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텍스트힙(Text-Hip)에 빠진 Z세대]
신재우(〈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2024. 7+8.
문화 이벤트로 자리 잡은 출판 팝업스토어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자신이 사망하고 100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을 위한 일일 카페가 열릴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카프카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상상치 못할 이 일은 실제 지난 6월 1일 ‘기일 카페’라는 형태로 독자들을 만났다.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에서는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인기인 생일 카페 콘셉트를 모방한 기일 카페 ‘MUSEUM KAFKA’가 사흘간 진행됐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기획한 이 팝업스토어는 글 못지않게 그림에서도 재능을 보였던 카프카의 면모를 보여주듯 드로잉 전시부터 주요 저작 소개 코너, 카프카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까지 다채로운 구성으로 공간을 꾸몄다. 이번 기획을 담당한 김혜원 문학동네 마케터는 “올해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출판계에서 기획전이나 북펀딩, 강연 등 여러 기획이 진행됐으나 다른 의미에서 독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고 재밌는 이벤트를 마련하고자 이번 카페 팝업스토어를 준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프란츠 카프카를 위한 카페 ‘MUSEUM KAFKA’(출처: 문학동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팝업스토어가 단순히 콘셉트가 참신하다거나 출판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는 것을 넘어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카프카 카페는 최근 출판계의 팝업스토어 흥행을 증명하듯 총 3일간 6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방문했고 드로잉 엽서와 컵홀더 등 팝업스토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굿즈’는 오픈 2일 차 만에 동났다. 실제로 방문한 현장에서는 카프카 포토카드를 들고 인증샷을 찍는 이들부터 카프카 스티커가 붙은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문객까지 다양한 이들이 이벤트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된 팝업스토어
소설 『변신』(문학동네, 2011)을 통해 소개되던 카프카는 어떻게 ‘기일 카페’라는 새로운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왔을까? 출판계에서 팝업스토어가 시도된 것은 패션, 식품업계와 마찬가지로 2010년대부터다. 2010년 현대카드에서 진행한 세계적인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센(TASCHEN) 팝업스토어는 출판 분야에서 팝업스토어가 언론 보도된 첫 사례다. 다만 예전에는 당시 국내에 수입되지 못한 미술, 사진, 디자인 등 예술 분야 도서 등을 선보이는 전시 형태에 가까웠다면, 현재 출판계에서 팝업스토어는 효과가 입증된 하나의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며 단순 이벤트가 아닌 유효한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지난해 9월 문학동네는 화제작이었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2023) 출간을 홍보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이라는 기념 팝업스토어를 선택했다. 이후 지난 4월 출판사 창비 또한 창비시선집 500호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안희연, 2024) 출간을 맞아 팝업스토어 ‘시크닉’을 열고 최지인, 최백규 등 시인들이 직접 ‘일일 점원’으로 참여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문학동네의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 창비의 ‘시크닉’(출처: 문학동네, 창비)
최근 출판계는 마포와 홍대를 넘어 ‘팝업스토어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여의도 더현대백화점에도 진출했다. 출판 플랫폼 밀리의서재는 지난 5월 김혜정 작가의 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오리지널스, 2024)의 종이책 출간을 맞아 소설 속 공간인 ‘동잠 문방구’를 콘셉트로 한 매장을 열고 독자들을 만났다. 결과는 한쪽 벽면에 방문객이 참여할 수 있는 코너에 200여 개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찼고 그간 만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도 소설을 소개했던 기회였다.
밀리의서재의 ‘동잠 문방구’
책 판매가 아닌 ‘경험’에 집중
출판계 팝업스토어의 타깃층은 당연하게도 2030세대다. 서점과는 다른 공간과 경험을 통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출판계 팝업스토어는 매주 새로운 공간을 찾아 헤매는 젊은 고객들의 관심을 끈다.
2018년 서울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의 시대를 연 마케팅 전문가인 최원석 프로젝트 렌트(Project Rent) 대표는 최근 자신의 저서 『결국, 오프라인』(디자인하우스, 2024)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팝업스토어는 고객에게 상품을 팔기 위해 설계되지 않는다.”고. 직접 기획, 운영한 팝업스토어만 300여 개에 달하는 그는 “(팝업스토어) 공간은 방문자의 경험을 위해 설계된다.”며 그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다. 실제로 출판계 팝업스토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능한다. 공간을 기획하는 주요 출판사 마케터들이 일관되게 ‘경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책에 국한시키지 않고 ‘문화’로 인식하며 그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젊은 독자층에 이런 팝업스토어는 수요와 맞는 이벤트다.
이정원 창비 채널마케팅팀장은 자사의 동화 베스트셀러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홍민정, 2020)의 판매를 위해 가족 방문객이 많은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서 3차 팝업스토어를 열고 “가족 단위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곳으로 팝업스토어 위치를 선정한다.”면서 “앞서 진행했던 1·2차 팝업스토어 또한 가족 동반 고객이 많은 현대백화점과 디큐브시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장소뿐만 아니라 공간의 특징 또한 고객이 최대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출판계 팝업스토어는 패션, 식품업계의 팝업스토어가 자사의 주요 제품이나 신제품을 새로운 고객에게 드러내려는 것과 달리 핵심이 되는 책이 연상되는 인테리어와 함께 연관 굿즈로 공간이 구성된다. 밀리의서재의 소설 속 장소를 가져와 ‘동잠 문방구’ 공간을 꾸린 것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과 관련해 현실과 비현실이란 공간을 나누고, 책과 관련된 키워드를 활용한 이벤트로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소개한 방식도 마찬가지다. 창비의 ‘시크닉’도 시에 어울리는 향과 음악을 추천하고 방문객이 직접 시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오감을 통해 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카프카 팝업스토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간과 함께 화제에 오르는 건 ‘굿즈’다. 온라인 서점이 발달하면서 출판사들의 굿즈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었지만, 최근 팝업스토어 트렌드와 발맞춰 굿즈 발매는 유독 활발해지고 있다. 책갈피, 북커버 등 책과 연관된 상품뿐만 아니라 키링, 파우치 등 책을 기반으로 창출된 새로운 굿즈들이 출판사 마케팅팀의 열띤 회의 끝에 탄생한다. 카프카 팝업스토어에서 나눠준 카프카의 젊은 시절 사진이 담긴 포토카드와 창비의 ‘시크닉’ 팝업스토어에서의 일회용 카메라나 에코백 등 팝업스토어 한정으로 제작된 굿즈들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런 팝업스토어와 굿즈의 조합은 한정된 공간과 기간 내에 이뤄지기 때문에 희소성을 즐기는 Z세대의 특성에 맞는 홍보 방법이 될 수 있다.
‘시크닉’ 팝업스토어 굿즈들(출처: 창비)
Z세대가 책과 친해지도록
굿즈와 공간을 기반으로 한 경험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바로 ‘신규 독자 유입’이다. 이전의 출판사 마케팅이 기존 독자에 집중했다면 오프라인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는 서점가와 거리가 먼 잠재 고객층에게 책을 소개할 몇 없는 기회다. 점점 책과 멀어지는 성인들, 특히 Z세대들에게 책과 관련한 ‘경험’을 통해 독자로 유입시키는 수단을 찾은 것이다.
김수인 문학동네 마케터는 이에 대해 “2030세대에게 책을 판매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팝업스토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팝업스토어가 즐비한 곳에 설치하면 여러 곳을 구경하던 중 방문할 수 있고 기존에 만나왔던 독자와는 정말 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더현대백화점에서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팝업스토어를 한참 구경하고 나온 박 모(28) 씨는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책은 알지 못했지만 지나가던 중 예쁜 가게를 발견해 구경하게 됐다.”며 “전혀 모르던 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카프카 팝업스토어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카프카 포토카드를 찍고 있던 이 모(26)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프카 카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평소 카프카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런 오프라인 공간이 생겨 신선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높은 임차료를 감수하고도 출판사들이 팝업스토어를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팝업스토어는 앞서 최 대표의 설명대로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한 마케팅이 아니다. 굿즈 생산부터 임차료까지 고려하면 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팝업스토어를 진행한 출판사들은 대부분 행사를 통해 수익을 거의 남기지 못했지만, 기존에 닿을 수 없었던 소비자층과 접점을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출판계의 눈이 팝업스토어로 향하는 이유는 서점과 SNS 등 기존 채널을 통한 홍보가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요 온라인 서점은 이미 대부분의 출판사가 홍보에 참여한 만큼 과포화된 상태이고 SNS 등 온라인을 통한 이벤트는 출판사에 이미 친숙한 독자에게만 효과적인 방식이다. “출판사에서 공을 들인 주요 출간작의 경우에는 팝업스토어와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당연히 고려하게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팝업스토어는 그 홍보 효과만큼은 입증돼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은 소형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더욱 생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주일에 1억~2억 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소형 출판사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고 굿즈를 제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도 소수다. 소형 출판사들은 팝업스토어라는 더 높은 경제력을 요구하는 마케팅 방식의 등장에 기존의 온라인 마케팅에 있어서도 다시 차별화된 방식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팝업스토어, 독서문화 행사로서 기대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종합독서율은 역대 최저인 43%를 기록했다.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6명에 달할 정도로 책은 어느새 많은 이들과 접점을 잃었다. 독서율 최저가 연일 갱신되는 현실에 문체부가 내세운 목표는 ‘비독자의 독자 전환’이다. 독서실태조사와 함께 발표한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24∼2028)〉에 따르면 문체부는 기존 독자가 아닌 57%의 비독자가 독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총 12개의 정책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교통 정기권 구매와 연계한 독서 캠페인, 기업과 도서관 연결 프로그램, 기존 독자들을 위한 독서문화 행사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체부가 비독자의 독자 전환을 위해 캠페인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업계에서 이에 발맞춘 행보가 바로 ‘팝업스토어’일 것이다. 필자는 카프카 카페에 앉아 카페에 방문한 이들을 꽤 오래 관찰했다. 이곳엔 카프카 팬을 자처하는 애독자부터 친구를 따라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 우연히 길을 지나다 카페에 방문한 이들까지 수많은 독자와 비독자들이 공존했다. 그리고 한참을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전 매장 한쪽에 진열된 카프카의 소설들에 손을 뻗었다. 이들이 소설을 손에 쥔 바로 그 순간, 한 명의 비독자는 독자가 되었다.
신재우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일보〉에서 출판·문학을 담당 중이며, 매주 금요일에 ‘북리뷰’를 쓴다. 독서율 43%의 시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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