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4 2024. 7+8.
[텍스트힙(Text-Hip)에 빠진 Z세대]
표정훈(출판평론가・작가)
2024. 7+8.
다양한 세대 담론, 그 허실
어느 시기에나 이른바 세대론 또는 세대 담론이라는 것이 있곤 하였다. 예컨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4.19세대’, ‘386세대’, ‘86세대’ 등이 자주 거론되었거나 지금도 언급되고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 ‘한글세대’라는 것도 있었다. 해방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글을 배운 세대를 일컫는다. ‘X세대’라는 말도 유행하였다.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로 주로 197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다. 그 전 세대가 집단을 중시했다면 ‘X세대’는 개인과 개성을 중시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1990년대 들어와 풍성하고 다양해진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였다.
최근에는 ‘Z세대’가 자주 거론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사람들의 세대로 정의하기도 하고, 199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세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Z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 기기와 SNS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 전 세대가 인터넷 홈페이지‧블로그 세대라면 ‘Z세대’는 사실상 유튜브 세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전 세대가 텍스트 자료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면 ‘Z세대’는 동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하다.
‘MZ세대’라는 말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대략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M세대)’와 1995~2004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만 18~42세를 포괄하기에 세대 안에서 스무 살 넘는 차이가 난다. M세대와 Z세대를 하나로 묶어버린 ‘MZ세대’라는 세대 개념이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M세대는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에 성장한 세대인 반면, Z세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라난 세대다. 이러한 Z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 일컫기도 한다. 개인용 컴퓨터,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을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성장한 이들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세대론 또는 세대 담론은 특정 시기에 태어난 인구 집단의 사회‧문화‧정치적 특성이나 생활양식 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 특성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거나 일반화시킬 수 있으며 일종의 견강부회(牽强附會), 즉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이야기로 흐를 수도 있다. 우리가 세대 담론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유명인의 독서가 주목받는 일
유명인이란 명성이 있는 사람, 찬양받는 사람이다. 영어 단어 Celebrate(셀러브레이트)는 라틴어의 ‘찬양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오래 지낸 대니얼 조셉 부어스틴(Daniel Joseph Boorstin)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명인이란 유명하다는 것이 유명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유명인이란 일단 뉴스에 의해 만들어지고 나면 그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이름이 된다. 그 이름만으로 주목을 끌고 관심을 집중시키며 이윤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명인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알려지거나, 유명인이 책을 읽는 장면이 사진 또는 영상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 그 책 역시 주목받고 유명해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더욱 잦아지고 있다. 이효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안리타의 에세이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홀로씨의테이블, 2021)가 주목받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읽은 책으로 입소문을 탄 『요절: 왜 죽음은 그들을 유혹했을까』(조용훈, 효형출판, 2002)는 첫 출간 이후 20년 만에 재출간되며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요절: 왜 죽음은 그들을 유혹했을까』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에 대한 새삼스러운 대중적 주목에도 유명인들의 추천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역행자』(웅진지식하우스, 2022)의 저자이자 인기 유튜버 자청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유노북스, 2023)를 추천했고 배우 하석진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왔으며 방송인 전현무도 쇼펜하우어를 거론했다. 이 책뿐만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글을 정리, 선별하여 묶은 다른 책들도 연달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유명인들의 추천과 거론 외에 쇼펜하우어에 대한 관심 증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요인을 찾기 어렵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BREASTS AND EGGS』, 『All about Love』
르세라핌의 허윤진은 방송 준비 중에 책을 읽는 모습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며 화제가 되었다.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도 하는 모습까지 나오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르세라핌 허윤진 독서 목록’이라는 것이 온라인 매체나 블로그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가와카미 미에코(岡本三枝子, Kawakami Mieko)의 『BREASTS AND EGGS』(Paperback, 2021), 벨 훅스(Bell Hooks)의 『All about Love』(책읽는수요일, 2012) 등 영어책을 주로 읽는 것으로 소개되었다.
가수이자 배우 설현은 책을 읽으며 감명받은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책 내용을 필사하는 습관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역시 화제가 되었다. 설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누워서 팔 아프지 않게 책 읽는 방법 좀”이라는 글과 함께 침대에 엎드려 누워 책 읽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비교적 최근의 이런 사례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이나 SNS를 통해 빠르고 폭넓게 알려진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긴 하지만, 유명인의 독서가 화제가 되는 일은 예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예컨대 2017년, 2018년을 돌이켜보면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 판매량에 영향을 미쳤고 방탄소년단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민음사, 2000), 어슐러 K. 르 귄(Ursula Kroeber Le Guin)의 『바람의 열두 방향』(시공사, 2014) 판매량을 증가시켰으며 엑소의 세훈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난다, 2017), 아이유는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Dazai Osamu)의 『인간실격』(민음사, 2012) 등의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
‘책은 읽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보는 것’
국가 원수의 독서가 매체에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는 일은 1961년 미국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2017년 6월 29일 공개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의 공식 프로필 사진에는 펼쳐진 책 한 권과 펼쳐지지 않은 책 두 권, 이렇게 책 세 권이 등장한다. 펼쳐진 책은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의 회고록, 나머지 두 권은 스탕달(Stendhal)의 소설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앙드레 지드(Andre Gide)의 사상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양식(Les nourritures terrestres)』이다. 드골 회고록을 펼쳐놓은 것은 “프랑스의 힘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 더 강한 프랑스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마크롱의 취임사와 일맥상통하는 정치적 메시지이며, 문학 작품 두 권은 문학 애호가로 알려진 마크롱의 문학적 뿌리를 나타낸다.
샤롤 드골의 회고록 『Mémoires de guerre et mémoires d'espoir』(Plon, 2016)
이렇게 국가 원수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사실상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할 점이 생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예컨대 어떤 사람이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를 탐독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야 하겠지만, 다만 ‘공자와 『논어』의 이미지’가 그 사람과 연관되는 효과를 낳는다.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보는 것’, ‘책이라는 사물을 보는 것’, ‘책이라는 사물이 놓인 공간이나 상황을 보는 것’은 다르다. 개성 넘치는 독립 서점들이 적지 않다. 그런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몇 분과 얘기 나눈 적 있다. 공통된 말이 있었다. 서점에 들어와 책은 사지 않고 SNS에 올릴 사진만 촬영하고 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 서점을 사진에 담아 올릴 장소, 책이라는 오브제가 공간 분위기를 개성 있게 연출하는 장소로만 인식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는 것. 서점은 책을 팔고 사는 매장이지 인테리어 연출 공간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여하튼 서점 홍보 효과는 있을 것 같아 촬영을 삼가 달라거나 요청하지는 않는다는 것.
사물로서의 책, 물건으로서의 책이 오브제, 장식제가 되는 일은 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1970년대에 호화로운 장정(裝幀)의 전집물들이 제법 유행했다. 적지 않은 도시 중산층 가구 거실에는 장식장 성격의 서가가 놓여 있고 그 서가에는 전집물들이 정연하게 꽂혀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 그런 거실 장면이 많다. 그런 집 거주자들은 과연 그 전집물을 실제로 읽었을까? 상당수 가구에서 그런 전집물들은 장식용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 다음부터 문화적 과시 욕구를 충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충족 수단의 하나가 전집물이었던 것.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은 엄연한 사물이기 때문에 장식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꼭 나쁜 일이 아니다. 어떤 공간에 문화적, 지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 공간을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도 있을 터이니 이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 다만 그것은 책 내용이나 의미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어디까지나 책의 연출된 사물적 기능이라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적 허영심에서 비롯되었든 그야말로 장식품으로 책을 택하였든, 과시적 책 소비자들이 없다면 출판 산업은 유지되기 힘들다.
출판이라는 ‘일의 가치’, 독서라는 ‘행위의 가치’
이제 세대 담론과 유명인의 독서를 함께 고려해보자. 최근 유명인 독서가 주목받는 사례들은 이른바 ‘Z세대’나 ‘MZ세대’의 특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왜냐면 그 전부터 유명인 독서는 늘 주목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에 대한 대니얼 부어스틴의 말을 유명인의 독서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한다. “유명인이 읽는 책은 유명인이 읽는다는 것이 유명한 책이다.”
미국의 미디어 전문가이자 작가 닐 개블러(Neal Gabler)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유명인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혹은 아무 일도 하지 않든지 간에 대중의 주의를 사로잡고 유지하는 일을 하는 집단의 일원이다. 스타의 존재, 즉 이들이 우리 세계를 아름답게 해준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이것이 언론들이 파티에서, 혹은 음식점에 앉아 있거나 자선행사에 참석하거나 시사회장에 도착하거나 하는 유명인들에 관한 기사를 싣는 이유다.”
유명인이 어떤 책을 거론하거나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알려지고 관련 장면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확산되는 것은, 해당 책의 판매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일지 모른다. 어떻든 책과 독서가 화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출판업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 어쩌면 좋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책이 화제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책과 비슷한 책들이 덩달아 주목받는 곁불 쬐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른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는가 말이다.
책을 쌓아 조형물을 만들거나 거대한 장식용(!) 도서관을 조성하여 인기 명소로 띄운다거나 하는 일들도 힐난할 일은 아니다. 책을 그렇게 사용한다고 해서 책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의미가 퇴색되는 것도 아니다. 책은 엄연한 물건,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백안시하는 이가 있다면 철 지난 ‘책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셈이다. 책은 존엄하지 않다. 책을 읽을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기꺼이 행사하여 책을 읽는 사람이 존엄할 뿐.
다만 이 점만은 지적해 볼 수 있다.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고 알리고 독자들과 만나는 모든 과정, 요컨대 출판이라는 ‘일의 가치’와 책을 읽는 독서라는 ‘행위의 가치’가 자칫 축소되고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것. 책과 독서가 지닌 어떤 본원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출판과 독서의 변함없는 토대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 이른바 과시적 독서 유행 추세가 그러한 확신과 토대를 흔들지는 못하리라는 것.
표정훈 출판평론가・작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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