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09

VOL 6

글자크기작게 글자크기크게

문학 출판, 위기인가?

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약속이 있으면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만날 장소로 종종 정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무용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데다, 누구나 아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르면 어김없이 책을 한두 권 사게 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서점들은 오랜 시간 그런 장소로 우리 옆을 지켰다. 신촌에서는 홍익문고가 그러했고, 강남역 교보문고도 그러했고, 홍대에서는 북카페 카페꼼마가, 대학로에서는 풀무질이 그런 기능을 했다. 우리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아마 높은 천장까지 가득 쌓여있던 책들이 만든 그 풍경이 그리울 것이다. 만약에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출판인들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 올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매년 사람들이 사는 책은 줄어들어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중이다. 그러니까 ‘만약에’가 정말 ‘만약에’로만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 문학인 실태조사’는 올해 처음 실시된 조사다. 국내 3대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 국제PEN한국본부에 속한 문학인 2200명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17년의 독서실태’에 관한 조사를 작년 7월부터 10월까지 실시했다. 무려 647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조사자료 중에서도, 책을 읽고 만드는 이들이 주목해야할 숫자들이 몇 가지 있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국민독서실태조사는 이뤄진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 볼 지점은 국민들이 ‘문학’을 얼마나 읽으며, 어떤 이유로 읽지 못하는 지일 것이다.

조사 결과 국민의 69.1%가 독서활동이 필요하다(긍정적)고 인식하고 있었다. 국민의 독서율도 68.0%에 달했다. 이 중 문학 분야 독서율은 53.1%였다. 전 국민의 3분의 1은 책을 전혀 읽지 않으며, 문학을 읽지 않는 숫자도 절반에 달한다는 결론도 도출이 가능하다.

아직 문학인들이 절망하긴 이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주된 독서 분야(종이책 기준)로는 문학이 32.3%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장르소설이란 응답도 18.4%에 달하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이 책을 읽는 목적의 절반 이상은 소설과 문학을 읽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경영(5.8%), 자기계발서(8.8%) 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2017년 한 해 동안 문학책을 읽은 사람의 문학책 독서량이 평균 7.5권이라는 수치는 좀 놀라웠다. 비록 문학책을 읽는 독자가 절반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3달에 2권 가량의 책을 읽고 있다는 얘기다. 이 중 종이책은 6.4권, 전자책은 1.1권으로 집계됐다. 문학책 구입률은 50.1%였으며 2017년 한 해 동안 문학책을 구입한 사람들의 평균 비용은 8만 4,000원대로 나타났다. 종이책 기준으로는 평균 7만 9,000원대, 전자책 기준으로는 평균 3만 7,000원대였다. 문학책 구입시 적당하게 생각하는 평균 가격대는 권당 1만 1,000원 정도이며, 구입할 수 있는 최대 가격대는 15,000원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책을 사거나, 선물 받거나, 대여해 본다는 응답 외에도, 웹소설을 읽는다는 응답도 9.2%에 달했다. 이는 최근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독서 문화의 변화를 반영한다.
생활 속에서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문학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응답이 65%였고, ‘도서관에서 문학책을 읽어 보았다’가 63.5%로 문학 읽기 환경 자체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문학책을 사는 데도 일정 비용 이상을 꾸준히 지출하고 있었고, 주변에 도서관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읽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읽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문학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문의 답을 자세히 뜯어봐야 한다. 응답자들이 문학 분야 이외의 책은 읽으면서, 문학 책을 읽지 않은 이유로 꼽은 1, 2순위를 보니 ‘내게 알맞은 문학 책을 선택하기 어려워서’가 52.3%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책을 읽느라고 문학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42.3%),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문학 책이 없어서’(39.6%), ‘학업, 입시, 취업, 업무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35.6%), ‘문학 책을 통해 감동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서’(20.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에 향후 문학책을 읽을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보통’(43.3%)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문학을 읽도록 독자를 끌어 들일 필요성은 여전히 커 보인다. 문학 분야는 읽지 않고 문학 이외 분야만 읽는 ‘문학에 배타적인’ 독자의 비율도 14.9%에 달했다.

한편 문학책의 구입 기준으로는 ‘책의 내용(스토리)’을 58.1%가 꼽아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베스트셀러인지 여부(17.5%), 작가가 누구인지(15%)도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이 된 후에도 독서와 문학 작품 읽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단순 관람 형태의 활동보다는 문학 동아리 활동과 같은 읽기 활동 체험이 중요하지만, 현재 ‘문학 동아리 활동’은 일반 국민의 1.7%에 불과해 이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문학책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높은 것은 물론, 독서 인구 중에서 문학책을 선택하는 비율도 높은 편이었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잃어버린 독자’들은 ‘책의 발견성’ 부족에 기인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자신에게 맞는 문학책을 선택하기 어려운 절반이 넘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은 책 이외의 매체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기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비롯해 TV와 영화, 게임 등 책의 경쟁자들은 더 가공할만한 힘으로 우리의 시간을 잠식하고 있다. 이들을 경쟁자로 삼기에 앞서, 젊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들 매체를 통해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더 많아진다면, 책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아닌,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이 나왔다. 우선 ‘문학인이 꼽은 한국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는 『토지』가 꼽혔다. 뒤를 이어 『태백산맥』, 『혼불』, 『광장』, 『진달래꽃』, 『소나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시』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외에도 문학인들은 『죽음의 한 연구』, 『사람의 아들』, 『관촌수필』, 『객주』, 『칼의 노래』, 『소년이 온다』 등의 소설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다.

문학인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녹록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학인들의 53.1%는 문학 창작 이외 다른 직업이 있는 겸업작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학 이외의 직업을 갖게 된 이유(복수 응답)로도 ‘문학 활동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83.4%로 가장 높았다.

문학인들의 연간 총 수입액은 평균 1,840만원으로, 국내 다른 직종의 평균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편이었다. 응답자 중에는 ‘1,000만원 미만’이 43.4%, ‘1,000만원~3,000만원 미만’이 25.7%, ‘3,000만원 이상’이 23.8%, ‘소득 없음’은 7.0%로 나타났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연간 쏟아지는 번역서의 수는 2,800여종에 달했다. 번역서 비중도 약 24%로 높은 편이다. 비중을 매출 기준으로 한다면, 해외문학의 점유율은 훨씬 높다. 지난 몇 년간 국내 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는 국내 작가의 이름을 찾는 것보다 일본 작가의 이름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한국 작가들의 인기는 높지 않았다.

국내 출판 시장이 위기인가, 라는 질문은 답이 뻔한 질문이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위기였으며, 앞으로도 위기일 것이다. 문학은 단지 독자들에게만 효용이 있는 예술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한류’를 이끄는 예술의 원저(原著)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지 시장 논리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았음을 기록하는 사료가 될 것이며, 다른 예술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다.

독자는 국내 작가들의 책을 더 찾아 읽고, 출판계는 적극적인 작가 발굴 노력과 서점 확장으로 시장을 키우고, 독자들에게도 오프라인 북클럽과 매체 등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면, 위기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건강한 독서 문화가 가장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노오력’이 필요하다.

facebook twitter print top

정책줌인

관련 키워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