 수는 1관당 10만 9,637권으로 전년 대비 2.0%p 감소했다. 도서관 이용률의 증가가 물가 상승과 도서정가제 등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표면적인 해석과 대비되는 통계다. 대출 도서 수의 하락은 도서관 이용 목적이 점차 다변화되고 있으며, 최저 독서율을 기록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점차 책과 멀어지는 현상도 반영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도서관 인프라가 조금씩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이른바 ‘도서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공공도서관의 1인당 도서관 자료 구입비를 보면, 우리나라는 약 2,161원으로 미국이나 호주의 약 5,000원 수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서 대출 건수가 점차 줄어든다는 이유로 작은 도서관을 해마다 폐관하고 있고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도서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폄훼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인프라 확충과 더불어 도서관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도서관의 두 가지 정체성: ‘무용함’과 ‘불온함’
어쭙잖은 견해지만, 도서관은 또렷한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 도서관은 ‘무용의 공간’이고 또 ‘불온한 공간’이다. 우선 ‘무용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인력(사서 등)을 고용하고 책을 구매해서 모두가 좋아하는 GDP1) 숫자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아무리 빌려 읽는다 한들, 당장 GDP 숫자가 바뀌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서관을 부동산으로만 보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 그곳을 아예 임대 공간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이런 평가에서 나왔을 테다.
그래서 도서관은 당장은 ‘무용의 공간’이다. 하지만, 타임라인을 길게 보면 어떨까. 지금 지역의 공공도서관, 학교 도서관 그리고 갈수록 예산이 줄어드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판타지 소설을 읽은 한 이용자가 나중에 인기를 끄는 게임을 개발할 수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고, 한강 작가를 잇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도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며 국내외의 온갖 성취가 도드라지는, 그래서 GDP 숫자를 높이는 데에도 엄청나게 이바지한 유명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놀랍게도 예외 없이 그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책과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고, 특히 외국인의 경우에 그와 관련된 공간이 대부분 도서관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서관은 ‘불온한 공간’이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하나씩 읽다 보면,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J. R. R. 돌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앨런 & 언윈, 1954)이나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의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스콜라스틱, 2008) 같은 판타지, SF 소설만 읽어도 삐딱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책 읽기 자체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게끔 자극하고, 나아가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최선의 체제이고,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이룬 성취로 충분해서 더는 변화할 필요가 없으며, 지금 주류가 옳다고 믿는 신념과 이념 가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서 ‘무용한’ 책을 읽으면서 ‘불온해’지는 상황이 싫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의 삶을 바꿀 과학기술 혁신이 지금 우리 곁에서 진행 중이다. (이 대목에서 그래도 과학자, 엔지니어 여럿이 인정하는 ‘과학 전문 기자’라는 내 정체성도 말해둔다.)
저출산(저출생), 저성장에 더해서 기후 위기 등 20세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가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좀 더 삐딱해지고 불온해져서 변화를 모색하고 나아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도서관은 그런 일을 자극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이다.
‘미래 도서관’을 꿈꾸는 사람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얘기로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그의 이야기로 해보자. 한강 작가의 작품 가운데는 2114년에 출판이 예정된 작품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이다. 2014년 노르웨이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00년간 작가 100명에게 매년 1명씩 미공개 작품을 받아서 2114년에 출판하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2019년 5월에 다섯 번째로 참여했다. 주제와 내용, 분량, 형식 등 공개되지 않았으며 현재 노르웨이의 오슬로 도서관(Deichman Bjørvika)에 보관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의 한 숲에 심어진 나무 1,000그루를 사용한다. 그 나무 1,000그루는 매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미래 도서관’이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2114년에도 책을 내고, 읽을 사람이 함께할 것이라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노르웨이 시민의 굳건한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그 믿음의 결과로 100권의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의 이름이 ‘미래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도서관도 ‘무용’하고 ‘불온’하다고 도끼눈을 뜨고 보는 상황인데, 지구의 한쪽에서는 오늘을 넘어서 100년 후 미래의 도서관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뭉클한 감동과 겸연쩍은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무 1,000그루가 의미하는 바도 각별하다. 나무 1,000그루는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의 열기를 식히고자 안간힘을 쓰고,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기체를 흡수하면서 자랄 테다. 그러고 나서, 100년간 자기 역할을 다한 다음에 미래 도서관을 위해서 자기 몸을 기꺼이 바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것이다. 이 역시 얼마나 감동적인가.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도 GDP 숫자만 염두에 두면 현실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하등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 100명이 이 프로젝트에 100년간 참여하고 나서 나중에 그 100권이 ‘미래 도서관’ 이름으로 공개될 때의 충격을 생각해 보라. 당장,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노르웨이 오슬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힘입어 그 브랜드가 높아졌지 않은가. 도서관은 우리가 GDP로 상징되는 현실의 ‘경제’를 괄호 안에 넣을 때 비로소 그 값어치를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그 적절한 사례다. 당장 2025년 현실의 도서관 경제를 책임질 예산이 여기저기서 배정되는 시간이다. 2025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맞춤한 숫자가 등장하길 바라본다.
1)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 한 국가 내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에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 합산한 것을 말한다. 비거주자가 제공한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에 의하여 창출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강양구 기자, 지식 큐레이터 『과학의 품격』(사이언스북스, 2019),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북트리거, 2019), 『강양구의 강한 과학』(문학과지성사, 2021) 같은 책을 썼다. 북 토크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을 8년째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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