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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5  202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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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출판의 의미]
1인 출판사들을 위한 ‘출판연구학교’

 

 

 

조동욱(출판연구학교 교장, 와이겔리·도마뱀출판사 대표)

 

2024. 9+10.


 

미국의 엔지니어 짐 켈러(Jim Keller)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컴퓨터 설계에 관한 인터뷰에서 ‘레시피(Recipe)’와 ‘이해(Understand)’를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많은 사람은 대부분 정해진 ‘레시피’를 따를 뿐 그 속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 때 단순히 정해진 방식, 즉 레시피를 따르는데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며 요리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설계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종에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출판은 어떨까. 아마도 어느 직종보다 본질의 이해를 요구하는 곳이 출판일 것이다.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 정해진 레시피가 있을까? 급변하는 출판 시장에서 선배들로부터 전수되어 온 전형적인 출판 레시피가 아직도 통할 수 있을까? 기존 방식의 출판과 출판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출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새로운 출판 마케팅의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책을 기대하기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인으로서 출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출판 시장을 파악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인 출판에 연대가 필요한 이유

 

‘1인 출판’ 또는 ‘독립출판’이라는 표현은 자칫 ‘규모가 작은 출판사’ 또는 ‘특정 분야’의 책만 펴내거나 ‘특정한 곳’에서만 유통하는 출판사로 비칠 수 있기에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색깔 있는 출판사’, ‘기획이 참신한 출판사’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이 많아지면서 1인 출판과 독립출판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출판계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부터, 출판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 또는 작가를 꿈꾸며 자신의 책을 직접 출판하고 싶거나 그저 책이 좋아서 만들고 싶은 예비 출판인까지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이 ‘1인 출판’이나 ‘독립출판’에 도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출판에 도전하는 이유는 누구나 출판 등록을 할 수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과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 자신의 기획이 많은 독자에게 통하리라는 기대감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판 경력이 있든 없든 대다수 창업자가 출판의 지속성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창업자 대부분은 출판의 모든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데, 특히 ‘어떻게 책을 알릴까’라는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출판연구학교를 찾은 회원들의 가장 큰 고민도 출판 마케팅에 집중되어 있다. 마케팅 방법만 알 수 있다면 자신이 펴낸 책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출판에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기에 기존에 정형화된 출판과 마케팅 방식만으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다양한 시장 변화에 따른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1인 출판의 가장 큰 고충은 출판 과정의 대부분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고충은 출판 노하우의 부재로 연결되며, 결국은 기획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자신만의 틀에 갇혀 있거나 방향을 잃은 출판물은 독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선한 연대’를 한다는 것은 1인 출판의 시선을 넓혀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는 출판물을 기획하고 출간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1인 출판사가 학습을 통해 선배나 동료들이 체험했던 다양한 방법을 습득한 후, 출판의 본질까지 이해한다면 자신이 발행한 출판물에 적합한 최적의 마케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인 출판을 위한 출판연구학교

 

2022년 7월 7일 서교동의 어느 강연장에서 ‘선한 연결’을 강조한 강연회가 있었다. 한기호 출판평론가와 출판연구학교 운영위원이 준비한 자리였고, 출판연구학교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의 자리였다. 200여 명이 모인 강연장에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거나 1인 출판사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에게는 혼자 일을 하지만 함께 나아가는 선한 연대가 필요했다. 그 후 1개월 뒤에 출판연구학교 1기의 모집이 있었고, 나도 1기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출판연구학교의 교육 과정은 도제식으로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참여형 워크숍’으로 운영되었고, 발표할 주제는 회원과 운영위원이 토론하여 함께 정했다. 발표도 참여자 또는 운영위원이 직접 진행했다. 1시간 발표, 1시간 집단 토론의 시간이 총 12주간 이어졌다. 1기 과정을 마친 나는 2기부터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초대 교장인 한기호 출판평론가의 뒤를 이어 3기부터는 2대 교장의 역할로 참여하고 있다.

 

출판연구학교에서 강조하는 ‘참여형 워크숍’은 나와 선후배, 동료가 집단 토론과 연구를 통해 출판과 출판 마케팅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 모두는 연대의 유용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제시한 하나의 주제는 여러 의견으로 돌아오고, 더 좋은 생각으로 귀결된다.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노하우를 나누면서 출판 시장의 흐름과 트렌드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함께 나아갈 힘, 출판 연대의 힘

 

연대 과정에서 정보만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토론하고 연구한 시간으로 인해 믿고 의지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다면 각 선후배들과 회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통의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출판계’ 사람들과 다양한 업무,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1인 출판인의 입장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이점이 있다. 홀로 일하는 외로움과 싸우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흔들릴 때, 함께 고군분투하며 책을 만들어 나가는 동료의 열정을 보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같은 출판계를 이끌어 간다는 연대감도 1인 출판인에게 정신적인 의지가 된다.

 

“이전에는 무작정 앞만 보고 나아갔지만, 이곳에서 얻은 살아있는 정보와 정서적 교류 덕분에 출판사의 철학을 다시금 확립할 수 있었다. 지금도 1인 출판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덜 흔들릴 자신이 생겼다.”

- 출판연구학교 3기, 남우주

 

“지역에서 독립출판을 하는 것은 힘든 점이 많다. 출판연구학교에 참가하여 동료들의 선한 마음과 열정을 느꼈고, 연대하는 힘을 배웠다. 매주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비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출판연구학교 3기, 이슬기

 

출판연구학교 운영위원들(왼쪽부터 김성신(출판평론가), 남우주(우주상자 대표), 김장환(에디터스랩 대표), 이슬기(글이출판 대표), 윤미경(헤이북스 대표), 조동욱(도마뱀출판사 대표), 김현중(작가))

출판연구학교 운영위원들(왼쪽부터 김성신(출판평론가), 남우주(우주상자 대표), 김장환(에디터스랩 대표), 이슬기(글이출판 대표), 윤미경(헤이북스 대표), 조동욱(도마뱀출판사 대표), 김현중(작가))

 

 

출판연구학교 3기 참여자들의 후기처럼 ‘출판사의 철학’을 갖추고 ‘연대하는 힘’은 중요하다. 출판계 종사자라면 어렵다는 출판 시장에서 오랫동안 꿋꿋이 버티며 독서 진흥과 출판 시장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연대’가 바탕에 깔려 있다. 같은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그 어려움과 고충을 알기에 서로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새로움을 탐구하게 하는 연대

 

『왜 책을 만드는가?(Art of McSweeney’s)』

『왜 책을 만드는가?』

 

 

“이 책은 책, 특히 종이책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시점에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다. (…) 예컨대 우리가 출판하는 일반적인 소설은 쓰는 데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편집과 다듬는 과정에 또다시 1년은 소요된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쓰고, 고민하고, 손으로 공을 들인다. 그 모든 과정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 책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손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책을 만드는 데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위의 글은 미국의 비영리 독립출판사가 펴내는 문학 계간지 〈맥스위니스(McSweeney’s)〉를 만든 사람들의 인터뷰를 다룬 『왜 책을 만드는가?(Art of McSweeney’s)』(맥스위니스 편집부, 미메시스, 2010) 서문의 일부이다. “종이책의 암울한 미래”는 위 책이 출판된 2010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그럼에도 많은 출판인은 현재에도 “책을 만드는 데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그 모든 과정에 존경을 표”하고 있다.

 

나는 1인 출판사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종이책의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하고 출판 시장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책의 범람 속에서 살며 꾸준히 출판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내가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계속해서 책을 펴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그것은 종합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꾸준한 학습,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출판인들과 ‘연대’를 시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출판연구학교 1기부터 3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얻게 된 것은 동료들의 경험에서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습득함으로써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된 것과 ‘종합적인 사고’를 갖추게 된 것이다.

 

출판하며 경계해야 할 것은 고착된 사고, 관습에 빠진 사고로 책을 펴내는 것이다. 10년 전 사고에 갇혀 펴낸 책은 출판 시장에서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기획·편집·디자인·마케팅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움은 종합적인 사고에서 나온다. 일련의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독자들과 소통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기획을 하고 원고를 검토하면서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을 머릿속에서 동시에 그려야 한다.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1인 출판사로서 종합적인 사고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조금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새롭고 종합적인 사고를 갖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고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원고에서 출판의 답을 찾기 위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동료에게서 얻은 다양한 무기를 자신의 것과 함께 정리하여 장착한다면 분명히 기획에서부터 자신의 사고는 바뀌어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시너지 효과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문예지, 재단, 연구소 등 여러 단체와 협업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고 최신의 흐름을 파악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해 왔다. 출판연구학교에 참여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출판연구학교를 거친 출판사 대표들은 출판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분들이었다. 여러 도서전이나 북토크 참여에도 적극적이었고, 출판연구학교에서 만난 분들과 다양한 형식으로 협업을 하기도 했다.

 

출판연구학교 1기의 첫날 첫 수업을 기억한다. 각자의 고충을 말하고 서로 경청하는 것과 생각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은 드문 경험이었다. 나도 출판연구학교에서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받은 큰 선물을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선순환이 지속적이고 더 확장된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 기대한다.

 

출판연구학교 수료자들은 스스로 출판과 출판 마케팅의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한 후속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출판을 지속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많은 출판인들이 출판연구학교 또는 이와 비슷한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출판을 지속할 힘을 얻기를 바란다.

 

조동욱

조동욱 출판연구학교 교장, 와이겔리·도마뱀출판사 대표

와이겔리출판사와 도마뱀출판사의 발행인이자 출판 디자이너이다. 출판연구학교 운영위원을 거쳐 3기부터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단행본을 기획, 편집하고, 디자이너로서 단행본을 포함한 미술 도록, 음악 관련 등 예술 분야에서 디자인을 해왔다. 그 외 여러 곳의 문예지와 연구소, 재단 등에서 출판의 전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aurmi@hanmail.net
https://www.instagram.com/domabaem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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