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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5  202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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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출판의 의미]
느슨한 연대, 출판사 업무 조언방

 

 

 

양화대교(출판사 업무 조언방 운영자)

 

2024. 9+10.


 

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출판사 업무 조언(이하 업무 조언방)’을 운영하고 있다. 업무 조언방은 상한 인원인 1,500명이 입장해서 출판사 업무에 관련된 조언을 나눈다. 출판사 구인·구직 글을 나누는 네이버 카페 ‘출판사 업무 조언방(이하 업무 조언방 카페)’과 출판 관련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채팅방 ‘출판 뉴스/정보방’도 운영하고 있다. 편의를 위해 이 셋을 이하 ‘출판사 업무 조언방 시리즈’라고 지칭하겠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출판사 업무 조언’, ‘출판 뉴스/정보방’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출판사 업무 조언’, ‘출판 뉴스/정보방’

 

 

한 달 전 원고 청탁을 받기 전까지는 출판사 업무 조언방 시리즈가 연대의 방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연대’라는 단어는 나에게 보다 단단하고 뜨거운 덩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원고 청탁 제안을 받고 생각해보니 느슨하고 차갑지만, 업무 조언방도 연대의 한 종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업무 조언방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출판사 업무 조언방과 ‘연대’라는 키워드

 

2020년 초에 업무 조언방을 만들었다. 출판사 관계자들이 모이는 어느 행사에 참석한 날이었다. 내 주변에 앉은 출판인들 중에는 출판사 사장과 단둘이서 일하는 신입 직원도 있었고, 사수나 팀 없이 혼자 일한 지 몇 년이 넘은 사람들도 많았다. 외롭게 일하는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거창한 업무 매뉴얼이나 비법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방식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묻고 확인할 상대가 필요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23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833개 출판사 중 종사자 규모가 1~2인인 출판사는 350개, 3~4인은 165개이다.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매뉴얼이 명확하지 않은 출판사 업무의 특성상 업무의 표준과 노하우를 알려줄 선배와 동료를 만나기 어렵다는 한계점도 있다. 대형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변 동료들에게 말하기 애매한 고충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에게는 익명이라는 벽이 필요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아는 것을 알려주는 채팅방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픈채팅방에 업무 조언방을 만들었다. 당시 나는 대형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직무에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기 편했다. 그래서 질문에 직접 답변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잘 모르는 직무에 관한 질문이 있으면 아는 동료에게 물어서 답변을 해주는 방식으로 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업무 조언방의 참여자는 적었다. 지금처럼 오픈채팅방이 카카오 그룹의 역점 사업으로 언급될 정도로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었다. 업무 조언방에 나 혼자 있을 때도 많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말처럼 맨바닥에서 노를 젓던 시기가 약 1년 정도 이어졌다. 몇 번의 변곡점을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 후에는 굳이 내가 답변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좋은 가이드라인이 좋은 질문이 된다

 

업무 조언방에서 질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첫 번째는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의외로 질문자도 자신이 무엇이 궁금한지 모를 때가 많다. 물어보기 전에 질문을 정리하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대가 없이 조언을 나눠주는 조언자의 시간을 아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혹시 할인 판매 진행해보신 분 계신가요?”
“저요.”
“혹시 효과가 어땠나요?”
“어떤 할인 판매에 따라서 다릅니다.”

 

스무고개를 하듯이 대화가 전개되면 무의미한 정보의 나열이 길어진다. 조언자는 필요한 정보를 얻을 때까지 계속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에 금방 지쳐버리거나, 질문하다가 자신의 일을 하러 떠난다. 그래서 하나의 메시지에 나의 상황과 정보를 모두 담아야 한다. 아래 메시지는 최근 업무 조언방에 올라온 질문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할인 판매 관련해서 질문 드립니다. 저희 사장님이 지금 할인 판매를 해서 재고를 소진하도록 지시하신 책이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이러한 업무를 해본 사람이 없어서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정가를 크게 인하해서 판매하는 책들이 있는데(사진 첨부) 이렇게 프로모션을 제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상황을 먼저 전달하는 질문을 보고 어떤 편집자는 정가를 조정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어떤 마케터는 판매 활동과 관련된 경험을 나눠준다. 이러한 대화 중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부분을 맞춰보면서, 답변자들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새롭게 알게 된다. 팀 프로젝트를 하듯이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 여럿이 같이 고민해주기도 한다. 그 해결책이 나오면 질문자는 물론 조언자, 그걸 보고 있던 사람들도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때 드는 흐뭇한 마음이 이 방을 운영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업무 조언방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조언을 해줬던 분과 간단한 비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조언자들이 왜 조언을 나눠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냥 좋아서” 혹은 “내가 잘 몰랐던 시절이 생각나서” 기꺼이 알려준다고 답변했다. 우리가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이유가 뭘까. 인간이 남들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 느끼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가. 어떤 규칙과 피드백이 있어야 밝은 마음을 더 밝게 비춰 북돋을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업무 조언방을 운영하기 위해 고려하는 가장 큰 화두이다.

 

두 번째 가이드라인은 ‘조언을 받으면 감사 인사를 남길 것’이다. 초기 업무 조언방에는 원하는 정보만 얻고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대화가 질문으로 시작하고 감사 인사로 끝난다. 이곳이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이 된 것은 각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라는 점도 있겠지만, 자신이 받은 호의를 돌려주려는 마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업무 조언방의 운영자인지 모르는 동료가 나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 방은 밝은 기운이 있어서 계속 머무르게 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직무에 대한 이해

 

업무 조언방에는 질문 외에도 다른 직무의 동료가 원망스러워진다는 사연이 종종 올라온다. 그러면 해당 직무의 조언자가 그 동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가 많다. 대부분 질문자는 납득하고 현실에 있는 그 동료와 다시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돌아간다. 이 방의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이렇게 옆 사람의 업무와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업무 조언방은 디자인, 마케팅, 편집으로 이루어진 출판사의 주요 직무 종사자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다른 직무 종사자의 대화를 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직무 종사자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고 차분히 그 사람의 입장을 들어볼 수도 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 우리는 함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대화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신뢰가 쌓인 디자이너, 마케터, 편집자가 서로 즐겁게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가까워지기 위해 상대의 입장이 궁금한데, 그렇다고 얼굴을 맞대고 하기에는 민망하거나 쑥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다면 업무 조언방에서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같은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 정도의 감각을 넘어 ‘동료’라는 의식을 가지게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모이면 가장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

 

업무 조언방 운영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지금은 출판사 업무 조언방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업무 조언방 카페는 2022년에 개설했다. 오픈채팅방 특성상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친목 도모가 어렵기 때문에 카페에서 보다 자유롭게 교류하고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4년 7월 기준으로 업무 조언방 카페 회원 수는 1,170명이다. 주로 구인·구직 모집과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 구성원은 출판사 구성원의 성별과 연령 구조와 비슷하다. 구인·구직 게시글을 올려주는 출판사와 프리랜서들이 있고, 독서모임은 꾸준히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문발로폭주기관차’ 님의 독서모임은 거의 대부분 참여자가 재참여를 희망할 정도로 높은 만족도를 유지하며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카페 ‘출판사 업무 조언방’

네이버 카페 ‘출판사 업무 조언방’

 

 

다음은 오픈채팅방 출판 뉴스/정보방이다. 업무 조언방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조언이 이어지고 감사 인사로 매듭지어지는 대화의 흐름이라면, 이 방은 다수가 최대한의 정보를 뿜어내서 자연스럽게 여러 정보에 노출되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업무 조언방과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토픽을 먼저 던질 수 있어서 대화의 양상이 다양하다.

 

이전에 노션(Notion) 페이지를 운영한 적이 있다. 노션을 다룰 때는 2030세대가 많이 참여했는데, 연령층이 높아지면서 사용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1년 조금 넘게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 이렇게 만나는 곳을 바꾸면 대화의 양상과 참여자의 특성이 달라진다. 그중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모이면 가장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를 찾기 위한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실적으로 출판업계 연대는 몹시 힘든 과제이다. 산업이 작아서 연대해서 얻을 수 있는 결실이 작고, 노동자는 통상 2년에 한 번씩 이직하며, 일정 경력을 쌓으면 프리랜서로 전향한다. 오래 버틴 사람들은 관리자 업무를 수행하며 다수 근로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거나 1인 출판사를 차린다. 이렇게 파편화된 구조 안에서 업무 조언방은 출판인에게 아주 작은 편리와 보람을 제공하고 밝은 마음을 모으며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려 한다. 외롭게 일하고 있거나, 무언가를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업무 조언방에 찾아와주시기를 바란다.

 

양화대교 출판사 업무 조언방 운영자

2020년부터 익명으로 오픈채팅방 ‘출판사 업무 조언’을 개설하고 운영 중이다. 네이버 카페 ‘출판사 업무 조언방’과 오픈채팅방 ‘출판 뉴스/정보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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