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글자크기작게 글자크기크게

숲속작은책방이 내게 선물한 것들 - 서점 다이어리

백창화(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올해는 연초부터 맘이 설렜다. 2014년 4월에 책방 문을 열어 5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농촌 시골마을에 책방을 연다고 했을 때 시작하는 우리나, 지켜보는 지인들이나 반신반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무려 5년을 잘 버티고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쩌면 앞으로 또 5년, 지금처럼 잘살아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맘이 설렜다. 그래서 한 해를 축제처럼 지내보기로 했다. 달력에 매달매달 작가 강연이며 음악회며 체험 워크숍을 채워 넣었다. 모든 행사 앞에는 항상 이 문구를 넣었다. “숲속작은책방 5주년”

남들에겐 보잘것없을 이 5년이 우리에겐 얼마나 기적 같은 날들이었나. 그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6월에 정원 음악회로 첫 문을 열었다. 책방 정원에서 두 시간 남짓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시를 읽고, 떡과 김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마치고 난 늦은 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음악의 아름다움은 말할 나위 없었고 수많은 덕담과 축하의 말들이 귀에 맴돌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부부를 감동시켰던 건 행사가 끝난 후에도 거의 백 명 가까이 함께했던 자리에 쓰레기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큰 행사에서는 처음으로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대형 쓰레기봉투를 준비해놓았는데도 손님들은 먹고 남은 자신의 쓰레기들을 각자 되가져간 것이다.

행사는 무료였지만 참가한 이들은 빠짐없이 책을 구매해서 이날의 매출도 폭발적이었다. 그날 우리가 느낀 것은 시골마을 이 작은 책방을 열렬히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이들의 격려와 지지였다. 그리고 정말 값진 선물 하나를 받았다. 열세 살 소녀가 건넨 편지. 제목은 ‘숲속작은책방이 내게 선물한 것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13살 조요엘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홉 살 때 이 곳 숲속 작은 책방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학교에 다니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요, 그런 제 모습을 보신 엄마는 학교를 3일 빠지고 책방 여행을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여행의 첫날 온 곳이 여기 숲속작은책방이었구요. 그 후로 저는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며 만화책도 읽었고 북토크에 처음 와 보기도 했고 선생님이 주신 나팔꽃을 정성스레 키우기도 했고요. 숲속작은책방 선생님들 덕분에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4년 전, 제가 숲속작은책방에 처음 온 날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쌓은 추억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쌓을 추억도 수없이 많을 겁니다. 저는 아직 어리지만 숲속작은책방에 제 과거와 미래의 추억이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뻐요.”

무대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준 어린 소녀의 글 한 줄 한 줄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와 겪었던 8년의 시간, 그만큼의 설움과 한탄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책방은 이런 곳이다. 아무 인연도 없던 이들이 책을 매개로 만나 서로의 삶을 느끼고 추억을 공유하는 곳.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달라 아마도 책방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이들이 단지 책을 좋아한다는 공감대 하나로 만나 함께 웃고 울기도 하는 곳. 책방지기와 손님에게는 잠시 스쳐가는 만남일 뿐이어도 이곳에서 집어든 책 한 권이 때로 그의 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운명의 장소.

숲속작은책방이 있는 괴산은 인구 3만 9천여 명의 농촌마을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인구 소멸 위기지역이다. 유치원과 초중고를 다 합해 54개 학교에 6천여 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서점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어린이, 청소년들이 질 높은 독서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작은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책방을 열었을 때 이곳을 찾아와 우리가 제공하는 질 높은 프로그램들을 향유하는 이들은 대개 도시 사람들이었다. 정보가 빠르고 문화 욕구가 높은 이들은 시골의 이 구석진 곳까지 잘도 찾아와 그들이 원하는 걸 채워갔다. 우리가 골라놓은 좋은 책들을 가져갔고 외국에서 어렵게 구한 소품들을 먼저 알아봤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의 강연과 워크숍도 도시인들 차지가 되었다.

책방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것은 우리로선 축복이었으나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편에서는 도시인들이 자연 속에서 휴식하기 위해 찾는 관광형 책방이 우리의 장점과 특징이지만, 그것과 나란히 우리가 만들어가고 싶었던 또 하나의 모습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동네책방이었기 때문이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책방, 지역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책방이길 바랬다.

책방을 열고 3년쯤 지나면서 비로소 이런 동네책방의 꿈이 이뤄져가기 시작했다. 교육청과 함께하는 ‘행복지구 마을학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지역 학교들과 협업의 길이 열렸다. 이전에는 책방을 드나드는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 간헐적으로 지역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스템 안에서 괴산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을 학교’가 된 동네 책방으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책나들이를 나온다.

책방지기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좋은 책을 권해주고 함께 미니북을 만들거나 책꽂이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는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골라 간다. 모든 활동의 시작과 마무리는 책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시골마을 어린이 중에는 서점이라는 곳을 처음 와보는 친구들도 많다.

괴산 읍내에는 문방구 서점 한 곳 밖에 없고 큰 서점을 가려면 차를 타고 인근 도시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서점이라는 곳을 경험해볼 수 없었던 친구들, 그들에게 숲속작은책방은 최초의 서점이다. 그 아이들에게 서점이라는 공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곳, 책으로 가득하지만 참 편안하고 따뜻한 곳, 언제나 가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 ‘내 고향 괴산’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이 숲속작은책방이면 좋겠다는 가당치않은 꿈을 품어보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이런저런 정부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작가 초청이 활발해졌다. 그러다보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 강연도 기획하지만 괴산 지역주민만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과 협업하여 청소년들이 미리 작가의 책을 사서 읽고 책방에 와 초청 작가와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북토크, 교사들만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책방에서 진행하면서 작가를 초청해 워크숍과 강연을 진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숲속작은책방이 준 선물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책방 북클럽이다.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안간힘을 쓰며 북클럽을 열었다. 때론 두세 명, 때론 아무도 없어서 열리지 못했던 북클럽.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책모임을 이어오면서 지금 북클럽에 이름을 둔 회원만도 2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10여 명이 매번 빠지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북클럽이 활성화되다보니 아예 이 시간을 이용해 작가를 초청해 북클럽 회원만을 위한 작가 강연을 열기도 했다. 참석 인원은 적지만 대중 강연보다 훨씬 밀도 높고 성실한 준비로 만족도 높은 시간이 되곤 한다.

책방 5년차. 이제 우리에겐 행사 때면 맨 앞자리를 차지하며 어려울 때 함께 힘을 보태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충성도 높은 책친구들이 생겼다. 가깝게는 우리 지역 괴산으로부터 인근 음성, 충주, 제천, 청주, 대전, 세종시에 이르는 충남북지역 친구들. 좀 멀게는 문경, 상주, 대구, 안동 같은 경북지역 친구들. 아주 멀게는 부산 경남과 전주 전북, 그리고 서울 수도권에 이르기까지 동네 책방 행사를 전국구 행사로 만들어주는 이들 책친구들 덕분에 오늘도 숲속작은책방은 풍요롭다.

헐벗은 황무지에 집만 덜렁 서있던 귀촌 초기를 지나 무성해진 풀과 나무, 사철 피고 지는 꽃들의 향기가 책방을 온통 뒤덮었듯, 부부 둘만이 서로 의지하던 책방에 사람꽃들이 가득 피었다. 책방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들 책친구들 덕분에 시골 책방의 일상은 풍요롭고 또 화려하다. 책방이란 이런 곳이다.

facebook twitter print top

연재물

관련 키워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