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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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는 목소리가 사회를 바꾼다 - 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정유라(다음소프트) 다음소프트 연구원. 학사과정으로 경영학과 불문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으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쉽게 감명 받고 그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것이 취미이다. 소셜 빅데이터에 나타난 라이프 스타일의 현재와 변화를 고객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그것을 왜곡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직업을 통해 스스로가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싫어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좋아요’의 시대에 살았다. 소셜미디어 그중에서도 특히 페이스북이 창조한 메커니즘 속 ‘싫어요’ 버튼의 부재는 ‘좋아요 만능주의’를 부추겼다.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팬 페이지’ 계정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다수의 ‘좋아요’가 새로운 권력을 상징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좋아요’를 양산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생성되었다.
개인의 SNS 프로필은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국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브랜드, 좋아하는 음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좋아요 만능주의’가 지향하던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플랫폼의 ‘싫어요’ 기능의 부재에 갈증을 느꼈고,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플랫폼은 제공하지 않았지만, 다수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싫어요’ 페이지가 그 방증이다. ‘좋아요’ 왕국이었던 SNS에 이제는 ‘ㅇㅇ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고 활발히 퍼지고 있다.
출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4.3만 명,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10만 명,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16만 명, 인스타그램 셀럽의 안티 계정 팔로워 5.6만 명… 이 외에도, 성범죄나 사회적 악습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는 집단적 부정의 목소리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싫다’는 감정은 이제 소셜미디어상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주요 기호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는 ‘좋아요’에서 ‘싫어요’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싫어하는 것이 사회를 바꾼다]

부정적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영역,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영역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개인적인 취향의 표시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예전에는 집단적 선택을 우선하고, 다수 의견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소수와 개인 의견의 중요성에 눈 뜨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입 밖으로 쉽게 내지 않았던 ‘부정적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한다. 이런 흐름은 타인의 취향을 엄살 혹은 편식으로 치부하던 사회적 둔감함에서 벗어나 좀 더 배려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싫어하고 혐오하고 불편한 것들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좋아하고 편안한 것을 인증하는 것보다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섬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오이를 싫어하는 것은 편식이 아니라 취향이며, 존중 받을 권리가 있는 개인의 기호라는 것을 사회가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적 영역에서 ‘싫음’은 그 대상이 어떤 것들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사회에서 다수가 싫어하는 것은 그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싫다’의 의미를 가진 주요 표현 열 가지를 바탕으로, 지난 4년간 우리가 싫어하는 사회적 이슈 키워드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 1_싫어하다(G)1) 연관 사회이슈 키워드 Top 10]

위 표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공분의 이유는 ‘갑질’이다. 해가 갈수록 이 말의 언급이 잦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다른 주요 키워드들도 약자에 가해지는 차별, 폭력과 연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언급 비중이 낮아 10위권에 들지 못한 탈세, 횡령, 강도와 같은 범법행위보다, 갑질, 성희롱, 미투에 더 큰 부정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갑질과 성범죄로 고통받는 약자, 즉 피해자가 결국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이 싫어하는 것을 밝힘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은 공감하는 사회적 문제에 분노의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사회를 향한 ‘싫다’라는 외침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무엇인지도 말해준다. 한 개인의 목소리로는 바꿀 수 없었던 사회적 인식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대해 응집된 목소리가 될 때, 그것은 하나의 현상과 운동이 되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공공연하게 묵인된 갑질 문화,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은근슬쩍 지나가던 성희롱 문제, 정당한 권리임에도 눈치가 보였던 ‘최저임금’에 분노를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한다면 사회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의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인식은 2018년 전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표 2_성범죄(G)2) 연관 서술어 미투 운동 전 후 비교]

2016년, 2017년까지만 해도 성범죄(G)의 연관어로 ‘무시하다’, ‘울다’, ‘답답하다’ 등이 주로 언급된 반면, 2018년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이런 단어들은 성범죄의 주요 연관 서술어로 등장하지 않았다. 울고, 무시하고, 답답해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용기 내다’와 ‘지지하다’, ‘응원하다’와 같은 키워드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잘못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개인의 분노가 아닌 공동의 분노는 공명하여 더 큰 울림을 낸다.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한 분노는 새로운 대화와 논의의 장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이제 ‘갑질’이 싫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성희롱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며, 약자에 대한 차별에 정당하게 분노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최근에서야 자유로워진 일이다.

 

[‘싫어요’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

행복과 분노 중 다수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행복’ 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좋아하는 힘은 그 대상을 강화하고 지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현실의 반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그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편안함, 무한 긍정 속에서는 혁신과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종종 용기 내어 외친 ‘싫어요’에서 나왔다. 과거 부당함에 대한 관대함이나 둔감함이 사회적 부패와 갑질, 성희롱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세상의 부조리를 극대화시켰다면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예민함과 민감함이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항의하며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 성범죄의 연관 서술어가 ‘답답하다’에서 ‘고발하다’로 바뀐 것은 ‘싫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우리 사회에서 이제 좀 더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건강한 싫어요’로 보인다. 사회적 부조리와 부도덕과 부당함에 반하는 부정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말하려는 정서적 차이를 들어보고, 기존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로 변화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다수가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들만 주목받는 사회가 아니라 소수 집단이 용기 내어 외치는 분노와 부정의 목소리에도 세심한 관심을 보이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려 깊은 사회는 건전한 분노를 씨앗으로 자라왔으므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기에.

 


1) 싫다, 열 받다, 화나다, 짜증 나다, 스트레스받다, 분노하다, 화나다, 역겹다, 증오하다 등의 합

2)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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