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6 2024. 11+12.
지역서점 인증제와 도서관 등록제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도연문고 대표)
2024. 11+12.
독서생태계의 안정적 유지·성장을 위한 노력 필요
책과 독서를 하나의 생태계, 즉 ‘독서생태계’라고 한다면, 핵심은 저자와 독자가 책을 매개로 활발하게 지식과 정보, 새로운 상상과 아이디어 등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 안에서 책을 만들고 연결해 주는 출판과 도서관, 서점 등의 매개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또 생태계가 안전하게 존속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위험 요소를 막아주는 단단한 외피, 또 다른 하나는 생태계 구성 요소들 자체의 건강성, 상호 유기적 연계와 협력이다.
그동안 독서생태계는 책을 매개로 나름 안정적으로 존립해 왔으나 근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지식과 이야기의 생산과 전달 방식이 급격하게 다양해졌고, 이로 인해 저자들이나 독자들이 독서생태계 바깥으로 이전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태계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책을 만들고 배포해 온 출판사나 서점, 도서관 등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독서생태계가 계속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구성 요소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존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구성 요소가 각자의 건강성을 최상의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출판사는 끊임없이 좋은 저자를 발굴해 필요한 책을 만들어 내고, 서점과 도서관은 독자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적시에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함으로써 독서생태계를 활기차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저자나 독자는 완전히 자율적이고 자발적이어서 독서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생태계를 떠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을 만들고 배포하는 출판이나 서점, 도서관들의 생존 가능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저자와 독자를 감싸 안아야 한다. 출판사나 서점, 도서관이 보다 안정적으로 활동하면서 독서생태계의 든든한 외피가 되어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좋은 저자나 독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독서생태계가 더욱 원활하게 운영 및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자들이 선택할 만한 매력을 갖춘 책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어야 하고, 언제든 원하는 책을 쉽고 편리하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인증제’나 ‘등록제’ 도입과 강력한 시행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다양한 부문에서 인증제나 등록제를 통해 각 생태계의 구성원이나 제품, 서비스의 수준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최종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독서생태계도 ‘지역서점 인증제’나 ‘공공도서관 등록제’가 이미 시행 중이다.
저자의 창작 활동, 독자의 도서 선택권, 출판사의 자유로운 출판 활동 등에 대해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독자의 선택이 중요한 서점이나, 도서 보급과 문화 접근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저자의 확대와 독자의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선택을 돕는 데 이러한 인증제나 등록제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서점 인증제 현황
2014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으로 도서정가제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지역서점들의 약화에 대응하고자 2021년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등(제7조의2) 조항이 생겼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지역서점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정할 수 있고, 도서관이 지역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하도록 독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2015년 경상남도 창원시와 한국서점종합연합회가 지역서점 인증제를 도입하여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서점을 인증하고, 지역 내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 도서를 구매할 경우, 인증을 받은 지역서점에서 우선 구매 하도록 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역서점 인증서 예시 이미지(출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16년 서울시가 처음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를 제정한 이후 현재는 17개 광역시·도 모두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 중 지역서점 인증제를 도입한 곳은 8곳(47.1%), 공공도서관 등에 우선 구매를 지원한 곳은 11곳(64.7%)이다.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지역서점 지원 조례를 제정한 곳은 총 94곳(41.6%)이며, 그중 공공도서관에서의 우선 구매를 규정한 곳은 87곳(38.5%)으로 다소 참여도가 낮다. 17개의 교육청도 관련 조례 제정은 10곳(58.8%)에 그쳤고, 인증제를 도입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럼에도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 지역서점 우선 구매를 규정한 곳은 광주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경상남도 총 6곳(35.3%)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지역서점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인증제를 도입하는 목적은 유사하다. 일차적으로는 도서정가제 확대 시행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의 도서 구매 시, 확실한 역량을 갖춘 지역서점에게 우선 입찰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해당 기관은 인증된 기관에서 필요한 도서를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고, 지역서점은 도서 판매를 통해 운영을 이어나갈 수 있다. 또한 일상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서점을 ‘지역서점’으로 인증해 줌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신뢰와 이용 만족도를 높이고, 지역서점은 적정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거점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지역서점 인증 과정 개선이나 인증 이후 실질적인 지원 확대에 대한 요구가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공공도서관 등록제의 현황
도서관 부문에서는 2022년 도서관법 전부개정에 따라, 도서관 서비스 제공의 공적 책무가 있는 정부나 지자체, 교육청 등이 설립·운영하는 공공도서관(작은도서관, 어린이도서관 등 포함)에 대해서도 등록의 의무가 추가로 부여되었다. 도서관법에 따른 공공도서관 등록제는 도서관의 설립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서와 도서관 자료, 시설 확보 상황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만족스러운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기존 운영 중인 도서관은 2024년 12월 7일까지, 신규 개관 도서관은 개관 전 혹은 개관 시점까지 각각 법률이 정한 사서와 도서관 자료, 시설에 대해 등록 요건을 갖추어 등록 관청(국립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립은 시·도지사 또는 시·도 교육감, 사립은 시장·군수·구청장)에 등록해야 한다. 현재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등록 업무가 본격 추진 중이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공공도서관 등록업무 가이드라인〉(2024)
그러나 공공도서관 등록 과정에서 사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도서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자체나 교육청은 등록 요건 충족을 위해 사서를 신규 채용하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공공도서관을 작은도서관으로 변경을 시도하거나 도서관법 시행령의 등록 요건에서 “지자체는 지역 여건이나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하여 사서 요건을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는 법률 단서 조항을 근거로 별도의 조례를 정해 등록제 도입 목적을 무력화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안정적인 공공도서관 등록제 실행에 책무가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등록 관청에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각 시·도의 도서관 등록 업무를 지원하고 있지만, 보다 강력한 관리 감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0월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체부 국정감사에서도 김재원 의원은 문체부 장관에게 공공도서관 등록제 시행에 대한 질의에서 공공도서관이 줄어들고 있는 일부 지자체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로 인해 도서관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국민 편의가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였고, 문체부에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김재원 의원은 당시 등록제 대상 공공도서관 1,271관 중 단 156관만이 등록했다고 밝혔다. 등록 마감 시한인 12월 7일까지 과연 몇 개의 도서관이 더 등록할지, 등록하지 못한 도서관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궁금하다.
지역서점 인증제와 공공도서관 등록제에 대한 개선 의견
현재 지역서점 인증제가 시행 중인 지역에서는 이용 만족도가 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증제를 도입하지 않은 지역이 많으며, 해당 지역의 공공기관이나 출판계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첫째, 지역서점 인증제 활성화를 위해서 법적 조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실질적인 지원책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 내 도서관에서 도서 구매 시, 지역서점 우선 구매 과정에서 지자체 조례와 상위법인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 관련 법률과의 충돌로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7조의2 제5항에서 “지역서점 이용을 ‘독려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지역서점을 ‘이용해야’ 한다.”로 개정해 법적 기반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서점 인증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현재 인증제 업무는 광역자치단체이거나 기초자치단체,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이 수행하고 있는데, 인증 기준이나 절차 등이 제각각이다. 이를 통합해 단일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도 지역서점 인증제도 관련 조항을 추가하고 이를 민간단체를 통해 전문적이고 통일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 관광 분야에서 숙박업 등 4개 업종을 대상으로 한국관광공사가 한국관광품질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참고할 수 있다.
셋째,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의 도서 구입 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도서 구입 예산이 늘어나면 도서관은 지역서점으로부터 다양한 도서를 확보할 수 있고, 지역서점은 경제적 이익을 통해 안정적 운영과 지역 내 도서 보급을 활성화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 경우 2023년 기준, 자료 구입비 결산액이 약 1156억 원이었는데, 이를 3배 정도는 증액하여 3000억 원 수준으로 늘리는 획기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 도서관 내 도서 보급과 지역서점이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공공도서관 등록제는 현재 시행 중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제도 도입의 목적과 의미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문체부와 지자체는 물론 공공도서관 현장에서 등록 요건 충족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법률이 정한 등록 요건은 국민 모두에게 최상의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소의 요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법률이 정한 등록 요건을 의도적으로 완화하거나 회피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파악하여 차단해야 한다.
한편, 자격 조건을 갖춰 등록한 공공도서관에는 실질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 지원이 미미하여 등록에 대한 이익도 미등록에 대한 불이익도 없을 거라며 도서관 등록제에 미온적인 시각도 있다. 따라서 도서관의 원활한 운영과 자격 요건을 갖춘 사서를 채용할 수 있도록 사서직 정원 증원과 총액인건비제 증액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도서관 등록제를 통한 도서관 서비스 수준 향상을 꾀하는 것과 동시에 공공도서관 운영 평가 제도를 활용하여 평가 결과를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현재는 공개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이 존재)하고, 도서관에 평가 등급을 나타내는 표식을 부착하도록 하여 지역 주민들이 자신이 이용하는 도서관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지역서점 인증제나 공공도서관 등록제를 확실하게 시행해서 지역서점이나 공공도서관이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독서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나 국회, 독서생태계 구성 부문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 도연문고 대표 오랜기간 도서관 사서로 현장과 협회 등에서 일하다가 은퇴하였으며, 현재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 한국도서관사연구회와 부설출판사 도연문고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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