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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5  202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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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책 축제의 길을 묻다

 

 

 

이상(출판평론가)

 

2024. 9+10.


 

문명비평가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자신의 저서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커뮤니케이션북스, 2001)에서 근대적 인간을 ‘구텐베르크 인간(Gutenberg Man)’이라고 불렀다. 책의 대량 보급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했다는 의미다. 과거로 올라갈수록 기록물은 성스러움 그 자체였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조차 권력이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열린책들, 2002)은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소수의 특권층이나 소장하던 책이 이제는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더는 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뿐더러 독서율은 점점 떨어져 간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종이책 기준으로 32.3%였다. 세 명 가운데 두 명의 성인이 종이책을 손에 쥐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올해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은 늘었다고 한다. 도서전의 본령을 따지기에 앞서 반가운 일이다. 도서전 방문객의 우선 관심이 굿즈에 있든 부속 이벤트 참가에 있든 말이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이 자신의 힙(Hip)을 자랑하는 소품이 된들 어떠하랴. 파주에 위치한 지혜의숲이나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처럼 책을 거대한 실내 장식물로 활용하는 새로운 풍조도 경하할 일이다. 개방 도서관의 기능도 겸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열리는 이벤트는 책과 관계된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만도 1,300여 곳 가까이 되고 각각의 도서관에서 독서 관련 행사들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사립 도서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출판사, 서점, 학교 등에서 개최하는 책, 독서 관련 이벤트도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들이 펼치는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그런데도 독서율은 왜 점점 곤두박질하는 걸까.

 

대한민국 대표 책 축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책 축제를 물었다. 모두 책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거나 책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임에도 쉽게 답을 못 했다. 대한민국 독서대전, 파주북소리,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같은 이름을 겨우 들을 수 있었다.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 2024 파주북소리, 2024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포스터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 2024 파주북소리, 2024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포스터

 

 

2018년 〈출판N〉 10월 호에는 〈문화일보〉 최현미 문화부 부장이 “가을 책 축제”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대표 책 축제를 정리한 글이 실렸다. 그해 가을에 열리는 축제에 한정하기는 했지만 ‘비교적 전국 규모’이고 ‘나름의 역사와 성과가 쌓인 축제’를 고른데다가 가을에 책 축제가 집중되는 만큼, 우리 책 축제의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지 가늠자로 삼기에 충분하지 싶다. 모두 5개의 책 축제를 소개했는데 대한민국 독서대전, 서울 북 페스티벌, 파주북소리, 북페스티벌 오늘산책, 라이프러리(Lifrary)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축제는 대한민국 독서대전과 파주북소리뿐이다.

 

‘라이프러리’는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기획된 야외도서관 개념의 캠페인으로 애초 지속성을 갖춘 책 축제가 되기는 어려웠다. ‘북페스티벌 오늘산책’은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북도에 있는 독립서점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축제로 2018년의 4회 이후 더 이상 발전을 이어가지 못했다. 2008년 시작된 ‘서울 북 페스티벌’은 서울도서관이 주관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도서관이 운영하는 가장 큰 책 축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2019년 ‘서울지식이음축제’로 바뀌었다가 중단되었고, 지금은 ‘책읽는 서울광장’을 위시한 ‘서울야외도서관’ 프로그램이 서울도서관의 대표 사업이 되었다.

 

향후 서울도서관이 다시 책 축제를 기획한다면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LC)의 ‘내셔널 책 축제(National Book Festival)’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이다. 내셔널 책 축제는 저명한 작가, 시인, 일러스트레이터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 사서, 문학 전문가, 의회도서관 전문가들까지 약 90명이 참여한 행사를 온오프라인으로 무료 개방한다. 독서가 사람들의 삶과 국가의 장래에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는데, 하루뿐인 행사에 수십만 명이 모인다.

 

2024 내셔널 책 축제 포스터, 축제 현장 지도

2024 내셔널 책 축제 포스터, 축제 현장 지도(출처: 내셔널 책 축제 홈페이지)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정부의 야심찬 정책의 하나이다. 2014년부터 기초자치단체 중 한 곳을 선정해 축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군포, 인천, 강릉, 전주, 김해, 청주, 제주, 부산 북구, 원주, 고양까지 10개 도시가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올해는 9월 말에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한 대부분의 도시는 그해 이후에도 책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분명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왼쪽부터 오른쪽으로 2020 제주, 2021 부산, 2022 원주, 2023 고양)

대한민국 독서대전(왼쪽부터 오른쪽으로 2020 제주, 2021 부산, 2022 원주, 2023 고양)(출처: 대한민국 독서대전 홈페이지)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현재 우리나라 책 축제 가운데 예산 규모가 가장 크다. 국고 3억 원을 포함해 총 6억 원이 넘는다. 일견 큰 예산으로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책의 도시’로 불리는 영국의 작은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에서 열리는 ‘헤이 축제(Hay Festival)’ 예산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2017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했던 전주의 경우 역대 실록(實錄)을 보관하는 전주사고(全州史庫)와 전주에서 출판된 옛 책인 ‘완판본(完板本)’을 보유한 지역 문화 자산을 ‘전주독서대전’의 정체성으로 담아냈다. 또한 2022년 봄부터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도 선보였고 올해에도 행사를 진행했다. 책 축제를 통해 책의 도시 면모를 일신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4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2024 전주책쾌

2024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2024 전주책쾌(출처: 전주시)

 

2024 전주독서대전,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전주책쾌 포스터

2024 전주독서대전, 2024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2024 전주책쾌 포스터(출처: 전주시 홈페이지)

 

 

한편, 첫 번째로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하고 한동안 ‘책의 도시’라는 대명사로 불리던 군포에서는 책 축제가 ‘군포올래행복축제’의 한 부문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만큼 책 축제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겠다.

 

지역 책 축제의 발전 방향

 

고양, 전주, 제주 등 여러 곳의 책 축제를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프로그램이 너무 산만하다는 것이다. 핵심이 되어야 할 초청 작가는 정작 몇 되지 않는다.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나 헤이 축제 같은 경우는 참여 작가가 천여 명에 이른다. 얼핏 보면 외국의 책 축제는 매우 단조로워 보인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행사 위주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길을 잡아끌려는 번다한 이벤트는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책 축제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 지역 책 축제의 정체성을 더 명확히 확립할 수 있다.

 

2024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프로그램 북

2024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프로그램 북(출처: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홈페이지)

 

 

“책 축제나 작가 축제라고도 알려진 문학 축제는 일반적으로 특정 도시에서 해마다 작가와 독자들이 모이는 행사다. 여러 날의 축제 기간 동안 저자들이 강연을 하거나 자신의 책을 낭독하는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가 진행된다.”

 

위키피디아에서 문학 축제(책 축제)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책 축제’, ‘작가 축제’, ‘문학 축제’가 혼용되고 있는데, 작가가 중심이 되는 책 축제의 정체성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 정의가 절대적일 수는 없겠지만 ‘특정 도시’에서의 정기적으로 개최된다는 특성상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단일 책 축제로만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전국 각지에 책 축제를 배태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에 의미가 있겠고, 결국 독서대전을 치른 도시들이 독자적인 책 축제를 잘 발전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국내 책 축제

 

외국의 대표 책 축제들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파주출판도시에서 개최하는 책 축제와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남이섬세계책나라축제, 부산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를 비롯해 제법 많은 수가 있다.

 

파주출판도시에서는 두 개의 책 축제가 열린다. 2003년에 첫발을 내디딘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는 올해 22회째 행사를 치렀다. 출판도시의 책문화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어린이책 축제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비롯한 메인 행사장에서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출판사, 서점 등에서 ‘오픈하우스’를 운영함으로써 프로그램이 다채로운 것이 특색이다.

 

2024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현장

2024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현장(출처: 출판도시문화재단)

 

 

다른 하나는 2011년 출범한 파주북소리다. 필자는 파주북소리 산파의 한 사람이다. ‘파주북소리’라는 이름부터 숱한 고뇌의 소산이었다. 필자는 파주북소리 축제 운영책임자로서 축제장을 가득 메운 특색 없는 몽골 텐트의 행렬과 도서 할인 이벤트가 중심이 되어서는 새로운 책 축제를 만들 이유도 없거니와 책 문화의 요람인 출판도시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축제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거스르며 파주북소리 출제를 ‘지식 축제’로 규정하였다. 이 축제를 통해 관객과 진지하게 소통하며 책의 문화를 함양하고 싶었다.

 

파주북소리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평가하고 싶다. 축제 개최 3회째 만에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되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던 기세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한풀 꺾였다. 그럼에도 파주출판도시의 문화 자산을 배경으로 기획력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초에 개최되었던 파주북소리 기간에는 ‘파주페어 북앤컬처’가 곁들여졌다. 책에서 발현되는 문학예술 콘텐츠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는 글로벌 콘텐츠 마켓이자 복합문화페어로 선보였다.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 포스터

2024 파주페어 북앤컬처 포스터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매년 가을에 서울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다. 한창 성가(聲價)를 올릴 때는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상수역에 이르는 긴 주차장 거리가 축제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많은 출판사들이 인근에 모여 있고 미술, 디자인, 공연장 등의 문화 자원이 밀집한 지역 특성이 성공의 동력이 되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이후 경의선책거리 조성 등 지역의 문화 환경을 바꾸고 책 축제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거리도서전에 대한 지나친 쏠림이 역으로 축제의 발목을 잡았다. 대부분 출판사의 도서 판매 부스로 구성되었던 거리축제가 2014년 말 도서정가제의 개정으로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거리도서전 위주의 진행과 이후의 쇠락은 전국의 책 축제가 다 같이 맞닥뜨린 위기였다. 이후 콘텐츠형 축제, 문학 축제로 전환하고자 했으나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어렵사리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2023 서울와우북페스티벌

2023 서울와우북페스티벌(출처: 와우 컬처 랩)

 

 

해외 책 축제 모델

 

책 축제는 지식(문화) 축제, 독서 진흥 축제, 도서 판매 축제로 그 갈래를 크게 나눌 수 있다.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 헤이 축제 등 최근 해외 주류 책 축제의 성격은 ‘지식문화 축제’다. 인도의 ‘자이푸르 문학축제(Jaipur Literature Festival)’도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 도서관을 기반으로 개최되는 책 축제들은 독서 진흥 축제가 많다. 도서 판매 축제는 일본 도쿄에 ‘간다고서축제(神田古本祭り)’와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 중인 책마을에서 펼쳐지는 축제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뚜렷한 특징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책 축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전국 각지에서 허다한 이름의 책 축제가 열리지만, 대중들은 잘 모른다. 규모가 너무 작아 소수의 그 고장 사람이나 관심을 가질 뿐이고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축제가 대부분이다. 제법 가능성을 보이던 책 축제들도 뒷걸음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책을 읽자’라는 계몽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하면 아이들 대상의 이벤트로 가족 단위 관객을 호객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도서정가제의 시행으로 도서 할인 행사가 위축되다 보니 대중의 관심은 풀 죽은 푸성귀처럼 시들고 말았다.

 

우리나라 책 축제와 형태적으로 친화성이 높은 모델은 미국의 ‘마이애미 국제 책 축제(Miami Book Fair)’가 아닐까 싶다. 거리축제와 실내 작가 프로그램이 공존하는 모습이 뚜렷해서다. 하지만 마이애미 국제 책 축제는 수백 명의 작가가 초청되고 중남미와의 지리적 접근성을 살려 이를 정체성으로 살려낸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 축제로 동일 선상에 두기 어려운 점이 있다. 마이애미 국제 책 축제는 총 8일간 진행되는데 그중 거리축제는 마지막 주말 사흘뿐이지만, 주 행사장인 데이드 칼리지(Dade College) 앞의 다운타운 거리에는 차량이 통제되고 서적상, 출판사, 비영리 문학 및 교육 기관에서 운영하는 300여 개의 부스가 차려진다.

 

국제 책 축제 포스터

2024 마이애미 국제 책 축제 포스터
(출처: 마이애미 국제 책 축제 페이스북)

 

 

그럼에도 계속되는 책 축제의 도전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책 축제의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럼에도 올해 11월 말에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 첫발을 내딛는다. 도서전 본래의 기능인 저작권 거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고 한다. 8월 말에는 같은 부산에서 ‘제1회 북앤콘텐츠페어’가 열렸다. 이 역시 강연, 북토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책 축제였다. 독립출판과 아트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책 축제라 함이 옳을 것이다. 지난 8월 전라북도 군산에서도 ‘군산북페어 2024’를 처음 선보였다. 군산시 서점 연합체인 군산책문화발전소가 운영을 맡은 만큼 도서 판매에 방점을 둔 책 축제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계속해서 책 축제의 장을 만들려는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2024 북앤콘텐츠페어, 2024 군산북페어 포스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2024 북앤콘텐츠페어, 2024 군산북페어 포스터

 

 

일본 후쿠오카의 서점들이 함께 여는 ‘북쿠오카(Bookuoka)’라는 소박한 책 축제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북(Book)과 후쿠오카(Fukuoka)를 합친 이름으로 ‘후쿠오카를 책의 도시로’라는 슬로건을 가진 북페스티벌이다. 가장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참가 서점의 북 매니저들이 기획한 코너였다. 규모가 큰 책 축제만이 아니라 이처럼 지역서점 혹은 독립출판사 등이 개최하는 개성 있는 책 축제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책 축제, 무엇을 채울 것인가

 

책 축제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헤이 축제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책 축제의 장으로 달려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최신의 아이디어를 얻는 길이라며.

 

한때 곧 소멸하고 말지 모른다던 종이책이 수명을 부지해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종이책을 대체하리라고 여겼던 이북(eBook)과 인터넷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처럼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서구사회에 책 축제라는 독특한 문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큰 책 축제에는 20만 명 남짓의 독자들이 입장료를 들고 몰려온다. 사회가 발전하고 정보가 넘침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 정제된 정보를 얻고 싶어 한다. 대중의 지적 갈증이 곧 좀 더 체계적이고 큰 규모의 책 축제를 추동해내는 힘이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영국의 경우 큰 책 축제는 대부분 작은 도시에 둥지를 틀고 있다. 헤이 축제가 개최되는 영국 남서부에 있는 헤이온와이는 인구가 고작 1,50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외진 산골 마을이다. 그런데도 헤이 축제가 진행되는 11일 동안 약 25만 명이 다녀간다. 대도시에서 먼 곳일지라도 개성 있는 책 축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자.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 자산 혹은 진정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 책 축제의 대부분이 예산 문제로 위기에 봉착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관이 주도하는 축제는 예산 규모가 너무 작고 민간은 지원금에 목매게 되는데, 예산이 들쑥날쑥해서는 안정적인 축제 운영이 어렵다. 파주북소리도 서울와우북페스티벌도 예산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당연히 자생력을 키워가야 하지만 지금 같은 환경,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자생력을 키울 길이 난망하다.

 

더불어 책 축제 관련 전문성의 확보가 시급하다. 관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필연적으로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 업무의 연속성이 끊기고 전문성의 축적도 어렵다. 순환보직의 범주가 비교적 좁은 도서관 사서의 경우는 형편이 좀 나을지 모르겠다. 외국의 책 축제 가운데는 수십 명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상설 사무국을 둔 경우도 있다. 상설 조직이 어렵다면 기획력이 뛰어난 민간 전문가 조직을 육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책 축제처럼 콘텐츠가 중요한 축제를 특산물 축제나 오락성 축제 등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정부의 축제 평가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관람객 숫자만이 평가의 기본이 된다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 법한 가볍고 잡다한 이벤트 기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독서의 계절 가을엔 전국 곳곳에서 책 축제가 열린다. 독자들이 책 축제를 열심히 찾아야 축제의 내용이 더욱 충실해지고 지속성도 담보된다. 독자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역시 책 축제를 주관하는 이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지역의 책 축제가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가을은 더 강렬한 책에 대한 사랑으로 저자와 독자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4 하반기 지역 책 축제

축제명 일정 장소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 2024.09.27.(금)~09.29.(일) 포항시 영일대 광장
2024 서울와우북페스티벌 2024.10.11.(금)~10.13.(일) 서울시 서울생활문화센터 외
2024 전주독서대전 2024.10.11.(금)~10.13.(일) 전주시 전주종합경기장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2024.11.28.(목)~12.01.(일) 부산시 벡스코 제1전시장

 

 

이상

이상 출판평론가

출판평론가로 202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헤이리 예술마을 사무국 책임자와 파주북소리 운영위원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책 축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가갸날, 2019), 『헤이리 두 사람의 숲』(가갸날, 2018), 『세계예술마을은 무엇으로 사는가』(가갸날, 2016) 등이 있다.
swhavi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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