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3 2024. 5+6.
‘절판’과 ‘복간’이 출판 마케팅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손민규(예스24 인문·사회·정치 PD)
2024. 5+6.
‘절판 마케팅’이 존재하는가
‘절판 마케팅’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주로 보험료가 곧 오를 테니 당장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광고하는 보험사들의 사례가 나온다. 금융당국에서 자제하라고 압박해도 보험사들이 절판 마케팅을 경쟁적으로 활용한다는 기사들이다. 나 역시 이런 절판 마케팅에 불안해하며 보험상품에 가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꼭 보험업계가 아니라도 최근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이 대표 메뉴였던 ‘와퍼’를 ‘판매 종료’할 거라는 공지에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절판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희소성을 강조하며 지갑을 열게 한다. 하지만 출판계는 매일 다양한 신간이 쏟아지고 재쇄를 찍지 못하는 책들이 많다 보니 ‘절판’이라는 무기를 마케팅으로 사용하는 것이 모호하다고 느껴진다. 출판계에서 절판은 절판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출판 절판 마케팅’으로 검색어를 바꿔봤다. 〈한국경제〉의 손효숙 기자가 쓴 “절판이 마케팅 수단? 출판 불황이 부른 ‘웃픈’ 현실”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에서는 현재 출판 마케팅을 ‘절판의 시대’로 진단하며 두 가지 유형을 소개했다. 첫째, 곧 절판될 책이니 서둘러 구매를 촉구하는 것. 둘째, 절판으로 인해 중고책 가격이 치솟은 화제의 책을 복간하니 이번 기회에 구매를 독려하는 것. 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을 최전선에서 지켜보는 서점인의 입장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절판 마케팅이 유행인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유행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사례가 많지 않고 일반적으로 통할 마케팅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공한 절판 마케팅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절판 도서 마케팅’의 성공 사례
최근에 진행되었던 절판될 책 마케팅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겠다. ‘유유 출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절판될 책을 소개했다. 필자 역시 유유 출판사의 조성웅 대표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역사학 공부의 기초』(존 루카치(John Lukacs), 2018), 『심리학 공부의 기초』(대니얼 로빈슨(Daniel N. Robinson), 2018), 『미국 정치사상 공부의 기초』(조지 캐리(George W. Carey), 2018)의 판권이 만료되니 필요한 독자는 절판 전에 구매하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도서의 담당으로서 멋진 책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으로 씁쓸했다. 초판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절판되는 사례가 워낙 많다 보니 해당 책이 크게 화제를 모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웬걸. 내 예상은 빗나갔고 해당 도서는 베스트셀러 차트를 역주행하여 절판 전 모든 재고를 소진했다.
『역사학 공부의 기초』, 『심리학 공부의 기초』, 『미국 정치사상 공부의 기초』
이 현상의 원인을 한 번 더 곱씹어보면 유유 출판사의 조성웅 대표의 인지도가 기여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화력은 출판사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아닐까 한다. 유유 출판사는 두터운 팬심을 지니기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출판사다. 타 플랫폼의 도움 없이도 어느 정도 도서 홍보를 충실하게 해낸다. 이는 유유 출판사의 지향과 그들이 만들어온 책, 쌓아온 시간 덕분이다. 유유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유유 책의 절판 소식은 누구보다 뼈아프게 다가왔고 독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다른 출판사의 절판 소식으로 판매가 갑자기 높아진 사례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없지는 않겠지만, 과문한 탓인지 바로 떠오르는 사례가 없다. 이를 통해 유유 출판사의 사례는 절판 마케팅의 일반적인 성공 방정식이라기보다 자체적으로 독자와 소통해오고 팬층을 두텁게 다져온 유유 출판사의 소통이 성공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서점에서 일하며 많은 출판사 분들의 고충을 듣는데, 고민은 바로 마케팅이다.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책을 알리는 게 더 어렵다. 효율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요즘은 소셜미디어 활용이 필수다. 필수라는 말은, 모두가 하고 있다는 말이다. 모두가 하는 방법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쌓여야 한다.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결국 ‘절판’만으로는 홍보가 될 수 없고, ‘절판’한다는 사실을 잘 ‘알려야’ 한다.
‘복간한 도서 마케팅’의 성공 사례
또 다른 예로 절판된 책을 ‘복간’하여 성공한 사례가 있다. 조시 카우프만(Josh Kaufman)의 『퍼스널MBA』(진성북스, 2024),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포레스트북스, 2023)가 복간하여 성공한 책에 해당한다. 하지만 『퍼스널MBA』도 ‘절판’이 성공의 핵심 열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판이라는 희소성, 사연이 장작 역할은 했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은 인플루언서의 추천이었다. 비슷하게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2023)나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보보스』(데이원, 2023)의 재발간을 가능하게 한 것도 한 사람의 영향력이 컸다. 이 책을 추천한 『세이노의 가르침』(데이원, 2023)의 저자 세이노이다.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도 이 사실을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도 복간하면서 여러 홍보 채널과 협업을 통해 책을 효과적으로 알린 게 주효했다. 위 사례를 본다면 기사의 표현대로 바야흐로 지금은 절판을 활용한 마케팅이 유효한 시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왼쪽부터 『퍼스널MBA』,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보보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복간한 책으로 성공한 기억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예스24에서 진행하는 ‘그래제본소 펀딩’의 첫 책이 바로 복간이었다. 그래제본소의 여러 지향 중 하나가 안타깝게 절판된 책을 복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의 수요가 있어야 했고, 독자 수요는 형성된 중고 가격으로 가늠했다. 절판된 책 중에서도 중고가가 높이 형성된 타이틀을 물색했고 그중에서 복간이 가능한 『스코틀랜드 역사 이야기』(월터 스콧(Sir Walter Scott), 현대지성사, 2021)를 진행했다. 한 세트가 4권이었고 181세트 총 8,959,500원 판매로 이어졌다. 애초 설정한 목표액 200만 원을 초과했지만, 그렇다고 초판을 각 권 2천 부씩 찍을 정도의 수요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이 책은 펀딩 이후 일반 판매는 하지 않고 펀딩만으로 판매를 마감했다. 조지프 나이(Joseph S. Nye)의 대표작 『권력의 미래』(세종서적, 2021)도 비슷했다. EBS의 ‘위대한 수업’ 프로그램에서 조지프 나이를 주요하게 다룰 예정이라 서둘러 출판사에 제안해 복간했지만, 펀딩 당시 반응도, 출간 이후 판매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스코틀랜드 역사 이야기』 시리즈, 『권력의 미래』
독자로서 유심히 살펴봤던 유메마쿠라 바쿠(夢枕獏)의 산악 소설의 명작 『신들의 봉우리』(애니북스, 2009)도 기억난다. 이 책 역시 꽤 오랜 기간 절판 상태였고, 중고가가 엄청나게 치솟았던 타이틀로, 산악, 아웃도어 전문 출판사 ‘리리(RiRi)’에서 복간했다. 지금은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다. 나처럼 산악 문학을 사랑하는 소수의 독자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지만 베스트셀러 차트를 장악할 정도의 파급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가 쓴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 2013)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생 때 유교를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의 구판이었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당시 이 책은 품절 상태였고, 그 뒤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 절판이었다. 자연스레 중고가가 치솟았다. 『신들의 봉우리』나 『한국의 유교화 과정』 모두 나에게는 인생 책인데 저자가 수백만의 구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 외에도 권력과 통치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은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Bruce Bueno de Mesquita)의 『독재자의 핸드북』(웅진지식하우스, 2012) 역시 오랫동안 절판이라 중고가도 높게 형성돼 있다. 나 역시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라, 만나는 출판사 분들께 복간 제의를 하면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좌)을 복간한 『한국의 유교화 과정』(우)
“절판된 데는 이유가 있겠죠.”
이처럼 절판 자체가 책 판매에 유리하기보다는, ‘절판’이라는 소재를 ‘누가’, ‘어떤 플랫폼’에서 아름답게 이야기하느냐가 핵심이다. 복간 전 높은 중고 가격과 복간 후 판매량은 별개라는 사실은 이외에도 수없이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절판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시장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는 함의가 있다. 복간을 결정하기로 했다면, 달라진 시장 상황이나 두터운 팬덤 혹은 복간을 원하는 독자 중에 인플루언서가 있다는 식의, 최소한 하나 이상의 기둥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절판이 품는 매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책을 많이 읽는 독자, 책을 사랑하는 독자 중에서 절판된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책이 초판본이면 더 좋고. 그리고 절판된 책을 복간할 때 제작 측면에서의 유리한 점도 있다. 처음부터 저자와 콘텐츠를 새롭게 기획하기보다 이미 한 번 소개된 책을 복간하는 게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일 수는 있다. 인기 저자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맺어둔 계약이 많고, 외국 시장에서 검증을 끝낸 외서는 판권이 비싸다. 알려지지 않은 저자는 마케팅이나 제작 면에서 많은 시간이 투입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한 번 제작된 책을 표지와 제목 등 콘셉트를 바꿔서 새롭게 내는 복간이라는 선택이 유효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복간한 뒤에는 마케팅 측면에서 ‘절판’이라는 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여 최근 절판 마케팅에 관해 출판 마케터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절판’이라는 이야기를 ‘어떤 플랫폼’에서 ‘어떻게 널리 알리느냐’에 따라 화제가 될 수는 있다고 했다. 책 추천을 하는 출처가 외부 인플루언서가 아니라면 출판사 자체 브랜딩을 잘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대부분 절판 마케팅이 자주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자칫 처음부터 ‘인기 없는 상품’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단점이다. 또한 자주 진행하면 독자가 피로도를 빨리 느끼고, 절판하기로 한 책은 정말 말 그대로 절판해야 하니까.
피로도에 관해 좀 더 부언하자면, 그 어떤 마케팅이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도서정가제 이후 출판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알리려고 노력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은품이다. 책과 관련한 굿즈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분야 불문 많은 책이 굿즈를 제작했다. 도서 굿즈를 향한 신선함과 호기심이 식은 지금은 저자 팬덤이 두텁거나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유·아동 학습만화이거나 취미나 실용 쪽 책이 아니라면 굳이 사은품을 제작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유효한 도서 마케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솔직히 답은 모르겠다. 원론적인 말이겠지만 묵묵히 책을 열심히 만들고 꾸준히 알리는 수밖에. 영향력이 떨어졌다곤 해도 굿즈와 결합했을 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책이라면 굿즈를 제작하고, 잘 팔리고 널리 알려진 책이라면, 한정판 리커버로 스토리를 한 번 더 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절판할 책이 생긴다면,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뉴스레터나 소셜미디어를 구축해두고 그 소식을 알리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절판 마케팅은 특성상, 최후의 무기로 쓰는 것이 좋겠다. 손민규 예스24 인문·사회·정치 PD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인문·사회·정치 분야 PD를 담당하고 있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즐겁고, 읽으면 행복하고, 소장하면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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