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2019.12

VO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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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텍스트 비즈니스를 보다

김보경(출판사 지와인 대표) 출판인. 현 지와인 대표. 전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인플루엔셜 출판사업 본부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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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등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텍스트의 시대’는 끝났다는 암울한 예언이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의 읽기와 쓰기 수준이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도 횡행했었다.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처음에는 기괴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있는 사람이 도리어 신기한 시대. 정말 텍스트의 시대는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스마트폰의 필수 앱인 시대가 되었지만, 텍스트는 살아남았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한 지 올해로 10년, 텍스트 콘텐츠를 둘러싼 그간 논의들을 정리하면 대략 이쯤 되지 않을까.

- 텍스트 콘텐츠의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이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서대여점이 없어지고 웹소설 시장이 생겨났듯이, 지금은 모바일 안에 들어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 텍스트만이 가진 장점이 더 또렷해졌다. 많은 양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 상상력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 더 깊이 있는 사고력을 만든다는 점이다. 읽기 자체의 재미, 읽기 자체의 깊이에만 집중해도 모바일 시대의 사람들은 반응한다.
- 텍스트 생산이 쉬워지고, 그 생산 수단이 다양해진 시대가 되었다. 텍스트 쓰기를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채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온라인에서 글을 쓰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출판과 미디어가 양산되고 있다.

디지털의 시대에도 텍스트 콘텐츠의 장점이 건재하다거나 재발견되고 있음은 좋은 일이다. 그래도 고민은 남는다. 첫 번째는 이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무료로 흘러 다닌다. 음악, 만화, 영화는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텍스트에 기반을 둔 콘텐츠가 유료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고민은 디지털 시대의 텍스트 읽기가 현재의 출판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이다. 분명히 책은 안 팔리고, 출판사는 어렵고, 서점도 어렵고, 저자도 어렵지 않은가. 지난 7월 4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포럼 '퍼블리싱의 새로운 흐름'은 이런 고민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퍼블리싱의 위기는 없다. 출판의 위기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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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콘텐츠 비즈니스에 도전해온 스타트업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받아낸 투자의 규모가 그 증거다. 텍스트 콘텐츠의 비즈니스를 먼저 고민한 쪽은 출판보다는 미디어 쪽이다. 기사는 무료로, 수익은 광고로 채우던 언론사들이 온라인 시대를 맞아 먼저 위기에 직면했고, 텍스트 콘텐츠의 유료화 모델을 앞서 모색했다. 콘텐츠 관련 스타트업도 출판 쪽보다는 미디어업계에서 먼저 나왔다.

이 중 국내에서 기사 유료화 모델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온라인 미디어 ‘아웃스탠딩’이다. 2015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IT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지만 기존의 뉴스식 글쓰기가 아니라, 마치 파워블로거처럼 전문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재미있고 친절하게 전달하는 글쓰기를 구사했다. 이듬해 미디어업계에서는 드물게 B2C 온라인 정기구독제를 시행해 일정 수준의 구독자 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플랫폼, 콘텐츠, 블록체인, 인공지능, 모빌리티, 게임, 투자 등의 분야에서 ‘돈을 내고 보더라도 꼭 봐야 할’ 비즈니스 정보를 제공한다는 신뢰를 얻으면서 유료 콘텐츠 사업으로 안착시켰다. 최근 아웃스탠딩은 리디북스에 인수되었다. 왜 아웃스탠딩은 리디북스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아웃스탠딩 최용식 대표는 지난 2월 리디북스 인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웃스탠딩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플랫폼화, 체계화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멤버 모두가 기자라 톡톡 튀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뿐 관련 직능을 갖추지 못했다. 창업의 기치였던 게임 체인저로의 도약을 위해 인수를 받아들였다.”

아웃스탠딩보다 출판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스타트업으로는 ‘퍼블리’가 있다. 퍼블리 또한 2015년에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표방하는 퍼블리는 경영, 창업, 리더십, 마케팅과 관련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특히 현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의 업무에 필요한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기에 퍼블리가 콘텐츠의 ‘유료화’를 입증한 방식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먼저 프로젝트 주제를 선정하고 그 기획안과 펀딩 목표액을 올려둔다. 그 기획안을 구매하겠다고 의사결정을 하는 독자들이 목표치를 넘어서면 콘텐츠가 발행되는 방식이었다. 현재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접고 구독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퍼블리가 구독 서비스로 전환한 이유를 퍼블리 박소령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얼리어답터 비즈니스’ 모델이라 성장과 확장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시간을 ‘더 많이, 더 오래’ 점유하는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웃스탠딩보다는 훨씬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퍼블리 또한 자기 독자의 범위가 분명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에 집중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젊은 직장인들의 자기계발과 직무 향상’이다. 자신의 일을 갖고 있고, 그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을 유료로 구매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35~40세 연령대가 퍼블리의 주요 고객층이다. 특히 사람들이 쉽게 가볼 수 없는 해외 컨퍼런스의 참관기 등이 퍼블리 성공의 핵심 콘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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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스리체어스라는 기업으로 시작한 북저널리즘은 훨씬 더 출판 모델에 가깝다. 원래 스리체어스는 2014년, 한 호에 한 명의 인물을 다루는 평전형 잡지를 출간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7년 북저널리즘 사업으로 진화했다.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 지금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루는 것이 북저널리즘의 모토이다.

북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100여 쪽 분량의 작은 책으로 만든다. 스리체어스라는 로고를 달고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문고본 형태의 종이책이 바로 이것이다. 이 문고본은 일본의 신서(新書)와 같은 시장도 전혀 없었던 한국 출판 시장에서, 젊은 독자들의 트렌드에 맞춘 컨셉과 주제로 틈새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현재 북저널리즘의 주력 사업도 온라인 구독 모델이다. 월정액을 내면 온라인에서 북저널리즘의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종이책 출간도 지속적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주제의 선정이 아웃스탠딩이나 퍼블리와 달리 정치, 사회, 문화, 에세이 분야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점에서 훨씬 더 출판에 가깝게 느껴진다.

퍼블리도 『퇴사 준비생의 도쿄』처럼 자신들의 콘텐츠가 책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직접 출판이 아니고, 퍼블리의 콘텐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2차 가공 과정을 거친 것에 반해, 북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직접 출간하고 유통한다.

북저널리즘에서 출간되는 콘텐츠 중에는 디지털로만 출판되는 경우도 꽤 있다. 그 기준은 바로 분량이다. 손에 잡히는 물성이 중요한 책의 경우 기본적으로 담보되어야 하는 분량이 있다. 원고가 100쪽을 넘지 않으면 디지털로만 출간한다. 디지털 전용인 경우에도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길이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북저널리즘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즘의 성격을 지향하기 때문에, 상업성이 없는 콘텐츠라고 해도 내부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콘텐츠는 발간한다. 북저널리즘에 들어가면 캠페인 성향의 콘텐츠가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북저널리즘에는 고객 유입을 위한 무료 콘텐츠가 없다. 흔히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무료를 몇 개 풀어 고객을 대거 유치하고 유료 전환율에 기대는 방식을 취하지만, 북저널리즘은 그렇지 않다. 느리더라도 유료회원이 느끼는 만족도에 더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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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 세 군데 정도가 최근 텍스트 콘텐츠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들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월 구독료의 경우 아웃스탠딩은 월 9,900원이다. 2016년 처음 생각했던 구독료는 2만9,900원이었다고 한다. 퍼블리의 구독료는 21,900원, 북저널리즘은 1만9,000원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출판과 미디어에서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 미디어와 출판의 경계에 있는 스타트업들이다. 아직 이들의 매출 규모는 그리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업 인수와 투자 유치에서 보듯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사업으로서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매출과 조직 확장이 상승세에 있다는 점에서 출판에 비해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을 출판에서 눈여겨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긴 글’을 다루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대에 ‘긴 글’이 먹힌다는 건,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될까 불안감을 느끼는 출판계로서는 어떤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잡지계이다. 얼마 전 『에스콰이어』는 「긴 기사의 반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 무덤이 될 줄 알았던 온라인에서 다시 긴 텍스트가 사랑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유통량이 폭증했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유통되는 정보의 질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날카로운 지식과 검증된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가장 최적화된 콘텐츠 형식은 여전히 문자 기반 콘텐츠이다.”

이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질이 담보된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수요는 여전히 모바일 안에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출판은 텍스트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디지털 환경에 맞는 비즈니스 창출에서는 부진하다. 그렇다면 온라인에 기반을 둔 새로운 퍼블리싱 업체들의 행보에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점들이 많지만, 우선 두 가지 정도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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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텍스트 콘텐츠가 유료일 수 있는가 아닌가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라기보다는 콘텐츠가 놓여 있는 맥락과 배경이라는 점이다. 텍스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들이 생산하는 원고를 보면, 기존 출판계에서 생산해내는 것보다 더 양질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서 시장이 아니라 모바일 생태계 안에서 무료로 범람하는 기사들, 전문성과 정보의 양이 떨어지는 글들과 같이 놓였을 때 이들의 비교 우위가 있다. 특히 트렌디한 주제를 다룰 경우 더욱 그렇다. 불특정 다수에게 ‘이것이 이슈’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핵심 독자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 ‘당신들만을 위한 더 좋은 정보가 있다’고 말을 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콘텐츠의 생산 방식부터가 그렇다. 퍼블리의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나 북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전문가의 기자화’라는 생산 방식은 모두가 콘텐츠의 가치를 보증하는 맥락과 배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 가치가 검증되었다는 맥락이 만들어지면, 유사 콘텐츠와의 비교 경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니까, 거품이 없는 콘텐츠, 광고가 아닌 콘텐츠,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들 비즈니스의 성공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출판 시장에서는 책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콘텐츠도 온라인에서는 발행될 수 있는 것이다. 단행본을 기획할 때 흔히 기각되는 기획안 중에는 내용이 좋긴 한데, ‘책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시의성이 강한 것’, ‘책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분량이 적은 것’ 들이 있다. 이런 콘텐츠를 도서 시장이 아닌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놓으면, 지적했던 약점은 희미해지고 상품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과 배경의 재구성을 확장해서 플랫폼 전략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북저널리즘의 경우, 초기 2년 동안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다. 자기만의 플랫폼을 만들었을 때,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었다. 플랫폼을 만들고 그 안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일정 규모의 소비자 군을 모으게 되면, 그 안에서 콘텐츠의 반복과 확장은 물론, 브랜드 전략을 사용하는 게 더 쉬워진다. 북저널리즘의 이연대 대표는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출판을 볼 때 신기한 것은, 아무리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고 해도, 다음 책을 만들 때는 다시 제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때문에 종수가 많다고 해도, 그 출판사만의 독자가 계속 늘어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독자가 반복되고 확장되는 모델을 기존 출판에서 찾는다면 시리즈물일텐데, 저희는 디지털 환경에서 시리즈물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시의성을 강조하는 기획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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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새로운 퍼블리싱 업체들은 콘텐츠의 독자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에 공을 많이 들인다. 우선 자신들의 독자를 파악하는 수준이 매우 구체적이다. 당연하게도 회원제 모델을 구축하면, 독자에 대한 데이터도 훨씬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새로운 독자들을 개발할 때 드는 기회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작업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출판에서는 거의 쓰지 않거나 효과가 없는 뉴스레터 마케팅도 이 업계에서는 중요하고, 그 뉴스레터의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었을 때 회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또한 퍼블리와 북저널리즘의 경우, 온라인에서의 독자 소통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소통 역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룬다. 퍼블리는 회당 50명에서 300명까지 모이는 온라인 예매 방식의 오프라인 행사를 수차례 열어왔다. 북저널리즘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는 일에 역량을 많이 쓴다. 비단 원고를 쓴 저자만이 아니라 원고를 기획하고 작성한 에디터와 독자들이 만나서 토론하는 자리를 자주 연다.

이런 활동들은 이후 콘텐츠의 기획과 생산의 질을 높이는 데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자 주변을 네트워킹하고, 생산자 주변을 네트워킹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도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된다. 텍스트를 소비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옅어지는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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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출판계에서 디지털 환경에 맞는 콘텐츠 사업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전자책, 오디오북, 앱북과 같이 도서 콘텐츠의 형태를 다변화하는 일부터,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서점은 서점대로 온라인 시대에 맞는 사업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고민해왔다. 자잘한 성공들은 있었을지 몰라도 반복되고 지속되고 확장된 경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비즈니스가 되지 못한 것이다.

출판과 가까운 영역에 있는 스타트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하나는 아무리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해도 출판은 연 8조 원에 가까운 시장이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직장인의 자기계발 시장을 중심으로 ‘평생 교육’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이 ‘평생 교육’에 가장 좋은 콘텐츠가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이 시장에서 책이라는 콘텐츠를 디지털 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가치’로 느껴지게 하면 유료화는 해결된다.

다행히 이제는 출판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출판이 ‘책’만 만들고 파는 곳이 아니라 콘텐츠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같은 외부의 자극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반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길고 깊이 있고 무거운 텍스트든, 짧고 얕고 가벼운 텍스트든, 짧지만 깊이가 있는 텍스트든, 얕은 재미로 길게 끌고 가는 텍스트든,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읽는다. 그게 책이어서 좋은 경우도 있지만, 책보다 더 좋고 편한 방식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리로 이동한다.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다른 것보다 ‘이게 낫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뿐이다. 시(詩)가 살아남은 것은, 아무리 광고 카피가 멋있고, 유명 인사들의 명언들이 멋있다 해도 결국 ‘시’만큼 멋진 인생의 슬로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멋진 인생의 슬로건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사람들이 ‘갖지 않고’ 그냥 인터넷에서 흘려보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 시집이 살아남은 것 아닐까.

반대로 새로운 스타트업에게 앞으로 주어진 과제도 똑같다. 독자들이 콘텐츠를 구독하다가 어느 날 취소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콘텐츠의 수가 적어서, 요금이 비싸서가 아니라, ‘다루는 주제가 트렌디한 건 좋은데, 기대했던 것보다 콘텐츠의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출판은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DNA를 갖고 있다. 출판 기획이야말로 “이게 과연 돈을 주고 살만한 콘텐츠인가?”, “이 콘텐츠를 지금, 왜, 누가 원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내는 일 아니던가. 다만 좀 더 부지런할 필요는 있겠다.

콘텐츠 비즈니스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기존 출판계가 ‘귀찮아서’ 하지 않는 일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독자를 파악하고 만나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이든 홍보든 잘 나가는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어떻게든 ‘나의 기지’를 구축하는 일에 열심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자리가 잡힐 때까지 일정한 자원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작전을 짠다.

출판이 위기에 있다고 한다. 한번 가만히 둘러보라. 위기에 처하지 않은 업이 어디 있는가. 리스크 없는 비즈니스란 없다. 텍스트가 ‘다시 돌아오는’ 시대, ‘잘하던 것을 더 잘하기 위한’ 오늘의 방법에 출판이 좀 더 맹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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