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출판문화의 변화와 미래
한주리(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 (사)출판문화학회 회장)
2024. 7+8.
30여 년 전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등 정보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인류역사상 세 번째 대변혁으로 평가되는 ‘정보혁명’이 시작되었다(Negroponte, 1995; Castells, 2000). 전통적 산업사회가 지식과 정보 중심의 지식정보사회로 이전되면서 재화의 개념이 소프트웨어·콘텐츠 등 디지털 재화로 확대되고, 노동의 성격이 ‘근육(Brawn)’에서 ‘두뇌(Brain)’의 형태로 변화(유지연, 2002; Drucker, 1993)한 바 있다. 이 시기를 ‘정보사회’라고 칭하였는데 제조업보다는 정보와 지식 중심의 서비스 산업이 중요성을 더해가는 시기였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생산 기술의 디지털화”로 인해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제조업 중심에서 창조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산업으로 전환되었으며, 문화콘텐츠산업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기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였다(Caves, 2000).” 기술은 발전 및 변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었고, 디지털전환으로 인한 다양한 변화가 지속되어 왔다. 이제 생성형 AI가 전 세계 산업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전망을 하고 있으며, 출판산업과 출판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문화는 용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시장과 연계성이 좌우될 만큼 큰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출판문화’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한국 출판산업의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거시적 관점보다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에피소드 ① 세계 출판시장의 매출 예측
한국 출판문화의 변화를 위한 고민에 앞서 현시점에서 세계 출판계는 어떻게 시장을 전망하고 있을까? 2024년 5월 기준 스태티스타(Statista)의 시장 예측치를 살펴보면, 전 세계 도서 시장의 매출은 2024년에 919억 8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시장은 1.58%의 연평균 성장률(CAGR 2024-2029)을 보여 2029년까지 예상 시장 규모가 994억 7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 도서 시장의 매출 예측치(2017-2029)〉 출처: Statista Market Insight, May 2024
2029년에는 도서 시장의 독자 수가 25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2024년 기준 도서 시장 사용자당 평균 수익(ARPU)은 US$ 37.95로 추산하였다. 이 중 독자 1인당 평균 수익을 일반 도서, 전자책, 오디오북으로 살펴보면, 일반 도서가 2024년에 37.96달러인데 비해 2029년에는 37.34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였다. 전자책의 경우 2024년에 14.18달러에서 2029년에는 13.48달러 선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비해 오디오북은 2024년 5.46달러에서 2029년 7.45달러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출판시장에 대한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으며, 급격한 성장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판산업은 어떠한 대비와 전략을 세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그렇다면 10여 년 전 출판산업은 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측했을지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독자 1인당 평균 매출 예측치(2017-2029)〉 출처: Statista Market Insight, May 2024
에피소드 ② 2010년에 예측한 미래의 도서
2010년 “미래의 책(The Future of the Book)”이라는 영상에서는 닐슨(Nelson)에서 만들어질 향후 책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제시한 바 있다(IDEO, 2010). 책 내용 중에서 독자들이 토론을 벌일 만한 주제를 선택하면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개별 의견을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데이터가 표시되는 도서 형태가 제안되었다. 또한 도서 내용에 대해 실시간 팩트 체크가 가능하여 그 내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능을 탑재한 구성도 제시하였다.
실시간 토론 내용 및 팩트 확인이 가능한 2010년에 예측한 닐슨(Nelson)의 미래의 책(출처: IDEO(2010), The Future of the Book)
또한 미래의 책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내가 접속 가능한 사람들의 리스트가 있고, 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드래그 앤드 드롭(Drag and Drop)의 형태로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표현하였다.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해당 분야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지인이 읽고 있는 책을 확인 가능한 포맷을 제안하였다.
추천도서를 지인에게 바로 보낼 수 있는 2010년에 예측한 커플랜드(Coupland)의 미래의 책(출처: IDEO(2010), The Future of the Book)
소설의 경우 독자가 직접적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는 형태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제안하였다. 특히, 특정 장소에서 다양한 선택지 중에 독자가 원하는 파트를 선택하면 개별 독자마다 인터렉티브한 참여를 통해 서로 다른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좌)적극적 참여를 통해 새로운 챕터를 만들고, (우)독자가 선택한 방식에 따라 소설의 스토리가 바뀌는 미래의 책
10여 년 전 이 영상을 보면서 이러한 도서 형태가 나타나면 다양한 매체를 아우를 수 있는 형태로 도서가 개발될 것이고, 영상,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의 중심에 책이 놓이는 미래가 언제쯤 오게 될지 설레면서 기대했던 기억이 새롭다. 14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상상은 얼마나 현실이 되었으며 어떠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을까?
에피소드 ③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출판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
생성형 인공지능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로 인한 시장 변화는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부터 최근 AI가 출판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인키트(Inkitt)’의 사례가 자주 거론되어 왔다. ‘인키트’는 회원들이 누구나 자신의 글을 연재할 수 있고 홈페이지에 등록된 인디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오픈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2018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화두가 되던 시절, “세계 최초의 독자 중심 출판사”로 지칭한 인키트는 데이터와 커뮤니티라는 방식을 활용해 책의 판매 분석, 독자 행동 데이터(Behavior Data) 분석을 적극적으로 출판 비즈니스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를 예측하고 실제 70~80%의 베스트셀러 적중률을 보이면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페이스북 로그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나이, 성별, 직업, 주소 등 기본적인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회원들의 독서 속도, 선호 장르, 독서 장소, 독서 시간대 등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한다(이승준, 2018). 이러한 개인 맞춤형 비즈니스의 확장은 많은 문화가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현실과 맞물려 가는 측면이 있다. 그린필드(Greenfield, 2013)는 지난 2세기 동안 미국에서 출판된 책에서 단어의 빈도를 분석했는데 선택, 유일함, 자아, 개인과 같은 개인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가 증가하였다(김종보, 2021). 즉 문화적 측면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반영하듯 독자 개개인의 독서 행태를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편집 과정에 활용함으로써 출간된 도서의 판매량 증가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였다. 또한 개인 맞춤화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부터 MSP(Microsoft Student Partner)로 활동하던 프로그래머 출신(이승준, 2018)이자 인키트의 창업자인 알리 알바자즈(Ali Albazaz)는 이제 인키트의 경쟁상대는 유사 업종인 왓패드(Wattpad)가 아니며, 인키트의 미래는 ‘21세기 디즈니’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인키트의 장기적인 비전은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확장하고 이를 중심으로 멀티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Lunden, 2024). 이 회사는 2024년 2월 현재 3300만 명의 사용자와 수십 편의 베스트셀러를 내었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특정 독자를 위한 맞춤화된 소설 버전을 제작하며, 게임과 오디오북으로의 전환, 소설을 각색한 영상 콘텐츠 등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또한 모든 도서는 자동으로 10개 언어로 출판되며, 표지에 레오나르도(Leonardo, 최근 미드저니(Midjourney)에서 전환)를 사용하고 있다.
향후 이 회사는 스토리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개인화되고 의미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21세기 디즈니’로 자리매김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비전을 콘텐츠에 두고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유관 분야로의 IP 확장을 준비하는 기업의 경우, 현재보다 미래에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다 높게 점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에피소드 2에서 ‘미래의 책’으로 구현되리라 예측했던 데이터 분석을 통한 독자 세분화 전략은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현실이 되었다. 출판기업 중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데이터 중심의 분석과 고객 맞춤형 서비스의 확장을 준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에피소드 ④ 멀티플랫폼 스토리텔링
2023년 11월, 스피겔 & 그라우(Spiegel & Grau)의 설립자 겸 편집자인 줄리 그라우(Julie Grau)는 “이제 이야기는 상품”이며,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북클럽과 인디 출판사는 멀티플랫폼 스토리텔링과 오디오북에 투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Dwyer, 2023). 즉 하나의 스토리가 인쇄도서, 오디오북, 전자책, 영화, 라이브 이벤트 등을 통해 구체화 될 수 있으며 다양한 멀티플랫폼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을 읽지 않았던 소비자도 오디오북을 통해 해당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게 되며 어떠한 형식으로 만나든 해당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접점들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향후 유효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이러한 ‘맞춤형’ 도서 프로그래밍이 향후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게 되며, 이는 앞서 살펴본 인키트의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올해 초 〈출판N〉에서 필자가 작성한 커버스토리 [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출판계의 변화 제언] 중 “출판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제언”(한주리, 2024)에서 출판의 환경 변화 측면, 출판산업 인식 변화 측면, 출판생태계 변화 측면, 출판 가치 확산 측면에 대해 고민을 공유한 바 있다. 이 중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한 변화와 성장 파트에서 “인공지능이 출판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으로의 방향이 요구된다. AI는 출판사들이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에 있어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할 것이다. 독자의 데이터에 기반하여 독자 선호도에 맞춘 도서 또는 마케팅 캠페인을 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향후 인터렉티브 전자책이나 상호작용 가능한 디지털 형식의 도서가 개발될 수 있으며, 독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바뀌는 형태의 선택지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출판 가치 사슬 전반에 통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즉, 원고 개발에서부터 출판 이후 분석에 이르기까지 출판 프로세스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출판문화와 산업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
앞서 기술했듯이 출판문화는 용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시장과 연계성이 좌우될 만큼 큰 개념이며, 문화는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로 문화는 항상 진화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Varnum & Grossmann, 2017; 김종보, 2021에서 재인용). 기술의 발달은 산업의 변화를 촉발시켜왔고, AI를 활용한 산업의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출판산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무엇을 혁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지속될 화두이다.
이 글에서 에피소드로 제시한 사례처럼 모든 출판사가 AI 기술을 적용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판산업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할 때 디지털과 인재, 자본이 함께 변화하게 되는데, 이때 디지털 기술을 잘 이해하는 인재를 고용하거나 전문기업과의 협업이 요구된다. 또한, 산업이 변화하는 시기에 조직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새로운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출판분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두고 다양한 2차 가공이 가능한 분야이다. 출판산업은 인키트의 전략처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별 독자 맞춤형 소설 제작, 게임으로의 전환, 오디오북으로의 재매개, 스토리를 각색한 영상물 등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갈 준비를 해왔으며 향후 멀티플랫폼 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출판산업의 변화를 위한 민감도와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필요시 직원 재교육, 재훈련을 통해 역량 키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AI의 원리와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평가, 활용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Literacy)를 갖추고 창의적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준비가 요구된다. 이 모든 변화를 위한 준비에 앞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한주리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 (사)출판문화학회 회장 1995년 출판계에 입문해 2008년 3월부터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24년 3년 임기의 (사)출판문화학회 회장직을 맡았다. 미디어 출판 분야 전문 지식 및 연구를 바탕으로 미디어, 출판, 서점 등 출판생태계 관련 전문가 양성과 연구를 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회, 적극행정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선정위원, 서울도서관 자료선정위원 및 지역서점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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