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1 2024. 01-02.
[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출판계 변화 제언]
윤세민(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고문)
2024.01-02.
출판은 문화산업의 핵심이자 원천
출판은 문화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이다. 정보·지식·문화·세계화 등이 핵심적인 개념으로 강조되는 21세기에 출판은 한 나라의 문화가 총체적으로 체화된 문화상품인 출판물을 생산하기에 그러하다. 더욱이 출판은 ‘창의력’을 생산해내는 원재료라는 면에서 문화산업에서 기간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모든 문화산업은 창의력을 모태로 이루어지지만, 그 자체로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특히 단순히 시각과 청각 위주의 환경에서 창의력은 자생력을 상실한다. 하지만 ‘문자’를 바탕으로 한 출판은 창의력을 배양하는 데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개발해 낸 방법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분야이다. 왜냐하면, ‘문자’ 및 ‘독서’는 인간에게 추론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상징적 사고, 즉 사고와 상상의 기회를 부여하며 보다 나은 감성과 창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지식정보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출판산업은 생산자의 전문성과 창의성에 의해 경쟁력이 결정되는 지식창조산업이며, 창의력을 배양하는 독서 매체를 제공하는 매체산업이며, 지식집약형 문화산업으로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정보콘텐츠산업이다. 사실 출판의 본질은 콘텐츠이며, 출판콘텐츠는 모든 매체와 산업을 팽창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출판물이 소유하고 있는 방대한 양의 콘텐츠들은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검증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웹툰, 웹소설, POD(Publish On Demand), 인터랙티브(Interactive) 출판물 등의 출판 매체는 그러한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며, 출판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캐릭터, 음반, 공연,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에 맞게 재가공되고 있다.
이처럼 출판산업에서 생산된 출판물을 통해 문화산업의 각종 파생상품이 개발되고 한층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볼 때, 출판이 문화산업의 원천 콘텐츠요 리드 콘텐츠로서 지식정보산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문화콘텐츠의 다중 유통 방식 및 트랜스와 크로스로 대표되는 융합 미디어 환경 속에서, 출판산업과 출판콘텐츠는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고 하겠다(윤세민, “출판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의 동반발전을 위한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통권 제63호(2012), 83~91쪽 참조).
문화산업 통계 속 출판산업 위상
한국의 문화산업을 주관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3월 16일에 〈2021 기준 콘텐츠 산업조사〉를 발표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조사 통계에서 문화산업을 ʻ콘텐츠산업ʼ으로 명명하고 있으며, 만화산업은 출판산업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분류하고 있다. 아울러 출판산업에는 출판업(신문, 잡지 발행업 포함), 인쇄업, 출판 도소매업, 온라인 출판 유통업, 출판 임대업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조사 보고서에 나온 2021년 기준의 한국의 문화산업(콘텐츠산업) 전반 및 출판산업 통계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2021년 콘텐츠산업 사업체 수는 10만 8628개로 전년 대비 9.1% 증가했으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0.7% 증가했다. 이 중에서 출판산업 사업체 수가 3만 4011개로 전체 콘텐츠산업 사업체 수의 31.3%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는 전년 대비 34.7% 증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7.1% 증가한 수치이다. 2021년의 콘텐츠산업 종사자 수는 총 61만 4734명으로 전년 대비 4.3% 감소,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2% 감소했다. 이 중에서 출판산업의 종사자 수가 17만 5898명(28.6%)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렇지만 전년 대비 –5.1%, 연평균 –1.2%로 종사자 수가 감소하고 있음을 보였다.
2021년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7.2% 증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5.0% 증가한 137조 5080억 원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는 출판산업이 24조 6978억 원(18.0%)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는 전년 대비 14.1% 증가, 연평균 4.4% 증가한 수치이다. 2021년 콘텐츠산업 부가가치액은 53조 228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4.9% 증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4.6% 증가한 수치다. 출판산업의 부가가치액이 9조 7401억 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년 대비 11.2% 증가, 연평균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콘텐츠산업 수출입 현황을 살펴보면 수출액은 124억 529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4% 증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9.0% 증가했다. 게임산업이 69.6% 비중으로 압도적 1위를 보였다. 출판산업은 음악, 방송, 지식정보산업에 이은 5위로서 3.4%의 비중을 보였지만, 전년 대비 23.8% 증가, 연평균 18.0% 증가해 매우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통계 결과에서 보듯, 한국의 문화산업(콘텐츠산업) 전체에서 출판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은 지대하다. 전체 문화산업(콘텐츠산업) 중에서 사업체 수, 종사자 수, 매출액, 부가가치액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차지하며 출판산업이 단연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 이면의 출판산업 취약상
그러나 통계 수치 이면을 잘 살펴본다면, 출판산업 위상이 겉으로 보이는 만큼 화려하지 않음을, 오히려 구조적 허약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우선 문화산업(콘텐츠산업) 통계 조사에 있어서, 비록 만화산업이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출판산업 범주에는 순수한 출판업을 넘어서 신문과 잡지 발행업이 포함됐을뿐더러 인쇄업, 출판 도소매업, 온라인 출판 유통업, 출판 임대업 등이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출판산업 통계에도 ‘빛 좋은 개살구’ 격으로 허점이 수두룩하다.
전체 문화산업 중에서 사업체 수가 제일 많다고는 하지만, 2021년에는 기존에 영세하여 잡히지 않았던 소규모 출판 사업체까지 모집단에 포함되면서 출판산업 사업체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다. 더욱이 서울과 경기도, 즉 수도권에 출판사가 크게 몰려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종사자 수 역시 전체 문화산업 중에서 출판산업이 제일 많다고는 하지만 허수가 있다. 즉 ‘순수 출판업’ 분야라고 할 일반 서적출판업(종이매체출판업), 교과서 및 학습서적 출판업, 인터넷/모바일 전자출판 제작업을 다 합친 종사자 수 비중은 고작 19.8%에 그치고 있다. 그에 비해 신문, 잡지, 기타 발행업 등이 19.8%, 인쇄업이 30.1%, 유통사와 서점으로 대표되는 출판 도소매업이 29.2% 등으로 전체 출판산업 종사자 수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지역별 종사자 수 역시 사업체 수의 수도권 집중과 비례해 서울과 경기도에 73.9% 비중으로 집중돼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문화산업 중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출판산업이라 하지만, 위에 제시한 ‘출판산업 업종별 연도별 매출액 현황’을 자세히 보면, 위의 순수 출판업 분야 매출액 비중은 고작 23.5%에 그치고 있다. 그에 비해 신문, 잡지, 기타 발행업 등이 20.8%, 인쇄업이 18.1%, 유통사와 서점으로 대표되는 출판 도소매업이 35.5% 등으로 전체 출판산업 매출액을 떠받치고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출판산업 지역별 매출액 역시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의 수도권 집중과 비례해 서울과 경기도에 77.3% 비중으로 집중돼 있음을 보여 준다.
출판산업 위상의 허와 실
위에서 고찰했듯, 출판은 ‘창의력’을 생산해내는 원재료라는 면에서 문화산업에서 기간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문화콘텐츠의 다중 유통 방식 및 융합 미디어 환경 속에서, 출판콘텐츠는 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따라서 출판산업은 문화산업의 핵심이자 원천임은 분명하다. 아울러 어찌 됐든 출판산업이 사업체 수, 종사자 수, 매출액, 부가가치액 부문에서 모두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통계 결과에서 보듯, 한국의 문화산업(콘텐츠산업) 전체에서 출판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은 지대하다. 또한 한국은 출간 종수로는 전 세계에서 10위 내에 들 정도로 출판 대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는 한국의 출판산업과 출판문화 등에 대해 자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솔직히 출판인 스스로 느끼는 문제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우선 출판인 스스로 풀어가야 할 주요한 과제가 있다. 출판산업에 종사한다는, 그 직업과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야말로 우리 출판산업을 공고히 하며 그 위상을 높이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출판계 인력난과 노동 현실이 심각하다.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노동자의 평균 재직 기간은 3.1년이며, 73%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직을 생각하는 주요 이유는 임금 불만(49.5%), 경영 불만(44.1%), 노동 시간이나 업무 강도 불만(42.3%) 등이다. 놀라운 것은 1~3년 차 직원 중에서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고용 불안 요인 1순위로는 출판 시장의 전반적 위기를 꼽고 있는데(46.1%), 특히 업계 사정을 잘 알게 되는 5~6년 차의 경우에는 이 위기를 더 크게 생각(55.7%)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 따르면, 출판사 재직노동자들은 첫째, 연장 근로 제대로 보상받기(74.3%), 둘째, 장시간 노동 줄이기(64.4%), 셋째, 포괄임금제 폐지(62.7%)를 요구했다. 오래 일하고 있으나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또 소위 ‘프리랜서’로 불리는 출판의 외주노동자들은 첫째, 적정한 작업 단가(95.1%), 둘째, 작업비 지연·체불 금지(69.6%)를 요구했다. 같은 조사에서 외주노동자의 61.8%가 연소득 2400만 원 이하라고 답했다. 전체 75.5%가 연소득 3000만 원 이하로 나타났는데, 외주노동자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출판계에 드리워진 작금의 이슈들, 즉 서울국제도서전과 세종도서 사업을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계 간의 갈등, 고(故) 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사태 및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서울도서관의 전자책 해킹 사건으로 인해 대두된 불공정 계약·저작권 침해 문제를 위시해 독서 지원 사업과 지역서점 활성화 및 작은도서관 등에 대한 예산 삭감, 대학도서관 장서 폐기, 공공·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검열 등의 문제 등은 작지 않은 파동을 일으키며, 출판산업 전체 위상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출판산업 위상 제고를 위한 제언
그래도 출판 노동 조건과 환경이 조금씩 개선돼 온 것도 사실이다. 출판사 대표를 위시한 사용자의 입장과 고충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조사 결과에서 보듯, 출판노동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진하고 부족하다는 것도 현실이다. 출판이 좋아 종사했던 젊은 인력들이 왜 자꾸 출판계를 떠나가는가? 우수한 인재들이 왜 출판계를 찾지 않는가? 이는 출판계가 노동 조건 향상과 직업 비전 제시라는 이중 과업에 실패한 결과다. 좋은 직업이 좋은 직업인을, 좋은 직장이 좋은 직장인을 만드는 법이다. 그래야 좋은 책이 나오고, 출판산업이 살고 위상이 높아진다. 출판계의 노사문제에 대해 더 늦기 전에 공론의 장에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마련도 시급하다. 출판계 자체의 위기감을 내부적으로 솔직히 공유하고 노사가 함께 고통을 겪고 이겨내면서 결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결국 긍정적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출판산업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자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소비자의 존재와 도움이 필수적이다. 출판산업은 더욱 그러하다. 독자 없이는 책도, 출판사도, 출판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출판계의 모토는 늘 ‘독자 존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적인 구호로 그쳐선 안 된다. 정녕 순수하고 또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독자 존중’이어야 할 것이다. 출판인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때, 그래서 출판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되새기며 무엇보다도 ‘독자 존중’ 마인드로 순수하게 출판에 종사할 때, 우리 출판과 출판산업의 위상은 더 한층 높아갈 것이다.
윤세민 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고문 월간 〈빛과소금〉 편집장, 도서출판 두란노 기획홍보실장, KBS/JTBC 시청자위원 및 방송패널, 한국간행물윤리위원, 교육부 국어교과서 심의위원, 서울시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 한국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판, 방송, 영화, 문화예술, 자기계발 관련 평론 및 강연 활동을 한다. 저서로 『미디어 문해력의 힘』(유아이북스, 2023), 『열린 소통, 성공 대화』(글로벌콘텐츠, 2023), 『역사와 문화로 읽는 출판과 독서』(시간의물레, 2014), 『한국출판산업사』(한울, 2012), 『미디어원론』(나남, 2003), 『현대출판론』(세계사, 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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