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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6  20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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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없는 출판]
나의 자가 출판 분투기

 

 

 

차정은(작가)

 

2024. 11+12.


 

내가 책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

 

쓴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감정이 새로운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 소중하게 나의 언어를 엮다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컴퓨터 화면 속에 펼쳐진 나의 글을 손끝으로 만지는 상상을 했다. ‘한 번뿐인 나의 청춘을 아름답게 맺는 것.’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그래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나의 책을 출판하겠다는 목표로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취향은 아주 좁고 커다랗기에 내가 사랑하는 나의 글이 누군가를 거쳐 가는 것이 싫었다. 나의 언어와 함께, 오로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자가 출판을 선택한 계기다. 순간의 추억이 한 권의 책에 담긴다는 것은 너무나 특별한 일이다. 나의 글이 한 권의 책이 된다니, 꿈만 같지 않은가? 자가 출판을 하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즐겁고 소중했다. 나에게 작가라는 것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내 책을 위한 표지를 만들고, 원고를 다듬으며, 작가라는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자가 출판의 시작

 

고등학교에 진학 후 디자인에 푹 빠지며 글 쓰는 것을 잠시 멈췄을 때,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서점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채롭고 예쁜 표지의 책들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언어가 다양하고 새로운 책 세상에 담긴 모습은 멈춰 있던 나의 글쓰기 열정을 다시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그 뒤로 나의 글이 책 위에 예쁘게 나열되는 상상을 했다.

 

“책 내는 법”, “출판하는 법”, “소량 출판” 등 수많은 키워드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애초에 수익을 위한 출판이 아닌 데다가 많은 양의 책을 원했던 것 또한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플랫폼을 찾는 것이 가장 오래 걸렸다. 당시에는 자가 출판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직접 인쇄소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마침내 수많은 사이트를 넘나들며 나에게 맞는 플랫폼 부크크(BOOKK)를 만나게 되었다.

 

부크크 홈페이지 중앙에 커다랗게 적힌 “책을 무료로 출판하고 작가가 되세요!”라는 글이 나의 결실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당시 나는 출판이라는 목표보다는 나의 책을 개인 소장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에 소량 인쇄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자가 출판이지만 결국 출판사의 도움을 받는 만큼, 그 흔적이 외부에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판매를 위한 출판을 결정한 이유는 “그래도 책인데 판매는 해봐야지.”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언어를 읽고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자가 출판 플랫폼 중 해당 플랫폼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유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원고 계약 형식으로 진행되는 곳도 있는데, 인세는 높지만 일정 기간 원고가 묶여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내가 진행한 곳은 원고만 준비되어 있다면 당장이라도 출간을 진행할 수 있는 데다가, 원하면 언제든지 절판 후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거나 직접 인쇄소를 이용하는 등 변경이 가능하다. 소득보다는 나의 언어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다양한 유통사에 입점할 수 있는 곳이 내게는 필요했다.

 

자가 출판의 과정

 

처음 접한 자가 출판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책을 만들고 싶은 나에게 딱 맞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부크크의 출판 형식은 크게 5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책의 컬러와 규격, 재질과 책날개 유무 등을 선택하는 1단계, 원고 등록과 도서 제작 목적 등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2단계, 책 표지를 설정하는 3단계, 도서의 가격을 책정하는 4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단계인 최종 확인 후 도서를 출간할 수 있다. 처음 출간할 때는 원고에 맞춰서 표지를 디자인해야 했지만, 이후에는 표지에 맞춰 원고를 쓰기도 했다.

 

자가 출판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이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표지 디자인, 쪽수 넣기 등 비전문가에게는 난관이 가득할 것 같았다. 그러나 플랫폼에서 개인이 하기엔 번거로운 인쇄, 유통, ISBN 발급 등을 책임져주기 때문에 이 정도는 감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부크크에서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원고 하나뿐, 표지마저도 무료 양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개인이 출판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다고 나의 책이 마냥 쉽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직접 인쇄물을 제작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표지의 규격을 맞추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나는 표지와 내지를 둘 다 직접 디자인하고 싶어 독학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공부했다. 표지는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사용해 디자인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단기간에 활용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외주를 맡기거나 이미지를 구입하기도 한다. 부크크에서 나름 퀄리티 높은 무료 표지가 제공되긴 하지만, 다른 작가들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개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직접 표지를 만들고 싶지만 외주 비용이 부담되는 학생들은 비교적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인 미리캔버스나 무료 애플리케이션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내가 마주한 문제는 내지 디자인이었는데, 인쇄물 디자인에 적합한 인디자인 프로그램은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첫 출간 당시에는 쪽 번호를 넣지 않았다. 출간 후 독자들에게 목차와 쪽 번호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고 본격적으로 인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기를 제대로 다지기 위해 인디자인 자격증(GTQid)을 취득했다. 다행히 기본을 제대로 익히고 나니 작업이 수월해져 막히는 부분만 추가적으로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 공부했다.

 

책 출간을 준비하며 배운 것은 표지와 내지의 재질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독자였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까지 깊고 신중하게 신경 써야 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내 선택으로만 진행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책을 출판하는 모든 과정은 번거롭기보단 커다란 배움과 행복의 연속이었다.

 

『꽃이 피는 시간』, 『토마토 컵라면』

『꽃이 피는 시간』, 『토마토 컵라면』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출간한 시집 『꽃이 피는 시간』(부크크, 2023)은 표지 디자인만 다섯 번 이상 수정했다. 나의 청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표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 가지 표지 디자인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토마토 컵라면』(부크크, 2023)을 준비하면서였다. 중앙부부터 빨간 색채가 퍼지는 이미지가 “이거면 됐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표지를 확정한 뒤에는 즐거움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듯이, 마음에 드는 표지를 보며 하루 종일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나온 나의 책

 

작년에 『토마토 컵라면』을 출간하고, 매일 판매 부수를 확인했다. 비록 판매가 목적이 아니었지만, 판매 부수가 1권이 10권이 되고 10권이 20권이 되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몹시 행복했다. 내 청춘의 한편을 타인과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100부가 팔렸을 때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더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는 설렘과 두려움 등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만의 목소리를 정립할 수 있었다. 특히 출간을 거듭할수록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생겼는데, 이때 독자들만의 시선으로 남겨주는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토마토 컵라면』과 이어지는 『여름에는 상처가 제철』(부크크, 2023)을 출간했고, 꼭꼭 숨겨두었던 『브로콜리 알러지』(부크크, 2024)까지 출간하며 총 4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름에는 상처가 제철』, 『브로콜리 알러지』

『여름에는 상처가 제철』, 『브로콜리 알러지』

 

 

나의 책을 갖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일까? 부크크로부터 『토마토 컵라면』의 오리지널 시리즈 제의가 왔을 때, 사실 큰 흥미는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나의 글이 누군가의 손을 거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출간에 대한 나의 의의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책을 절판하지 않는 리커버 형식으로 협의했다. 『토마토 컵라면』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름날의 추억을 담은 시집이다. 『토마토 컵라면』 리커버 판에 담기 위한 미공개 시를 쓰며, 작년의 나는 무엇을 위해 여름을 찾았는지 곱씹었고, 새로운 나의 여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부크크에서도 애정을 담아주신 덕분에 아주 예쁜 책으로 재탄생했다.

 

의외로 다른 사람과 책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즐거웠다. 부크크에서 리커버와 함께 키링과 같은 굿즈 제작을 제안했는데, 혼자였다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시각을 반영하며 책이 더 풍부하게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 혼자서 마케팅을 하려면 비용 부담이 있었을 텐데, 홍보를 위해 도서의 추가 여유분을 보내주시는 등 지원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토마토 컵라면』 스페셜 에디션

『토마토 컵라면』 스페셜 에디션

 

 

『토마토 컵라면』의 리커버 판의 매출이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 부크크 시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부크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여분의 책을 바라본 순간이 기억난다. 출간을 준비하며 책을 너무 자주 마주한 탓일까? 출간 후 정작 나는 큰 감흥이 없었다. 당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많아서 바쁘게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다 현실적으로 유명세를 직시한 순간은, 잊고 지낸 수많은 지인들의 연락과 나의 책을 읽었다는 메시지들이었다. 바라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어느새 깊고 좁은 내 마음속 한편에 버거움이 피어올랐다.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

 

‘작가’란 무엇인가? 내가 자가 출판 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을 펴낸 것이 아니었기에, 갑작스레 닥쳐온 비현실적인 인기를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스며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기대하지 않은 목표를 초과 달성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의도와는 달라도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열성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은 지울 수 없었다. 불성실한 생각이 겹겹이 쌓였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그대로 유명세를 탔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온몸을 잠식하곤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목표를 모두가 알아버린 상황인 것이다. 점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고, 나의 글에 부족한 부분만을 찾게 되었다. 때로는 등단한 작가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 타인에 의해 무너지는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았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비애, 이를 견디기보다 그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처음 책을 내기로 결심한 순간을 곱씹었다. 초심을 찾기 위해 긴 호흡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나는 나의 가장 서툰 부분부터 온전히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등단한 시인들의 훌륭한 글을 읽던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은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고, 이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과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언어를 믿어주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후회는 멈추기로 했다. 분명 언젠가는 나의 글에 대한 평가와 시선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청춘은 글로, 글은 책으로 담아

 

혼자서 책을 준비하며 많은 순간을 경험했고, 시작하지 않았다면 겪지 못했을 다양한 감정과 영향, 이 모든 것들을 이제는 반갑게 삼켜낼 수 있다. 나의 책을 갖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 하나로 시작했지만, 그 결과가 이제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일부가 되었다. 영원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열기가 식는 순간을 온전히 즐겨볼 준비가 됐다.

 

한 번뿐인 나의 청춘을 시에 담아 쓰고 싶다. 쓰는 것이 즐거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매일 아름답게 빛나는 모든 순간들을 꿈꾸고 바라며 사랑한다. 나의 시는 언제나 서툴고 부끄럽지만, 담백하고 솔직하게 빛나는 것들을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차정은 작가

시집 『꽃이 피는 시간』(부크크, 2023), 『토마토 컵라면』(부크크, 2023), 『여름에는 상처가 제철』(부크크, 2023), 『브로콜리 알러지』(부크크, 2024)을 출간했다. 4권의 시집을 바탕으로 한 시선집 『껍질 방정식』(부크크, 2024)을 출간했으며, 10명의 작가가 함께하는 『피치 낙하 실험』 펀딩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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