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2024 서울국제도서전 탐방기
김윤우(출판공동체 편않 편집자)
2024. 7+8.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이 서울 코엑스에서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올해로 66회째를 맞은 이번 도서전은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듯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총 19개국 452개(국내 330개 사, 해외 122개 사)의 참가사가 참여했고, 관람객은 작년보다 약 15.4%p가 늘어난 15만 명이었다고 한다. 2023년 기준 국민 연평균 독서율은 최저를 기록한 43%로 사람들은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데, 도서전은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이번 도서전을 준비한 출판공동체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이하 편않)’의 참가자로서, 그리고 관람객으로서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의 경험을 소개할까 한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서울국제도서전, 목걸이(참가자) 편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두고 편않 편집자들은 짧은 회의를 했다. 회의 안건은 하나였다. 플랫폼P 공동 부스로 마련된 편않의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굿즈를 만들어 보면 어떨지 의견을 물었다. 굿즈는 현재 출판업에서 책의 판촉을 위해 책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굿즈에 대해서 대체로 회의적이지만…”이란 말이 나왔다가도 “그래도 편않의 책을 알릴 수 있다면, 더 많은 책을 팔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 보고 싶어요.”라는 의견이 모였다. 우리는 진지하다.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음, 뭐, 책갈피가 되었든, 엽서가 되었든….” 이번에는 길게 침묵이 이어졌다.
한때는 굿즈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책을 살 때 한정판 굿즈를 준다고 하면 자주 이용하지 않던 곳이라도 굳이 찾아갔다. 굿즈를 받으면, 그것이 책 혹은 독서 경험을 확장해 준다는 느낌에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일. 굿즈로 받은 편지나 엽서는 제 역할대로 누군가를 위해서 쓰이거나 벽에 붙는 장식도 되지 못하고 책상 위를 돌아다니다가 사라졌다. 가끔은 가방 속에서 반쯤 구겨진 굿즈 책갈피를 발견했고, 한두 번 쓰다가 찬장에 들어간 컵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어느 순간부터 ‘사은품 받지 않음’을 선택하게 됐다. 그러면서 의문이 생겼다. 굿즈가 정말로 책의 구매를 유인할까? 우리가 굿즈를 만든다면, 어떻게 달라야 할까?
올해는 편않 공동체가 서울국제도서전에 두 번째로 참여한 해였다. 처음 참가했던 2023년과 마찬가지로 편않은 플랫폼P 공동 부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2022년에 플랫폼P의 입주사로 선발된 덕에 작년부터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할 수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메인 홀에서 가장 작은 독립 부스라도 참여하려면, 또 그 부스를 꾸미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대략 계산한 바에 따르면, 최소 비용만 잡아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도서전 기간인 5일 동안 총 441부, 다시 말해 매일 88부를 판매해야 한다. 거기에 이벤트, 굿즈 제작비 등 부대비용을 합치면 금액은 더 올라간다.
출판공동체 편않 부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편않의 부스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플랫폼P에서 한 팀당 주어진 책상은 디귿 자로 위치했고, 중앙에는 북토크 등을 진행할 수 있는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도서전을 위해 준비한 포스터를 부스의 벽과 책상 아래에 붙이고, 책상 위에는 편않에서 출간한 책들을 2부씩 올려 두었다. 다른 한쪽에는 편않을 소개하는 소책자 「우리가 출판노동을 말할 때」와 리플릿도 같이 두었다. 이번 도서전에 맞추어 출간된 신간 『오학준의 주변: 끊임없이 멀어지며 가라앉기』(오학준, 2024)와 편않의 독립잡지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2024) 최신 호는 작은 거치대를 세워 진열했다. 남은 공간에는 교정지나 펜, 드림 도장처럼 우리가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물건들을 놓았다. 북토크나 사인회처럼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A4 용지 한 장을 꽂을 수 있는 POP를 꺼내 행사를 홍보했다. 작은 책상 위에 올라갈 것들이 많았다. 틈틈이 관람객의 시선에서 부스를 살피면서 난잡해 보이지 않도록 꾸준히 다듬어야 했다.
부스를 지키는 동안 ‘우리의 자리는 이곳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관람객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우리의 부스 앞을 지나갈 때, 책을 몇 권 펼쳐 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려놓을 때, 방문한 관람객의 양손에 온갖 굿즈가 들려 있을 때, 표지 사진만 찍고 떠날 때 유난히 그랬다. 드물게 몇몇은 물었다. “혹시 이 책 작가님이세요?” 그럼 우리는 대답했다. “아니요, 저희는 (편집하지 않는) 편집자입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보통 없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소수점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올해 도서전은 더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났다. 방문자 수가 정점에 달한 토요일에는 부스 사이를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관람객이 매우 많았다. 작년보다 더 흥한 것 같았다. 그런데 도서전이 이렇게 흥하는 것은 사실 기묘한 일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2019년에 비해 4분의 1수준으로 폭락했다는데 말이다. 연평균 도서 구입량 역시 매우 저조한 1권(종이책 기준)으로 나타났다. 성인이 1년에 책을 단 1권 산다는 뜻이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입구와 내부
부스를 지키다가 교대로 쉴 때 다른 부스를 둘러보게 되었다. 참가사인데 구경하러 왔다는 티를 굳이 내고 싶지 않아 참가사용 목걸이를 빼고 다른 부스는 무엇을 준비했는지, 관람객들이 모이는 부스는 무엇이 다른지 돌아가며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년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올해에는 유난히 눈에 밟혔다. 부스를 지키며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자동으로 나오는 미소, 모든 책에 맞게 준비된 소개, 출판사 직원들끼리 맞춰 입은 옷, 무언가를 챙겨 주느라 더 바쁜 손, 관람객들의 동선을 정리하는 바쁜 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압도된 표정, 모두 목걸이를 걸고 있는 사람들.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참가사 출입증(목걸이)
목걸이를 건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사지 않고 읽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책보다 굿즈 혹은 굿즈만큼 아름다운 책의 표지가, 독서보다는 도서전이나 축제와 같은 체험이, 혹은 그 체험을 하는 ‘나’의 모습이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책, 굿즈, 체험이 혼재하는 도서전 가운데에서 우리가 만든 책을 소개하려고, 한 명이라도 부스에 더 머물게 하려고 분투하는 출판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번 도서전을 위해 원고지 공책을 한 권 준비했다. 편않의 부스에 들러서 책을 구경하고 구매한 사람들에게, 원고지 공책을 내밀고 릴레이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앞 사람이 어떻게 썼는지를 확인하고 그다음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이어 갔다. 도서전에 방문한 사람들이 우연히 편않의 공간에 도착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서 써나가는 것. 그 짧은 경험이 우리가 관람객들을 위해서 준비한 굿즈이다.
서울국제도서전, 팔찌(관람객) 편
입장하자마자 부꾸(부스 꾸미기)에 혼신의 힘을 담은 출판사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넓은 공간을 운용하는 독립 부스들은 정해진 콘셉트와 컬러에 맞춰 마치 팝업스토어처럼 꾸며져 있다. 올해도 출판사들이 관람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책뿐만 아니라 화려한 굿즈와 이벤트를 준비한 듯했다.
대형 종합 출판사들이 주로 위치한 독립 부스에 가 보면 서점에 들어선 것 같았다. 설계된 동선을 따라 움직이면 분야별로 잘 정리된 책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기본 부스로 참여한 출판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주력 도서는 더욱 잘 보이게, 베스트셀러도 화려하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도 잠시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도록 단 한 권도 허투루 놓이지 않았다. 특히 모든 샘플 도서에는 출판사 직원이 쪽지에 손수 적은 소개글이 눈에 띄었다. 그 애정에 눈물이 차올랐다.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의 책소개와 굿즈
올해 참가사들은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책을 단 한 권만 사도 끼워 준다는 것들이 많았다. 방문만 해도 기본적으로 그 출판사의 도서 목록을 받고, 주력으로 밀고 있는 책들(시리즈들)을 모아서 따로 소개한 책자도 있었다. 책을 사면 비닐로 포장한 엽서나 스티커가 같이 오고, 주최사에서 준비한 이벤트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다. 책을 더 많이 살수록 받는 선물도 많았다. 작가와 직접 만날 기회는 선착순으로 마감되고, 멋지게 디자인을 뽑은 티셔츠가 오후가 되기도 전에 품절되었다. 관람객들은 무료로, 그리고 유료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위해서 여러 부스를 빙빙 돌아 줄을 섰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관람객 입장권(팔찌)
어느 부스 근처에서는 관람객들 대부분이 똑같은 가방을 메고 다녔다. 사인회에 참가할 기회를 선착순으로 제공한다는 말에 늦기 전에 번호표를 받기 위해서, 또는 한정 수량으로 준비된 굿즈를 남들보다 먼저 사기 위해서 오전 10시에 도서전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뛰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현장 관리자가 큰소리를 냈다. “실내에서 뛰지 마세요!” 관람객들은 포토존 앞에 서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차례대로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도서전은 책을 사고 싶고, 귀엽고 웃긴 굿즈를 가지고 싶고, 사진을 찍어 SNS에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부스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살피게 되는 것은 그 출판사의 도서 목록이다. 도서전의 가장 큰 매력은 출판사들의 도서 목록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간이 무엇인지, 새로 시작한 시리즈가 있는지, 표지 디자인은 주로 어떤지, 주요 저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쉽다. 도서 목록이 흥미로우면 부스를 어떻게 꾸몄는지 조금 더 살펴봤다. 출판사가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려는지 관찰했다. 당연히 굿즈도 봤다. 이벤트도 기웃거려 보지만 보통 기력이 딸려 참여하지는 않았다. 독자와의 북토크나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치열한 경쟁에 한발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부스에 진열된 도서만 살펴보기에도 바빴다.
진열된 책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이것은 출판업에 몸담은 사람의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다.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정말 옛말이 되었다. 굿즈와 책이 한 쌍이란 말도 옛말인가. 이제는 책이 곧 굿즈인가 싶다. 도서전을 찾는 관람객의 대다수라는 20~30대 여성들의 취향에 맞춘 듯 책 표지는 굿즈처럼 형형색색이었다.
필자도 고심하다가 책을 한 권 골랐다. 도서전에 오면 반드시 사는 책이 있다. 출판인이 쓴 책 혹은 책에 관한 책이다. 도서전에서 꼭 한 권 이상은 발견하게 되는데 출판계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사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모두 이렇게 괴롭게 일하는지, 책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언제나 궁금하므로. 더불어 굿즈도 챙겨 받았다. 귀엽고 웃긴 스티커였다. 어디에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작은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굿즈를 손에 쥔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렇게 구매한 책이나 굿즈를 보며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도서전에서 책은 사지 않고 굿즈를 모으고 인증샷을 찍으며 SNS에 #서울국제도서전, #서국도, #SIBF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며 ‘힙(Hip)’을 자랑하기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과 가까이하겠다는 움직임이 ‘힙’하다면 그런대로 또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서울국제도서전의 문화’ 말이다. 혹 이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 즉시 궁예가 되어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는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진정성 소리를 내었어. 누가 진정성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김윤우 출판공동체 편않 편집자 출판공동체 편않에서 기획 및 편집 등을 맡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이번 도서전에서 산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김해인, 스위밍꿀, 2024)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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