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3 2024. 5+6.
[독서를 도와주는 디지털 도구]
이병찬(〈테크플러스〉 콘텐츠 에디터)
2024. 5+6.
예전과 다른 독서 모습
요즘 출퇴근 지하철 모습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옆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신문을 볼 땐 절반으로 접어 주세요.’라는 내용의 공익 광고를 본 게 엊그제만 같은데, 이제 스마트폰이 아닌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뉴스, 게임, TV 시청까지 이제 손바닥만 한 모니터 안에서 모든 것이 다 되는 시대다.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 화면
독서의 흐름도 비슷하다. 가끔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전자책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얇고 가벼운 ‘이북 리더기(eBook reader)’는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진 출판물 ‘전자책(eBook)’을 수백수천 권 저장할 수 있어 다양한 책을 읽는 사람에겐 이만큼 좋은 제품이 없다. 종이책을 하나하나 가방에 집어넣을 필요 없이 이북 리더기만 챙기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 매일 조금씩 읽던 소설을 읽다 새로 나온 잡지도 한 번 넘겨본다. 간간이 서점 앱을 실행하고 신간 만화가 나왔는지도 확인한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지 않고 새 책을 바로 탐독할 수도 있다. 종이책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북 리더기의 선택 기준
전자책을 처음 접했을 때, 스마트폰에 전자책 뷰어 앱(Viewer App)부터 설치했다. 이북 리더기를 사지 않은 이유는 명백했다. 스마트폰으로도 전자책을 구매하고 볼 수 있는 앱이 다양하게 출시된 상황에 굳이 이북 리더기가 필요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책을 몇 권 읽어보니 생각보다 집중하기 어렵다는 게 느껴졌다. 온갖 앱이 시시때때로 알림을 띄워 방해하는 건 기본이고, 화면비가 세로로 길다 보니 화면 상·하단에 검은 레터박스(Letterbox)가 생겨 몰입도가 떨어졌다. 작은 화면에 작은 글자로 눈의 피로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북 리더기를 한 대 장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제품이 좋을지 둘러보는데 화면 크기와 비율, 디스플레이 종류, 운영체제, 지원 애플리케이션, 가격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제품마다 특징이 천차만별이니 아무 제품이나 덜컥 살 수도 없었다. 사용 목적에 적합한 이북 리더기를 고르기 위한 기준부터 정리했다. 최근 출시한 제품은 대부분 ‘화면’과 관련된 사양이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면 크기, 화면비, 디스플레이 종류에 따라 용도가 나뉘기 때문이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디바이스
‘화면 크기’는 사용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이북 리더기는 대체로 5~8인치대와 10인치대 제품으로 나뉘는데, 크레마 ‘모티프’, 리디북스 ‘리디페이퍼 4’ 같은 8인치 이하 제품은 비교적 작고 가벼워 대중교통에서 들고 보기 편하다. 교보문고 ‘샘 10 플러스’, 이노스페이스원 ‘마스10’ 등 10인치대 이북 리더기는 실물 잡지를 보듯 널찍한 화면을 즐길 수 있는 대신 휴대성이 다소 떨어진다. 대중교통보다는 집이나 카페에서 이용하는 데 적합하다.
화면의 가로세로 비율을 나타내는 ‘화면비’를 살펴보자면, 대부분 전자책 비율에 가까운 4:3 화면비가 적용됐다. 전자책 내용이 화면을 꽉 채워 보기 좋다. 그런데 간혹 스마트폰처럼 세로로 훨씬 긴 비율을 채택한 이북 리더기도 있다. 화면 크기가 5~6인치대인 제품에서 주로 보이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오닉스의 북스 팔마가 있다. 가로 폭이 좁아 잡는 법이 스마트폰과 비슷해 한 손으로 쥐고 보기 편해서 전자책 입문자가 쉽게 익숙해질 만하다.
흑백 디스플레이가 켜진 이북 리더기
‘디스플레이 종류’는 비교적 선택의 폭이 좁다. 크레마, 오닉스, 리디북스, 교보문고 등 국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이북 리더기 브랜드 제품에는 흑백 전자잉크(e-ink) 패널이 탑재됐다. 전기 신호로 흑과 백을 표현하는 미세 캡슐이 빼곡하게 들어찬 디스플레이다. LCD(Liquid Crystal Display)와 다르게 백라이트(Back Light)가 없어 어두운 곳에서 보기 어렵지만 눈에 부담이 적어 오래 보기 좋다. 장시간 독서에 최적화된 디스플레이다. 또한 전력 소모가 거의 없다는 장점도 있다.
이북 리더기 선택 시, 고려할 사항
이북 리더기를 사용하다 보면 흑백 전자잉크 패널이 썩 좋진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진과 일러스트는 물론이고, 색깔로 구분한 도식이 들어간 책을 읽을 때 꽤 불편하다. 참고서 중에는 중요한 내용을 다른 색으로 표시하거나 형광색 배경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흑백 전자잉크 패널은 이 부분을 잘 강조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몇몇 제조사는 컬러 전자잉크 패널을 탑재한 이북 리더기를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오닉스가 컬러 전자잉크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북스 리프 3C(BOOX Leaf 3C), 북스 탭 울트라 C 프로(BOOX Tab Ultra C Pro), 북스 탭 미니 C(BOOX Tab Mini C) 등 모델명에 알파벳 C가 들어간 제품이 대부분 컬러 전자잉크 패널을 탑재한 이북 리더기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국내에 정식 출시하지 않았다. 해외 직구를 하더라도 가격이 흑백 이북 리더기보다 몇 배나 비싸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
전자잉크 패널의 화면 반응 속도는 스마트폰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화면이 느리게 전환된 뒤에도 직전에 표시했던 내용이 잠시간 잔상처럼 남는다. 이북 리더기로 동영상이나 움짤(GIF)이라도 재생하면 화면이 온통 잔상으로 뒤덮인다. 서점 앱을 실행하면 간혹 신간을 홍보하는 영상 배너가 메인 화면에 뜨는데, 이북 리더기는 잔상이 심해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텍스트가 가득한 ‘책’을 위해 최적화된 것이다.
잔상이 남은 흑백 이북 리더기 화면
다행히 화면 말고는 크게 신경 쓸 만한 요소가 없다. 초기 이북 리더기는 자체 운영체제(OS)를 사용하거나 전용 앱만 지원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예를 들어 리디페이퍼 초기 제품은 타사 서점 앱을 지원하지 않아 리디북스를 통해 구입한 전자책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제품에선 이런 단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드로이드 기반 운영체제가 탑재돼 호환성 문제가 대부분 해결됐으며, 서드파티(Third Party) 뷰어 앱과 여러 서점 앱, 오디오북 앱까지 설치할 수 있다.
전자책 디바이스 활용법
다시 정리해 보면, 전자책을 읽을 수단은 크게 스마트폰(또는 태블릿 PC)과 이북 리더기로 나뉜다. 충전해야 할 전자제품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거나, 잡지·만화·일러스트가 포함된 책처럼 다채로운 색이 들어간 전자책을 주로 읽는다면 이북 리더기 대신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 PC를 활용하자.
하지만 스마트폰은 독서 도중 전화나 메시지를 비롯한 온갖 알림에 방해받기 쉽다. 책을 읽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다른 앱이나 인터넷 화면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려면 ‘방해 금지 모드’를 설정하거나 네트워크 연결을 모두 끊는 게 좋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독서를 오래 하긴 어렵다. 항시 빛을 발하는 스마트폰 화면이 눈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장시간 독서에 집중하려면 눈이 편안한 전자잉크 패널이 탑재된 이북 리더기가 낫다.
혹자는 전자잉크 특유의 느린 반응 속도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이북 리더기에는 화면 새로고침 빈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탑재됐다. 잔상은 오래 남지만 품질이 높은 모드, 해상도가 약간 떨어져 보이지만 잔상이 매우 빠르게 없어지는 모드를 전환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새로고침 빈도를 조절하는 설정 창 이미지
시중에는 이토록 다양한 이북 리더기가 판매되고 있다. 어떤 제품을 사는 게 ‘정답’이라고는 선뜻 말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장소, 습관, 예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렵게 고른 이북 리더기가 자신의 독서 습관에 잘 맞는다면 그만큼 합리적인 소비도 없을 테다. 아무쪼록 현명하게 제품을 선택해 더 스마트하고 윤택한 독서 생활을 즐기길 바란다.
이병찬 〈테크플러스〉 콘텐츠 에디터 테크놀로지(Technology) 콘텐츠를 전하는 네이버 플랫폼 〈테크플러스〉의 콘텐츠 에디터다. 최신 IT 소식과 알아두면 좋은 지식을 글과 영상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카페, 음악,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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